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연대기

틈새 연대기

$18.15
저자

정홍칼리

억울한넋을기록하는무당.구천을떠돌다북한산끄트머리마을에머물고있다.‘미신’이라불린감각으로저항한다.문장에넋싣기,피부에부적새기기,콩불리기,만트라로주술걸기,집회에서넋풀기등각종비방으로정상성의망령을태운다.
책《붉은선》,《신령님이보고계셔》,《무당을만나러갑니다》등을기록했고,만트라앨범《해방당굿》,《지구넋모심굿》,《마녀들의허밍》을지었다.
굿당의위치는이책의문장사이,당신의침묵아래다.

목차

들어가는말
그여정은해방이었을까추방이었을까·4

1부자리찾기
지붕없는집·15
추방과해방과포섭·21
머뭇거릴용기·31
떠돌이의짐·36
자리찾기·43

2부틈새표류기
나는한국에서사라지고싶었다·53
도망가자,멀리멀리·58
저항하는틈새들·66
그래도표류할래·76
아무말없는사랑·85
콩글리시해방전선알유해피·98

3부정체성횡단기
내이름은내가정해·113
글쓰는디지털떠돌이·122
글로벌성노동자·128
지구무당·142
맨발동물·156
구멍난몸:틈새꽃잎·166
미친년순례기·179

4부이방인연대기
빈털터리이방인·191
탁발수행자·202
이방이가된토박이·210
물건들의안식처·225
콩불리기·229
소멸하기·239
돌아온자리·245

나가는말
쓰는자리에서·252

출판사 서평

그것은해방이었을까추방이었을까

지구구석구석차별의틈새를지나며건져올린넋과목소리
밀려나고추방된몸들의길을묻는연대의여정

“신령은종차별과성차별을넘어서는존재”라는세계관속에서여성,퀴어,성노동자,정신장애인,비인간동물,서툰외국어사용자등다양한소수자들과호흡하며부단한연대활동을이어가는‘퀴어페미니스트비건샤먼’정홍칼리가3년만의신작으로독자들을만난다.이번책을계기로‘홍칼리’대신‘정홍칼리’라는새이름을택한그는말그대로자기존재와정체성의흔적인여러‘이름들’을유영한다.
《틈새연대기》는강간을당한뒤무작정한국을뜨게된그가해방인지추방인지모를알쏭달쏭한여정에오르며겪게되는여러에피소드들을중심으로흘러간다.그는처음으로떠난인도에서알수없는해방감을느끼며자신이구조의질서에서밀려났음을깨닫게된다.그리고그때부터이방인의신분으로세계곳곳을표류하며차별과폭력의구조를문제삼는질문들을날카롭게다듬어나간다.질문의대상은주로이런것들이다.문명을떠받치는뿌리깊은인간중심주의,그리고그안에서도핵심이되는남성중심의가부장국가권력,사람들의내면을지배하는서구중심주의(오리엔탈리즘)와백인중심주의.그구조와질서는이곳한국땅을넘어지구구석구석을지배하며인간/비인간소수자들을추방한다.
그리하여그는‘일종의여행기’를쓰기시작한다.이국에대한낭만과자본주의적친절함으로포장된여행상품뒤에어떤‘권력’과‘억압’이흐르고있는지스케치하기로한것이다.가난한이방인여성으로서차별의‘틈새’를지나며건져올린그이야기들은한계없이이어지는소수적정체성(여성,아시아인,퀴어,무당,성노동자,정신장애인,약초수행자,비영어사용자……)으로자기자신을새롭게발견하고,타자와조우하고,연대의가능성을모색해가는여정이다.여행기에서출발하는이기록은끝내여행기를거부하며작은일상곳곳에패인차별의틈새들속으로쉴새없이흘러간다.이기록을통해독자들은은밀히학습된혐오의시선들을낯설게바라볼수있을것이며,또한다른언어와인종,문화적배경을가진타자와어떻게관계맺을수있을지,우리가살아가는지금이곳에서어떻게그이방인들을환대할수있을지에대해서도사유할수있게될것이다.
“인간의몸으로살아있는것은강력한권력이다.나는이구조가누군가를가두는걸막을수도,누군가를가두는구조를강화할수도있다는것을안다.정신을똑바로차리지않으면나를가두었던폭력과한패가된다.그래서정신을차리고질서를거스르는말을뱉다보니,‘비정상’이라는낙인이하나둘붙었다.떠돌이,창녀,귀신들린몸,반동분자,관심종자,빨갱이,꼴페미,무당,미친년……이것은폭력에저항한자국이고,살아남으려했던흔적이다.그리고낙인은더이상나에게수치심과두려움을주지못한다.나는혼자가아니기때문이다.”

추방:밀려난몸으로길을찾아나서다

“바리데기가저승으로걸어가듯,나도저승에가는마음으로인도에갔다.하지만막상도착한인도는저승이아니라고향같았다.알록달록한냄새와소리로분주한생의마당.”

