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자유’라는치명적인상처
자본주의에서길을잃지않고새로운삶을꿈꾸는법
“철학적인사람은평범하고친숙한삶을낯설게성찰할수있습니다.”(20쪽)자본주의사회는그어느때보다풍요롭고인간에게자유와기쁨을안겨준것처럼보인다.그러나저자강신주는자본주의에서의자유는진정한자유가아니라고말한다.노동을해서번돈으로소비할수있는자유,소비할수있는돈을벌기위해다시노동을팔아야하는자유,즉돈에예속되고돈에복종해야만하는자유일뿐이다.저자가보기에현대인은이렇게노동자이자소비자인삶을다람쥐쳇바퀴돌듯살아가고있다.돈앞에서점점더작아지고,점점더보잘것없어지고,점점더위축되고있다.‘돈을더많이버는것’이삶의목표가됐고,더많이벌지못해서,더많이소비하지못해서,남과비교당해서계속상처받는삶을살고있다.
그이면에는자본주의가있다.자본주의적삶은너무나친숙하고평범해서우리는자신의삶이얼마나자본주의에길들여있고그로부터상처받고있는지자각하지못한다.저자는끝없이소비의욕망을부추기는이자본주의를낯설게바라보자고말한다.그래야만자본주의가만든욕망의집어등을직시할수있고,우리를착취하는돈,즉자본주의와맞설지혜와용기를얻을수있다고강조한다.
책에는자본주의를입체적으로되돌아볼수있게하는5명의인문지성이등장한다.바로게오르그짐멜(돈과도시),발터벤야민(유행,도박,매춘),피에르부르디외(구별짓기와아비투스),장보드리야르(소비사회),그리고마우리치오페라리스(다큐멘탈리티와웹자본주의)가그주인공들이다.이들은모두자본주의적삶의내적논리를이론적으로포착하려고했던철학자들이다.또한자본주의에서길을잃지않고새로운삶을꿈꾸는방법을모색했던사람들이다.이들의안내를통해책은19세기부터지금까지우리삶을장악하고있는자본주의의역사를파헤치고,우리삶이얼마나자본주의로인해상처받고있는지를아프게직시하게만든다.“이책에서다섯인문지성을선택한이유는그들만으로도우리의자본주의적삶을입체적으로되돌아볼수있기때문입니다.우리는이제이들다섯지성의통찰로우리의상처받은주인공,지금어디선가묘한결여감을인스타그램이나페이스북으로달래고있을그의자본주의적삶과그내면의비밀을살펴볼수있게되었습니다.”(28쪽)
짐멜,화폐·도시와함께인간의욕망도피어났다
1부‘짐멜’편에서는대도시와돈에몰려드는이시대욕망의맨얼굴을파헤친다.마르크스이후가장철저하게돈의논리를성찰했던게오르그짐멜은화폐경제로지탱되는자본주의가일종의세속적종교로도기능한다고말한다.즉기독교의신이가진초월성과포괄성을그대로계승한것이바로자본주의의돈이라는것이다.신에게철저히의존하고그에게모든것을고백하면신도에게평화와안식이찾아오듯,돈을수중에많이넣으면넣을수록현대인들의마음에도여유와안정이찾아드는이치와같다.짐멜은이러한돈이어떻게작동하고화폐경제가구체적으로인간을어떻게변화시켰는지냉철하게진단한다.화폐경제가발달하면서인간과사물사이,인간과인간사이에돈이개입되기시작했다는짐멜의진단은사랑도,우정도,신뢰도돈이없으면불가능한우리의현실을적나라하게보여준다.
짐멜은화폐경제와더불어산업자본주의의일란성쌍둥이라고할수있는도시문제를연구하기도했다.짐멜은대도시에서삶을영위하는인간이어떻게‘자유’를가지게되었는지를분석한뒤여기에서개인주의가출현했다고말한다.이개인주의는타인으로부터자신을구별하려는인간의허영심과그것을이용한산업자본주의의소비사회가결합해나타난것이다.겉으로는자신의개성과욕망을표현하는자유가실현된것처럼보이지만,그것은개인들이모두자본주의적생산양식에편입되었다는것을의미하기도한다.즉돈이없다면개인은그어느자유도제대로누릴수없는것이다.
벤야민,유행,도박,매춘…욕망의거대한집어등
2부‘벤야민’편에서는유행,매춘,도박과같은자본주의적삶의편린들을파헤친다.벤야민은‘19세기세계의수도파리’를연구하기위해방대한분량의자료를수집했는데,그것이바로책『아케이드프로젝트』에담겨있다.
