이것도 제 삶입니다 : 섭식장애와 함께한 15년

이것도 제 삶입니다 : 섭식장애와 함께한 15년

$17.00
Description
폭식과 구토로 미끄러지는 삶도, 유예할 수 없는 지금의 삶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투병기가 아니다

이 책은 15년이 넘게 섭식장애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섭식장애 당사자의 글이다. 저자 박채영은 섭식장애를 관계의 문제로 파악하며 접근해 들어가는 다큐멘터리 영화 〈두 사람의 위한 식탁〉(김보람, 2023)의 주인공이고, 올해 국내에서 최초로 열린 ‘섭식장애 인식주간’에 참여해 섭식장애 당사자로서 ‘납작하지 않은’ 이야기를, 섭식장애라는 질병의 이름으로만 똑같이 묶일 수 없는 질병 경험을 나눈 바 있다.
섭식장애 문제가 전에 비해 가시화, 사회화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를 개인의 의지 문제, 외모에 집착하는 젊은 여자들의 문제, 다이어트의 부작용 정도로 바라보는 단편적 이해와 편견은 우리 사회에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섭식장애에 대한 정확한 질병 통계조차 없어 의료 시스템 안에서도 그 자리가 매우 작다. 치료자를 경유하거나, 취재의 소재로 등장하지 않고 당사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흐름은 이제 겨우 발을 내디뎠다.

《이것도 제 삶입니다》 역시 섭식장애 당사자의 목소리로 질병과 함께해온 시간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투병기는 아니다. 질병을 다룬 이야기를 접할 때, 우리는 대개 누군가가 겪은 그 질병의 원인을 찾고, 그 증상을 분석하고,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지 매끈한 설명과 이야기를 원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비정상적 상태인 질병을 극복해 ‘정상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당위가 깔려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섭식장애의 병증을 묘사하는 데 집중하거나, 질병을 ‘극복’하고 ‘치료’하는 데 매진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은 질병과 함께 살아온 오랜 시간과 경험을 마주하고 기록한 질병서사이며, 질병을 겪어내고 통과하며 확장된 삶의 기록이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려 노력하기보다는 정상성이 무엇인지, 질병이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나에게 주어진 밥을 남기고 먹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저자에게 그간 어떻게든 완수하려 했던, 세상이 내준 과제를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타인을 중심에 두지 않은, 나를 중심에 둔 결정이었다.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에 단 한 번도 거부한 적 없는 엄마의 밥을 거부했다. 그것은 엄마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선언이었다. 엄격하게 지킨 세밀한 식단의 통제는 단순한 거식이 아니었다. 폭력적이고 위계적 공간인 학교를 벗어난 한 명의 청소년이, 어찌할 줄 모를 혼자만의 긴 시간 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규칙이었다. 거식 이후에 찾아든 폭식과 구토는 무력감과 불안으로 빠져드는 그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힘을 상기시키는 방법이기도 했다.

우리는 유년 시절에서 이어지는 저자의 서사 속에서 삶의 주도권을 찾기 위해, 불안과 우울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내가 나로 살기 위해 싸우는 투쟁의 현장으로서의 몸과 섭식장애를 바라보게 된다. 또한 평생의 절반 이상을 섭식장애와 함께하며 실패와 좌절, 성장을 오가는 기록을 통해 질병이 단순히 개인의 몸에 국한해 벌어진 사건이 아니고, 관계와 사회라는 맥락 위에 놓여 상호작용하는 과정이자 결과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뿐이다.
저자

박채영

초등학교졸업이후연달은자퇴로졸업장은한장,그마저도잦은이사도중잃어버렸다.졸업장도,자격증도없이한국에서잘살아남기위해고군분투중이다.질병서사도이력이될수있을까.방황도경력이될수있을까.
잘아픈것도장기라면장기라고,사방팔방부딪히며뻔뻔하게살아보고싶은30대다.
섭식장애를다룬다큐멘터리영화〈두사람을위한식탁〉(2023)의주인공이며,2023년국내최초로열린‘섭식장애인식주간’에참여해섭식장애당사자로서의경험을나눴다.앞으로도섭식장애를가시화하고사회화하는작업에성심껏참여할예정이다.

