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밀려난몸으로길을찾아나서다
“바리데기가저승으로걸어가듯,나도저승에가는마음으로인도에갔다.하지만막상도착한인도는저승이아니라고향같았다.알록달록한냄새와소리로분주한생의마당.”
그는깊은절망을연료삼아떠난인도에서‘해방의감각’을되찾았다고이야기한다.향의연기가피어오르는작은골목길,꽃잎과모래,돌멩이로만드는만드라,거리에서만나는사람들과그들이건네는손짓,길거리의동물들……이런풍경속에서그옛날“모래를누비고돌멩이로집을만들며사물과대화하던감각”이되살아났다고.
그러나이해방의감각은추방의맥락과동시에존재했다.한국에서더이상삶을이어갈수없었던맥락들이있었기때문이다.집안에는폭력적인가부장아빠가있었고,거리로나가‘시스템을바꾸자’고목소리를높이면여지없이‘종북’,‘반국가세력’으로낙인찍혔다.무엇보다한국은성차별과성폭력이득실대는곳이기도했다.“나는집의보호도,나라의보호도받지못한채살아야했다.성노동을하든안하든,강간을당하든당하지않든언제나보호받지못했다.……굳이한국에있어야할이유가없었다.”
몸은한국을떠나왔지만,마음깊숙한곳에서는고통의진동이계속됐다.차별과폭력의흔적들은쉬이사라지지않았다.다른존재들의고통이선명히느껴질때,그해방감은곧“폭력을방관하고유지하게하는마취제”였다.해방의감각또한장애가없는신체혹은여타의문화적자원들과얽혀있다는진실은이여정에한계를드리웠다.나한사람의해방이고통받는모든존재들과세계의변화에는관여하지못하는것아닌가?스스로를모든사회적파별과폭력에서동떨어진존재로두고기도만한다는건무책임한것아닌가?결국,그모든맥락이동시에존재했다.해방과추방과포섭.
“자유로운영혼의여정으로서의여행,요가와명상,힐링,영성상품들이가리키는곳은결국각자도생,각자도살의세계가아닐까.홀로성장하거나,홀로죽게내버려두는고립의세상.”
표류:지구구석구석차별의틈새를지나다
“권력에저항하는권력자들은자신이차별을하고있는지몰랐다.권력은언제나몰라도되기에모르는채로차별을한다.”
기존질서에서밀려난이들에게도망은본능적인선택일지모른다.자본주의와가부장제,인간중심주의,국가권력과같은지배질서는지구어디에서든활개친다.어떤이들은이런세상사를일찍이받아들여안정된삶을설계하지만,그런정상성자체를낯설게바라보며그것으로의소속을거부하는이들도있다.끊임없는과업에속박되는것보다완전한방치를선호하고,원하지않는것을견디고성취하는것보다밑도끝도없이망해버리는것을택하는삶.계속해서도망치고떠나는이유는정상성의질서안에머무르지않기위해서다.
저자는그런삶을택했다.그런그에게지구란계속도망갈수있을만큼넓은세상이다.“차별금지법은커녕여성을대놓고혐오하는사람이대통령이되고,그가내란을일으킬수도있는”나라에서생을견디는것보다지구곳곳을마음껏떠도는게훨씬나으니까.
하지만끊임없이도망치더라도끝내벗어날수없는공간들이있었다.해외에서생활하는동양인,여성,성소수자,난민,비인간동물성등을바라보는납작한혐오의시선들이그랬다.그차별의틈을지나며건져올린다채로운질문들이이책을관통한다.이방인,여성,퀴어,서툰외국어사용자로서세계를표류하며만난구조의민낯을드러내는동시에,한국국적자,비장애신체의특권으로자신이밀어내고지운존재들은없었는지되묻는다.
무엇보다문제적인것은부당한구조에저항하는이들조차자신의특권을성찰하려하지않는다는점이다.저자가세계를떠돌며만난이들중에는남다른저항정신으로체제를비판하는이들이많았지만,그들은정작자신이누리고있는권력은보지못했다/않았다.인도다람살라에서티베트독립운동을하던한남성은티베트의평화를위해어떤문제를해결해야하는지고민하는와중에도여성을동료/동지가아닌운동을보조하는존재로대했고,‘진지한수행자’처럼보이는힌두교구루는여성을동등한수행자가아닌‘성적대상’으로여기며틈만나면성추행을시도했다.이뿐만이아니었다.여성으로패싱되는몸을가지고있는이들은수행처에서조차차별받았다.힌두교사원,이슬람사원,시크교사원,불교사원등그어떤종교에서도예외없이여성에게만‘여성성벗기규율’을강요하고있었다.