벤야민은파리의아케이드를연구하면서유행,도박,매춘을통해우리욕망을왜곡시키는자본주의의모순을발견한다.우선아케이드와백화점은인간에게새로운상품을욕망하도록길들이고자고안된장치라는것을명확히한다.그리고아케이드를통해서백화점이어떻게발명되었는지,그것이어떤방식으로유행에대한욕망을우리에게각인시켰는지보여준다.벤야민은상품을사용가치가아닌교환가치로,혹은상품을자신의체면이나허영을충족시키는기호로구매하는소비자들의욕망을읽어낸다.산업자본은이런인간의욕망을이용해끊임없이유행을창출해낸다는게벤야민의분석이다.
벤야민이숙고한것은자본주의의합리적인측면이아니라자본주의의이면에도사리고있는인간의무지혹은종교성과같은비합리적인요소이다.좀더정확히말하면자본주의의생명력은오히려종교성그자체에있다고벤야민은말한다.바로이런맥락에서돈이라는신에대한철저한복종과그의은총을기다리는소망의심리가자본주의를지탱하게했다고본것이다.그리고도박과매춘이야말로종교로서자본주의의특징이가장잘드러나는사례라고언급한다.
“벤야민은마르크스와달리자본주의자체가현실이면서도공상이라고생각했습니다.만약벤야민의입장이옳다면다음과같은놀라운결과가도출됩니다.자본주의자체가종교로작동하므로만일자본주의의종교성이사라진다면,자본주의도근본적으로폐기된다고말입니다.”(159쪽)
부르디외,왜실업자나노숙자는혁명을일으키지않는가?
3부‘부르디외’편에서는아비투스,구별짓기등자본주의에의해각인된우리의내면세계를살핀다.우선부르디외는가난한사람들이혁명을일으키지못하는이유를아비투스개념으로풀어낸다.부르디외는두종류의아비투스가있다고말한다.하나는‘미래가있는사람’의아비투스이고다른하나는‘미래가없는사람’의아비투스이다.부르디외는미래가없는사람들은근본적인상황의변화,새로운변화를꿈꾸는혁명적성향을보이지않는다고설명한다.즉실업자나노숙자들은최소생활을영위할수있는여력마저도없기에,전체체계를자신의시야를통해합리적으로성찰할수없다는것이다.자본주의의억압을넘어서기위해서는가난한이웃들이최소한극단적인생계의위협에서벗어날수있어야만그들에게미래가자신이주체적으로선택할수있다는의미에서“가능성의장”으로다가올수있다고부르디외는진단한다.
또한부르디외는아비투스개념으로분별력이있다고자처하는상류계급의내면세계를다각도로분석한다.이를테면아름다운것을바라보는관점은상류계급과하류계급이각각다르다.부르디외는이런미적성향이야말로가장직접적이고강렬하게작용하는아비투스라고말한다.하지만상류계급과하류계급사이의이런차이는선천적인차이가아니라는점을강조한다.다시말해상류계급사람들은자신의미적능력이자신들이가진돈과생활의여유에서만들어졌다는사실을잊고있다는것이다.그러면서부르디외는『구별짓기』에서상류계급의순수예술이순수하지않다는것,자신을하류계급과구별하려는욕망에서비롯된다는사실을폭로한다.그렇다고하류계급의대중예술과미적취향을긍정하는것은아니다.“결국프롤레타리아의아비투스는긍정의대상이아니라극복의대상일수밖에없습니다.피지배자의아비투스,혹은복종의아비투스니까요.노예의아비투스를극복하지못하면,노예는주인을제거해도다른근사한주인을찾아복종하려할테니말입니다.결국자유의공동체를만들기위해프롤레타리아는자신의아비투스를변화시켜야합니다.그것은해방의아비투스혹은자유의아비투스일겁니다.그래야복종의아비투스가지배의아비투스로덤블링하는비극도막을수있습니다.”(260쪽)
보드리야르,치명적인소비사회의유혹
4부‘보드리야르’편에서는소비사회의유혹적인논리와거기에서벗어날수있는가능성을숙고해본다.68혁명을자신의온몸과마음으로체험했던보드리야르는산업자본주의의원동력을‘소비’에서찾는다.그는산업자본주의가이토록빠른속도로발달할수있었던이유는기술개발에의한생산력의비약적발전이아니라,인간의허영과욕망을부추기는소비사회의논리때문이라고말한다.그렇다면산업자본주의는어떻게소비자들의지갑을열었을까?보드리야르가주목한것은바로기호가치이다.이기호가치는타인보다우월해져서그들로부터주목과관심을받고싶어하는인간의욕망과허영을드러낸것이기도하다.바로이런감정이있기에산업자본이날조한기호가치가작동할수있었다고보드리야르는말한다.