목차

표지설명
추천의말

들어가며

1부이야기의시작
이야기의시작
거식증적인생각입니다
씹다,삼키다,토하다
몸이커질것같은공포
먹는마음
이가빠지는꿈
어떤이별
1부를마치며

2부나를키운여성들
금주
그날,겨울
상옥
상분
기숙사가키운아이
냉장고가꽉찬여자들
용서
2부를마치며

3부이런삶이라도
RE-born
길위에서
쉘위댄스
한국이싫어서
어느날고양이가내게찾아왔다
아픈몸으로살아간다는것
요리하는사람
3부를마치며

나가며

출판사 서평

그러니까,이책은투병기가아니다

이책은15년이넘게섭식장애와함께살아가고있는섭식장애당사자의글이다.저자박채영은섭식장애를관계의문제로파악하며접근해들어가는다큐멘터리영화<두사람의위한식탁>(김보람,2023)의주인공이고,올해국내에서최초로열린‘섭식장애인식주간’에참여해섭식장애당사자로서‘납작하지않은’이야기를,섭식장애라는질병의이름으로만똑같이묶일수없는질병경험을나눈바있다.
섭식장애문제가전에비해가시화,사회화되었다고하지만,여전히이를개인의의지문제,외모에집착하는젊은여자들의문제,다이어트의부작용정도로바라보는단편적이해와편견은우리사회에서강력하게작동하고있다.거기에더해섭식장애에대한정확한질병통계조차없어의료시스템안에서도그자리가매우작다.치료자를경유하거나,취재의소재로등장하지않고당사자가자신의목소리를내기시작한흐름은이제겨우발을내디뎠다.
《이것도제삶입니다》역시섭식장애당사자의목소리로질병과함께해온시간을이야기하는책이다.그러나이책은투병기는아니다.질병을다룬이야기를접할때,우리는대개누군가가겪은그질병의원인을찾고,그증상을분석하고,어떻게하면해결할수있는지매끈한설명과이야기를원하게마련이다.그리고그기저에는비정상적상태인질병을극복해‘정상성’을회복해야한다는당위가깔려있다.하지만이책은섭식장애의병증을묘사하는데집중하거나,질병을‘극복’하고‘치료’하는데매진하는이야기가아니다.이책은질병과함께살아온오랜시간과경험을마주하고기록한질병서사이며,질병을겪어내고통과하며확장된삶의기록이다.‘비정상’을‘정상’으로되돌리려노력하기보다는정상성이무엇인지,질병이무엇인지를질문한다.
나에게주어진밥을남기고먹기를거부한다는것은저자에게그간어떻게든완수하려했던,세상이내준과제를거부한다는것이었다.타인을중심에두지않은,나를중심에둔결정이었다.엄마의사랑을확인하는가장확실한증거이기에단한번도거부한적없는엄마의밥을거부했다.그것은엄마로부터의독립을위한선언이었다.엄격하게지킨세밀한식단의통제는단순한거식이아니었다.폭력적이고위계적공간인학교를벗어난한명의청소년이,어찌할줄모를혼자만의긴시간속에서나를지키기위한규칙이었다.거식이후에찾아든폭식과구토는무력감과불안으로빠져드는그에게무언가를할수있다는힘을상기시키는방법이기도했다.
우리는유년시절에서이어지는저자의서사속에서삶의주도권을찾기위해,불안과우울로부터자신을지키기위해,내가나로살기위해싸우는투쟁의현장으로서의몸과섭식장애를바라보게된다.또한평생의절반이상을섭식장애와함께하며실패와좌절,성장을오가는기록을통해질병이단순히개인의몸에국한해벌어진사건이아니고,관계와사회라는맥락위에놓여상호작용하는과정이자결과임을자연스럽게받아들이게될뿐이다.

