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섬식품노조20년사
온몸과온마음을다해살아냈던
사람들의역사,
우리시대의노동운동사
전태일의후예,화섬식품노조20년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이하화섬식품노조)20주년을기념하는책이출간됐다.잘알려져있다시피1970년근로기준법을준수하라고절규했던전태일열사는섬유?봉제노동자였다.화섬식품노조는그전태일의후예,수많은‘전태일들’이만든산별노동조합이다.즉초창기한국의경제발전을이끌었던화학과섬유산업노동자들이뭉쳐만든노동조합이다.
1987년노동자대투쟁에이어1990년에는전노협이,1995년에는민주노총이탄생했다.그리고2000년에민주화학연맹과민주섬유연맹이화섬연맹으로통합했고,2004년마침내산별노조인전국화학섬유노조가출범했다.그뒤2017년사회적으로큰반향을일으킨파리바게뜨노동자들의투쟁이있었고,이때화섬노조가이들을지원했다.그해11월11일대의원대회를열어전국화학섬유노동조합은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으로이름을변경했다.식품산업노동자들을더잘조직하기위해명칭에‘식품’을추가한것이다.파리바게뜨노동자들의투쟁은노조불모지인IT산업의노조조직화로이어졌다.2018년네이버,카카오,넥슨,스마일게이트등이화섬식품노조의품으로들어왔고,이어서타투노동자등도가입해조직은더욱확장되었다.지금화섬식품노조에는화학이나섬유같은전통적제조업에서IT,식품,의약품,산업폐기물,문화예술등20여업종의4만여명의노동자들이활동하고있다.특히IT산업은2020년이후화학산업에이어두번째로큰규모의업종이되었고,직군도현장생산직중심에서사무기술직,영업판매직등으로점차넓어졌으며,세대간구성도다양해졌다.그야말로다채롭고다양한노동자들이모여있는화섬식품노조다.화섬식품노조는2022년산별노조전환을완료했다.지난20년간계속그래왔듯전태일의후예산별노조로서사회연대활동을적극펼치며‘실력있고매력있는강한노조’로서현장을일구고있다.
노동자들의땀과피어린눈물로기록한책
화섬식품노조20년사《우리같이노조해요》는압축된한국노동운동사이기도하다.그만큼이책에는노동자의역사와현실이고스란히담겨있다.일제강점기고무공장노동자강주룡의투쟁에서부터1970년대동일방직,반도상사,원풍모방여성노동자들의투쟁,1987년노동자대투쟁,산업화의동력이되었던섬유와석유화학노동자들의투쟁,이어서21세기파리바게뜨와IT노동자들의투쟁까지,100년동안한국산업사의흥망성쇠속에서부침과명멸을거듭한노동자들의거짓없는이야기가펼쳐져있다.또그동안현장에서묵묵히자신의일을해왔던현장활동가들의인터뷰도수록되어있다.즉이책은노동자들의땀과피어린눈물로가득한조직의기록이자,온몸과온마음을다해살아냈던사람들의역사이기도하다.“노조가있어서든든했다”“노조가있어서가능했던승리였다”등노동자들에게노동조합이왜필요한지를여실히보여주는책이기도하다.
갖은탄압을이겨낸승리의기록
《우리같이노조해요》에는패배한기록이더많지만승리의역사도있다.대표적으로2017년에시작된파리바게뜨노동자들의투쟁이다.파리바게뜨노동자들이정의당비상구와연대해고용노동부의불법파견직접고용과연장근로수당미지급금지급시정지시를받아냈지만,SPC그룹측은지시사항을이행하지않았다.노동자들은노동조합을조직하고화섬식품노조중심으로시민사회단체들과연대투쟁을전개해2018년1월11일사회적합의를이뤄냈다.하지만SPC그룹은합의를이행하지않고노동조합탈퇴공작을일삼았다.지금껏거의모든기업이하던방식그대로였다.파리바게뜨임종린지회장은2022년3월단식투쟁을시작해장장53일간이어갔다.지회장이단식투쟁을시작한이유는회사를압박하기위해서가아니라노조가조합원들을지키기위해서노력하고있으니걱정하지않아도된다는메시지를주기위해서였다.시민사회단체들은다시모여‘파리바게뜨노동자힘내라공동행동’을조직하여전국적으로파리바게뜨사업장앞1인시위를조직하고‘사회적합의이행검증위원회’를통해SPC측의사회적합의불이행사실을입증하고공론화하는연대투쟁을진행했다.이렇게2022년11월3일다시파리바게뜨사회적합의를이루어냈고,뒤이어법원이사측의부당노동행위를인정하여SPC황재복대표와SPC그룹허영인회장은구속되었다.