그는깊은절망을연료삼아떠난인도에서‘해방의감각’을되찾았다고이야기한다.향의연기가피어오르는작은골목길,꽃잎과모래,돌멩이로만드는만드라,거리에서만나는사람들과그들이건네는손짓,길거리의동물들……이런풍경속에서그옛날“모래를누비고돌멩이로집을만들며사물과대화하던감각”이되살아났다고.
그러나이해방의감각은추방의맥락과동시에존재했다.한국에서더이상삶을이어갈수없었던맥락들이있었기때문이다.집안에는폭력적인가부장아빠가있었고,거리로나가‘시스템을바꾸자’고목소리를높이면여지없이‘종북’,‘반국가세력’으로낙인찍혔다.무엇보다한국은성차별과성폭력이득실대는곳이기도했다.“나는집의보호도,나라의보호도받지못한채살아야했다.성노동을하든안하든,강간을당하든당하지않든언제나보호받지못했다.……굳이한국에있어야할이유가없었다.”
몸은한국을떠나왔지만,마음깊숙한곳에서는고통의진동이계속됐다.차별과폭력의흔적들은쉬이사라지지않았다.다른존재들의고통이선명히느껴질때,그해방감은곧“폭력을방관하고유지하게하는마취제”였다.해방의감각또한장애가없는신체혹은여타의문화적자원들과얽혀있다는진실은이여정에한계를드리웠다.나한사람의해방이고통받는모든존재들과세계의변화에는관여하지못하는것아닌가?스스로를모든사회적파별과폭력에서동떨어진존재로두고기도만한다는건무책임한것아닌가?결국,그모든맥락이동시에존재했다.해방과추방과포섭.
“자유로운영혼의여정으로서의여행,요가와명상,힐링,영성상품들이가리키는곳은결국각자도생,각자도살의세계가아닐까.홀로성장하거나,홀로죽게내버려두는고립의세상.”

표류:지구구석구석차별의틈새를지나다

“권력에저항하는권력자들은자신이차별을하고있는지몰랐다.권력은언제나몰라도되기에모르는채로차별을한다.”

기존질서에서밀려난이들에게도망은본능적인선택일지모른다.자본주의와가부장제,인간중심주의,국가권력과같은지배질서는지구어디에서든활개친다.어떤이들은이런세상사를일찍이받아들여안정된삶을설계하지만,그런정상성자체를낯설게바라보며그것으로의소속을거부하는이들도있다.끊임없는과업에속박되는것보다완전한방치를선호하고,원하지않는것을견디고성취하는것보다밑도끝도없이망해버리는것을택하는삶.계속해서도망치고떠나는이유는정상성의질서안에머무르지않기위해서다.
저자는그런삶을택했다.그런그에게지구란계속도망갈수있을만큼넓은세상이다.“차별금지법은커녕여성을대놓고혐오하는사람이대통령이되고,그가내란을일으킬수도있는”나라에서생을견디는것보다지구곳곳을마음껏떠도는게훨씬나으니까.
하지만끊임없이도망치더라도끝내벗어날수없는공간들이있었다.해외에서생활하는동양인,여성,성소수자,난민,비인간동물성등을바라보는납작한혐오의시선들이그랬다.그차별의틈을지나며건져올린다채로운질문들이이책을관통한다.이방인,여성,퀴어,서툰외국어사용자로서세계를표류하며만난구조의민낯을드러내는동시에,한국국적자,비장애신체의특권으로자신이밀어내고지운존재들은없었는지되묻는다.
무엇보다문제적인것은부당한구조에저항하는이들조차자신의특권을성찰하려하지않는다는점이다.저자가세계를떠돌며만난이들중에는남다른저항정신으로체제를비판하는이들이많았지만,그들은정작자신이누리고있는권력은보지못했다/않았다.인도다람살라에서티베트독립운동을하던한남성은티베트의평화를위해어떤문제를해결해야하는지고민하는와중에도여성을동료/동지가아닌운동을보조하는존재로대했고,‘진지한수행자’처럼보이는힌두교구루는여성을동등한수행자가아닌‘성적대상’으로여기며틈만나면성추행을시도했다.이뿐만이아니었다.여성으로패싱되는몸을가지고있는이들은수행처에서조차차별받았다.힌두교사원,이슬람사원,시크교사원,불교사원등그어떤종교에서도예외없이여성에게만‘여성성벗기규율’을강요하고있었다.
“금욕은머리에꽃을꽂고웃는미친여성이아니라,근엄한남성수도승의얼굴을하고있다.그는비천한모든존재를위해기도한다.‘더러운’여성을등지고서.”
“그사람이어떤모습을하고있든그건중요하지않다.여성으로보이는수행자를여성으로대상화하지않는게수행이다.그런데그업을닦는수련은하지않는다.……그존재가수행하고있다는진실을보지않고,금욕안에숨겨진여성혐오역시성찰하지않는다.그런걸성찰하는수행처는지구에존재하지않았다.”
이의도적무지와성찰하지않음은광장에서흘러나오는혐오의목소리와도닮아있다.“최근에는광장의분위기가많이달라졌지만,여전히왜페미니즘이슈를끌고오느냐,난민까지어떻게챙기냐,비인간동물까지이야기할필요가있느냐는목소리가들려왔다.그목소리에는오직‘인간남성국민’의특권을위협한정권에대한분노만이실려있다.자신의특권을지키는것만이중요한,그래서손해가보상되면곧바로중단되는투쟁.그런투쟁만‘쟁취’하니세상이아직이모양이다.”