허기진여자들,
소화시킬수없는여자들,
그럼에도살아남은여자들이키운아이

특히이책은섭식장애와긴밀하게엮인어린시절,질병과함께비틀거리면서도세계를확장해온성장기와함께한부를통틀어채영(저자)를키운여성들의삶과그들과의관계를기록하는데할애한다.채영의상처를열고들어가면거기엔엄마와이모들의상처가,그들의상처를열고들어가면또그들엄마의상처가이어진다.
채영의엄마상옥은과거에노동운동가였으며,지금은사회에서담아내기어려운학생들이모이는대안학교의교사이자,1990년대에‘이혼녀’로딸과단둘이한국사회를헤쳐온인물이다.정의로운시민,현명한교사인그는어려서부터딸에게혼자밤길다니지말라고,공중화장실가지말라고,옷매무새를잘하라고,낯선이들의접촉을경계하라고이르는,가부장적사회를살아가는불안한여성이자엄마이기도했다.
채영의할머니이자상옥의엄마인금주는아마도성인의나이가된이후의평생을토하며살아온여성이다.‘도라지’담배를태우고,치매를앓는시어머니와당뇨를앓는남편을진절머리나는얼굴로평생돌봤다.남편의자식들이어린자신의딸들을추행했다는것을훗날알고도“나도몰랐지”한마디만을했을뿐이다.소화가되지않는다며노상소화제를집에두고살았다.화장실변기근처에는언제나구토를하기위한칫솔이놓여있었다.환자로입원해서도구토를하려다식도가찢어지기도했다.마음대로할수있는게,자신의몸뚱이하나뿐인또하나의여성이었다.
채영에겐그를키운이모들이많았다.엄마와피를나눈이모도,우정과마음을나눈이모도많았다.그중그의둘째이모는어린시절그의주양육자이기도했다.채영의엄마가유산위기에있을때전국팔도를뒤져치료제를찾아낸것도,분만실바깥에서채영모녀를기다리고있던사람도,병원비를내준사람도채영의둘째이모였고,채영의출산후채영모녀가들어가살게된집도채영의둘째이모네였다.조카인채영에게더없는신뢰를보낸그의이모는한편자신의딸에게는불안하고매서운엄마였고,오랜섭식장애를앓아온딸의증상을외면해온엄마이기도했다.채워지지않는허기를채우듯냉장고를꽉채우는또다른이모들속에서,화장품냄새와담배연기가뒤섞인여자들의공간에서채영은자랐다.
채영은어린시절많은언니들과함께자라기도했다.한국의교육시스템에서튕겨나온10대들이모여있던대안학교에여자기숙사사감으로일하게된엄마를따라채영역시기숙사에서어린시절을보냈다.그리고그곳에서만난언니들은채영의또다른자매가되어그를키웠다.
채영은이렇게늘조금다른여자들의틈에서자랐다.조용하고순종적인여성을요청하는가부장제에,성적과권력이서열이되는학교에들어맞지않은여자들,정상성에서는언제나조금씩비껴있는여자들,그래서세상에치이면서도세상을살아내기위해몸부림쳐온여자들이그를길렀다.그를기른여자들이그러했듯채영도이땅에서살아남은조금다른여성이다.생계활동을해야하는싱글맘의딸로,폭력적인학교공간을견딜수없어학교를나온청소년으로,가부장제사회의여성으로현실를살아내왔다.고로,그의상처는개인의것이아니며그의질병또한그만의것이아니다.그의질환은갑작스러운사고가아니라켜켜이쌓인이현실에서의시간속에서발생한증상이다.
채영과채영을낳고키운여자들이아무리곱씹어도삼켜소화시킬수없었던것,게워낼수밖에없었던것이그저음식이었을까.그들의허기는냉장고를아무리채우고폭식을해도,어째서온전히충족되지않는것일까.왜섭식장애는여자들에게서여자들로이어지는것일까.사랑과미움,존경과답답함이뒤섞인이여자들의관계와삶을읽으며,우리는가장대표적인성별화된질환인섭식장애의발병에깔린사회적,구조적이유를찬찬히들여다보게된다.또한몸과질병은그몸이놓인세상과맥락에서독립적이지않다는사실을다시한번강렬히확인하게된다.