그렇다면어떻게산업자본주의에서벗어날수있을까?보드리야르는그방법을“불가능한교환”에서찾는다.그는교환되지않는것,아니정확히말해서교환불가능한것이우리주변곳곳에존재한다고이야기한다.그것은선물로대표되는상징적교환의논리이고,이를통해산업자본주의가던져놓은욕망의집어등을파괴할수있다고말한다.
“소비영역은소비자가노동자이기도하다는사실을은폐하려는산업자본의음모,나아가소비자의허영을부추겨소비를촉진하려는산업자본의전략이관철되는매우중요한공간입니다.그렇지만동시에이소비영역은산업자본의유혹을뿌리칠수있는자유의공간이기도합니다.결국소비영역은산업자본의아킬레스건이지만동시에인간에게는자유로운기회의장이었던겁니다.보드리야르가소비영역,혹은일상에서우리가만나는사물을숙고했던것도이런이유때문입니다.동일한사물이산업자본이원하는소비의대상일수도있고,아니면향유와긍정의대상일수도있으니까요.”(314쪽)
페라리스,“우리는동원된다,그리고자본에종속된다”
5부‘페라리스’편에서는자동화와웹이지배하는새로운자본주의체제의비밀과자기긍정이자기착취가되는현상을면밀히살핀다.페라리스는사회를기록성,즉다큐멘탈리티로이해한다.그개념을통해우리의삶과내면을새롭게재편하고있는새로운형식의자본주의를냉철하게분석한다.그는다큐멘탈리티와미디어사이의만남과결합을다큐미디어혁명이라고부르며,“우리는아직이혁명을이해하지못하고있다”고말한다.
페라리스가말했던것처럼,지금우리는AI,가상현실,집단지성,웹,빅데이터등으로상징되는다큐미디어혁명시대에살고있다.다큐미디어혁명은과거의상업자본,산업자본,금융자본도낡은것으로보이게만들정도로혁명적이다.페라리스는이런시대를하나의공식으로설명한다.마르크스의자본운동의일반공식,즉‘화폐-상품-화폐′(M-C-M´)’공식을수정한‘소비-기록-소비(C-R-C)’공식이바로그것이다.공식에처음등장하는C는단순한상품구매와같은소비가아니라스마트폰과랩톱으로수행하는모든행동에뒤따르는삶과에너지의소비를의미한다.공식의두번째R는소비자가웹에남긴기록,즉소비에대한빅데이터와정보를의미한다.마지막C는오프라인이든온라인에펼쳐진상품들을게걸스럽게소비하는단계이다.
우리는수없이웹에뭔가를기록한다.이데이터들은매일쌓여빅데이터가된다.그빅데이터는누가활용하는가?누가가치를생산해이익을보는가?페라리스의말대로“우리는동원된다”,그러면서다큐미디어자본에종속된다.페라리스는우리가매일하는이런기록활동을가치를만드는하나의‘일’로바라본다.그렇지만다큐미디어자본은그대가를결코지불하지않는다.이것은임금을받지않고노동하는것과진배없는일이다.그래서페라리스는다큐미디어시대를“자기-가치화가자기-착취”가되는시대로규정한다.이런사회에서는지배자/피지배자의관계도모호해진다.갈수록일자리가사라지며,저가의일자리와고가의일자리만남게된다.
그렇다면페라리스의대안은무엇일까?문제는웹에저장된데이터들로발생한잉여가치를다큐미디어자본이독점한다는데있다.이것은데이터를생산한개개인유저들에대한착취와다를바없다.그러니이가치들을사회화하자는게페라리스는주장한다.또한‘데이터조합’과‘덕은행’을만들어다큐미디어자본과맞서야한다고제안한다.개개인이웹에남긴데이터는부를창출하기힘드니,빅데이터는아닐지라도소규모나중규모의데이터를집적해산업파트너와거래하고그대가를조합원들에게분배하자는것이다.그러면서페라리스는외친다.“만국의소비자여!단결하라!”고.소비자가단결해데이터를사회화했을때세상이어떻게변화하는지생각해보라고충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