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설 스펙터클

배설 스펙터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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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우리는 결코 근대이었던 적이 없다. 왜냐하면 똥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향기롭고 위생적인 삶을 영위하고자 애쓰는 우리 모두를 따라다니는 으스스한 그림자, 똥에 주목하는 책이 출간되었다. 만일 우리의 문명이 똥으로부터, 똥에 의해, 똥과 함께 지어진 결과물이라면 어떨까?

인류학적 주제와 통찰을 과학사와 과학기술학STS에 접목해온 세계적인 학자 워릭 앤더슨은 의학, 역학, 정신분석학, 인류학, 역사학,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우리와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물질인 똥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각종 위생-불결의 스펙터클을 폭넓게 조명한다.

저자가 똥에 관한 이론과 탐구로 겨냥하는 것은 결국 ‘근대인’이라는 위치성이다. 똥으로 대표되는 더럽고 비천한 것을 기피하고 혐오하는 근대인, 위생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근대인, 스스로가 ‘똥 싸는 존재’임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근대인, 특정 집단과 인종을 ‘똥 같은 존재’로 타자화하고 낙인찍는 근대인…… 식민주의와 함께 시작된 근대화 프로젝트는 똥을 더럽고 위험한 물질로 부각했고, 우리의 시야에서 지워버림으로써 인류가 세련되고 문명화된 근대인으로 거듭났다는 감각을 심어주었다. 아름답고 깨끗한 화장실, 막힘 없이 작동하는 하수도, 하수를 감쪽같이 정화해 방류하는 처리장은 그야말로 근대국가를 상징하는 풍경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 인간은 똥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똥을 부정하고 제거하는 바로 그 실천들이야말로 우리에게 ‘근대인/문명인’이라는 인식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이처럼 《배설 스펙터클》은 극한의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그 똥이 어떻게 도리어 우리를 매혹시키고, 우리의 존재 자체를 근본적으로 구성하는지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배설 문화, 배설 공간, 배설물의 문학적·예술적 재현, 배설물을 처리하거나 새로운 자원으로 전환하는 과학기술 등 한껏 ‘더럽고 꾀죄죄한’ 주제와 사례 속에서, 독자들은 ‘똥의 스펙터클’과 ‘진정한 아래/엉덩이로부터의 역사’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워릭 앤더슨

Warwick Anderson

호주 시드니대학교에서 의학사와 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다. 의사로 훈련받은 뒤 과학사, 의학사, 과학기술학STS 분야로 전향하여,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과학사 · 과학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호주로 귀국하기 전에는 하버드대학교, 캘리포니아대학교(버클리), 위스콘신대학교(매디슨)에서 교편을 잡았다. 제국주의와 의학, 인종과 과학, 탈식민주의 과학기술학 등의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연구자이며,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서양과학은 없다》가 있다.
주로 식민주의의 인종적 사상이 지닌 생명의학적 차원, 의학과 과학의 세계화, 면역과 자아에 관한 이론, 질병생태학과 행성 건강planetary health, 그리고 코로나19에 초점을 맞춰 과학사와 의학사를 연구해왔다. 인류학적 주제와 통찰을 과학사에 접목하는 방식으로 과학과 세계화를 분석하는 혁신적인 방법론을 선보였으며, 특히 탈식민주의적 관점을 토대로 한 과학 및 의학 연구에 관한 그의 영향력 있는 논의들은 과학기술학 분야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23년 과학기술학회 4SSociety for Social Studies of Science에서 존 데스먼드 버널 상John Desmond Bernal Prize을 수상했다.

