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관한 글들 : 비-역사의 조건으로부터 역사의 조건으로

역사에 관한 글들 : 비-역사의 조건으로부터 역사의 조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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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인간의 역사는 어떠한 조건에서 존재하는가?“

굳게 닫힌 서랍 속에서 다시 꺼내진 유고들이
보여주는 역사, 그리고 비-역사의 조건

역사의 가능 조건들을 그 마지막 피난처까지 몰아붙인
알튀세르의 비-역사적, 비-현재적 사유의 궤적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가 1963~1986년에 이르는 시기 동안 역사에 관해 쓰거나 생산한 다양한 텍스트들을 엮어낸 유고집. 우리가 명확히 알 수 없는 무수한 이유들로, 하나의 결과로 태어나지 못한 채 알튀세르의 서랍 속에 들어갔던, 즉 그 자신이 단 한 번도 출간하지 않았던 문서들이 다시금 꺼내져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초안과 스케치, 담화(구두 발언), 소책자, 동료들을 위한 노트 등 다양한 형태로 작성된 총 아홉 편의 텍스트들은 주로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렌즈를 통해서만 이해되어온 알튀세르의 사유가 실은 훨씬 더 풍부하고 복잡한 철학적 실천들이었음을 생생히 드러낸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주의자로 수용된 알튀세르 안에 존재하는 비-마르크스주의적 면모들, 혹은 철학자인 동시에 역사학을 사유했던 이로서 보여준 마르크스주의와 역사학의 마주침에 관한 통찰들은 지금 여기의 독자들로 하여금 그 사상의 역량 전체를 온전히 다시 취하도록 한다. 이로써 우리는 또 다른 지평에서 그 사유의 궤적을 가늠해볼 수 있다.
이 유고들에서 알튀세르는 역사학 내지는 역사주의/상대주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통해 마르크스주의가 어떻게 스스로의 한계와 마주하며 역사의 조건들을 성찰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역사, 즉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결과들의 역사’가 결과가 되지 못한 채 사라지고 억압된 수많은 비-역사의 조건과 결부되어 있음을 사유하는 것, 그리고 그 사유를 통해 인간의 역사가 어떠한 조건에서 존재하게 되는가의 질문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 바로 이것이 ‘역사에 관한 글들’에서 알튀세르가 집요하게 행하는 태도다.
어떤 의미에서는 알튀세르 그 자신의 비-역사를 이루기도 하는 이 모든 텍스트들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것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그것이 알튀세르는 물론 우리 자신에 대한 인정의 형태가 아닌, 비-역사적 조건들로부터 역사의 조건으로 나아가는 일종의 시대착오적인 여행일 것이며, 이를 통해 역설적이게도 알튀세르의 현재성이 증명될 것이다.“

저자

루이알튀세르

LouisAlthusser

1918년알제리에서태어났지만어머니의약혼자였던죽은삼촌의이름을물려받은익명의대리인.가톨릭학생청년회에서정치적조직활동을시작했고1948년프랑스공산당에입당해평생을조직에비판적으로헌신했으나당의응답을듣지못한비운의조직활동가.1939년파리고등사범학교에합격했으나징집후포로가되어,수용소에서벗어나기위해포로인채로남아사라지는방법을상상한행방불명된자유로운포로.1946년뒤늦게학교로돌아와헤겔에관한우수한논문을쓰고졸업했으나출판은거부한노숙한학생.제자들의독특한이론적욕망과능력을고취시키는데탁월한재능을가진,하지만모든제자들에게공개적으로비판받은교육자.1965년《마르크스를위하여》와제자들과함께쓴《‘자본’을읽자》를연이어출간함으로써비-마르크스주의의이론적자원을갖고현대마르크스주의이론에지워질수없는그이름을기입한이단적인마르크스주의이론가.개념의물질성을마음에새기고구조와정세사이를갈지자로나아가며개념의역학관계를구부리길멈추지않았던자기비판가.68년5월을자신의눈에담지못하고오직담벼락에새겨진비-존재의모습으로만함께하다뒤늦게〈이데올로기와이데올로기적국가장치들〉로개입했던유예된시대의증인.마키아벨리의고독속에자신을겹쳐본,다른사람들과생각을공유하지않을수없는사상가.평생우울증의재발과회복의사이클에따라격리되길반복하다1980년정신착란속에서아내를교살하고서는자신의자리를완전히금지당한광인.자기이야기를늘어놓지않는것을유물론의유일한정의라고생각하면서도자서전을남긴,하지만글을타인의말로끝맺고있는작가.항구적인철학적전쟁을벌였던전술가.철학의원환속에남아철학바깥을보려고했던철학자.비-존재의조건들에서출발해존재의조건들을사고한공산주의자.단몇권의책만을출판했지만수많은단행본원고뭉치를서랍속에묻어두었던저술가.이수많은호명들과함께,또그에반하여알튀세르는삶,철학,정치,과학,이론,실천을사유하며살아갔다.

