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글뒤에숨겨진노동과고군분투
:작가노동을말하다
작가들이모여노조를만들겠다니,누군가는의아해할수도있다.‘작가가무슨노동자야?’그러나작가역시아프거나죽지않고건강하고안전하게글을쓸권리가있다.글쓰기노동내지는작가노동은외견상독립적이고자유로운노동인것같지만,여느노동과마찬가지로자본의지배아래있다.그런데도기존노동의언어로설명되지않는다는이유로,근로기준법상근로자임을입증하지못한다는이유로,사업주에종속되어일하지않는다는이유로,일하는시간과장소를선택할수있다는이유로,하물며자신이하고싶어서하는일이라는이유로종종‘노동이아닌것’으로폄하된다.
이에작가노조준비위원회는작가노조설립을준비하고다루기에앞서,작가들이수행하는글쓰기노동의면면을드러낼필요가있다고판단했고,작년5월릴레이에세이프로젝트〈작가노동을말하다〉를시작했다.이책1부〈작가노동을말하다〉에담긴글들역시바로그릴레이에세이의연장선상에있는작업이라할수있다.총13명의작가들이써내려간일과삶은치열하고또열악하다.최저시급에도미치지않는,더정확히말하면최저시급의개념조차없는턱없이적은원고료와분투하며n잡을병행하고,출간계약서를비롯한각종계약서에명시조차되지않은온갖무급노동을암묵적으로강요받고,강연요청을받을때조차납득할수없는부조리한절차를겪어야한다.불합리한계약서의수정은고사하고,계약서자체를보내지않는청탁도적지않은것이출판계와강연·교육시장의민낯이다.
작가노조설립을최초로제안하고준비위를꾸린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안명희상임활동가는작가의권리보다출판사의이윤이먼저인업계구조를깨뜨리기위해,책을쓰는노동자와책을만들고파는노동자(작가노조와출판노조)의연대를통해출판자본이중심인시스템을출판노동자가중심인시스템으로변화시키기위해작가노조설립을도모하게되었다고이야기한다.초동주체를형성하기위해기획한작가집담회를통해각기다른집필노동의세부상황을확인하면서도공통의노동문제를찾아내고(2023년9월),표준계약서,문단내성폭력,AI규제,작가능력주의,예술인노조사례,문화산업공정유통법,예술인4대보험및최저임금,노동법과예술인법등과같은다양한주제로연속포럼(2023년11월~2025년2월)을기획해이어오면서,작가노조의구체적인내용을업데이트했다.
작가노조는“작가의상상력을통해노동의언어를새롭게해석하고확장해내는일”을과제삼아앞으로꾸준히조직을발전시켜나갈예정이다.성평등한공간,서로의노동과일상을지키고돌보고지지하는동료집단,여전히골방을사랑하면서도연대의공유결합을만들어내는여정……이모든것이이책에담긴작가노조의다짐과전망이다.
‘홀로’였던싸움을‘함께’인여정으로빚어내는연대
:작가,노조를만들다
이책《작가노동선언》이출간된지금,작가노조준비위원회단체대화방에는50~60명남짓한작가들이모여있다.르포,에세이,번역,비평,시,소설,SF,만화,영화를공부하는고등학교재학생까지,다양한작가들이둘러앉아작가노조의전망을구체화하고있다.어쩌면같은작가라는사실,같은글쓰기노동을이어가고있다는사실만으로는이러한결합을충분히설명해낼수없을지도모른다.각기처지도다르고관심사도제각각이기때문이다.그렇다면,이들에게작가노조는왜필요한가?
2011년,시나리오작가최고은씨가생활고로인한기아와지병으로세상을떠났다.그다음해인2012년,정부는그죽음에답이라도하듯예술인복지법을시행하고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개정해프리랜서예술인도산재보험에가입할수있도록했다.그러나예술인복지법에의한산재보험은말뿐인복지다.예술인들은기업이나단체등에상시고용되는것이아니기에스스로보험에가입해야하는데보험료전액을본인이부담해야한다.보헙가입률이바닥을치는이유다.국회토론회등을통해확인한입장에따르면,윤석열정부는예술인산재보험적용에대한의지가전혀없었고,무엇보다현장의목소리를누락한채제도안을설계해왔다.