목차

한국어판 저자 서문 ㆍ 5

들어가는 말 | 근대적 배설성과 포스트콜로닉 생명정치 ㆍ 17

1장 하수 파놉티콘 35
화장실에 관한 서류 작업 ㆍ 42 대변, 감염병의 감시병 ㆍ 53
진화하는 하수 감시 ㆍ 58 똥을 똥이라 부르지 못하고 ㆍ 63

2장 배설한다, 고로 존재한다? 69
똥의 소멸과 근대적 인간의 탄생 ㆍ 75 항문이라는 지적 전쟁터 ㆍ 81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ㆍ 90 억압된 똥의 귀환 ㆍ 99

3장 식민화/콜론화된 세계 103
배설 식민주의 ㆍ 112 화장실, 근대성의 실험대? ㆍ 117
변소세의 도래 ㆍ 126 똥은 어떻게 물신화된 상품이 되는가 ㆍ 132

4장 똥의 힘 137
문학의 배설적 상상력 ㆍ 143 탈-식민화/탈-콜론화의 불가능성 ㆍ 151
인류학의 똥 구출 작전? ㆍ 155 똥을 선망하는 예술 ㆍ 167
형언 불가능한 불결의 공포 ㆍ 175

5장 장의 감각과 암흑의 대륙들 181
변비 걸린 근대성의 유독한 망령 ㆍ 190 똥과의 공생은 가능한가 ㆍ 202
야생으로의 회귀? ㆍ 210 예외상태의 똥이라는 역설 ㆍ 226

나가는 말 | 거꾸로 뒤집힌 존재 ㆍ 231

감사의 말 ㆍ 241
미주 ㆍ 247
옮긴이 해제 ㆍ 279

출판사 서평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똥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위생-오염, 문명-원시, 순결-위험, 자아-타자, 백색-갈색
근대적 삶의 이분법이 만들어내는 똥의 스펙터클과 괄약근의 변증법,
그리고 영원한 무균실을 꿈꾸는 식민화/콜론화의 욕망에 관하여

“우리는 결코 근대이었던 적이 없다. 왜냐하면 똥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향기롭고 위생적인 삶을 영위하고자 애쓰는 우리 모두를 따라다니는 으스스한 그림자, 똥에 주목하는 책이 출간되었다. 만일 우리의 문명이 똥으로부터, 똥에 의해, 똥과 함께 지어진 결과물이라면 어떨까?
인류학적 주제와 통찰을 과학사와 과학기술학STS에 접목해온 세계적인 학자 워릭 앤더슨은 의학, 역학, 정신분석학, 인류학, 역사학,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우리와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물질인 똥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각종 위생-불결의 스펙터클을 폭넓게 조명한다.
저자가 똥에 관한 이론과 탐구로 겨냥하는 것은 결국 ‘근대인’이라는 위치성이다. 똥으로 대표되는 더럽고 비천한 것을 기피하고 혐오하는 근대인, 위생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근대인, 스스로가 ‘똥 싸는 존재’임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근대인, 특정 집단과 인종을 ‘똥 같은 존재’로 타자화하고 낙인찍는 근대인…… 식민주의와 함께 시작된 근대화 프로젝트는 똥을 더럽고 위험한 물질로 부각했고, 우리의 시야에서 지워버림으로써 인류가 세련되고 문명화된 근대인으로 거듭났다는 감각을 심어주었다. 아름답고 깨끗한 화장실, 막힘 없이 작동하는 하수도, 하수를 감쪽같이 정화해 방류하는 처리장은 그야말로 근대국가를 상징하는 풍경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 인간은 똥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똥을 부정하고 제거하는 바로 그 실천들이야말로 우리에게 ‘근대인/문명인’이라는 인식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이처럼 《배설 스펙터클》은 극한의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그 똥이 어떻게 도리어 우리를 매혹시키고, 우리의 존재 자체를 근본적으로 구성하는지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배설 문화, 배설 공간, 배설물의 문학적·예술적 재현, 배설물을 처리하거나 새로운 자원으로 전환하는 과학기술 등 한껏 ‘더럽고 꾀죄죄한’ 주제와 사례 속에서, 독자들은 ‘똥의 스펙터클’과 ‘진정한 아래/엉덩이로부터의 역사’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똥 참는 존재, 똥 같은 존재: 근대적 이분법과 식민화/콜론화의 욕망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근대적이고 문명화된 존재로 믿기 위해 그와 완전히 상반되는 물질인 배설물에 대한 사유를 반드시, 그리고 끊임없이 필요로 한다. 그 점에서 배설은 우리를 ‘근대적’ 인간으로 만든다.”

