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 (경계인이 바라본 반세기)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 (경계인이 바라본 반세기)

$20.01
Description
60년간 오직 일본을 사유한
도널드 리치의 일본론 20편
역사의 긴 복도를 되돌아보다

일본에는 일본에 오랫동안 거주하며 그들 나라에 대해 글을 써온 외국인의 계보가 있다. 도널드 리치도 그중 한 명으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60년 이상 일본에 살면서 외국인(특히 서양인)들이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가령 오즈 야스지로나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가 서양에 알려진 데에는 그의 영향력이 있었다. 영화평론가이자 큐레이터로서 그는 이 책에서 일본 영화뿐 아니라 도시와 사회, 사람, 정원, 음식, 다도에 관해서 심미적인 정취들을 꿰뚫으면서 일본의 ‘아름다움’을 탐구해나간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 “옆에서 보아야만 깊게 들여다볼 수 있다.”(E. M. 포스터) 저자 역시 경계인으로서 옆에서 일본을 오래 들여다봤다.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은 도널드 리치가 1960년대부터 50여 년에 걸쳐 쓴 일본에 대한 산문 중에서 20편을 골라 번역한 것이다. 각각 일본의 형태, 일본 영화, 일본 문자, 파친코, 패션, 키스, 무너져가는 내면화, 텅 빈 공간과 시간의 추구, 일본인이 드러내는 친밀함의 이중성, 삶과 죽음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 등을 다룬다. 50년에 걸쳐 쓴 산문을 한 번에 보여주면 어떤 흐름이 읽힐까.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일본적 특성이 드러난다. 즉 기본적인 전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유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시대의 아름다움은 대부분 화석화되었거나 혹은 통속화되었다. 그의 글 몇몇의 후반부가 회한의 감정을 담고 있는 이유다. 그렇더라도 “역사의 긴 복도를 되돌아보는 일은 가치가 있다”.
글은 자신이 음미하고 분석하는 대상을 얼마쯤 닮기 마련이다. 일본의 아름다움을 궁구하던 리치의 글은 깊이 있고 정갈하며 미적 경험 속으로 온전히 뛰어드는 글이다. 이 책은 관찰하고, 인식하고, 그것을 통해 일본을 이해한다. 일본의 겉모습에서 시작해 나선형으로 걸어가며 그 심부를 산책한다.
저자

도널드리치

DonaldRichie
1924년미국오하이오리마출생.1947년연합군사령부의군무원으로일본에서살기시작했다.컬럼비아대학에서수학한후일본으로돌아가2013년88세의나이로세상을뜰때까지평생대부분의시간을그곳에서생활하며일본사회와문화,영화에관해통찰력가득한글을남겼다.오즈야스지로와구로사와아키라를영어권에본격적으로소개한영화평론가로잘알려져있으며,여러편의실험영화를직접제작하기도했다.일본에서가장주목받은저작으로꼽히는『내해InlandSea』는영화로각색되어하와이국제영화제최우수다큐멘터리상과어스워치영화상등을수상했다.1969~1972년뉴욕현대미술관에서영화큐레이터로근무했고2002년에는부산국제영화제뉴커런츠부문심사위원장으로한국을방문했다.대표저서로일본에관해글을쓰기시작한지50년을기념해출간된산문선『일본일기TheJapanJournals』와일본영화사에서평론가로서입지를굳히게한『일본영화백년사AHundredYearsOfJapaneseFilm』를포함해『오즈야스지로의삶과영화Ozu:HisLifeandFilms』『구로사와아키라의영화TheFilmsofAkiraKurosawa』『일본미학소고ATractateonJapaneseAesthetics』등이있다.2002년오스트리아에서영화에헌신한리치의삶을다룬다큐멘터리「잠입SneakingIn:DonaldRichie’sLifeinFilm」이제작되었고,톰울프는그를“우리시대의고이즈미야쿠모(그리스계일본작가)로,서로를혼란에빠뜨리는일본인과미국인,두문화사이에서미혹적일만큼또렷한의식을보여주는미묘하고세련된영매”라고평가하기도했다.일본영화발전에세운공로를치하하기위해제정된가와키타상을초대수상했고,전미영화비평가협회특별상등을받았다.