바꿔말하면,작가나예술가는일하다아프거나죽은것이명백하더라도산재인정을받는것이불가능하다.고용형태가‘자유롭고’불안정한데다,글쓰기자체가시작과끝이모호한노동이다보니,해당노동으로인한사고및질병이산재라는것을증명하는일또한극도로어려운것이다.작가노동으로인한산재인정사례는물론,이에대한담론화조차제대로되지않은것이지금의현실이다.이에맞서작가노조준비위는여러예술인노조들과함께작가산재실태를드러내고,정부논의와기존법제도의문제점을구체적으로짚으면서산재보험적용에대한예술현장의요구를다시한번세상에알렸다.2024년1월언론노조방송작가지부,여성노조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웹툰작가노조,문화예술노동연대와함께주최한기자간담회〈작가들은요구한다!윤석열정부는예술인에게산재보험을적용하라!〉가바로그투쟁이었다.
준비위내부에별도로구성된성평등위원회역시작가노조의성격과지향점을뚜렷이보여준다.준비위는성평등위원회를통해성평등한구조와문화에대한논의를꾸준히이어왔다.성평등위원회가주관하는첫번째워크숍은〈성평등으로극락-하기〉라는글로이책에참여한오빛나리작가가이끌었다.성폭력문제의구조적이해,안전한창작환경과공동체조성을목표로진행됐다.그는‘성평등’을골치아픈난제가아닌,다층적인층위와맥락을해석할수있게만들어주는‘고도의투쟁전략’으로바라본다.권위와권력을적확하게겨냥하는“정교한농담과유머”를추구하면서,성평등으로“극락적재미의세계”를열고자한다.이는앞으로작가노조가만들어갈활기있는문화를짐작케한다.작가노조가추구하는해방과자유,반항과활기,농담과유머야말로이곳만의진정한매력이다.
작가노동을선언하는21명작가들의목소리
:지속가능한삶과글쓰기를골몰하는모두에게
“글쓰는노동자는발로현장을누비며이야기를모으고,그이야기로독자의마음을흔들고변화를이끈다.이땅의수많은‘글쓰는4시의신데렐라’는맨발로치열한현실의험난한길을걷고있다.이들에게필요한건요정의마법같은기적이아니다,발을감싸줄포근한양말과튼튼한운동화같은‘사회적보호망’이다.”
-김예린,그림책활동가
“파편처럼흩어진자리에서혼자쓰고혼자걱정하며혼자싸우고혼자서몸도마음도아파본경험이있는이라면,이제는함께라는다른상상을해보자고,그상상이실현되기까지의설레고지난하며거칠고도온기어린시간쪽으로엉덩이하나살짝걸쳐보라고제안하고싶다.”
-희음,시인
“각자의자리에서홀로떨어진채로글쓰기노동을하는우리는잘보이지않을때가많다.하지만작가노동자로서공동의감각을가지고함께말하고행동한다면우리의자리가좀더명확하게드러나지않을까?사회가씌운투명망토를걷어낼때가왔다.”
-변정정희,르포작가
“누구나생계와존엄을지키며글을쓸수있도록최저고료와노동조건이보장되는구조의설계가시급하다.출판생태계가좋아져야구성원들삶의질이나아진다.모두가글을쓰고싶어하지만정작글쓰는사람의권리에는아무도신경쓰지않는모순된현실에서작가노조라는울타리를우리손으로만들고싶은이유다.”
-은유,르포작가
“평론가들이처한현실을바꾸는길은결국평론가들을점차잉여적존재로만드는구조에대한통렬한비판과이를통한실천에있지않을까.(……)이제는평론가의권리를위해힘을모을차례다.언젠가는평론가가다른부업을하지않고평론만을쓰며먹고살수있는세상이오면좋겠다.”
-성상민,문화평론가
“나와같은길을걷는이들이자신이좋아하는글을마음껏쓰며살아가기를바란다.단지돈때문에동의하지않는글을억지로쓰지않기를바란다.온마음을담은글로독자를감응하게하고세계의고통을치유할수있기를바란다.이를위한최소한의조건은시민이자노동자로서합당하게존중받는것이다.작가노조출범은이목표를향한결정적한걸음이다.”
