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의 가장자리 : 새로운 주체, 공통의 세계를 찾아 나선 지적 여정

픽션의 가장자리 : 새로운 주체, 공통의 세계를 찾아 나선 지적 여정

$22.00
Description
우리 시대의 사상가 자크 랑시에르가 말하는 픽션의 정치,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모든 것으로 바꾸는 지적 모험의 서사
몫 없는 자들의 말과 글은 어떻게 픽션에 새겨지는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모든 것으로 바꾸는 혁명에 대한 이야기

우리 시대의 사상가 자크 랑시에르가 ‘픽션의 정치’를 주제로 쓴 《픽션의 가장자리》가 출간됐다. 보통 문학 용어로 통용되는 ‘픽션’은 실재와 가상, 현실과 비현실, 진실과 거짓을 나누는 문제와 결부된다는 점에서 오랜 철학적 물음이기도 하다. 랑시에르는 특이하게도 문학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또한 인간과 사회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픽션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이 책에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한 챕터로 의미 있게 다뤄지고 있다.
이 책은 제목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듯이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1990)라는 랑시에르의 대표적인 정치철학적 저작과 마주 서 있는 미학적 작품이다.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가 ‘정치의 감성학’을 이해하기 위한 주요 입구 중 하나였다면, 《픽션의 가장자리》에는 그에 대응하는 ‘미학의 정치’의 핵심적인 아이디어가 새겨져 있다.
이 책은 스탕달에서부터 발자크, 보들레르, 위고, 모파상, 프루스트, 릴케, 에드거 앨런 포, 콘래드, 제발트, 버지니아 울프, 포크너를 거쳐 브라질 현대 작가 주앙 기마랑이스 호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학작품 분석을 통해 문학혁명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가장자리를 따라 나 있는지 살핀다. 또 《자본론》에서 마르크스의 극작법을 분석하고, 근대와 현대 픽션에 등장한 새로운 주체는 누구이고 공통의 세계는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우리가 세계라고 부르는 것과 그 세계를 살아가는 방식들을 살펴보는 데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책은 “이와 같은 온갖 모험들을 통해 계속되는 것은 바로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모든 것으로 변화시키는 혁명에 대한”(20쪽) 이야기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픽션의 정치’를 통해 어떻게 주체로 등장하고, 변화하지 않는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탐구하는 책이다.
저자

자크랑시에르

저자:자크랑시에르
1940년알제리에서태어나,프랑스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철학을공부한후파리8대학에서미학과철학을가르쳤다.그의사상적여정에서첫번째중요한분기점은루이알튀세르와의만남이었다.그러나1968년5월혁명이후알튀세르와불화를겪기시작했다.그는당시과학적마르크스주의가지식인과대중사이의지적인불평등을전제로한다고비판하며,이러한비판을담아《알튀세르의교훈》(1974)을발표했다.같은해잡지《논리적반역Revolteslogiques》을창간하며,약8년간19세기노동자들과공상적사회주의자들이남긴기록물에서지적평등을입증하는다양한사례들을조사했다.이러한작업의결실이바로국가박사학위논문인《프롤레타리아의밤》(1981)이다.그반향속에서그는《철학자와그의빈자들》(1983)을발표하여철학과사회과학의역사에서지적분할과위계의전통을재검토하고,자칭‘철학자’혹은‘스승들’에대한도전을이어나갔다.이과정에서발표한저작이《평민철학자》(1985)와《무지한스승》(1987)이다.1990년대에들어서면서는자신의정치철학적작업을《정치적인것의가장자리에서》(1990),《불화》(1995)와같은저작에서체계화한다.동시에문학을필두로미학과예술론으로관심을확장하며두번째사상적분기점을맞이한다.이시기에문학,역사,정치의관계를다룬《역사의이름들》(1992),《무언의말》(1998),《말의살》(1998),《감각적인것의나눔》(2000)등을발표했다.이후에도《미학적무의식》(2001),《영화우화》(2001),《이미지의운명》(2003),《미학안의불편함》(2004),《문학의정치》(2007),《해방된관객》(2008),《아이스테시스》(2011),《잃어버린실》(2014),《풍경의시대》(2019)등다수의저작을통해동시대사상의윤리적전환을재검토하고,기존의예술장르및시기구분을허무는방식으로예술사를재구성했다.이뿐만아니라《민주주의에대한증오》(2005),《합의의시대를평론하다》(2005),《자크랑시에르와의대화:피곤한사람들은어쩔수없지!》(2009),《평등의방법》(2012),《우리는어느시간에살고있는가?》(2017)등정치적저작도지속적으로발표하고있다.정치와예술을넘나들며당대의이론적,실천적상황에논쟁적으로개입하는그의사상은현대담론에서독보적인위치를차지하고있다.