목차

옮긴이서문_낭만주의자의거울

1.일본의형태(1962)
2.일본영화에대한어떤정의(1974)
3.표지판과문자(1974)
4.파친코(1980/1986)
5.패션의용어(1981)
6.일본의키스(1983)
7.일본을말하다(1984)
8.일본의리듬(1984)
9.워크맨,망가,사회(1985)
10.무너져가는문화적내면화(1991)
11.비움으로채우는공간(1992)
12.친밀함그리고거리두기:일본에서외국인으로산다는것(1993)
13.일본영화에등장하는열차(1993)
14.일본:반세기의변화(1994)
15.일본과이미지산업(1996)
16.일본의자동차문화에대한단상(2002)
17.경계넘나들기:일본의사례(2004)
18.사회와영화에서의일본여성(2005)
19.일본영화에등장하는삶과죽음에대한단상(2006)
20.일본미학소고(2007)

용어사전

출판사 서평

일본을생각한다는건형식을생각한다는것이다

‘나라의모든틀이겉으로드러나있는나라.’저자는일본을이렇게규정한다.바꿔말해“패턴화된나라”라할수있다.일본을경험해보면알수있듯,그들은형식에온마음을기울인다.이틀로많은것이해석될수있다.일본에는전화를거는마땅한방법,차를마시는마땅한방법,돈을빌리는마땅한방법이있다.즉절대적인형식이존재하고추구된다.다른나라라고이런게없는것은아니나,일본에서는이것이‘행위의예술’이된다.
언어는사회를반영하기마련인데,일본어에서관용구가발달한것도이맥락에서이해할수있다.이들은용서를구할때,슬픔을표현할때,화내거나사랑을표현할때조차쓰는관용구가있으며,이는패턴화되어있다.
형식을극히중요시하다보니일본인의태도는주로눈으로볼수있는것에반영되어있다.저자는한나라의패턴에입문하려면공중에서그곳을내려다보라고말한다.잘개간된일본의땅은산과산사이로논밭이뱀처럼구불구불펼쳐지는데,이는독일의말끔한사각형이나북미의광활한체스판과크게다르다.저자는여기서자연을본뜨는일본인의태도를발견한다.논밭이이런모양인것은산을관찰하고계곡을따라논밭을일궜기때문이며,풍경이펼쳐진곡선을따라집을만들고,나무가있으면베지않은채두고오히려지붕을뚫었던나라이기때문이다.이것은자연을존중하는마음인데,일본인은여기서한발더나간다.단지자연스럽다고해서아름다운것은아니기때문이다.자연엔잠재성만있어,거기에손을대고꾸며야한다.그러면형태가생겨나고의미가찾아진다.
일본인이전통적으로아름답다여긴홀로선바위나한줄기대나무가지를보라.도코노마에놓인,아무것에도기대지않고균형잡고있는한줄기나뭇가지를보라.여기서는‘정식으로균형을갖춘것이꼭좋은것은아니라고주장하는규칙’이존재한다.이같은비대칭의절묘한균형감은일본정원에서볼수있다.
저자는이러한패턴과형태,형식과디자인이끊임없이만들어져일본을규정한다고본다.사찰이든기모노든목수의톱이든,어디에나패턴이있다.게다가현대의새로운것들은대개옛것의모양을띠고있다.그리하여일본인에게사당을제대로짓는방법은오직하나밖에없고,기모노의허리끈인오비를제대로짜는방법도오직하나밖에없다(다만개성의표출은장식에서허용되며,무수한창조는바로여기서이뤄진다).
외국인입장에서일본미학의정수를더잘느낄수있는것은,기능은떼어놓은채사물을관찰해시각적특성을더두드러지게볼수있기때문이다.저자는그속에서자연법칙을따르는디자인뿐아니라사회규율까지간파해낸다.그가일본을“각각의모듈로이루어진것들의원조”“최초의조립식건물의땅”이라고말하는까닭이다.