‘배설 식민주의excremental colonialism’라는 저자의 용어가 시사하듯, ‘똥의 배제’를 통한 근대화는 특정 집단과 인종을 배설물과 결부시켜 타자화하는 ‘배제의 정치학’을 동반했다. 위생-오염, 순결-위험, 문명-자연, 근대-원시, 백색-갈색 따위의 이분법 속에서 부정적이거나 열등한 극단에 해당되는 것들은 타 인종에게 폭력적으로 투사되었고, 그들은 똥과 결부된 더럽고 위험한 존재로 규정되었다. 저자는 ‘식민화’를 뜻하는 ‘colonize’의 어근인 ‘colon’이 ‘결장’(대장)이라는 뜻을 지닌다는 데 착안하여, ‘colonize’ 자체를 ‘식민화/콜론화’로 중의적으로 해석한다. 여기서 콜론화란 쉽게 말해 어떤 존재를 ‘결장’으로, 즉 ‘똥’과 결부된 대상으로 환원하고 낙인찍는 실천을 가리킨다. 또한 저자는 식민화/식민주의를 “공식적인 제국주의 체제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외양을 갖춘 다른 모든 형태의 권력적 불균형과 정치적 비대칭성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프로젝트로 해석하고자 한다.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를 비롯해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 정신분석학자 쥘리아 크리스테바 등의 글을 읽다 보면, 20세기 사회이론을 쌓아 올린 요소들 거의 전부가 똥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슬로터다이크는 근대성의 등장을 자신의 배설물에서 도망치려는 도시인의 필사적 욕구와 연결지었다. “그들에게 도시라는 공간의 본질과 변소의 규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해 문명은 똥에 대한 억압, 그로부터의 거리두기와 탈취, 비천함의 승화를 요구했다. 여기서 저자는 변소, 즉 화장실로 상징되는 위생 혹은 면역적 관계가 기술적·법적·정치적인 구조로 실현될 때 근대성의 요건이 충족된다고 보는 슬로터다이크의 논의를 비틀고, 브뤼노 라투르의 통찰을 도입해 그 실천들의 근본적인 불가능성에 주목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라투르의 유명한 통찰은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인간-비인간 집합체와 네트워크 개념에 주된 관심을 기울였지만, 그(라투르) 역시 대부분 똥에 관해 말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를 이루는 오물, 우리 안의 감염,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근대성을 가로막는 것들 말이다.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왜냐하면 똥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똥의 배제’를 통한 근대화는 특정 집단과 인종을 배설물과 결부시켜 타자화하는 ‘배제의 정치학’을 동반하기도 했다. 일례로, 20세기 필리핀에서 식민 통치를 확립한 미국의 식민지 보건 관료들은 자신들이 “불결하거나 유해하다”고 여긴 배설 관습을 근거로 필리핀인들의 신체를 배설물과 동일시하며 낙인찍고 규율했다. 이는 “깨끗함에 대한 집착과 그 위태로움 사이의 복잡하고 불균형한 긴장관계”가 피식민자들에게 어떻게 전이되었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미국의 석유왕’이라 불리는 J. D. 록펠러가 설립한 록펠러재단은 이른바 ‘저개발국가들’ 곳곳에 변소를 설치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변소 열풍’을 주도하고 ‘변소세Latrinocene’를 열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수천 개, 수백만 개의 변소가 식민지 곳곳에 생겨나 적도를 둘러쌀 정도였으며, 이런 사업은 “사회의학” 혹은 “농촌 위생”으로 불리기도 했다.
위생 소외 계층의 “위생 환경을 개선하는 작업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는 명목으로 이루어진 이 대대적인 변소 건설은 실상 “고귀한 존재인 백인들”을 열등한 존재인 흑인, 유색인의 더러운 배설물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세균 및 기생충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록펠러재단, 국제연맹보건기구를 비롯한 “20세기의 국제기구들은 변소와 하수도가 (...) 백인성의 경계를 확장하여 유색인들을 거의 ‘백인’에 가깝 게 만들되, 결코 완벽한 백인이 되지는 못하도록 작용하는 핵심 기술이 되도록 했다”.