“금욕은머리에꽃을꽂고웃는미친여성이아니라,근엄한남성수도승의얼굴을하고있다.그는비천한모든존재를위해기도한다.‘더러운’여성을등지고서.”
“그사람이어떤모습을하고있든그건중요하지않다.여성으로보이는수행자를여성으로대상화하지않는게수행이다.그런데그업을닦는수련은하지않는다.……그존재가수행하고있다는진실을보지않고,금욕안에숨겨진여성혐오역시성찰하지않는다.그런걸성찰하는수행처는지구에존재하지않았다.”
이의도적무지와성찰하지않음은광장에서흘러나오는혐오의목소리와도닮아있다.“최근에는광장의분위기가많이달라졌지만,여전히왜페미니즘이슈를끌고오느냐,난민까지어떻게챙기냐,비인간동물까지이야기할필요가있느냐는목소리가들려왔다.그목소리에는오직‘인간남성국민’의특권을위협한정권에대한분노만이실려있다.자신의특권을지키는것만이중요한,그래서손해가보상되면곧바로중단되는투쟁.그런투쟁만‘쟁취’하니세상이아직이모양이다.”
횡단:‘미친년’의몸으로구조를흐르다
“많은존재가한꺼번에실릴때내눈은깜빡거린다.보이는것이전부라는정상성의망령에저항하는몸짓이고,눈에깃든영혼을지키려는반사작용이다.넋들은손가락끝에실려서글이된다.문장사이에서고요히잠들거나깨어난다.”
칼리,승희,홀리,릴리,초의,카타리나,수림……저자는무척다양한이름을유영한다.예명이자필명이자활동명이자신명이기도한‘칼리’로활동하고있지만,만나는사람들과공동체에따라그를부르는이름들도흐른다.그리고,이름을유영하듯그는새로운정체성을탐구하고거기에이름을부여하는걸좋아한다.논바이너리,릴레이션십아나키,퀴어페미니스트,비건지향,디지털떠돌이노동자,부무(떠도는무당),글로벌성노동자……“하지만결코상품처럼라벨링하기위해서가아니다.기존의언어로는나를설명할수없고,그러고싶지도않기때문이다.전부영어이긴하지만,통용되는언어가그것이니빌려쓸뿐이다.임시의언어라도,이언어의집은나를허용한다.정체성은분류가아니라흐름이니까.”
이번책《틈새연대기》에서는오랫동안썼던활동명‘홍칼리’를‘정홍칼리’로바꾸기도했다.자신을낳고기른엄마‘아난다’의흔적을이름에포함하기위해서였다.이는가부장제의공고한유산을넘어서는틈새의저항이다.가부장제는여성의존재,그리고그들의목숨을건출산을누락하고,그흔적을태어난존재에게부여되는이름에서조차지우고자한다.물론아난다의성씨인‘정’역시그녀아버지의성씨이지만,그래도그건지금의아난다를자신의이름에새기는최소한의방법일수있다.‘정홍칼리’라는이름은그렇게탄생했다.
이렇듯다양한이름들을생성해내는시도는억압적인체제/구조가그에게붙인낙인들을부정하는대신,그것들을모두그러모아존재의기반이자긍정적인정체성으로재해석하고재발명하는과정이기도하다.“낙인은내가통과한정체성이자떠도는넋의자리였다.”그의여행은쫓겨나고밀려난자리에서,그렇게떠돌게된자리에서,그리고떠도는와중에또다시추방된그자리에서시작되었다.그자리는곧국가와정상성의질서에서밀려나고또밀려난몸이오게된막다른곳이기도했고,동시에예상치못한틈새의해방구이기도했다.
홈패인틈새를흐르며‘떠도는삶’은그의존재양식그자체다.그가자신의중요한정체성으로꼽는샤머니즘은물론이고,오래지속해온글쓰기와기록,그리고생계의수단이었던성노동역시떠돌고흐르는한가지방식이다.샤머니즘은죽은존재,비인간동물,식물,사물등‘역사’에서혹은‘윤리’의주체에서밀려나는존재도말할수있게해주고,글쓰기는차별과폭력의구조에서입막음당한존재들의넋을위로하며,성노동은다양한관계를경험하게해주는퍼포먼스공연이다.하지만그렇다고해서떠돌이의삶을덮어놓고낭만화하는것으로오해해선곤란한다.오히려그삶은구조에서밀려난이들의자리없음을이야기하는통로이자,그러면서도그삶을긍정하며새로운의미를부여하는적극적인실천이다.더나아가그것은가부장자본주의의구조가어떤낙인들을생산하며스스로를지탱시키는지드러내는전복적인읽기이기도하다.그실천속에서,덧씌워진낙인들은폭력에저항한흔적이된다.
