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관한 글들 (비-역사의 조건으로부터 역사의 조건으로)

역사에 관한 글들 (비-역사의 조건으로부터 역사의 조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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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인간의 역사는 어떠한 조건에서 존재하는가?“

굳게 닫힌 서랍 속에서 다시 꺼내진 유고들이
보여주는 역사, 그리고 비-역사의 조건

역사의 가능 조건들을 그 마지막 피난처까지 몰아붙인
알튀세르의 비-역사적, 비-현재적 사유의 궤적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가 1963~1986년에 이르는 시기 동안 역사에 관해 쓰거나 생산한 다양한 텍스트들을 엮어낸 유고집. 우리가 명확히 알 수 없는 무수한 이유들로, 하나의 결과로 태어나지 못한 채 알튀세르의 서랍 속에 들어갔던, 즉 그 자신이 단 한 번도 출간하지 않았던 문서들이 다시금 꺼내져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초안과 스케치, 담화(구두 발언), 소책자, 동료들을 위한 노트 등 다양한 형태로 작성된 총 아홉 편의 텍스트들은 주로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렌즈를 통해서만 이해되어온 알튀세르의 사유가 실은 훨씬 더 풍부하고 복잡한 철학적 실천들이었음을 생생히 드러낸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주의자로 수용된 알튀세르 안에 존재하는 비-마르크스주의적 면모들, 혹은 철학자인 동시에 역사학을 사유했던 이로서 보여준 마르크스주의와 역사학의 마주침에 관한 통찰들은 지금 여기의 독자들로 하여금 그 사상의 역량 전체를 온전히 다시 취하도록 한다. 이로써 우리는 또 다른 지평에서 그 사유의 궤적을 가늠해볼 수 있다.
이 유고들에서 알튀세르는 역사학 내지는 역사주의/상대주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통해 마르크스주의가 어떻게 스스로의 한계와 마주하며 역사의 조건들을 성찰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역사, 즉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결과들의 역사’가 결과가 되지 못한 채 사라지고 억압된 수많은 비-역사의 조건과 결부되어 있음을 사유하는 것, 그리고 그 사유를 통해 인간의 역사가 어떠한 조건에서 존재하게 되는가의 질문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 바로 이것이 ‘역사에 관한 글들’에서 알튀세르가 집요하게 행하는 태도다.
어떤 의미에서는 알튀세르 그 자신의 비-역사를 이루기도 하는 이 모든 텍스트들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것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그것이 알튀세르는 물론 우리 자신에 대한 인정의 형태가 아닌, 비-역사적 조건들로부터 역사의 조건으로 나아가는 일종의 시대착오적인 여행일 것이며, 이를 통해 역설적이게도 알튀세르의 현재성이 증명될 것이다.“
저자

루이 알튀세르

Louis Althusser

1918년 알제리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의 약혼자였던 죽은 삼촌의 이름을 물려받은 익명의 대리인. 가톨릭학생청년회에서 정치적 조직 활동을 시작했고 1948년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해 평생을 조직에 비판적으로 헌신했으나 당의 응답을 듣지 못한 비운의 조직 활동가. 1939년 파리고등사범학교에 합격했으나 징집 후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서 벗어나기 위해 포로인 채로 남아 사라지는 방법을 상상한 행방불명된 자유로운 포로. 1946년 뒤늦게 학교로 돌아와 헤겔에 관한 우수한 논문을 쓰고 졸업했으나 출판은 거부한 노숙한 학생. 제자들의 독특한 이론적 욕망과 능력을 고취시키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하지만 모든 제자들에게 공개적으로 비판받은 교육자. 1965년 《마르크스를 위하여》와 제자들과 함께 쓴 《‘자본’을 읽자》를 연이어 출간함으로써 비-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자원을 갖고 현대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지워질 수 없는 그 이름을 기입한 이단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개념의 물질성을 마음에 새기고 구조와 정세 사이를 갈지자로 나아가며 개념의 역학관계를 구부리길 멈추지 않았던 자기비판가. 68년 5월을 자신의 눈에 담지 못하고 오직 담벼락에 새겨진 비-존재의 모습으로만 함께하다 뒤늦게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로 개입했던 유예된 시대의 증인. 마키아벨리의 고독 속에 자신을 겹쳐 본,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지 않을 수 없는 사상가. 평생 우울증의 재발과 회복의 사이클에 따라 격리되길 반복하다 1980년 정신착란 속에서 아내를 교살하고서는 자신의 자리를 완전히 금지당한 광인.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는 것을 유물론의 유일한 정의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서전을 남긴, 하지만 글을 타인의 말로 끝맺고 있는 작가. 항구적인 철학적 전쟁을 벌였던 전술가. 철학의 원환 속에 남아 철학 바깥을 보려고 했던 철학자. 비-존재의 조건들에서 출발해 존재의 조건들을 사고한 공산주의자. 단 몇 권의 책만을 출판했지만 수많은 단행본 원고 뭉치를 서랍 속에 묻어두었던 저술가. 이 수많은 호명들과 함께, 또 그에 반하여 알튀세르는 삶, 철학, 정치, 과학, 이론, 실천을 사유하며 살아갔다.

