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시선

우남시선

$25.00
Description
​이승만이 쓴 한시들을 소개하는 책.

「체역집」「우남시선」「우남이승만박사서집」에 있는 160여 편의 시들을 묶었다.

시문학인으로서의 이승만의 면모를 알게 하는 자료로, 인간 이승만에 대한 바른 평가가 이루어지는 데 도움을 준다.

『우남 이승만 전집』 제9권으로 출판한 『한시집: 체역집에 실리지 않은 시』는 글자 그대로 『체역집』에 실리지 않은 이승만의 한시 76수를 수집하여 번역한 것이다. 노산 이은상이 이승만의 한시 31수를 번역한 『우남시선(雩南詩選)』이 1959년 공보실에서 출판되었는데, 이 책에 실린 한시의 출처가 밝혀져 있지 않다. 이에 비하면 허경진의 이 번역본은 대부분 이승만의 친필 원고를 저본으로 하여 번역한 것이며,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이 원본을 소장하고 있다.

이 번역시집의 특징은 대부분 친필을 찾아내어 왼쪽 면에는 번역시, 오른쪽 면에는 친필 붓글씨를 편집하여 두 가지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 한지에 붓으로 썼지만, 대통령 비서실 메모지에 만년필로 쓴 한시도 있으며, 같은 한시를 다른 사람에게도 써주어 두세 편의 서로 다른 붓글씨를 볼 수도 있다. 나라를 잃은 뒤에는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독립을 준비하고, 공산군으로부터 분단된 조국을 지키며 국민들에게, 유엔군 장군들에게, 외국 정상들에게 지어 주고 써 준 그의 한시 곳곳에 애국 애족의 열정이 보인다.
저자

이승만지음

이승만(李承晚[3],1875년3월26일~1965년7월19일)은대한민국임시정부의초대대통령이자마지막주석을거쳐대한민국의제1·2·3대대통령으로재임하였으며,본관은전주이씨이다.1949년건국훈장대한민국장에서훈되었다.아명은승룡(承龍),호는우남(雩南)이다.

황해도평산군에서양녕대군의16대손으로태어났다.대한제국시절《독립신문》과《협성회회보》주필,독립협회활동등계몽운동을하였고,왕정폐지와공화국수립을도모하였다는반역의죄목으로한성감옥에투옥됐다.수감시절기독교로개종하고,옥중계몽활동을하고,《독립정신》을저술하였다.대한제국말기특별사면된후밀사로도미하였다가큰성과를거두지못하고,미국에서학업을계속하여5년에걸쳐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학사,하버드대학교에서석사,프린스턴대학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1912년미국으로망명,하와이에서한인학원과한인학교등을운영하며실력양성운동을하였다.1919년3.1운동이후사회주의운동가들사이에서독립운동방법을놓고의견이갈라졌을때그는국내의사정을외국에알리고양해를구하는외교독립론을주장하였다.대한국민의회,상해임시정부,한성정부등각지에서수립된임시정부의수반을거쳐1919년부터1925년까지대한민국임시정부대통령을역임하였다.1919년부터광복때까지구미위원부위원장,주미외무행서외무위원장,주미외교위원부위원장등을역임하며주로미국에서외교중심의독립운동을펼쳤다.일제강점기중후반에는《일본내막기(JapanInsideOut)》를저술하는등일본의미국침략을경고하였고,1941년태평양전쟁이발발하자일본제국의패전을확신하고일제가망하는즉시한국이빼앗긴주권을돌려받을수있도록국제사회가대한민국임시정부를정식승인해야된다는외교활동을하였고,미국의소리초단파방송을통해고국동포들의투쟁을격려하였으며,임시정부와미군OSS간의한미군사협력을주선하였다.

1945년광복후김구와함께신탁통치반대운동을주도하였다.또한공산진영과의타협이불가능하다고판단,38선이남에민족진영을중심으로국제사회가인정하는합법정부를단독수립한뒤38선이북의비합법정부와공산진영일체를쫓아내고한반도통일을이루고자하였다.1948년제헌국회의장을지냈으며,그해대한민국제1대대통령에당선되었다.냉전시대에발맞추어반공주의,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의대한민국의토대를마련하였고,1949년농지개혁법제정,1953년한미상호방위조약체결등안팎으로대한민국발전의기초를마련하였다.1952년평화선을선포하여독도를사수하였다.1952년대통령직선제를골자로한발췌개헌과1954년대통령연임제한폐지와국가주의경제조항을시장경제조항으로바꾸는사사오입개헌을하여대통령을3회역임하였다.1960년제4대대통령에선출되었으나4.19혁명에대한책임을지고자진하야했고,하와이로망명한후귀국하지못하고그곳에서죽었다.장례는대한민국에서가족장으로집행되었으며,국립서울현충원에묻혔다.

목차

제1편독립협회.만민공동회시기
제2편옥중시기
제3편독립운동시기
제4편건국시기
제5편6.25전쟁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