진짜 똥은 어디에 있는가: ‘똥 구출 작전’의 역설

그러나 배척과 억압에도 불구하고 똥과의 거리두기는 언제나 실패하기 마련이다. 저자가 라투르의 유명한 구절을 빌려 말하듯, 우리는 “똥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점에서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똥을 보이지 않게 만들기 위해 온갖 기술과 인프라, 주문呪文을 고안해내지만, 똥은 끝끝내 되돌아와 오염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자아낸다. 어찌 되었든 우리가 우리의 결장 속에 똥을 지니고 있다는 것, 매 순간 배 속에서 똥을 생산해내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심지어 우리는 ‘과학’과 ‘예술’의 이름으로 똥을 다시 우리 곁으로 불러들이기도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핵심적인 감염병 감시 수단으로 자리 잡은 하수역학(분변 표본에서 바이러스의 흔적을 검출할 수 있고, 따라서 하수 모니터링이 각종 감염병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조기 경보 신호’를 제공한다는 분석에 기반한다)이나, 장내미생물군 연구 혹은 저자가 ‘원기 회복의 인류학’으로 지칭하는 분변 이식술, 대변 캡슐, 대변을 사용한 관장액 등은 똥이 지닌 새로운 생의학적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발굴했고, 이로써 똥은 오랜 낙인과 오명을 벗고 사람들을 매료시키기 시작했다. 현대 인류학 역시 아프리카, 남아시아(인도) 등의 여러 지역에서 원시사회를 중심으로 똥에 대한 민족지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똥 구출 작전’에 적극적으로 동참했고, ‘배설적 전회excremental turn’라고 할 만한 것을 보여주었다.
이뿐만 아니라 ‘똥을 장르로 한 예술shit art’, 즉 배설물을 소재로 한 현대미술은 똥과 오물을 소환하여 ‘문명의 가냘프고 피상적인 속성’, 그리고 그 문명에 언제나 어두운 배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배설물에 관한 언급은 정통 유럽 미술 내부에서도 이따금 존재해왔지만, 그 관심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은 20세기에 이르러서였다. 기존의 유럽 예술에 반발심이 가득했던 예술가들은 똥을 통해 ‘원시적인 장면’을 호출해내고자 했고, 똥을 경유하여 짓궂은 위반과 신성모독의 양식으로 표현했다. 마르셀 뒤샹의 〈초콜릿 분쇄기 2번〉에서부터 (이 책의 한국어판 표지에 실리기도 한) 피에로 만초니의 〈예술가의 똥〉(1961, 배설물이 담긴 캔 90통에 작가 자신의 서명을 한 작품), 빔 델보예의 〈클로아카 프로페셔널〉(2010, 음식을 배설물로 변환시키는 배설기계를 설치해 배설물을 수집하고, 그것을 레진 용기에 담은 작업)에 이르기까지, “지난 60년간 똥을 장르로 하는 예술이 보여준 폭발적 번성은 단순하게 요약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많은 비평가들이 지적하듯, 예술계에서 똥을 주제로 한 사례는 무척이나 흔하며 그런 작품들은 질서/규범 위반에 대한 상상력과 ‘순수한 미적 즐거움’을 전달하고자 한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비교적 최근의 흐름인 이 매혹과 탐구 역시 멸균과 위생에 대한 집착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며, 그 점에서 위생-오염, 순결-위험, 문명-자연, 근대-원시, 백색-갈색과 같은 근대적 이분법을 재생산하는 데 기여한다. 말하자면 예술과 과학은 질서와 정체성에 대한 기존 감각을 흐트러뜨리는 배설물의 가치를 새롭게 평가지만, 그것을 일종의 “대항-생명정치”로서 동원하지만, 근대 세계의 공고한 이상인 ‘위생정치체’ 모델 자체를 근본적으로 해체하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