횡단:‘미친년’의몸으로구조를흐르다

“많은존재가한꺼번에실릴때내눈은깜빡거린다.보이는것이전부라는정상성의망령에저항하는몸짓이고,눈에깃든영혼을지키려는반사작용이다.넋들은손가락끝에실려서글이된다.문장사이에서고요히잠들거나깨어난다.”

칼리,승희,홀리,릴리,초의,카타리나,수림……저자는무척다양한이름을유영한다.예명이자필명이자활동명이자신명이기도한‘칼리’로활동하고있지만,만나는사람들과공동체에따라그를부르는이름들도흐른다.그리고,이름을유영하듯그는새로운정체성을탐구하고거기에이름을부여하는걸좋아한다.논바이너리,릴레이션십아나키,퀴어페미니스트,비건지향,디지털떠돌이노동자,부무(떠도는무당),글로벌성노동자……“하지만결코상품처럼라벨링하기위해서가아니다.기존의언어로는나를설명할수없고,그러고싶지도않기때문이다.전부영어이긴하지만,통용되는언어가그것이니빌려쓸뿐이다.임시의언어라도,이언어의집은나를허용한다.정체성은분류가아니라흐름이니까.”
이번책《틈새연대기》에서는오랫동안썼던활동명‘홍칼리’를‘정홍칼리’로바꾸기도했다.자신을낳고기른엄마‘아난다’의흔적을이름에포함하기위해서였다.이는가부장제의공고한유산을넘어서는틈새의저항이다.가부장제는여성의존재,그리고그들의목숨을건출산을누락하고,그흔적을태어난존재에게부여되는이름에서조차지우고자한다.물론아난다의성씨인‘정’역시그녀아버지의성씨이지만,그래도그건지금의아난다를자신의이름에새기는최소한의방법일수있다.‘정홍칼리’라는이름은그렇게탄생했다.
이렇듯다양한이름들을생성해내는시도는억압적인체제/구조가그에게붙인낙인들을부정하는대신,그것들을모두그러모아존재의기반이자긍정적인정체성으로재해석하고재발명하는과정이기도하다.“낙인은내가통과한정체성이자떠도는넋의자리였다.”그의여행은쫓겨나고밀려난자리에서,그렇게떠돌게된자리에서,그리고떠도는와중에또다시추방된그자리에서시작되었다.그자리는곧국가와정상성의질서에서밀려나고또밀려난몸이오게된막다른곳이기도했고,동시에예상치못한틈새의해방구이기도했다.
홈패인틈새를흐르며‘떠도는삶’은그의존재양식그자체다.그가자신의중요한정체성으로꼽는샤머니즘은물론이고,오래지속해온글쓰기와기록,그리고생계의수단이었던성노동역시떠돌고흐르는한가지방식이다.샤머니즘은죽은존재,비인간동물,식물,사물등‘역사’에서혹은‘윤리’의주체에서밀려나는존재도말할수있게해주고,글쓰기는차별과폭력의구조에서입막음당한존재들의넋을위로하며,성노동은다양한관계를경험하게해주는퍼포먼스공연이다.하지만그렇다고해서떠돌이의삶을덮어놓고낭만화하는것으로오해해선곤란한다.오히려그삶은구조에서밀려난이들의자리없음을이야기하는통로이자,그러면서도그삶을긍정하며새로운의미를부여하는적극적인실천이다.더나아가그것은가부장자본주의의구조가어떤낙인들을생산하며스스로를지탱시키는지드러내는전복적인읽기이기도하다.그실천속에서,덧씌워진낙인들은폭력에저항한흔적이된다.
특히성노동에대한낙인을스스로의성노동경험을통해전복하고자하는특유의시도는가부장자본주의가여성들이수행하는갖가지무급노동을어떻게허울좋은연애/로맨스로둔갑시키는지,그렇게함으로써어떻게여성들에대한착취를영속화하는지날카롭게드러낸다.성노동(자)에대한낙인(‘창녀’)은한국뿐아니라전세계어디에서든존재한다.이런낙인의진짜의미는무엇일까?‘창녀’라는낙인은권력자가아닌“나와닮은또다른약자”를향하는혐오의잔인성과맞닿아있다.“창녀에대한멸시는여성혐오의뿌리다.혐오는여성이자기자신을수치스러워하고,또다른여성을감시해야유지된다.그래서오늘도가부장자본주의는여성의몸위에‘창녀’라는낙인을족족찍어댄다.”그는이에맞서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