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한국 현대시는 근대시라고도 명명되며, 정형시의 율격을 벗어난 자유시와 산문시를 말한다.
한국 현대시사는 1910년대부터
1940년대에는 일본의 조선에 대한 제국주의와 식민지화가 극대화 된 시기로 우리 민족의 가장 혹독한 시련기였다. 이 시기에 일제 총동 정치는 문인들에게 문필보국의 명분을 내세워 조직적으로 친일 문학을 강요하였으며, 백철과 같은 사람은 이 시기를 일컬어 '암흑기'라고 규정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문인이 취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였다.[1] 첫째, 일제에 굴복하여 친일 문학을 창작하는 길, 둘째, 일제와 맞서 싸우며 일제에 저항하는 시를 쓰는 길, 세 번째는 문학 그 자체 속에 칩거하며 절필을 하는 길이다. 대부분의 시인들은 일제의 강요에 못이겨서 혹은 자발적으로 친일을 하였으며, 일부의 시인만이 절필을 함으로써 소극적으로나마 일제에 저항하였다.
먼저 친일시인들은 국민시[2]라는 친일 문학을 창작하였다. 이러한 국민시의 요건에 따라 시 창작활동을 한 시인들로는 '군복 깊는 각씨네'를 쓴 김동환, '부인노동대'를 쓴 노천명, '서양의 여인들'을 쓴 모윤숙, 그리고 '무제'를 쓴 서정주가 있다.
저항시를 쓴 저항시인으로는 이육사와 이상화, 심훈이 있다. 이육사는 겉으로 드러나는 저항시보다는 시 안에 조선인의 정신과 기개를 담아내었다. 심훈은 '그날이 오면'에서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는 그날이 오면 환희에 찰 자신의 모습을 시로 그려냈다. 윤동주는 등단하지 못한 학생문사이다. 그는 적극적인 저항시인으로 평가되기는 어렵지만, 몇몇 평론가들은 그의 시에서 보이는 식민지 시인으로서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저항시인으로서의 면모로 평가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해당 시기에 절필을 한 시인으로는 박남수, 허민, 박두진, 조지훈 등이 있다. 몇몇의 평론가들은 윤동주를 저항시인이 아닌 절필 시인으로 보기도 한다.
1940년대에는 일본의 조선에 대한 제국주의와 식민지화가 극대화 된 시기로 우리 민족의 가장 혹독한 시련기였다. 이 시기에 일제 총동 정치는 문인들에게 문필보국의 명분을 내세워 조직적으로 친일 문학을 강요하였으며, 백철과 같은 사람은 이 시기를 일컬어 '암흑기'라고 규정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문인이 취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였다.[1] 첫째, 일제에 굴복하여 친일 문학을 창작하는 길, 둘째, 일제와 맞서 싸우며 일제에 저항하는 시를 쓰는 길, 세 번째는 문학 그 자체 속에 칩거하며 절필을 하는 길이다. 대부분의 시인들은 일제의 강요에 못이겨서 혹은 자발적으로 친일을 하였으며, 일부의 시인만이 절필을 함으로써 소극적으로나마 일제에 저항하였다.
먼저 친일시인들은 국민시[2]라는 친일 문학을 창작하였다. 이러한 국민시의 요건에 따라 시 창작활동을 한 시인들로는 '군복 깊는 각씨네'를 쓴 김동환, '부인노동대'를 쓴 노천명, '서양의 여인들'을 쓴 모윤숙, 그리고 '무제'를 쓴 서정주가 있다.
저항시를 쓴 저항시인으로는 이육사와 이상화, 심훈이 있다. 이육사는 겉으로 드러나는 저항시보다는 시 안에 조선인의 정신과 기개를 담아내었다. 심훈은 '그날이 오면'에서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는 그날이 오면 환희에 찰 자신의 모습을 시로 그려냈다. 윤동주는 등단하지 못한 학생문사이다. 그는 적극적인 저항시인으로 평가되기는 어렵지만, 몇몇 평론가들은 그의 시에서 보이는 식민지 시인으로서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저항시인으로서의 면모로 평가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해당 시기에 절필을 한 시인으로는 박남수, 허민, 박두진, 조지훈 등이 있다. 몇몇의 평론가들은 윤동주를 저항시인이 아닌 절필 시인으로 보기도 한다.
한국현대시사자료대계: 해 바다의합창 이단의시 잠자리 박꽃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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