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잃은여성이타인의마음속에서살아가는방식
-수치심의문화정치에맞서는문학의대담한저항
사회적통제와기대,조작의대상이되어온여성의삶은젠더화된수치심의구도를이해하는핵심현장이다.이책은20세기세계여성작가들의작업을검토함으로써몸에부여된수치,가족과사회에의해강요된수치가어떻게여성의자아를삭제하고세계에대한참여를차단함으로써여성성을불능화하는지탐구한다.수치심사회에서자아는수치심을자각하는진원지가되고,세계에대한감정은억압된다.수치심이어떻게관계를구성하고,여성의정체성을형성하는지를다각도에서해석하며여성적글쓰기의저항을포착한이책의시도는그자체로여성수치심에대한강력한발화가된다.
수치심은그저자연적이고사적이기만한감정이아니다.그것은우리의정체성과권력관계를구성하는문화적이고사회적인감정이다.수치심을둘러싼복잡한맥락과역학을해부해보아야하는이유다.『여성의수치심』의관심사는바로여기에놓여있다.이책은우리가사는세계에서수치심의젠더적양상을추적하고,이감정이어떻게그처럼강력하게개인을강제할수있는지를탐구한다.이책을통해독자들은“부끄러운줄도모르고”“여자들이무시해서”같은말사이에놓인젠더화된수치심의문화정치와만나게될것이다._손희정,「옮긴이의말」
가장수준높은페미니스트학문의전형을보여주며,사안에시의적절하게개입한다.학제간연구의견고함을보여주는힘있는저서다._메리K.드셰이저,웨이크포리스트대학교수
“정동연구,여성학과젠더연구에몸담은학자들에게대단히가치있는자료가될것이다.”
_조너선플래틀리,웨인주립대학교수
수치심경험의이중성
-절묘하게이질적인자기의출현과자아의삭제
수치심은오랫동안인간의주요정동으로여겨져왔다.이정동은타인을통한자아인식이라는점에서자의식뿐아니라의식자체에관계된다.저자들은이것이“인간성의표식으로작동하지만,더정확하게말하자면그것은여성적인간성의표식”(21)이라고설명한다.“그저월경을시작했다는사실만으로여성은잠재적인수치심을떠안게된다.여성은몸안에성적수치심의씨앗을품고있다.”(21)이런감각은어떤수치스러운행동이아니라그사람이누구인가라는더심오한차원에서비롯되는것이기에일상적인상황에서조차개인의경험을이중화하고,불확실하고불안정한긴장을유발하며,한사람의정체성을형성하고변형시킨다.
수치심이란사실다른사람과의상호작용에서느끼는자아에대한수치심이다.나는당신에게보이는나를상상함으로써수치스러워진다.(…)수치심은내가어떻게보이는가에만관련되는게아니라(내가당신에게어떻게보이는가뿐아니라)내가상상한내모습에도관계된다(내가당신에게어떻게보이는가를상상하는방식에도관계된다).수치심은나라는존재가다른사람이보고판단하는대상임을깨닫게한다.(“TheDisappearingWho”,38)
경험의이중성에주목한수치심연구의궤적은정동이론에서추적할수있다.수치심연구의선구자인헬렌블록루이스는정신의가장깊은곳까지침투하는수치심의치명적속성을‘악성’이라고보았다.
‘그자리에서콱죽어버리고싶었다’‘바닥으로꺼지고싶었다’혹은‘쥐구멍에라도들어가고싶었다’등수치심에대한은유는수치심이자아에미치는순간적이고치명적인영향에대한일상적인이해를반영한다.(Lewis,Introduction,1)
이렇게경험의이중성은필연적으로자아인식에혼란을가져오며자아를더욱취약하게만들고고,때로는자아삭제를추동하기까지한다.타인에게서비롯되었든자기자신의것이든,자아를향한혐오로부터숨을공간은문자그대로어디에도없다.그렇기에수치를떠안은개인은날것그대로의혐오와함께남겨진다.이에대해정동이론가실번톰킨스는다음과같이적는다.