목차


편집자노트|G.M.고슈가리언7

문학사에관한대화(1963)31

역사에관한보충노트(작성일미상,1965~1966?)87

발생에관하여(1966)93

어떻게실체적인무언가가변화할수있는가?(1970)103

그레츠키에게(일부발췌,1973)109

피에르빌라르에게보내는답변초고(작성일미상,1972?1973?)121

마르크스와역사에관하여(1975)129

역사에관하여(1986)151

제국주의에관하여(일부발췌,1973)157
일러두기159
마르크스의저작과마르크스주의자들이맺는관계에관하여163
생산양식이란무엇인가?185
주요모순250
경쟁이라는허상,전쟁이라는현실253
야만?파시즘은이야만의첫번째형태였다270
몇몇오류와부르주아적허상에관하여278
자본주의적생산양식의역사에관하여298
제국주의와노동자운동에관하여320
‘순수한본질’327

해제|알튀세르의비-역사,알튀세르의비-현재성(진태원)343
옮긴이의말359

출판사 서평

유고집의형태로당도한역사에관한질문들

역사적시간에관한자신의이론이지니는다양한측면들을설명하는짧은노트들인〈역사에관한보충노트〉(1965~1966?),〈발생에관하여〉(1966),〈어떻게실체적인무언가가변화할수있는가?〉(1970),〈역사에관하여〉(1986),그리고마르크스주의역사학자피에르빌라르PierreVilar가출간한비판,즉자신의역사에관한개념화에대해빌라르가제기한우정어린비판에알튀세르가답신으로보낸〈피에르빌라르에게보내는답변초고〉(1972?1973?),담화및토론의스타일로행한(그러나대화라기보다는사실상독백에가까운)문학사에관한마르크스주의적접근을시도하는〈문학사에관한대화〉(1963),소련의어느철학자이자언론인의요구에응해역사주의historicisme에관한자신의정의를써내려가는〈그레츠키에게〉(1973),‘마르크스와역사Marxetl’histoire’라는세미나혹은강의를위해집필한것으로보이는〈마르크스와역사에관하여〉(1975),그리고마지막으로이유고집의주축이되는,세계화된자본주의에관한이론화를제시하는《제국주의에관하여》(1973)라는소책자까지.

어떤점에서,이유고집에실린위아홉편의원고들전체를꿰뚫는하나의원리는존재하지않을지도모른다.역사와역사학에관한텍스트라는공통점을제외하면작성된시기도집필의도나염두에두는대상독자도다른이질적인형태의글들이모여있다고보는것이적합할수도있다.하지만그럼에도우리는이모든상이한텍스트들을함께읽는방식을모색해볼수있는데,바로알튀세르가역사에관해끈질기게제기하는질문들을포착하는것이다.그질문에는단연역사이론이무엇을대상으로삼아야하는지에대한문제의식또한내포되어있다.