목차

편집자 노트 | G. M. 고슈가리언 ㆍ7

문학사에 관한 대화(1963) ㆍ31

역사에 관한 보충노트(작성일 미상, 1965~1966?) ㆍ87

발생에 관하여(1966) ㆍ93

어떻게 실체적인 무언가가 변화할 수 있는가?(1970) ㆍ103

그레츠키에게(일부 발췌, 1973) ㆍ109

피에르 빌라르에게 보내는 답변 초고(작성일 미상, 1972? 1973?) ㆍ121

마르크스와 역사에 관하여(1975) ㆍ129

역사에 관하여(1986) ㆍ151

제국주의에 관하여(일부 발췌, 1973) ㆍ157
일러두기 ㆍ159
마르크스의 저작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맺는 관계에 관하여 ㆍ163
생산양식이란 무엇인가? ㆍ185
주요모순 ㆍ250
경쟁이라는 허상, 전쟁이라는 현실 ㆍ253
야만? 파시즘은 이 야만의 첫 번째 형태였다 ㆍ270
몇몇 오류와 부르주아적 허상에 관하여 ㆍ278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역사에 관하여 ㆍ298
제국주의와 노동자운동에 관하여 ㆍ320
‘순수한 본질’ ㆍ327

해제 | 알튀세르의 비-역사, 알튀세르의 비-현재성(진태원) ㆍ343
옮긴이의 말 ㆍ359

출판사 서평

유고집의 형태로 당도한 역사에 관한 질문들
역사적 시간에 관한 자신의 이론이 지니는 다양한 측면들을 설명하는 짧은 노트들인 〈역사에 관한 보충노트〉(1965~1966?), 〈발생에 관하여〉(1966), 〈어떻게 실체적인 무언가가 변화할 수 있는가?〉(1970), 〈역사에 관하여〉(1986),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피에르 빌라르Pierre Vilar가 출간한 비판, 즉 자신의 역사에 관한 개념화에 대해 빌라르가 제기한 우정 어린 비판에 알튀세르가 답신으로 보낸 〈피에르 빌라르에게 보내는 답변 초고〉(1972? 1973?), 담화 및 토론의 스타일로 행한(그러나 대화라기보다는 사실상 독백에 가까운) 문학사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접근을 시도하는 〈문학사에 관한 대화〉(1963), 소련의 어느 철학자이자 언론인의 요구에 응해 역사주의historicisme에 관한 자신의 정의를 써내려가는 〈그레츠키에게〉(1973), ‘마르크스와 역사Marx et l’histoire’라는 세미나 혹은 강의를 위해 집필한 것으로 보이는 〈마르크스와 역사에 관하여〉(1975),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유고집의 주축이 되는, 세계화된 자본주의에 관한 이론화를 제시하는 《제국주의에 관하여》(1973)라는 소책자까지.
어떤 점에서, 이 유고집에 실린 위 아홉 편의 원고들 전체를 꿰뚫는 하나의 원리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역사와 역사학에 관한 텍스트라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작성된 시기도 집필 의도나 염두에 두는 대상 독자도 다른 이질적인 형태의 글들이 모여 있다고 보는 것이 적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 모든 상이한 텍스트들을 함께 읽는 방식을 모색해볼 수 있는데, 바로 알튀세르가 역사에 관해 끈질기게 제기하는 질문들을 포착하는 것이다. 그 질문에는 단연 역사이론이 무엇을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 또한 내포되어 있다.
범박하게 말해, 유고집의 형태로 한데 엮인 이 텍스트들은 인간의 역사란 무엇이며 어떠한 조건 속에서 존재하는가에 대한, 좀 더 적확하게 말하자면 역사라는 것이 어떻게 인간 집단/사회구성체 내부에 뿌리박고 있는지에 대한 알튀세르 나름의 답변들이며, 그 답은 종종 역사를 둘러싼 기존의 개념화와 질문 자체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책의 해제(진태원)가 지적하듯, 알튀세르에게 역사를 사유한다는 것은 “곧 변화한 것은 무엇이고 변화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역사의 방향은 어떤 것인지,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어떤 것인지 등을 묻는” 일과 다르지 않다.