파리바게뜨투쟁에이어네이버노동자들의투쟁도중요하다.네이버노동자들은노조명칭을‘공동성명’이라고정하고,굿즈를만드는등기존노조와는다른모습으로투쟁을시작했다.그러나사측은노조의활동을무시하며좀처럼교섭에응하지않았다.그뒤1인시위를비롯해본사1층로비에서농성을이어가는등투쟁수위를높여가기시작했다.그러자사측도조금씩반응을보였고,드디어교섭을할수있는단계까지이어졌다.단체협상을시작하면서포괄임금제가사라졌고,선택적근로시간제가도입되는등큰성과를이룰수있게되었다.네이버지회가자리를잡자기다렸다는듯이판교에있는다른IT기업들도움직이기시작했다.넥슨,스마일게이트,카카오,넷마블등에하나둘노조가생기기시작했고,IT산업은어느덧화섬식품노조에서화학산업에이어두번째로큰규모의업종이됐다.
이밖에똘똘뭉친투쟁에회사가백기를든한국안전유리노조(현한국세큐리트지회)의투쟁,‘정도경영’을앞세우는LG자본에맞서싸워승리한한국음료지회와LG화학노조의투쟁,K2코리아정리해고투쟁,한국네슬레의스위스원정투쟁등도중요한승리의기록이다.
수많은패배,하지만꺾이지않는노동자들
그렇지만《우리같이노조해요》를펼치면승리보다는패배가더많았다는것을알수있다.동일방직노동자들은‘똥물’을뒤집어쓰면서까지온몸으로투쟁했으나,결국해고를막지못했다.전두환정권의파상공세로1970년대민주노조운동을이끌었던청계피복노조,반도상사노조,태창섬유노조등은해체되고말았다.1997년IMF체제는수많은노동자들을길거리로내몰았다.노동자들은자본과국가권력에맞서싸웠으나,그고비마다패배라는쓰라린아픔을맞아야했다.2001년비정규직을통한고용유연화,도급화,해외매각,공장폐쇄에맞서울산화섬3사(효성,태광산업대한화섬,고려합섬)연대파업이크게일었으나많은상처를남긴채마무리되고말았다.2004년회사의구조조정에반대하며시작한코오롱노동자들의투쟁은10년이지난2014년까지이어지고도결국복직을이루지못했다.다국적기업인한국네슬레노동자들은본사가있는스위스까지가서투쟁할수밖에없었고,마찬가지로테트라팩노동자들도스웨덴?스위스까지가서투쟁을벌여야했다.또408일을넘어426일이라는세계최장기고공농성기록을두번이나갈아치운스타케미칼노동자가있었고,2008년3월부터2011년6월까지1207일동안최장기천막농성을지켜온한솔홈데코지회노동자들도있었다.이런노동자들이절실하게싸울때마다사측은해고,손해배상청구,노조탈퇴강요,공장폐쇄,위장폐업등갖은수단을동원해노동자들을압박했고,국가권력은자본의편을들며공권력을동원해노동자들을탄압했다.이책에는이런수많은노동자들의피어린역사가가득담겨있다.“노동조합을만들고지키다가쓰러지고심지어지리멸렬,눈물을삼키고물러선적도있는조합원들의솔직한고백”이담겨있다.그러면서도꺾이지않는노동자들의역사가담겨있다.
이노동자들의역사를보면자연히이런질문이떠오를수밖에없다.세계10위권의경제대국,산업화와민주화를동시에달성한대한민국.여기까지오는데수많은노동자의피와땀이서려있는데,그들의처지는과연나아졌는가?노조에가입할권리와노동인권은보장되고있는가?그럼에도노동자들의피어린땀과눈물과투쟁의기록은이시대를살아가는사람들의마음에굳건히새겨져있을것이다.
“《우리같이노조해요》의화자(話者)는조합원들입니다.조합원들은자신의이야기를드러내고전달하는것이야말로곧연대라는사실을확신하게되었고,그리하여‘우리함께노조해요’라고속삭입니다.소중하고고맙습니다.이속삭임이광야를태우는한점의불씨가되도록,이땅의노동자들에게꾸준히읽히는책이되기를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