범박하게말해,유고집의형태로한데엮인이텍스트들은인간의역사란무엇이며어떠한조건속에서존재하는가에대한,좀더적확하게말하자면역사라는것이어떻게인간집단/사회구성체내부에뿌리박고있는지에대한알튀세르나름의답변들이며,그답은종종역사를둘러싼기존의개념화와질문자체를재구성하는방식으로이뤄진다.이책의해제(진태원)가지적하듯,알튀세르에게역사를사유한다는것은“곧변화한것은무엇이고변화하지않은것은무엇인지,역사의방향은어떤것인지,그것을판단하는기준은어떤것인지등을묻는”일과다르지않다.

생산양식의역사에관하여:마르크스의반-역사주의적실천들

이유고집에묶인글들에서알튀세르가역사란무엇인가를질문할때,즉우리가역사라는것을어떻게인식할수있는지질문할때그가강력하게염두에두는것은결국‘(생산관계와생산력의통일체로서의)생산양식의역사’다.역사의시간내지는역사적시간이란곧문제가되는규정된생산양식에고유한실존과정으로이해될수있으며,따라서역사이론의대상은“상이한생산양식들의역사혹은그것들의실존과정(발전과정내지는비-발전과정)”이다.

역사를끊임없이‘생산양식들의역사’로,더나아가그생산양식의본질을‘계급투쟁’으로환원하는알튀세르의작업은무엇보다〈마르크스와역사에관하여〉나《제국주의에관하여》같은텍스트들에서더욱더선명히드러난다.특히이유고집에서가장많은분량을차지하는소책자인《제국주의에관하여》에서알튀세르는이렇게단언한다.“만일최초심급에서사회구성체들의역사만이존재한다면,최종심급에서는생산양식들의역사만이존재한다고.이는생산양식이하나의역사를갖는다는점을의미한다.”어떤하나의생산양식의하나의사회구성체를재생산하기에적합한형태들안에서존재하고있다고할때,우리는이렇게말할수있다.

이처럼역사를생산양식의역사로,더나아가계급투쟁의역사로위치지우는알튀세르의이론적작업은그가마르크스를철학자이면서도역사학을실천했던이로서치밀하게독해하는방식이기도하다.알튀세르는“지금까지의모든역사는계급투쟁의역사”라고하는,《공산주의자선언》(1848)의그유명한선언적구절이초래할수있는다양한해석의결들을겨냥한다.그에따르면,무엇보다경계해야할것은이구절을역사에대한일종의진화주의적개념화(또한이는역사에대한부르주아적표상이기도하다)로독해하는것이다.역사가계급투쟁을동력삼아한생산양식에서다른생산양식으로진보하고,그종말에이르러계급과계급투쟁이철폐된다는식의목적론적사고야말로마르크스가단절하고자했던입장이다.

알튀세르가보기에마르크스는과거의형태들을최근형태가함축하는고유한발전정도에이른단계들로간주하는,예를들어말해보자면노예제사회나봉건제사회와같은과거의사회형태들을결과적으로자본주의사회로귀결될역사적발전내의특정한단계들로상정하는목적론적환상들을분명히거부했던이였다.이러한거부는마르크스로하여금“현재사회를설명하는범주들을과거에존재했던사회들에그대로투사하는”경향과단절하도록이끌었다.“경우에따라,현재의특정한범주들은부분적으로또는전체적으로과거의어떤사회구성체에존재하지않으며,설령그범주들이과거의사회구성체속에나타난자할지라도,그범주들은대개위치가바뀌어있으며,상이한역할을수행한다.”

알튀세르는목적론적환상에대한비판을개진했던마르크스의동력이다름아닌‘자기비판’에있다고본다.‘최근형태’의자기비판,즉부르주아사회가“자기자신을분명하게볼수있는상태”에있을때과거형태들과최근형태사이에설정된‘기원-목적’의관계를깨고역사를목적론과우연성과다른범주들로사유하는데이를수있다는것이다.마르크스의작업역시바로이러한‘부르주아사회의자기비판’에해당한다.