적게보여줌으로써더많이느끼도록

이책에실린20편의글중4편은영화를집중적으로다룬다.그중「일본영화에대한어떤정의」는서양영화들과달리일본영화에어떻게접근해야하는가에대한하나의틀을제공해준다.가장큰차이점은뭘까?저자에따르면,서양영화는스토리,플롯,액션을중시하는반면,일본영화는‘정취중심의사실주의’가특징이다.
특히일본감독들은공간을제한해정취를만들어내곤한다.이를테면도요타시로의「묵동기담?東綺譚」은집한채안에서거의모든내용을펼쳐보인다.한정된공간을도구로사용해간접적인표현을하는것은일본인의성향으로,여기서모호하고도심플한이야기가전개된다.관객은영화를보며그집과친숙해지고그곳에살고있는여인과도친숙해지며,거기에사실적디테일이덧입혀지면서그영화만의정취가생겨난다.
이처럼‘적게’보여주는방식은고리키의소설「밤주막」을영화화한프랑스작품과일본작품을비교해보면확연히드러난다.프랑스영화는캐릭터에관심을쏟아시작부터클로즈업장면을보여줬던반면,일본영화가보여준것은하숙집과밭마당,하늘,인물의캐릭터가전부다.후자처럼적게보여주면어떤효과가발휘될까.관객은보이지않는것을알고자스스로더많이생각하면서영화에다가간다.가령미조구치겐지감독은영화의정취를만들기위해카메라가멀찍이떨어져서인물의행동을롱테이크로잡도록한다.그러면관객은장면이주는아름다움을천천히흡수하는가운데멀리보이는연인들에게그순간이어떤의미인지를깨닫고,마침내그들이느끼는것과같은정취를느낀다.감독이더적게보여줄수록관객은더많이느낀다.
저자는,영화예술이란삶을있는그대로받아들여그본질을해치지않는방식으로거기에패턴을부여하는것을목표로삼아야한다고본다.그런데플롯중심의서양영화들은행위와사건을필요로하기에영화의본질을흐려놓을때가있다.
아쉽게도현대의일본영화에서도정취는사라지고있다.오즈의여러영화가전통적인시간활용법을보여주며섬세한감정의얽힘을보여줬던것과달리,요즘일본인들은오늘을항상내일을기준으로바라보고경제관념이우선하기에그런미덕은사라졌다.저자의에세이는미래시점이현재로당겨져지배적가치가될때삶과예술은시간을잃어버리고느낌을잃어버린다는점을간파해내는데,이런회고적느낌이저자의산문의묘미다.