-박권일,독립연구자
“우리에게는더좁은선택지가아니라,더많은선택지가필요하다.농담과유머가필요하다.나에게는해방,자유,활기,이유있는반항이극락과가까운데,당신에게는어떤가?아니다.여기서이럴게아니다.작가노조에들어와서같이논해보자.작가노조는당신에게열려있다.”
-오빛나리,고양예고문창과줄업생연대‘탈선’대표
“작가의죽음이다시없기위해서라도이젠작가도노동조합으로한데뭉쳐출판자본에맞서야한다고생각했다.책을쓰고만드는모든이들이고통을겪지않게하기위해서라도작가노조를만드는일을더는미룰수없을것같았다.”
-안명희,노동책작가
“적은원고료는세상과관계맺도록나를등떠밀었고,그덕분에나는지면의활자가세계의전부인‘먹물’이되지않을수있었다.하지만다시강조하건대이것이반드시긍정적인‘견인’이었다고말하기는어렵다.단지불안정한생계를유지하기위한다양한경로가새로운시야를열어주었을뿐이다.그렇다면작가로서글을쓰며살아가는일이란대체무엇일까?”
-도우리,일상문화비평가
“우리는따로떨어져일하지만쓰는일은항상우리가발딛고있는공동체를들여다보기때문에함께하지않는법이없다.그래서각자의공간에있지만언제든마음이모여있다.작가노조가정식으로출범하고난뒤에좋은사람들이모여서필요한이야기를나누고있다는걸보여줄기회가있으면좋겠다는생각이다.문이활짝열려있고,모든작가의목소리가차별없이대표될수있는공간이라고알려주고싶다.”
-김홍,소설가
“아주오래전,여섯권의시리즈를두권으로마무리하라는통보를받았을때,출판사에찾아가사정하고옥상에올라가눈물콧물다닦았을때,내곁에누가있었다면어땠을까.혹시예전의나처럼지금어딘가에그런작가가있는데,그가작가노조의존재를알게된다면어떨까.”
-김소희,일러스트작가
“작가는노동자이기에노동자로서조합을결성할수있다.그러면교섭대상이어떻게되어야하는가.국가,출판사,혹은출판협회,아니면문화재단?작가가교섭에서요구해야할것은무엇인가.인세비율조정?불합리한계약관행?위계?그래,작가노조라면응당그런걸해야마땅하겠다.”
-변윤제,시인
“나는이원고를쓰는동안에도강연요청을하나수락했는데,최근찍은프로필사진을쓸지말지를여전히정하지못했다.연예인이아니라작가인내가왜얼굴사진따위로고민을해야하는가에대한메타고민이다시시작되고……이렇듯안해도무방한별별고민을다하고야마는것이내가생각하는작가노동의요체가아닌가,방황끝에주워든궤변을꽤괜찮은결론인양내밀어보는것이다.”
-박서련,소설가
“집필노동에대한논의가더공론화되어조건을바꿔낸다면문학과에세이,르포,번역,칼럼등의내용에도영향을미칠거라고생각한다.저임금과과로에내몰리지만않는다면각자의현장을기반으로생생한사유와다양한글이세상에더많이등장할것이분명하다.”
-황모과,SF작가
“이미당연하다고전제된일들로부터그것이문제라는것을인식하고밝히는일을혼자서해나가기란쉽지않다.글쓰기노동에대한인식을바꾸고작가들의환경을개선하기위해선같은문제의식을공유하는더많은동료작가의연대가필요하다.”
-위래,소설가
“나는계속되는광장을바란다.서로를있는그대로받아들이며,골방들을안전하게잇고,각자의한계를보완해나갈수있는공동체를바란다.지속적인글쓰기가가능하다고믿을수있는사회를바란다.돈때문에비참해지지않고,그보다는나은고민을할수있는세상을바란다.”
-이시도,SF작가
“작가노조의향방이어때야하는지나는아직알지못한다.그러나그간지켜(만)보았던운영진과회원들의열정,절박함,성실함에서이것은되는일이며잘되겠구나생각했다.(……)방관하고갈등하고유예하면서도내가아직그자장안에있는이유는아마도그것,지금작가노조준비위원회구성원들이보여주는지향의매력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