또한(일종의연대기적차원에서)시기들,시간들,시대들이존재한다고,즉역사의흐름이지니는변화속에“일시적항구성”이존재한다고여기는역사주의적원리(역사인식의영역에서상대주의를대표하는철학적입장)에대한분석과비판에도주목할필요가있다.그러한역사주의는“역사이론이란(역사철학이든마르크스의이론이든)그시대의‘표현’이라고,하지만그저그시대의표현에불과한것이며,그시대만의표현일뿐”이라고주장하며“마르크스의이론들을그고유한역사적‘시대’의우연성에종속시키고환원”시킨다.이는동시대역사의부르주아철학자대부분이마르크스를취급하는방식이었다.그러나생산양식이한사회구성체안에서실현되고구성된다고할때,또한그생산관계안에서계급투쟁이발생한다고할때,우리는역사적시간을“더이상변화들의잇달음내지는여기지금의보편적인상대주의”로개념화할수없게된다.“반대로그것은각각의생산양식의시간이자생산및재생산의주기들의시간이다.요컨대,그시간은역사주의이데올로기의개념들과는완전히다른개념들이부합하는시간인것이다.이를테면,역사주의이데올로기의‘시간-대상’과는완전히다른‘대상’이부합하는시간에대한관념인것이다.”

마르크스주의가맞닥뜨리는난점들:오류그리고부르주아적허상

한편으로우리는마르크스의저작,그리고그저작들에서포착되는마르크스의역사적사유에주목하는알튀세르의독해를마르크스주의(자)내부에대한날카로운비판의식에서연원하는시도로도간주할수있다.이는사실상《제국주의에관하여》전체를관통하는주요한태도이기도하다.알튀세르는마르크스가《자본》을집필한지100여년이넘어가는시점(1973년)에도대부분의마르크스주의자들(특히제2인터내셔널의이론가들)이해당저작을여전히이해하지못했다고지적한다.그들의문제는프롤레타리아계급의이론적위치/입장이아닌대학의강단마르크스주의관점에서《자본》을독해했다는데있는데,알튀세르의입장에서이는결국《자본》에대한부르주아적독해에지나지않는다.또한알튀세르는마르크스의‘과학적’이론을철학적관점에서수용해버린마르크스주의자들탓에마르크스의과학이(과학이라면응당받아야할)그어떤검토와정정없이남겨졌다고지적한다.

이런문제들은다름아닌계급과계급투쟁에대한잘못된이해에기초하고있다.무엇보다,마르크스주의자들은부르주아의계급투쟁에대해과소평가하는경향이있다.“계급투쟁에대해언급할때,우리는프롤레타리아와그동맹자들의계급투쟁이일종의원인의위치를차지한다고믿는경향이강하다.(…)특히우리는세력관계가전도될때를제외하고는계급투쟁에서일반적주도권을쥐고있는쪽은바로부르주아지라는점을,다른용어로말해,가장강력한것은바로부르주아지의계급투쟁이라는점을망각하는위험에빠지게된다.하지만우리가권력을쥔계급의지배라고부르는바는프롤레타리아계급투쟁에대한부르주아계급투쟁의우위로표현되는것이다.”알튀세르는프롤레타리아의계급투쟁에무게중심을두는이해방식에반해,그리고부르주아이계급투쟁을억압적국가장치와부르주아민주주의의‘정치체계’로만국한해사고하는방식에반해“노동자들이그끔찍한현실을인식하고있는장소인경제적토대내에서행해지는부르주아계급투쟁”,그리고“이데올로기안에서전개되는부르주아계급투쟁”과제대로직면할필요가있다고역설한다.

계급을의식적주체로,계급투쟁을의식적주체들의투쟁으로표상하는방식은계급투쟁이계급에대해우위를차지한다는것,다시말해“계급들은계급투쟁이따르는법칙에의해행동하도록만들어진다”는것을간과하는경향도문제적이다.이는계급투쟁없는계급이란존재하지않는다는점을사고하지못해발생하는문제다.그러나이우위는노동자계급과자본가계급모두에게유효하다.“자본가계급-노동자계급이라는쌍바깥에서노동자계급이어떻게존재할수있겠는가?그리고만일이쌍이그적대안에서이적대적인두계급을구성하는것이라면,어떻게노동자계급이계급투쟁이전에존재하는주체로존재할수있겠는가?(…)노동자운동안에서(‘분석의오류’혹은더욱심원하게는오도된계급위치,즉올바르지않으며잘못조정된계급위치로인해)개량주의와수정주의로나타나고인식되는것은최종심급에서결국〔부르주아〕계급투쟁이노동자운동내부에생산하는효과일뿐이다.”

