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 가치 없는 교환관계
권리 없는 사회관계
이념 없는 정당
체계성 없는 법과 제도
공통의 규칙 없는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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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없는 ‘민주주의 국가’의 현재
한국 시민들은 정말로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 민주주의의 정확한 내용은 무엇인가?
한국 시민들은 정말로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 민주주의의 내용은 정확히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은 한국 민주주의가 외부 세력에 의해 위협받고 있고, 따라서 시민들이 그것을 수호해야 한다는 식의 단순한 위기론을 거부한다. 2024년 12월 3일의 쿠데타 시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재명 정부를 비롯해 ‘시민의 승리’를 칭송하는 이들 다수가 내란 사태를 외부의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과연 정말로 그러한가?
저자는 전작 《‘개념’ 없는 사회를 위한 강의》 이후 9년 만에 펴낸 이번 책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불가능성’이라는 아포리아를 화두 삼아 한국의 현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맞냐’는 반문은 한국 민주주의 ‘내부’의 문제를 직시하도록 이끈다. 애초 (박근혜와) 윤석열을 지도자로 선출한 것은 한국 시민들의 민주주의적 투표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결국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이 보여주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자기유지를 위한 정상적 조건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그렇다면 국정농단·내란 관련 세력을 척결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본래의 온전한 상태로 돌아가리라고 믿기는 어렵다.
책 제목인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란 합의된 공통의 기반/규칙이 부재하는 민주주의 공동체를 가리키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저자는 지금의 한국사회가 바로 이런 공동체에 해당한다고 분석한다. 즉 외형적으로는 민주주의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공동체이게끔 해주는 실질적인 공통 요소가 부재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지금의 한국은 ‘민주주의 없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 근본적인 문제를 명징하고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 책에서 다루는 다음의 다섯 가지 주제다. (1)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전부 복수의 문제로 해결하려 하는 경향(가해자-피해자 도식의 기계적 적용), (2) ‘그 어떤 시민도 차별받으면 안 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무시되고 노골적으로 불평등을 지지하는 경향, (3)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협을 받는 상황의 반복(국정농단, 내란사태) (4) 차별과 억압을 묘사하고 다루는 언어의 부정확함, (5) 내란 사태를 기점으로 극명하게 드러난 한국 민주주의 자체의 비정상성.
복수극에 열광하는 사회: 가해자-피해자 도식이 묻지 않는 것
1부에서는 한국 대중문화 창작물을 지배하는 ‘복수극 광풍’을 다룬다. 가해자인 빌런에 맞서는 히어로가 등장해 피해자 대신 복수를 실행하고 완성하는 복수극이야말로 대다수 창작물의 주류 장르로 자리 잡았다. 이런 장르의 핵심은 선악의 구별이나 히어로-빌런의 대립을 가해자-피해자 도식으로 환원한다는 점에 있다. 히어로는 피해자를 위해 법과 제도가 하지 못한 복수를 수행하는 정의로운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인 의미와 전혀 다른, 가해자의 고통으로 실현되는 선과 정의다. 결국 흥행의 성패는 가해자에게 얼마나 잔인한 고통을 돌려줄 수 있는지, 가해자를 향한 관객의 분노를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복수의 쾌감)
가해자-피해자 도식에 기초한 복수극은 단지 픽션의 구조가 아니다. 이제 이 관계 도식은 현실의 문제를 인식하고 다루는 기본 형식이 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관계 도식이 세월호 참사와 미투운동과 같은 대규모 참사, 사회적 폭력을 거치며 일반화되었다고 본다. 모든 문제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물리적 개인 사이의 관계로 환원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건·사고나 폭력이 발생하면 사건의 성격과 상관없이 가해자 특정과 처벌 요구가 빗발치고, 이때 폭력 뒤에 놓인 구조와 배경은 잊히고 만다.
그러나 가해자-피해자 도식은 폭력의 문제에 상품 교환의 논리를 도입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즉 등가교환될 수 없는 등가교환하기 위해 인간의 고통이 가진 고유성을 삭제하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고통을 관객의 심리적 효과로 번역한다. 이 효과들의 등가교환, 즉 심리적 보상이나 상쇄를 통해 부채(죄)는 완전히 청산된 것처럼 보이게 되고, 피해자의 고통을 가해자의 고통으로 보상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응책으로 남는다. 이런 식으로 상품 교환의 논리는 심리적 등가교환의 논리로 변형된다. 이를 인간적 가치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인간의 고통이 오직 관객의 심리적 효과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복수극은 피해자의 존재를 가해자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보조 장치 정도로 축소해버린다. 가해자에게 어떻게 고통을 줄 것인지에만 집중할 뿐, 피해자의 고통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지에는 관심이 없다.