질병과의관계를살피며확장하는삶의기록

우울과불안,폭식과구토를오가는삶을두고누군가는‘그렇게사는게사는거냐’고묻고싶을지도모르겠다.하지만이책을통해저자는“이것도삶”이라고담담히,힘주어답한다.“증상과발맞추어최악으로떨어지지않기위해갖은노력을하면서사는것도삶”이라고말이다.질병을가진사람대부분이그렇듯그역시직장생활도하고,연애도하고,친구들과즐거운시간을보내고,어떤존재를돌보기도한다.누군가의삶은질병으로만잠식되지않는다.그는엄마와수많은이모와언니들,그러니까깊숙하게스며든가부장제사회를견디고헤쳐온여자들이키운아이,폭력적인학교체제를벗어난탈학교청소년,춤과요리를사랑하는사람이자동거묘들과서로를돌보며사는인간이다.
섭식장애는여전히그의일상을뒤흔들고,여전히그는폭식과구토로자주미끄러지곤한다.어느때는밀착되었다가어느때는멀어진다.질병이삶에아무런문제가되지않는다고,괴롭지않다고,‘좋은것’이라고말하는게아니다.다만한국사회에서는아직도사회적으로충분히가시화되지않은섭식장애라는질병의증상과치료를묘사하고설명하는것뿐아니라그질병과함께하는삶을나누고싶다는것이다.이렇게사는삶도있다고,그역시누군가에게폄훼당할수있는삶이아니라고,질병과함께하며다져지고발현된또다른‘역량’도있다고말이다.무엇보다질병을없애는데만몰두하느라,삶을미래로유예하고싶지않다는것이다.질병에노출된삶도미뤄둘수없는삶이지않느냐고,무엇이정상이며회복해야할기준이무엇이냐고되묻는것이다.
섭식장애가켜켜이쌓여온시간,관계,구조,문화의교차속에서발생한것처럼,오랜기간그와함께해온섭식장애라는경험은또한그에게다른힘과역량,세계를발생시켰다.성별화된이질병은페미니즘으로,정상성에서미끄러진것으로다뤄진다는점에서소수자성에대한관심으로그를이끌었다.치료에만몰두하는삶,다시말해질병에만잠식당하지않으려했기에나의고통에만빠지지않고타인의고통에관심을가질수있었다.내뜻대로통제할수있는게내몸뿐이었던삶은,오랜기간의섭식장애를통해,몸은내가쥐고흔들수있는물질이아니라는것을깨달은삶이되었다.자신의취약함을알기에돌봄의가치를알게되었고,곁의소중함을알게되었다.
이하나의서사를통해우리가섭식장애의모든면을이해할수는없다.또한섭식장애의본질이무엇이라고‘진단’하고정의할수도없다.오히려바로이지점,그러니까질병이란진단명혹은진단코드로만설명될수없는,결코동일할수없는개인들의삶에서복잡하게교차하는경험이라는점을이해하게된다.너무나개인적이고사적인이기록에서,그삶에녹아든사회와구조의문제를직시하게된다.따라서저자는비틀거리면서도오늘을살고,질병과함께조화를이루며살기를희망하는이이야기가,숨어있을또다른누군가의상처와맞닿아,그의이야기를시작하는데로이어지기를요청한다.누군가의몸과마음,누군가의아픔은개인의문제가아니라우리의문제,사회의문제이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