역자:최의연
프랑스현대철학을경유해주체화의실천들과공동체의탈구축을탐구하는데관심이있다.이화여자대학교지리교육학과미술사학과를졸업하고,홍익대학교대학원미학과에서‘랑시에르의감성의공동체’에관한논문으로석사학위를취득했다.현재파리1대학팡테옹-소르본철학과에서정치철학과미학을전공하며<세계와헤테로토피아:위상학,계보학,지도학>으로박사학위논문을준비중이다.

목차

서문

1부문과창문
1.유리창뒤에서:스탈당과발자크
2.빈자들의눈:보들레르,빅토르위고,모파상
3.엿보는자들이보는것:프루스트의《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
4.거리를향해난창문:릴케의《말테의수기》

2부과학의문턱
1.상품의비밀:마르크스의《자본론》
2.인과성의모험들:추리소설의역사

3부실재의기슭
1.상상할수없는것:조지프콘래드의소설들
2.문서의풍경들:제발트의소설들

4부아무것도아닌것과모든것의가장자리
1.임의의순간:버지니아울프의소설들
2.빈자들의두이야기:윌리엄포크너의《8월의빛》
3.말없는자의말:윌리엄포크너의《소리와분노》
4.한없는순간:주앙기마랑이스호자의소설들

감사의말
옮긴이해제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랑시에르가말하는픽션의정치
:공통의세계와공통의이야기

랑시에르는철학자인가,정치학자인가,미학자인가,역사학자인가?도서관에가보면랑시에르의책은한곳에응축되어있지않고철학,사회과학,역사,예술등여러분야에흩어져있다.그만큼랑시에르는철학에도,역사에도,문학에도속하지않는글을쓴다.그는의미를제공하는전통적인철학자의지위나역사적사실을서술하는역사가의지위모두를거부하며,오히려철학,역사,문학이라는분과학문들사이의경계를가로지르는글쓰기를수행한다.정치와예술을넘나들며당대의이론적,실천적상황에논쟁적으로개입하는랑시에르의사상은현대담론에서독보적인위치를차지하고있다.

잘알려져있다시피그의사상적여정에서첫번째중요한분기점은루이알튀세르와의만남이었다.그러나1968년5월혁명이후알튀세르와불화를겪었고,결국결별했다.기본적으로알튀세르는노동자들에게착취와혁명을가르치는교사의입장이었고,이는지식인을경유하지않고서는노동자의목소리가전달될수없다는논리와같았다.랑시에르는이런지식인과무지한대중사이의나눔을문제삼았고,알튀세르와결별한뒤약8년간19세기노동자들과공상적사회주의자들이남긴기록물에서지적평등을입증하는다양한사례들을조사했다.이러한작업의결실이바로국가박사학위논문인《프롤레타리아의밤》(1981)이다.그는노동자들이스스로말할수있고,사유할수있으며,다른세상을꿈꾼다는것을밝혀냈다.랑시에르는정치적주체가특정한사회적신분이나지위에의해서미리결정되는것이아니라스스로자신의말을들리게하는주체화의과정을통해서만들어진다고말한다.

이러한맥락에서《픽션의가장자리》는랑시에르고유의사상과글쓰기전략이담긴중요한책이다.《정치적인것의가장자리에서》《불화》와같은저작에서‘몫없는자들의몫’이란개념을통해아무것도갖지못한이들의정치적주체화를끌어냈듯이,이책에서는‘보잘것없는존재’들과‘임의의순간’에대한분석으로자신의사상을펼쳐간다.랑시에르는이책에서아무리보잘것없는인간일지라도영혼의깊이를지닌주체이고,몽상이라는비활동이세계의활동과조화를이루는충만한순간이기도한임의의순간이야말로“아무것도아닌어떤삶의단순한불행을모든것으로바꿔놓을수있”다고말한다.“임의의/보잘것없는순간은지배적인시간,즉승리자들의시간의‘승리’가가장확실시되었을때조차승리자들의시간을폭발시키는힘이다.지배적인시간이말바깥,시간바깥에있는이들을밀쳐낸곳,아무것도아닌것의가장자리에서이힘은작동한다.”(248쪽)