더불어알튀세르는자본주의,그리고‘자본주의의최고단계’로서의제국주의와관련해부르주아적허상을수용해버리는어떤마르크스주의적방식에대해서도지적한다.이는“노동자계급조직내지배적인표상들의바로한가운데에서부르주아계급투쟁이거두는그(일시적인)승리의결과”로서나타나는현상이라는점에서매우의미심장하다.자본주의의존재자체,즉자본가는자신의자본에따라,노동자는자신의노동에따라,그렇게마치각자가생산에기여하는바에비례해보상받는것처럼표상되는일련의과정들을‘원래그러한것’으로자연화하는부르주아적‘사물의자연’을계급투쟁의갈등적역사로다시쓴이후에도결코소거되지않는,아니오히려더욱은밀한방식으로마르크스주의내부에침투하는부르주아적개념화.알튀세르가보기에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가해지는진정한위협은바로이러한허상이다.

이런식으로마르크스주의자들은부르주아역사학이도입했던생산양식에관한설명,즉하나의양식(과거의그것)이다른양식(현재의그것)을뒤따르는방식으로자본주의적생산양식이공산주의적생산양식을뒤에서밀면서앞으로나아간다는(역사에대한)진화주의적개념화의함정에빠지게된다.동시에이것은제국주의론을통해공산주의로의이행에관해사유했던레닌을결정적으로잘못이해하는방식이기도하다.

비-문학사의조건으로부터문학사의조건으로:문학사의병리학

다른한편,이책을여는첫번째텍스트인〈문학사에관한대화〉(1963)는현존하는생산양식의존재조건들이그비-존재의조건들,그리고그비-존재의조건들이결국에는살아남지못했다는이유로말소되어버렸다는사실과의관계속에서찾아져야한다고하는,(생산양식의)역사에관한알튀세르자신의핵심문제의식을‘문학(비평)생산의조건’이라는주제속에서벼려낸매우드물고흥미로운결과물이라할수있다.누구인지밝혀져있지않은익명의대화자의질문에따라전개되면서도,대화보다는독백에가까운형태를띠는이담화는그것을받아적은녹취록(타자본)의형태로보관되었다.한국어판에서는“그럼에도이담화가하나의‘이론적’텍스트로서대상의희소성,논리적일관성,분석의명확성,비판의적확성,논의의풍부성,그리고그무엇보다가장중요한이론적유효성측면에서놀라운가치를갖는다는점”에주목해구어체/대화체가아닌일반적인서술체로옮겼다.또한중간중간생략된맥락을상세하고도충실하게짚어내는옮긴이주를추가해독자들이별다른어려움없이알튀세르의논의를따라갈수있도록했다.

이담화에서알튀세르는우리가보유하고있는문학사가역사에대한특정한개념화,즉역사를하나의연대기로환원해버리는개념화를전제하고있다는사실을지적한다.“어떤이의문학적산물들/작품들의연대기학이됐든,어떤이의자서전의연대기학이됐든”말이다.그리고역사를이렇게연대기로개념화할때,결론적으로저자와(그작품을비평하는)비평가사이에는가치상의등급차이가발생하게된다.다시말해연대기로서의문학사는“한사람은또다른사람이논평하는어떤작품을쓰지만,저자의작품을논평하기위해쓰는비평가는결코저자의작품처럼논평되지는않을것이라는사실”,그러니까문학작품이다른대상들과달리상이한품격과역사적위상을부여받는다는사실을전제한다.
그러나알튀세르가보기에이런식의문학사는정작다음과같은문화적인정및그인정상의위계들이어떻게만들어지는지전혀해명하지못한다.즉여기에는하나의문학작품을문학으로간주할수있도록해주는것이무엇인가라는질문이결정적으로누락되어있다.결국고전적인문학사는“어떤한개인이어떻게역사적으로인정되고”누군가로부터논평되는작가가되는지는물론,“작가와비평가모두공통적으로무언가를씀에도불구하고어째서작가와비평가사이에가치상의등급차이가생겨나는지”모두에대해설명하지못한다.대신문학사는연대기적역사가“미결상태로남겨놓을수밖에없는”이이론적공백을역사에초월적인‘미학’으로보충한다.일종의연장코드로서미학을동원하는것이다.