수치심은모욕,패배,위반,그리고소외의정동이다.공포는삶과죽음에말을걸고고통은세상을눈물의계곡으로만들지만,수치심은인간심장의가장깊은곳을강타한다.수치심은내면의고뇌,즉영혼의병으로다가온다.모욕당한이가조소嘲笑속에서수치심을느꼈는지혹은그가스스로를비웃었는지는중요하지않다.어떤상황에서든그는스스로존엄과가치가결여된채로벌거벗겨져서,패배하고소외된채로남겨졌다고느낀다.(Tomkins,“Shame”,133)
톰킨스는또수치심이흥미를조절하는데중요한역할을수행한다고봤다.따라서이것이건드려지면세상에흥미를가지는능력과같은기본적인기능에지장을주기도한다.이이론을바탕으로레옹뷔름저는심각한수치심이어떻게세계에관심을갖고그것을탐구하고자하는개인의욕망을손상시키는지를더깊이들여다보며‘비인격화depersonalization’라는개념을끌어낸다.깊은수치심은자기자신을결함있고불결한존재로인식하도록만들고,세계에대한참여를전적으로차단한다.“이상태에빠진사람은스스로를비현실적이라고느끼며세계에대한모든감정은-우울증으로드러나든,사랑받고자하는갈망으로드러나든-억압된다.”(31)
한편수치심의이중적경험은자기뿐아니라타자와도관계되기때문에정동이론가들은수치심을다룰때정신내적·간주관적축과문화적·사회적축을동시에강조한다.또한전자와후자는서로를형성하고서로에의해형성되기도한다.특히홀로코스트같은트라우마적사건들에서자행된극단적인모욕행위는삽시간에개인을넘어공동체전체와역사자체로확대된다.이렇게다양한층위에서다양한구도로작동하는수치의동학을이책은‘수치심의상관적문법’이라고부른다.부끄러움은누구의몫이어야하는가?그런데누가고개를숙이고누가고개를빳빳이세우는가?뻔뻔하고천연덕스럽게수치심을모른체한채부끄러움을아는이에게더한수치를안기려는자들이있는한,우리는이문법의존재와원리를인식하고까발리고해체할수있어야한다.
이책은20세기텍스트에대한비교연구를통해서어떻게수치심이관계를구조화하고주체형성의세가지주요국면을횡단하면서여성의정체성을형성하는가를보여준다.책은이세가지주요국면-개인적차원,가족적차원,그리고문화적혹은국가적차원을중심으로구성되어있다.이작업은여성의수치심을보여주는지속적증거들이성차별,동성애혐오,인종차별,그리고식민주의와같은억압적이데올로기에관한논의에포괄되어버림으로써주목받거나분석되지못해생겨난중요한학문적공백을메울것이다._「서문」
원초적인여성의정동으로서수치심과
이에맞서는여성적글쓰기
여러연구는여성이남성보다수치심을더잘느낀다는사실을밝혀냈다.왜그럴까?여성의몸은남성의몸보다훨씬더복잡한온갖의미의양식에휘감겨있다.이사회는여성의몸에예외적인문화적무게를지우고그것을제도화했다.여기에는여성의외모에섹슈얼리티에수치를주고낙인을찍는과정이동반됐다.여성의몸이‘깨끗하고적절한신체’에대비되는‘불결하고부적절한신체’로규정되어오는동안,문화적으로구성된여성성의규범에서벗어나는몸이모욕당하는동안,여성은자기신체와양가적이고수치스러운관계를맺게되었다.감춰지고숨겨질수밖에없는몸은수치심이발생하는장소가된다.이렇게역사적으로여성의신체는남체와다른방식으로정의되어왔고,그렇기에여성의몸은수치심담론의핵심장소가되어왔다고저자들은설명한다.
수치심을이해할때고려해야하는또하나의중요한사실은여성이남성에비해더‘장場의존적fielddependent’이라는지속적인연구결과다.장의존성이란“물리적인환경과의관계에서뿐만아니라타인들과의관계에서자아를포착하는인지적방식”으로서,“타인들의시선이제시하는이상을성취하는데실패했을때오는실망의감각을중심으로자아에대한개인적인감각을조직한다”는의미다.헬렌블록루이스는여성이남성에비해관계유지능력에의해평가받는경우가더욱많고,이능력은결과적으로여성을전통적규범에따르라는압력에더욱취약하게만든다고분석한다.여성이관계유지에책임을느끼고,여성이희생하며,여성이분노를삭이는방식으로여성은친밀한관계에서더욱깊은수치심을경험하기쉽다.수치심경험에대한여성들의묘사에어머니아버지를포함한가족구성원,연인이나파트너,가까운친구들이등장하는이유가여기에있다.