생산양식의 역사에 관하여: 마르크스의 반-역사주의적 실천들
이 유고집에 묶인 글들에서 알튀세르가 역사란 무엇인가를 질문할 때, 즉 우리가 역사라는 것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지 질문할 때 그가 강력하게 염두에 두는 것은 결국 ‘(생산관계와 생산력의 통일체로서의) 생산양식의 역사’다. 역사의 시간 내지는 역사적 시간이란 곧 문제가 되는 규정된 생산양식에 고유한 실존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따라서 역사이론의 대상은 “상이한 생산양식들의 역사 혹은 그것들의 실존 과정(발전 과정 내지는 비-발전 과정)”이다.
역사를 끊임없이 ‘생산양식들의 역사’로, 더 나아가 그 생산양식의 본질을 ‘계급투쟁’으로 환원하는 알튀세르의 작업은 무엇보다 〈마르크스와 역사에 관하여〉나 《제국주의에 관하여》 같은 텍스트들에서 더욱더 선명히 드러난다. 특히 이 유고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소책자인 《제국주의에 관하여》에서 알튀세르는 이렇게 단언한다. “만일 최초심급에서 사회구성체들의 역사만이 존재한다면, 최종심급에서는 생산양식들의 역사만이 존재한다고. 이는 생산양식이 하나의 역사를 갖는다는 점을 의미한다.” 어떤 하나의 생산양식의 하나의 사회구성체를 재생산하기에 적합한 형태들 안에서 존재하고 있다고 할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역사를 생산양식의 역사로, 더 나아가 계급투쟁의 역사로 위치지우는 알튀세르의 이론적 작업은 그가 마르크스를 철학자이면서도 역사학을 실천했던 이로서 치밀하게 독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알튀세르는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하는, 《공산주의자 선언》(1848)의 그 유명한 선언적 구절이 초래할 수 있는 다양한 해석의 결들을 겨냥한다. 그에 따르면,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이 구절을 역사에 대한 일종의 진화주의적 개념화(또한 이는 역사에 대한 부르주아적 표상이기도 하다)로 독해하는 것이다. 역사가 계급투쟁을 동력 삼아 한 생산양식에서 다른 생산양식으로 진보하고, 그 종말에 이르러 계급과 계급투쟁이 철폐된다는 식의 목적론적 사고야말로 마르크스가 단절하고자 했던 입장이다.
알튀세르가 보기에 마르크스는 과거의 형태들을 최근 형태가 함축하는 고유한 발전 정도에 이른 단계들로 간주하는, 예를 들어 말해보자면 노예제 사회나 봉건제 사회와 같은 과거의 사회 형태들을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사회로 귀결될 역사적 발전 내의 특정한 단계들로 상정하는 목적론적 환상들을 분명히 거부했던 이였다. 이러한 거부는 마르크스로 하여금 “현재 사회를 설명하는 범주들을 과거에 존재했던 사회들에 그대로 투사하는” 경향과 단절하도록 이끌었다. “경우에 따라, 현재의 특정한 범주들은 부분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과거의 어떤 사회구성체에 존재하지 않으며, 설령 그 범주들이 과거의 사회구성체 속에 나타난자 할지라도, 그 범주들은 대개 위치가 바뀌어 있으며, 상이한 역할을 수행한다.”
알튀세르는 목적론적 환상에 대한 비판을 개진했던 마르크스의 동력이 다름 아닌 ‘자기비판’에 있다고 본다. ‘최근 형태’의 자기비판, 즉 부르주아 사회가 “자기 자신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상태”에 있을 때 과거 형태들과 최근 형태 사이에 설정된 ‘기원-목적’의 관계를 깨고 역사를 목적론과 우연성과 다른 범주들로 사유하는 데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작업 역시 바로 이러한 ‘부르주아 사회의 자기비판’에 해당한다.
또한 (일종의 연대기적 차원에서) 시기들, 시간들, 시대들이 존재한다고, 즉 역사의 흐름이 지니는 변화 속에 “일시적 항구성”이 존재한다고 여기는 역사주의적 원리(역사 인식의 영역에서 상대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적 입장)에 대한 분석과 비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역사주의는 “역사이론이란 (역사철학이든 마르크스의 이론이든) 그 시대의 ‘표현’이라고, 하지만 그저 그 시대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며, 그 시대만의 표현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마르크스의 이론들을 그 고유한 역사적 ‘시대’의 우연성에 종속시키고 환원”시킨다. 이는 동시대 역사의 부르주아 철학자 대부분이 마르크스를 취급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생산양식이 한 사회구성체 안에서 실현되고 구성된다고 할 때, 또한 그 생산관계 안에서 계급투쟁이 발생한다고 할 때, 우리는 역사적 시간을 “더 이상 변화들의 잇달음 내지는 여기 지금의 보편적인 상대주의”로 개념화할 수 없게 된다. “반대로 그것은 각각의 생산양식의 시간이자 생산 및 재생산의 주기들의 시간이다. 요컨대, 그 시간은 역사주의 이데올로기의 개념들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들이 부합하는 시간인 것이다. 이를테면, 역사주의 이데올로기의 ‘시간-대상’과는 완전히 다른 ‘대상’이 부합하는 시간에 대한 관념인 것이다.”