‘아무것도아닌것’을‘모든것’으로만드는것.공통의세계와공통의이야기를구축하고자하는것.이것이랑시에르가말하는‘픽션의정치’이다.이는버지니아울프,윌리엄포크너,주앙기마랑이스호자의소설을분석하면서더자세히말하고있다.“다시말해,이감각적인모험들에의해말은육신이되어삶을그목적지에서우회시키고,밤은정상적인낮과밤의순환을동요시키며,창문을통한시선은프롤레타리아신체의분할을낳는다.또한이감각적인모험들에의해훼손된조각상들,벼룩이들끓는아이들,광대들의재주넘기는새로운아름다움을창조하고,문자기호앞에서의무지한자들의암중모색은또다른지적삶을규정한다.이와같은온갖모험들을통해계속되는것은바로아무것도아닌것을모든것으로변화시키는혁명에대한하나의동일한조사연구이다.”(19~20쪽)

새로운픽션,새로운주체의탄생

랑시에르는아리스토렐레스의《시학》에서픽션의합리성개념을이끌어낸다.아리스토텔레스가말하는픽션적합리성은1)원인과결과의연쇄[인과적시간성],2)진실임직함[개연성],3)반전[급전]이라는세가지요소로구성된다.이요소는지금까지큰영향을끼치고있다.

그러나여기에는행위주체들의수가제한적이었다고랑시에르는지적한다.《오이디푸스왕》에서볼수있는것처럼,아리스토텔레스시대의행위주체는소수의행동하는인간들,즉왕이나귀족에국한됐다.나머지대다수인간은노동이나재생산의굴레에갇혀늘같은일만반복한다고여겨졌기에결코픽션의대상이될수없었다.“그들은물건을만들거나아이를양육하고,명령을실행하거나서비스를제공하며,그전날했던것을다음날되풀이한다.이모든것에는당신을하나의운명에서정반대되는운명으로이행하게할수있는어떠한기대도없고,어떠한기대의반전도없으며,범할어떠한실수도없다.그러므로고전적인픽션적합리성은극히적은수의인간및인간활동과관련되었다.”(9쪽)이때문에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진실은반복과재생산이라는어둠의세계에머무는수동적인간들이아니라행동과사건이라는빛의세계에사는능동적인간들만이도달할수있는것으로여겨졌다.

이러한아리스토텔레스의원리는근대에들어전복되었다고랑시에르는지적한다.마르크스로대표되는사회과학은아리스토텔레스의원리를따르면서도무지해도되는,즉무시해도좋은사물들과사람들의세계를진실된세계로격상시켰다.이에따라능동적인간들이몰라도되었던,혹은무시해도좋았던사람들과사물들의세계가곧진실의세계,지식을생산하는세계가되었다.반면근대문학은고전적픽션적합리성의적용범위를넓히기보다그가장자리에머물러있던것들에서,가장강렬하고가장복합적인감정을느낄수있는보잘것없는개인에서새로운픽션적합리성을발견했다.보잘것없는존재들이겪는감정과사건의세계를향해이야기구조를열어젖히고,임의의순간을통해“아무것도아닌어떤삶의단순한불행을모든것으로바꿔놓”는전략을취했다.

그렇다면작가란무엇을하는사람인가?랑시에르는제발트의소설들을분석한장에서이렇게말한다.“그작업이란죽어있는것에서삶을창조하는것,낡은것으로새로운것을창조하는것,산업적재료들로예술을창조하는것,사소한사건들과거의지워진흔적으로부터역사를창조하는것이다.요컨대파괴의활동에이의를제기하고파괴의활동을대속하는것이다.”또한작가는“시간의또다른이미지,즉연속과파괴의시간에대립하는공존의시간,평등의시간,순간들의사이-표현성의시간을창작하”(196쪽)는사람이다.

랑시에르가말하는새로운픽션이란무엇인가?“종속시키지도파괴하지도않으면서연결시키는공통감각을생산”(240쪽)하는것이다.즉고전적픽션이전제했던어디까지라는한계너머로보잘것없는삶과임의의순간들을데려가는것이다.“새로운픽션은장애인을치료하기위한해결책들을제시하지않는다.그러나새로운픽션은장애인들을수용소로보내는자들의지배를중지시킨다.새로운픽션은글쓰기의시간을통해장애인들이갇혀있게될장소로그들을보내는것을뒷받침하는근거들의시간을무한히지연시킴으로써그들을현재에붙잡아둔다.”(247쪽)

이책의구성:
문과창문을지나,문턱을넘어,기슭으로,마침내가장자리로나아가는이야기

《픽션의가장자리》는귀족과평민을구분했던분리선인‘문과창문’(1부)을지나,서사의합리성과과학의합리성이마주치는과학의‘문턱’(2부)을넘어,작가의상상력과시간성을파고드는실재의‘기슭’(3부)에머물다,픽션이그리는공동체와픽션이약속하는인간성을파헤친아무것도아닌것과모든것의’가장자리’(4부)로나아간다.