알튀세르는이처럼“절대적인출발점처럼주어져있”어결코문제제기되지않는실존작품들에문학사를둘러싼모든쟁점이걸려있다고역설한다.그리고그출발점자체를문제삼기시작할때,우리는현실에는결코존재하지않는‘문학사의병리학’의가능성을고려하게된다.말하자면이것은문학의반-역사혹은비-역사로서,“자신들이결정적인예술작품을쓴다고생각”했음에도불구하고그위상에도달하지못했던무수한저자들/작품들의유실된역사를구성해보는작업에해당한다.문화적인정을획득하는데실패한이러한작품들은고전적인문학사에서성찰되지않았던전제들전체를산산조각낸다.

이에따라우리는다음과같은세가지단계를동시에충족시킬때비로소문학사를구성할수있게된다.첫째로,문학으로추구되었지만문학에이르지못하고유실된것의역사를만들어야만하며,두번째로,문학으로서생산되고또성공했던것의역사를,마지막으로는문학의은총을받지못해문학으로간주되지않은것의역사를만들어야만한다.말하자면,문학사를만든다는것은결국비-문학의역사를만드는것과동일하다.이때문학사가는,좀더정확히말해문학사가가되고자하는어떤이는,자신이다루는미학적대상에대해서는물론,그대상에대해비평할수있는자로서결정된위치를부여받는그자신,그리고그관계속에서“비역사적인상황”을생산할수있는그자신에대해서도역사적관점을지녀야한다.알튀세르는마르크스의역사이론만이그러한관점과사유를가능케하는이론을제공할수있다고진단한다.

비-역사의조건으로부터역사의조건으로,비-존재의조건에서존재의조건으로

다시생산양식의역사에관한알튀세르의논의로돌아가보면,그는과거의생산양식을현재의생산양식에비춰그현재의생산양식이함축하는어떤발전정도에이른것으로간주하는역사에대한진화주의적개념화를단호히거부했던마르크스의사유에주목했다.알튀세르는마르크스의그통찰이“‘실정적’역사의밑바닥이자부대비용으로서의반-역사,부정적역사라칭할수있는것”을발견하도록이끈다고본다.흔히사람들이이해하는역사가“현재의형태가함축하는생성의단계들로서의결과들의역사이자,역사가보유한결과들의역사”라고할때,그역사는억압되고죽어버린,하나의결과로서산출되지못한그런역사를삭제한다.“지배계급에의해,그리고그들을위해우리의서구전통속에서쓰인공식적인역사,그것은바로지배의역사이며,이지배의역사는또다른역사를,즉어둠속에서죽어버린역사를지워버린것이다.”

이런맥락에서알튀세르는생산양식의역사를잇달아펼쳐지는연대기나진화주의적발전단계가아닌,생산양식의실존(지속적재생산)의조건들과그실존이그비-실존과맺는관계의조건들속에서개념화한다.다시말해,“생산양식이존재하지않을수도있고존재할수도있으며나타나자마자소멸할수도있고그와정반대로나타나자마자강력한하나의생산양식으로확립되어자신의역사적운명을따라갈수도있다는사실”을상기한다.이는‘그건원래그렇다’는식의하나의기정사실로서제시되는자본주의적생산양식의역사가어떠한(부르주아적)표상들에둘러싸여있는지들여다보는면밀한분석으로이어진다.