『여성의수치심』은이런이유로수치심을젠더화된정동으로보고,그것이어떻게주체성과관계,정체성을형성했는가를복합적으로분석한다.그도구는수치심을다루는20세기여성작가들의텍스트다.이책에서주목하는글들은과학소설의황금기였던1940년대부터활동한소설가이자사회운동가주디스메릴의「오로지엄마만이」외단편소설들(1장「타자인여성:제노포비아와수치심」),“프랑스사회가집단성폭행의잔악무도함을대면하게한용감한작가”라는평을받은사미라벨릴의회고록『나는인생을믿는다』(2장「강간,트라우마,그리고수치심:침묵의벽을깨고생존하기」),페미니스트판타지로동화라는장르를재전유한앤절라카터의『피로물든방』(3장「피로물든수치심:부끄러움을모르는포스트모던동화들」),크리스틴앙고의『근친상간』과아니에르노『단순한열정』을비롯한두작가의글들(4장「“부끄러워서더이상쓸수없다”」),저자자신을비롯한여성장애인의글들과장애학의주요텍스트들(5장「장애자긍심과수치심의상호작용」),프란츠파농의『검은피부,하얀가면』과캐리비안출신작가미셸클리프의『아벵』등식민수치심을다룬텍스트들(6장「고통받는자들은인간이아니어야한다」),『생존자』『킨』을비롯한옥타비아버틀러의작품들(7장「선조와이방인들:과학소설에서퀴어적변화와정동적소외」),여성신체와민족국가의경계를상세히묘사한미셸로버츠의소설『두딸들』(8장「몸에새겨진트라우마」),노르웨이작가코라산델의자전소설3부작『앨버타와제이컵』『앨버타와자유』『혼자가된앨버타』(9장「“얽매여재갈물린삶”:수치심,그리고여성예술가의탄생」),소녀들의비밀스러운세계속배반과혼란,수치심을그린마거릿애트우드의『고양이눈』(10장「소녀들의세계와집단괴롭힘」),진리스의『한밤이여,안녕』과시몬베유의철학텍스트들(11장「진리스와시몬베유의불행」),여성의신체를통제함으로써국가적수치를극복하려는중국의체제를비판하는다양한저작들(12장「여성의신체로국가적수치에맞서는중국:찬미인가,모욕인가?」),힌두및이슬람문화권에서집단의명예를위해여성에게가해지는신체적·정신적폭력을다룬소설들(13장「수치를떠안은몸:계급사회인도에서여성에게가해지는폭력과모욕」),여성의주체성을형성하는수치심의관습에대한도전을보여준모리셔스작가아난다데비의『파글리』(14장「‘라자’-수치심의사회문화적각본」),수치심과소속감,욕망이뒤얽힌아시아제바르의자전소설『아버지의집그어디에도』(15장「소속되지못한자의수치심」)등이다.이텍스트들은“수치심의기원과맥락을포착할뿐만아니라우리로하여금해가되고독이되는수치심의정신적흔적들을해결해나갈수있도록도와준다”고책은설명한다.
저자들은이들텍스트를분석하며실번톰킨스,헬렌블록루이스,레옹뷔름저,앤드루P.모리슨,거션코프먼,도널드L.네이선슨,J.브룩스브손,엘리자베스그로스등정동이론과수치심연구의대표학자들을비롯한여러연구자의논의를가져올뿐만아니라세라아메드,이브세지윅,마사누스바움,주디스버틀러,쥘리아크리스테바등수많은동시대의페미니즘및문화이론가들을인용한다.거센백래시와혐오문화속에서수치의이데올로기는더욱더노골화하며견고해지고,수치심은점점더강력한동학이되어간다.『여성의수치심』은그것이작동하는문법을해석함으로써,그움직임을간파하고읽어낼수있는힘을준다.자기수치심의정체를알아버린여성작가들의글에서우리가목격했던바로그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