총4부로구성된이책은작품분석을통해전개된다.1부〈문과창문〉에서는민주주의시대를연프랑스혁명이후등장한문학작품들을‘창문’이라는메타포로분석한다.‘창문’은귀족과평민을분리했던장벽을의미하는데,이시대에비로소그문이열리게된것이다.스탕달에게창문은투명한영혼의닮음을기반으로귀족과평민이만나는통로였지만,발자크의소설로넘어오면서창문은다시금창밖과안사이의시야를가로막고,귀족과평민을나누는‘불투명한’장애물이된다.보들레르의시와위고,모파상의소설을통해서는현기증나는영혼의깊이를그뒤에감춘‘가난한사람들의눈’을,프루스트의《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에나오는엿보는자의시선을통해서는‘거짓의진실’,즉앎에도달하는방식을살펴본다.릴케의《말테의수기》를통해서는거리를향해난창문바깥으로나가보는법을다시배우는시인의의미를파헤친다.

랑시에르에게사회과학과문학은모두픽션의논리에따라우리가살아가는공통의세계를지각가능하고사유가능하게하는형식들이다.바로이와같은관점에서2부〈과학의문턱〉1장〈상품의비밀〉에서는마르크스의《자본론》이,2장〈인과성의모험〉에서는추리소설이분석대상이된다.우선랑시에르는비극으로서과학의속성,그리고과학과역사의길항작용을조직하는마르크스의독특한극작법을조명한다.《자본론》에는등장인물들사이의적대감과대립구도,그리고상황의반전이라는비극의논리가작동하고있다.또상품들의교환아래‘감춰진것’과공장의현실에서‘드러난것’,공장에서일하는육체에쓰인‘지옥서사’등이《자본론》에“독특한내러티브구조”를부여한다.마르크스의극작법은생산및삶의재생산이라는어두운세계를드러내면서역사의법칙을파악한이들에게위계없는인류의장래를열어준다고랑시에르는말한다.2장에서는추리소설의변천사를짚어나가며,그변천과정에서어떻게추리소설이“평범한등장인물들,반복되는시간,중요하지않은사건들”을배척하고자했는지살펴본다.

3부〈실재의기슭〉에서는조지프콘래드와W.G.제발트의소설을분석하면서실재적인것과상상적인것의관계를다룬다.특히2장〈문서들의풍경〉에서는제발트의픽션에주목해새로운픽션의모델을그린다.제발트는반복되는여담을통해특정순간,특정장소에서일어났던,일어나는,일어났을수도있을,일어날지도모를일들을같은순간,다른장소에서,또는다른순간,같은장소에서일어났던,일어나는,일어났을수도있을,일어날지도모를일들과수평적으로연결함으로써모든다른현실적,상상적시공간을잠재적으로포함하여끝없이팽창하는‘공존의공간’을직조하며새로운픽션을창조해낸다.

4부〈아무것도아닌것과모든것의가장자리〉에서는버지니아울프,윌리엄포크너,주앙기마랑이스호자의소설을분석하며픽션의정치가어떻게새로운형상과형식을입고변주되고,확장되는지살펴본다.1장〈임의의순간〉에서는버지니아울프의소설이어떻게새로운공통감각의세계를열어젖히는지보여준다.임의의순간은공존의시공을이루는요소인동시에,그자체로‘동요의순간’이기도하다.사건의시간과의미의세계안에살아가는이들과,이시간과세계바깥에서살아가는이들이마주치는순간이다.울프는바로이순간,공통감각혹은양식의질서가해체되는순간을그림으로써다가올공통의삶,새로운공통감각의세계를예고한다.3장〈말없는자의말〉에서는윌리엄포크너의《소리와분노》에등장하는백치벤지가어떻게아무것도아닌것을모든것으로뒤바꾸는지를보여준다.벤야민이승리자들의시간에맞선시간의중지,포개짐,회귀,격돌을이야기했듯,포크너의픽션은시간을압축하고팽창시키며파편화하고혼합함으로써아무것도아닌것을모든것으로승격시킨다.4장〈한없는순간〉에서다뤄지는주앙기마랑이스호자의픽션에서는정체를알수없는인물들이어떻게고전적픽션의시간성을넘어한없는순간을만들어내는지조명한다.픽션의정치적주체는삶과이야기가만들어내는순환속에서이야기로서의삶을읽어내고,삶으로서의이야기를지어내는아무나,즉누구나임을주앙기마랑이스호자의소설은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