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1908년 최남선이 발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월간 잡지 | 양장본 Hardcover | 전 4권)

소년 (1908년 최남선이 발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월간 잡지 | 양장본 Hardcover | 전 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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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908년 최남선이 발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월간 잡지. 계몽잡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종합잡지이다. 1908년 11월 최남선(崔南善)에 의하여 창간되었으며, 1911년 5월 통권 23호로 종간되었다. 편집인 겸 발행인은 최창선(崔昌善)이며, 신문관(新文館)에서 발행하였다.

최남선이 1906년 재차 일본에 유학,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지력과(地歷科)에 적을 두고 있었을 때에 학생 모의국회의 토의안건이 문제가 되어 조선학생 70여 명이 동맹퇴학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당시 19세의 최남선은 남은 학비로 인쇄기구를 구입, 귀국하여 이 잡지를 간행하였다.“우리 대한으로 하여금 소년의 나라로 하라. 그리하랴 하면 능히 이 책임을 감당하도록 그를 교도하여라.”(창간호)라는 발간취지를 내세우고 처음에는 혼자서 집필과 편집, 발창간호의 독자는 6명, 2호 14명, 8·9호까지 30명, 1년이 지나서 200명을 넘지 못하였다.3권 2호부터 비로소 개인 잡지의 성격을 벗어나 이광수(李光洙)·홍명희(洪命熹)가 글로 가담하였고 8호에 이르러서 발매금지와 정간을 당하였다. 3개월 만에 해금(解禁)되어 1910년 12월 3권 9호로 속간되고, 1911년 1월에 4권 1호, 4개월 만인 1911년 5월에 4권 2호(통권 23호)로 다시 발행정지를 당하였다.「편집실 통기(通寄)」(창간호)에 “본지는 어디까지든지 우리 소년에게 강건(剛健)하고, 견실하고 궁통(窮通)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고로 결코 연약(軟弱)·나태·의지(依持)·허위의 마음을 자극할 듯한 문자는 조금도 내지 아니할 터이오. 그러나 미적 사상과 심신훈도(心神薰陶)에 유조(有助)할 것이면 경뢰(輕賴)한 것이라도 조금조금 게재하겠소.”라고 편집 방침과 그 성격을 밝히고 있는 데서 볼 수 있듯이 당시의 소년들을 계몽하기 위한 새로운 지식의 보급과 계몽에 중점을 두고 엮어졌다.
특히 최초의 신체시(新體詩)인 「海에게서 少年에게」(창간호)를 게재하는 등 신문학 초창기에 남긴 문학사적 공헌도 지대한 바 있다 할 것이니, 『청춘(靑春)』과 더불어 『창조(創造)』·『폐허(廢墟)』·『백조(白潮)』 등 순문예동인지가 나오기 이전의 과도기적 성격의 잡지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소년(少年))]
저자

최남선지음

崔南善
일제강점기『심춘순례』,『백두산근참기』,『금강예찬』등을저술한문인.언론인,사학자,
1890년서울출생으로,본관은동주(東州),아명은창흥(昌興),자는공육(公六)이다.호는육당(六堂)·한샘·남악주인(南嶽主人)·곡교인(曲橋人)·육당학인(六堂學人)·축한생(逐閑生)·대몽(大夢)·백운향도(白雲香徒)이다
1906년겨울귀국후신문관(新文館)을설립하고1908년11월잡지『소년(少年)』을출판하였다.1910년3월안창호(安昌浩)가설립한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의평사원겸변론과장을지냈고,같은해10월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를설립해조선의고서(古書)를발간하고,조선어사전을편찬하고자하였다.한일강제병합이후에도1912년『붉은저고리』,1913년『아이들보이』,1914년『청춘』등의잡지를발행하였다.1919년3·1운동때에는「독립선언서」를작성해일제에체포되어2년8개월간복역하기도하였다.1921년10월출옥하였고,1922년동명사(東明社)를창립해주간지『동명』을발행하였다.1924년『시대일보』를창간하였고,1925년조선의문화와역사를연구하는계명구락부(啓明俱樂部)에참여하였다.1922년『동명』에「조선역사통속강화개제(朝鮮歷史通俗講話開題)」를연재하였고,1926년「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과근대최초의창작시조집『백팔번뇌(百八煩惱)』를간행하였다.같은해옛백제지역을방문한『심춘순례(尋春巡禮)』,1927년『백두산근참기(白頭山勤參記)』,1928년『금강예찬(金剛禮讚)』을발표하였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최남선(崔南善))]

목차

제1권-1908.11∼1909.04
제2권-1909.05∼1909.11
제3권-1910.01∼1909.05
제4권-1910.06∼19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