시간이비어있음의풍부함

일본은구조적으로공백이전체를받치고있는나라다.일찍이바르트가관찰했듯이,도쿄의중심은텅비어있고,그비어있음으로인해도시의모든움직임은지탱되고있었다.도널드리치역시족자그림이든현대의광고든거기엔빈공간이왜이리많을까하고의문을품었다.하지만일본인이공백을채우지않는이유는공백이이미공백으로채워져있기때문이다.
저자는“비어있음에서가득함을보는것은창조적인행위”라고말한다.즉일본인은비어있음에몰두해생겨나는가득함을통해발전해왔다.이개념을뒷받침하는사례는많다.아무것도아닌진흙은넘쳐나지만돈이없다고?그럼중국이나한국처럼뛰어난도자기를만들어내면된다.집에빈공간은많은데가구가없다고?그럼공간자체의미학을살려마間라는개념을만들어내면된다.일자리없는사무라이들의시간이남아돈다고?그럼행위를의례화하고,속세의루틴을고양시켜다도를만들어내면된다.
아무것도없는무에서뭔가가생겨나는이유는필요하기때문이다.일본정원사들은주변의돌과나무만으로빈공간에이상적인무언가를창조해낸다.그들은그것을자연이라부르지만,저자는그것을‘미학’이라부른다.
무엇이든의미가부여되면의미는닫히고암시는침묵속으로꺼진다.반면비어있고열려있다면모든가능성은여전히살아있다.이런점은오즈야스지로의영화에서도볼수있다.그의영화장면들은곧잘텅비어있다.인물들은아직등장하지않았거나이미화면에서떠났다.카메라는어스름한방에놓인꽃병을물끄러미바라볼뿐이다.그러면관객은러닝타임동안차차키워온감정으로이꽃병을채운다.흘러왔던의미들은영화가끝나면곧사라진다.저자는이것을“시간에있어서비어있음의풍부함”이라고규정한다.즉“소멸의불멸”인데,도널드킨도소멸성이야말로“가장일본적인특유의미학적이상”이라고말한바있다.
일본은대놓고소멸성을찬양한다.그리고채우기위해서는먼저비어있어야한다.만약풍부한비어있음이꽉차버린다면어떻게되겠는가?하지만시간이흐르자일본에도많은것이꽉꽉들어차기시작했다.게다가넘쳐나는시간은더이상사색의공간이아니고파친코나가라오케로죽여야하는시간이다.왜이리됐을까.저자는아마도일본인의“오랜경쟁적인성향탓에극히실용적인특징”이발휘되기때문이라고본다.이제비움의세계는과잉으로채워지면서여백에서생기던창의성도사라졌고,방향은자연스레‘소비’로향하고있다.

앞에매달려대롱거리는친밀함

20세기중반에일본에온저자는여느서양인처럼일본문화를알고싶다는충동에빠져들었고이방인으로서‘낯섦’을느끼며그곳에서해방감을누리기도했다.특히비평가로서좋았던점은,자기고향에대한거리두기와관대함이생길뿐아니라이방의문화에대해서도친밀함과거리두기의조합으로날카로운시각을가질수있었기때문이다.
하지만일본에탐닉한다해도외국인은늘눈치를받는다.가령택시기사들은이런질문을던진다.“어디에서오셨어요?그렇지만고향은자주방문하시죠?”(자기고향으로돌아가야하지않겠냐는의미다.)
오랜세월정착한외국인이라도이런질문과시선을받으면거리감을느낄수밖에없는데,하지만일본인들이이것은의도한것은아니다.그들은겉으로늘친절하고친밀한데,그것은손님이즐겁기를바라는진정한욕구와,면전에서싫다고말할수없는문화,그리고상대로부터이익을얻기를바라는마음의결과물이다.
혼자외로이있는사람,일본어를잘못하는사람,일본문화가생경한사람이야말로친밀감을가장필요로하는사람이다.그리고친밀감은일본인의태도를보면언제라도누릴수있을것처럼앞에매달려대롱거리고있다.
이때저자는알라스테어레이드의말을떠올린다.그는“외국인이치유가능한낭만주의자”라고했다.즉그들은세상어디서든자신이집처럼정착할장소가있으리라는환상을품고있는데,외국인이라는특성때문에모든만남에서거리두기의대상이된다.만약외국인으로서당신이이점을유익하다고여기지못한다면당신은치유된것이아니다.저자역시자신의눈앞에서대롱거리는일본인의친밀함을바라보며,외국인으로서외롭고높은자리에앉아자신의고향오하이오를물끄러미바라본다.일본은고집스레저자를자신들의일부로받아주지않는데,저자는오히려이것이가장좋은자리라고여긴다.그이유는소속감보다자유가더중요한가치이며,온세상을객지로여길줄아는이야말로완벽하다고생각하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