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림동 소녀 : 나의 오월이 시작되는 곳

양림동 소녀 : 나의 오월이 시작되는 곳

$16.80
Description
5·18 생존자 임영희가 선사하는
광주 오월공동체로의 시간여행

삐뚤빼뚤 서투른 그림 속에서 나를 만나다
나, 그리고 우리의 역사를 뒤바꿔버린 그해 오월의 이야기
여기,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하나의 생애가 있다. 1956년 보배의 섬 진도에서 태어나 광주 양림동에서 생애 가장 뜨겁고 아름다웠던 순간을 맞이했던 임영희의 삶이 그렇다. 56세의 나이에 급성뇌졸중으로 장애를 갖게 된 그는 코로나 시대를 보내며 크레파스와 사인펜을 집어들었다. ‘그림의 의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마비된 오른손 대신 서투른 왼손이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삶의 굵직한 마디마디에 새겨진 곡진한 이야기들은 그린 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림 속에서 고개를 내민다.
《양림동 소녀》는 긴 세월 속에 감춰진 과거를 더듬어보는 시간여행이다. 시간을 거슬러 돌아간 그곳에선 다양한 장면들이 펼쳐진다. 임영희는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광주로 유학 간 이야기, 그곳에서 문학과 글에 대한 꿈을 키우는 이야기, 그 꿈의 터전이 된 양림동에서 사회운동과 문화운동을 시작하고 5·18 항쟁에 시민군으로 참여하게 된 이야기, 노년기에 장애인의 삶을 살게 된 이야기를 담담하고도 명랑히 풀어낸다. 임영희의 생애 속에서 우리는 그 개인의 역사를, 또한 우리 모두의 역사를 뒤바꿔버린 찬란한 오월공동체와 마주하게 된다.

저자

임영희

저자:임영희
1956년진도에서태어났다.
광주수피아여자중·고등학교에다니며문학도를꿈꿨던소녀였다.성인이되어광주현대문화연구소에서시민단체활동을시작했다.광주전남최초의독립여성단체‘송백회’를창립했고,1980년오월광주에시민군으로참여해항쟁했다.극단‘광대’의단원이자‘갈릴리’의기획자로서5·18항쟁을알리는연극활동에참여하며한국현대사를온몸으로관통해왔다.50대에들어선어느날급성뇌졸중으로신체장애를얻었다.이후화순으로귀촌해인생을돌아보며마비된오른손대신왼손으로자전적그림을그리기시작했고,그그림들로애니메이션영화〈양림동소녀〉(2022)를연출했다.동화책후속작으로는《녹색소년장형두》를작업했다.
〈양림동소녀〉는서울독립영화제,광주여성영화제,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광주독립영화제등다수의영화제에초청되었고,KBS1TV독립영화관에서도방영되었다.2023년한해제15회서울국제노인영화제한국단편경쟁대상,제10회춘천영화제한국단편경쟁심사위원상,제24회가치봄영화제인권상,제24회제주국제장애인인권영화제대상을수상했고,제44회청룡영화상청정원단편영화상후보에올랐다.

목차

서문·8

1부/보배의섬을떠나오다·13
2부/양림동소녀·53
3부/광주오월공동체·87
4부/단비를마시며아침을맞는다·125

그림으로의식을치르다·157

출판사 서평

무엇을그릴까?‘나를그려보자’

“엄마,심심하니까그림좀그려봐요.”코로나19팬데믹이한창이던2020년,저자는아들에게서그림을그려보라는권유를받는다.급성뇌졸중후유증으로오른손을쓰지못하는그는왼손에도구를쥐고그림을그리기시작한다.처음에는광주양림동에서보냈던10대학창시절을주로떠올리며그렸지만,기억의틈새에감춰져있던또다른순간들이계속해서고개를내밀었다.

그렇게그린80여점의그림들은〈양림동소녀〉라는30분짜리단편애니메이션으로탄생했다.자신의삶을표현한그림과함께그그림을구술로설명하는저자의나지막한음성이내레이션으로흐르고,아들인오재형감독의피아노연주가배경음악으로곁들여지는방식이다.영화는곳곳에서뜨거운호응을받았다.서울독립영화제,광주여성영화제,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광주독립영화제등여러영화제에초청되었고,2023년한해제15회서울국제노인영화제한국단편경쟁부문대상을비롯해4개의상을수상했다.제44회청룡영화상에서는청정원단편영화부문후보로오르기도했다.

삶의근거지가된양림동,송백회와보프룩카페

이구술사의중심이되는광주양림동은저자가삶의가장중요한시기를보낸장소다.그자신의말처럼,양림동에서보낸젊은시절은인생의‘전성기’이자‘하이라이트’다.진도출신인그는어린나이에광주로유학와10대와20대를양림동에서보냈다.양림동에위치한수피아여중/여고를다니며문학소녀의꿈을키웠고,수피아에새겨진독립운동의자취를더듬으며“유신에저항하는해방자의길”을모색해나갔다.당시무등문학상을수상하기도한그는학교교지의편집위원으로활동하며문학의폭을넓혔다.

20대가되어연극제작등문화활동을통해본격적으로민주화운동에뛰어들었을때도양림동은그‘사상의기반’이었다.당시양림동에서는많은민주화운동인사들이거주하며공동체를일구고있었다.그역시양림동을근거지로유신반대운동과극단활동을이어나갔고,1978년12월에는동료들과함께광주전남최초의여성단체송백회를꾸려간사로참여했다.민주화운동으로구속된사람들을옥바라지하는여성들의소모임으로출발한송백회는공부와토론모임,양심수지원,대중시위,기금마련을위한전시기획등의활동을조직했다.송백회회원들은5·18당시에도들불야학과함께《투사회보》등을제작하는등적극적인활동을전개했다.