마르크스주의가 맞닥뜨리는 난점들: 오류 그리고 부르주아적 허상
한편으로 우리는 마르크스의 저작, 그리고 그 저작들에서 포착되는 마르크스의 역사적 사유에 주목하는 알튀세르의 독해를 마르크스주의(자) 내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에서 연원하는 시도로도 간주할 수 있다. 이는 사실상 《제국주의에 관하여》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한 태도이기도 하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가 《자본》을 집필한 지 100여 년이 넘어가는 시점(1973년)에도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특히 제2인터내셔널의 이론가들)이 해당 저작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그들의 문제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이론적 위치/입장이 아닌 대학의 강단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자본》을 독해했다는 데 있는데, 알튀세르의 입장에서 이는 결국 《자본》에 대한 부르주아적 독해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과학적’ 이론을 철학적 관점에서 수용해버린 마르크스주의자들 탓에 마르크스의 과학이 (과학이라면 응당 받아야 할) 그 어떤 검토와 정정 없이 남겨졌다고 지적한다.
이런 문제들은 다름 아닌 계급과 계급투쟁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 무엇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부르주아의 계급투쟁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계급투쟁에 대해 언급할 때,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와 그 동맹자들의 계급투쟁이 일종의 원인의 위치를 차지한다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 (…) 특히 우리는 세력 관계가 전도될 때를 제외하고는 계급투쟁에서 일반적 주도권을 쥐고 있는 쪽은 바로 부르주아지라는 점을, 다른 용어로 말해, 가장 강력한 것은 바로 부르주아지의 계급투쟁이라는 점을 망각하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권력을 쥔 계급의 지배라고 부르는 바는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 대한 부르주아 계급투쟁의 우위로 표현되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에 무게중심을 두는 이해 방식에 반해, 그리고 부르주아이 계급투쟁을 억압적 국가장치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정치 체계’로만 국한해 사고하는 방식에 반해 “노동자들이 그 끔찍한 현실을 인식하고 있는 장소인 경제적 토대 내에서 행해지는 부르주아 계급투쟁”, 그리고 “이데올로기 안에서 전개되는 부르주아 계급투쟁”과 제대로 직면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계급을 의식적 주체로, 계급투쟁을 의식적 주체들의 투쟁으로 표상하는 방식은 계급투쟁이 계급에 대해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 다시 말해 “계급들은 계급투쟁이 따르는 법칙에 의해 행동하도록 만들어진다”는 것을 간과하는 경향도 문제적이다. 이는 계급투쟁 없는 계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사고하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다. 그러나 이 우위는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 모두에게 유효하다. “자본가 계급-노동자 계급이라는 쌍 바깥에서 노동자 계급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만일 이 쌍이 그 적대 안에서 이 적대적인 두 계급을 구성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