특히성노동에대한낙인을스스로의성노동경험을통해전복하고자하는특유의시도는가부장자본주의가여성들이수행하는갖가지무급노동을어떻게허울좋은연애/로맨스로둔갑시키는지,그렇게함으로써어떻게여성들에대한착취를영속화하는지날카롭게드러낸다.성노동(자)에대한낙인(‘창녀’)은한국뿐아니라전세계어디에서든존재한다.이런낙인의진짜의미는무엇일까?‘창녀’라는낙인은권력자가아닌“나와닮은또다른약자”를향하는혐오의잔인성과맞닿아있다.“창녀에대한멸시는여성혐오의뿌리다.혐오는여성이자기자신을수치스러워하고,또다른여성을감시해야유지된다.그래서오늘도가부장자본주의는여성의몸위에‘창녀’라는낙인을족족찍어댄다.”그는이에맞서가부장자본주의체제에서유지되는‘이성애로맨스관계’의실체를드러내고자한다.로맨스/연애라는이름이붙은관계에서여성이아무런보상과대가없이강도높은감정적,신체적노동을수행해야한다고할때,또한그것이가부장자본주의를유지시키는동력이라고할때,차라리계약조건이명확한프리랜스성노동이덜피로하고안전할수있다는것이다.그런맥락에서성노동이란단지돈을받고하는성기결합섹스가아니다.
“‘여성역할을수행하는모든노동’이성노동이다.물어보지않은이야기를경청해주고,미소를짓고,남성의감정을받아주는것까지포함되는노동.모든존재가능력에관계없이보호받고,여성에게부여되는성노동이당연한것으로여겨지지않는세상이라면굳이이노동을택하지않았을지도모른다.”
“이성애독점로맨스신화는여성성을수행하는존재의노동을당연한권리로누리게해준다.노동의대가를지불하거나특별히감사해할필요없이.결국여성의성노동은언제나공짜여야하고,‘순수함’을지켜야한다.그런‘기준’을벗어나는순간여성은‘창녀’라는낙인을입게된다.”
그렇다면‘미쳤다는것’은어떨까?정신장애역시사회가정해놓은정상성의경계를벗어나는행위/증상으로여겨지니말이다.정신병원에강제입원을당한경험이있는그에게정신장애는성노동만큼이나깊이새겨진낙인이다.각종진보적인운동에서조차정신장애를배제하는흐름앞에서그는혼자만감옥/시설에서빠져나오는것에깊은회의를느낀다.“나만빠져나오면되는걸까.그런감옥을부수려고온갖정체성을횡당한거였는데.내가안정감을되찾을수록정신병동안의느린걸음과온전한눈빛들이아른거렸다.내가그렇듯당신도온전한데.”자신의조현,자신의공황,자신의정신장애에대해쓰는이유는바로그때문이다.정신장애를드러낸다는게더많은억압을감내해야하는일이될수도있지만,그럼에도불구하고쓰는이유는글이곧“이어쓰는연대”이기때문이다.당장모든시설을부수는것은불가능할지라도‘인식의벽’을무너뜨리는것은어쩌면가능할테니까.
“생각해보면이미나에겐각종낙인이붙어있다.‘타락한’성노동자라느니,‘미신을믿는’무당이라느니.애초에경청할만한존재가못되니이글을읽는이는소수일것이고,내말을경청하는이들은분명나와비슷한감옥에있던이들일것이다.그들은나를감옥에가두지않을것이다.”
연대:미친년의자리에서
“어떤존재가온전치않다고함부로판단하는잣대.거기에터를잡은망령귀가있다.그것을나는‘정상성의망령’혹은‘가부장망령귀’라부른다.”
저자가운영하는신당을찾는이들중에는정상의언어에지친이들이많다.대부분의무당과달리그는손님들을‘정상’으로돌이키는것을목적으로하지않는다.그대신정상의언어로담을수없는감각을존중하며일상을돌볼수있는루틴을안내하기도하고,퀴어페미니즘과비거니즘,장애학과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