알튀세르가생산양식의역사적존재가지니는비밀을그‘비-존재의조건들’,그리고그조건들이말소되었다는사실에서도찾아야한다고,그러니까“비-존재의조건들에서부터출발해존재의조건들을사고해야”한다고강조할때,그는이관계를무엇보다사회주의에관한논의에도입할필요가있음을염두에둔다.즉여전히“존속하고있는자본주의적생산양식의요소들”을공산주의의비-존재조건들로파악하면서,또바로그비-존재조건들에서출발해,모색되고있지만아직현실화되지는않은공산주의적생산양식을사유하는방식말이다.“물론이는사회주의에서여전히존속하고있는계급및계급투쟁과같이,‘다른형태들’아래에서존속하고있는요소들이다.그러나이요소들은상상속에존재하고있는것이전혀아니라굉장히실제적이고능동적으로여기에존재하고있다.”자본주의에서공산주의로의이행에관한이론을펼쳤던레닌을알튀세르는이런방식으로다시취한다.

따라서관건은사회구성체자체를“생산양식의실존의조건들과비-실존의조건들사이의모순적쌍을실현하는형태들”로이해하는것이며,다른한편으로“하나의본질로서의생산양식”과그“생산양식의조건들을실현하거나실현하지못하는것으로서의사회구성체”라는이원론을폐기하는것이다.“역사속에는쓰레기가,그것도엄청난양의쓰레기가,즉역사가치러야하는부대비용이존재한다.그러나그럼에도우리는명백히이모순이,본질로부터멀어지기는커녕본질과한몸을이루고이본질을구성한다고말할수있다.간단히말해,생산양식의본질은모순이며,본질과그존재의조건들사이의모순은생산양식의본질에외재적이기는커녕모순의주요한발현형태이다.”생산양식의역사에관한알튀세르의간명한테제(“만일최초심급에서사회구성체들의역사만이존재한다면,최종심급에서는생산양식들의역사만이존재한다”)는바로이런맥락속에서읽혀야한다.

그리고결국우리는문학사에대해서도비슷한것을말할수있다.문학사를구성한다고할경우해명되어야할것은문학사를구성하거나그러려고시도하는누군가가어째서그렇게구성할수있는정당한권리를부여받는지(그권리의자연스러움)이다.“하지만모든권리와마찬가지로,의심받지않는이러한권리는전혀자연스러운것이아니다.예컨대어떤사람이그권리에이의를제기하거나어떤문명(역사적실존의또다른형태들)에서는그권리가자연스럽지않은것처럼말이다.”이는알튀세르가이유고집안에서그토록긴지면을할애해비판적으로분석했던,현존하는자본주의적생산양식을자명한기정사실로,‘그건원래그렇다’고간주하는부르주아식‘사물의자연’론을연상케한다.하지만그토록자연스러운것으로보이는그자본주의생산양식,그리고(문학사의경우)‘문학사를구성할권리’는“심지어가장단순한역사적의식”에의해서도금세파면될수있는그런것이다.

따라서문학사와관련해우리가문제삼아야할것은“문학사를구성하기위해미학적작품에스스로를결부시키는어떤사람의행위가지니는자연스러운성격”,즉“이행위의역사적성격”이다.우리는‘그건원래그러니까그렇다’는식의역사적상대주의가아닌,전형적이고도역사적으로결정된그런관계(문학비평가가역사를통해미학적인것으로기록되고인정된작품과맺는관계)의역사적가능조건들을동시에사유할수있도록해주는마르크스의역사이론을경유해그관계의비밀을풀어야한다.그런점에서<문학사에관한대화>의핵심줄기를이루는‘비-문학의역사’그리고‘문학사의병리학’에대한타진은어떤형태의존재조건들을그비-존재의조건들과의관계속에서해명해야한다는알튀세르의마르크스적사유가풍부하고도적확한방식으로펼쳐지는대목이라고할수있을것이다.

마치광기의역사를통해이성의역사를구성한푸코처럼,“비-문학의역사를구성함으로써역사를구성하기”.그러나“이성을광기과의관계를통해서만정위”시킴으로써‘이성-광기(비-이성)’라는쌍자체의역사적조건들에대해서는정교하게질문하지않았던그“푸코를넘어서”비-문학의세계로진입하는방식을모색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