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조선화보사에서 간행한 300*430 크기의 대형 화보집.
설명은 한글, 일본어, 영어 순으로 표기.
고구려 고분벽화의 전개과정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제1기는 3세기말에서 5세기초에 걸치는 기간으로 고구려의 영토가 크게 확장되는 시기이다. 벽화는 주로 무덤 안에 석회를 바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이 시기에 즐겨 택해지는 생활풍속계 벽화고분은 무덤칸 구조와 벽화 내용이 죽은 자 생전의 저택구조를 재현하거나 상징적으로 드러내도록 서로 맞물리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무덤은 흔히 무덤칸의 모서리와 벽의 위 부분에 자주색 안료로 기둥과 들보 등 목조가옥의 뼈대를 그려 무덤 안을 주택과 같이 꾸민다.
제2기는 5세기 중엽에서 6세기초에 걸치는 시기로 동북아시아의 지배자 고구려가 내륙아시아의 패자 유연(柔然), 중국의 남조(南朝)와 북조(北朝) 등과 함께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좌우하는 4대 강국의 하나로 군림하던 시대이다. 이 시기 고구려의 외방이나 두방무덤에는 생활풍속과 사신, 혹은 생활풍속과 장식무늬가 공존하는 그림, 장식무늬만을 주제로 한 다양한 유형의 그림들이 그려진다. 사신이 무덤칸 안에 그려질 때에는 방위나 방향에 맞추어 좌(左[東])청룡, 우(右[西])백호, 전(前[南])주작, 후(後[北])현무의 순서로 그려진다. 사신은 무덤자리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사신 형상의 지세인 사세(四勢)에 해당되지 않거나 최선의 자리가 아닐 경우, 이를 대신하여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제3기는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전반에 걸치는 기간이다. 5세기 후반에 성립시킨 범(汎) 고구려 문화의 성과가 고분벽화를 통해서 확인되지만, 이어진 정치ㆍ사회적 불안정으로 말미암아 동북아시아 패권국가로서의 지위가 흔들리고 동북아시아 문화중심으로서의 역할도 도전 받는 시기이다. 고분벽화는 주로 무덤칸의 다듬어진 돌면에 그대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제작되는데, 안료 제작상의 기술적 진보를 읽게 하는 부분이다. 널방만 있는 외방무덤에 사신도(四神圖)가 즐겨 그려진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동북아시아가 하나의 독자적인 문화권으로 존재했음을 확인시켜주는 역사적 증언이자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3세기말부터 모습을 보이는 고분벽화는 고구려가 자국을 중심으로 한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어내려고 애쓰던 과정, 동북아시아를 고구려의 ‘천하’라고 자부하며 이루어낸 문화적 성과를 생생히 잘 보여주는 역사현장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전호태(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설명은 한글, 일본어, 영어 순으로 표기.
고구려 고분벽화의 전개과정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제1기는 3세기말에서 5세기초에 걸치는 기간으로 고구려의 영토가 크게 확장되는 시기이다. 벽화는 주로 무덤 안에 석회를 바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이 시기에 즐겨 택해지는 생활풍속계 벽화고분은 무덤칸 구조와 벽화 내용이 죽은 자 생전의 저택구조를 재현하거나 상징적으로 드러내도록 서로 맞물리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무덤은 흔히 무덤칸의 모서리와 벽의 위 부분에 자주색 안료로 기둥과 들보 등 목조가옥의 뼈대를 그려 무덤 안을 주택과 같이 꾸민다.
제2기는 5세기 중엽에서 6세기초에 걸치는 시기로 동북아시아의 지배자 고구려가 내륙아시아의 패자 유연(柔然), 중국의 남조(南朝)와 북조(北朝) 등과 함께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좌우하는 4대 강국의 하나로 군림하던 시대이다. 이 시기 고구려의 외방이나 두방무덤에는 생활풍속과 사신, 혹은 생활풍속과 장식무늬가 공존하는 그림, 장식무늬만을 주제로 한 다양한 유형의 그림들이 그려진다. 사신이 무덤칸 안에 그려질 때에는 방위나 방향에 맞추어 좌(左[東])청룡, 우(右[西])백호, 전(前[南])주작, 후(後[北])현무의 순서로 그려진다. 사신은 무덤자리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사신 형상의 지세인 사세(四勢)에 해당되지 않거나 최선의 자리가 아닐 경우, 이를 대신하여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제3기는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전반에 걸치는 기간이다. 5세기 후반에 성립시킨 범(汎) 고구려 문화의 성과가 고분벽화를 통해서 확인되지만, 이어진 정치ㆍ사회적 불안정으로 말미암아 동북아시아 패권국가로서의 지위가 흔들리고 동북아시아 문화중심으로서의 역할도 도전 받는 시기이다. 고분벽화는 주로 무덤칸의 다듬어진 돌면에 그대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제작되는데, 안료 제작상의 기술적 진보를 읽게 하는 부분이다. 널방만 있는 외방무덤에 사신도(四神圖)가 즐겨 그려진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동북아시아가 하나의 독자적인 문화권으로 존재했음을 확인시켜주는 역사적 증언이자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3세기말부터 모습을 보이는 고분벽화는 고구려가 자국을 중심으로 한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어내려고 애쓰던 과정, 동북아시아를 고구려의 ‘천하’라고 자부하며 이루어낸 문화적 성과를 생생히 잘 보여주는 역사현장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전호태(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고구려고분벽화 (양장본 Hardcover)
$18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