“지금 한국을 지배하는 가해자-피해자 도식은 청산 불가능한 부채를 청산해보려는 헛된 집착이다. 나는 이런 집착이 상품 교환 논리의 확장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사회는 돈을 주고 물건을 사듯, 빌린 돈을 받고 채무관계를 정리하듯 폭력의 부채관계를 손쉽게 청산하려고 하지 않는가? 가해자가 강력히 처벌받으면 그것으로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는 발상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가해자를 향한 분노는 하늘을 찌르지만, 폭력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은 너무나 가볍게 다뤄진다.”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인간을 도구로 취급하라’
2부에서는 불평등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경향에 대해 논한다. 한국사회는 인간의 등급을 나누는 데 특화되어 있다.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 각자가 놓여 있는 사회적, 경제적 조건 모두가 차별의 기준으로 작동하는 탓에 개인 간의 평등한 관계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이곳을 지배하는 것은 오직 세상은 불평등하고, 계속 불평등해야 한다는 명령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토록 노골적으로 불평등을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수가 원하는 것은 불평등한 사회 그 자체라기보다 자신의 ‘부자 되기’와 신분 상승이다. 사회가 계속 불평등하게 유지되어야만, 자신이 그 불평등 구조의 위쪽으로 올라가 아래쪽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흔히 거론되는 공정도 결국 이런 것이다.
‘이익을 위해 인간을 도구로 취급하라’는 명령 속에서 폭력은 사회적, 경제적 관계의 기본 형식이 된다. 여기서 여기서 폭력이란 인간을 사물로 대하는 모든 태도, 행위, 제도, 구조 등을 의미한다. 실제로 죽거나 다친 사람이 없어도, 인간을 소모품 취급하는 제도와 구조가 있다면 그 자체가 폭력이다. 지금의 한국사회를 규정하는 연속적이고 상대적인 불평등, 즉 월소득 300만 원을 버는 사람과 500만 원을 버는 사람,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임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 정규직 공장 노동자와 비정규직 하청업체 노동자에게서 드러나는 연속적 차이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폭력으로 드러난다. 타인도 나를 도구로 대하고, 나도 타인을 도구로 대한다.
불평등에 대한 긍정은 모든 개인이 인간과 시민이라는 점에서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소득과 자산, 고용 형태, 교육 수준, 거주 지역과 형태, 성별과 성 정체성, 인종, 신체 조건 등에 따른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곧바로 정치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며, 모든 시민의 자유, 즉 ‘그 어떤 시민도 타인의 지배에 종속되지 않는 상태’를 위협한다. 개인 사이의 사회적·경제적 차이가 시민의 정치적 평등을 위협하는 상황은 민주주의의 결정적이고도 고질적인 문제이지만, 한국의 국가와 시민들은 평등을 위한 노력을 노골적으로 포기해왔다. 말하자면 지금 한국에는 정치적 불평등을 해소할 기본적인 장치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 결과 부자, 정규직 노동자, 주택 소유자, 남성, 이성애자, 비장애인 등이 공동체의 운영을 주도하고, 나머지는 정치적 참여에서 멀어지게 된다.
단순히 선거제도가 작동한다고 해서, 모두가 1인 1표를 행사한다고 해서 정치적 평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통치하는 자와 통치받는 자가 점차 분리되고, 한국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아닌 것이 되어간다.
전진을 멈춘 민주주의: 한국사회는 어디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가
3부에서는 집단의 부분으로만 존재하는 개인, 사적인 것에 대한 공적인 것의 우위, 이념 없는 정당, 하위 계급의 목소리가 지워진 선거, 민주주의 모델의 부재 등을 다루며 한국 민주주의의 현재를 검토한다. 군부 독재가 무너지고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도 한국 민주주의가 여전히 전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근대 민주주의를 자유, 평등, 연대의 원리에 기초한 보편적 정치체제 모델로 이해한다면, 그리고 현실의 민주주의를 그 모델에 접근시키는 것이 ‘전진’이라고 한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전혀 그렇지 않다. 제도로서의 한국 민주주의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과연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을 충족하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한국 민주주의 현재는 결국 우리를 다음과 같은 근원적 질문으로 인도한다. 서구 문화의 발명품으로 탄생한 민주주의 모델이 동아시아, 특히 한국에서 실현될 수 있는가? 민주주의 문화적 조건을 이식하는 작업은 복잡한 문제를 제기한다. 한국에 ‘서구 문화’를 이식한다는 것은 결국 한국 문화의 창조물을 한국에 설치한다는 말과 같다. 저자는 이 차이, 즉 한국인이 생각하는 ‘서구 문화’와 서구인이 생각하는 ‘서구 문화’의 차이가 민주주의 그 자체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즉 서구의 민주주의는 인민이 자기 자신을 통치하는 정치체제로 정의되지만, 한국의 민주주의는 오랫동안 독재 반대와 대의 제도의 수립으로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군사독재 종식과 대의 제도는 인민의 자기통치라는 민주주의의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일 뿐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그 점에서 한국인은 수단을 목표의 자리에 올려놓았다고 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