교사,간호사,노동자,주부,청년운동가등진보적사회의식을가진여성,민청학련구속자가족,민주화운동활동가부인등다양한배경을지닌80여명의여성들로구성된송백회에서는성매매를목적으로하는관광,가난한농촌여성들의문제를고민하고이야기했다.송백회의창립멤버였던소설가홍희담과밀접하게교류했던저자는이시기에시몬드보부아르,베티프리단,로자룩셈부르크와같은여성사상가들의책을읽으며고민을확장해갔다.친한동료이자선배였던홍희담의집에서그와함께책을읽고토론을이어갔던저자는그공간을‘보프룩카페’(‘보’부아르,‘프’리단,‘룩’셈부르크의첫음절을조합한작명)로이름짓는다.

5·18시민군으로싸웠습니다,절박하게

유년시절의명랑하고풋풋한에피소드에서시작하는그의이야기는5·18시민군으로광장한복판에섰던묵직한순간에도달한다.국가가시민에게총칼을겨눠수많은사람을학살했던그때의그현장을목도한것이씻을수없는평생의아픔으로남았지만,다른한편으로5·18항쟁은그를지금껏살게한원동력이기도하다.

그는자신이보았던‘가장아름답고,가장신성한’광주오월공동체의모습들을여러장면으로세밀하게표현했다.5·18당시함께활동했던다양한여성들(주부,직장인,여고생,할머니,시장상인등),5월23일계엄군이잠시물러난해방광주에서주먹밥같은것을나누며서로를보살피고배려했던시민들……그에게5·18은“태어나서가장영광스러운순간”이자,“지금도생각하면가슴이울렁거”리는그런찬란한공동체로기억된다.

“공권력이사라진도시에서시민들끼리누구하나총구녁겨누며싸우지않았고,은행터는사람도없었고,한건의약탈사건도없었어.서로서로보살피고서로서로배려했지.이렇게아름다운광경이또있었을까.”

그는도청분수대에모인수만명의사람들앞에서(범시민궐기대회)이윤정의〈민주화여!〉를낭독했던순간의긴박함과절박함에대해서도말한다.사람들이계속해서죽어나가고,시민군은폭도로몰리고,언론탄압으로5·18항쟁의진실을보도할수있는길마저막힌상태였기에,그는절실했다.사람들에게희망을주어야한다는생각으로“말한마디한마디에엄청힘을줘서낭독”했다.“민주화여/영원한우리의소망이여/그이름부르기에목마른젊음이었기에/우리는총칼에부닥치며여기에왔노라”

“떨릴겨를이어디있어?우리는끝까지싸우겠다,뭐그런각오로한거지.항쟁이끝나면나는사형당할줄알았어.”

나의삶을바꾼광주오월

5·18이후,그는힘겹고고통스러운시간을거쳐왔다.어떤눈이항상자신을따라다니는꿈,누군가가자신을감시하며쫓아오는꿈에시달리는일이부지기수였다.그때생긴불면증은지금까지이어지고있다.서울로도피했던시절도있었는데,도피중갑자기난소에이상이생겨서급하게수술을받기도했다.

“몇달새사람이메말랐고고통스러웠재.이렇게머리끝에서발까지대못으로박힌것같은고통이었어.”

그러나그런와중에도그는광주에서어떤일이일어났었는지알리는일을소홀히하지않았다.

그는자신이가장잘할수있는영역에서5·18의진실을알리고자했다.5·18이전부터이어왔던문화운동이그만의실천방식이었다.함께서울로도피한친구들과‘해방광주오월’이라는주제로분수대에서낭독했던글들을돌아가며읽고녹음해테이프로제작했고,다시광주로돌아가서는5·18항쟁을배경으로하는마당공연〈무등의꿈〉을기획해무대에올렸다.

〈임을위한행진곡〉이탄생한현장에도그가있었다.소설가황석영의집에서이뤄진이곡의녹음에참여한것이다.‘넋풀이:빛의결혼식’이라는제목을단녹음테이프의맨마지막순서가〈임을위한행진곡〉이었다.“혹시감시당할까봐거실창문을담요로다막아놓고녹음을새벽까지한거야.노래를미리연습해서불렀던게아니고그자리에서다같이배워서했어.나는우리가처음불러서녹음했던이노래가이처럼전국적으로,또세계적으로많이불릴줄은몰랐어.”

그림이언어가되기까지

50대에접어든어느날,그는급성뇌졸중으로쓰러졌다.이후후유증으로오른쪽몸이마비되는신체장애를얻었다.이년간의병원생활을하며밥을먹는것도,걸음을걷는것도처음부터다시배워야했다.그가다시익히고습득한건이뿐만이아니다.그는전에는갖지못했던새로운언어를연마했다.그의왼손이선사해준그림이바로그언어다.그가“미적미적하며그린그림”은어느새그를‘이야기로지어진아테네신전’으로인도했다.그림이언어가되기까지고통이누룽지처럼붙어다녔답니다.그런데재미가있었지요.처음경험하는후련함이죠.마음이아주편해졌어요.”

장애인이된그는이제“장애인을바라보는우리사회의뿌리깊은시선”을깨닫는다.그가나이칠십을바라보며지은《양림동소녀》는“다시한번‘모든이를위한정의로운민주주의’를만들어가자는권유”와도같다.이곳에서그는여성으로서,국가폭력의생존자로서,또한장애인으로서세계를다시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