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노인 실종사건

황 노인 실종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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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길이랄 것도 입구랄 것도 없는 숲의 한 귀퉁이다. 더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가난과 고난의 목소리를 정면에서 바라보는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의 첫 장편소설
사라진 황 노인의 뒤를 쫓으며 드러나는 불온 그리고 싸움의 순간들
여성과 노인, 홈리스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마주하고 기록하던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이 첫 장편소설로 돌아왔다. 『황 노인 실종사건』은 수상한 구석이 많은 글이다. 소설의 주인공 김미경은 한국의 여성 노인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내는 구술생애사 작가다. 돌봄노동의 최전방에서 생활관리사로 일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껏 최현숙의 글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라면 질문할 수밖에 없을 테다. 노인들을 마주하는 생활관리사이자 구술생애사 작가이며 이 소설의 주인공인 미경은 최현숙 작가 본인인가?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자전 소설로 읽혀야 하는가? 소설이 한국 사회에서 노인이 어떻게 살아내고 죽는지 묘사할 때면 이런 질문들은 더 확고해진다. 소설 속 인물들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문학적 세계관을 넘어가며, 실제 현장의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그려낼 수 없는 핍진성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만일 미경을 작가 본인으로, 또 이 소설을 작가의 개인적 서사로 판단한 뒤 책을 읽는다면 다시금 당혹스러움을 느낄 테다. 소설의 중추가 되는 ‘사건’은 자전 소설이나 회고록만으로 읽히기에 지나치게 ‘장르’적이기 때문이다. 소설이 제목에서부터 주장하고 있듯이, 이는 한 노인의 실종에 관한 이야기다. 수상쩍을 정도로 작가와 닮은 점이 많지만, 결국은 노인의 뒤를 쫓고 생각을 가다듬는 이는 작가 ‘최현숙’이 아닌 이야기 속 인물 ‘김미경’이다. 물론 소설은 독자들이 그 질문을 거듭하게끔 만든다. 작가와 인물 사이 경계는 어떻게 나뉘는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가? 이런 믿음을 품고 소설의 결말을 쫓아가다 보면 결국은 하나의 결론에 다다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실과 거짓의 지분이 아니다. 소설의 핵심은 황 노인의 실종이 대체 어떤 ‘진실’을 가리키고 있는가다.
저자

최현숙

1957년생.구술생애사작가이자소설가.천주교를통해사회운동을시작했고,민주노동당여성위원장과성소수자위원회위원장을지냈다.이후요양보호사와독거노인생활관리사로서노인돌봄노동에몸담으면서,본격적으로구술생애사작업을하게되었다.최근3년서
울역근처에살면서홈리스관련활동과글쓰기에집중하고있다.저서로『할매의탄생』『할배의탄생』『막다른골목이다싶으면다시가느다란길이나왔어』『천당허고지옥이그만큼칭하가날라나』『삶을똑바로마주하고』『작별일기』등이있고,공저로『이번생은망원시장』『코로나시대의페미니즘『마스크가답하지못한질문들』『힐튼호텔옆쪽방촌이야기』등이있다.

목차

9월4일ㆍ1
「황문자완고1」중에서
9월4일ㆍ2
9월4일ㆍ3
‘지난봄’
9월4일ㆍ4
두할머니
옥인동왕할머니
9월4일ㆍ5
「황문자완고1」을중심으로:영감과엄마의죽음
9월4일ㆍ6
9월4일ㆍ7
지희수그리고이경혜
9월4일ㆍ8
「황문자완고1」을훑으며ㆍ1
이기의깡치
9월4일ㆍ9
「황문자완고1」을훑으며ㆍ2
9월4일ㆍ10
두고인의공영장례
9월4일ㆍ11
9월5일ㆍ1
9월5일ㆍ2
9월5일ㆍ3
9월5일ㆍ4
9월5일ㆍ5
10월8일

작가의말
해설:이결말을축하해주세요│오은교(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실종도죽음도아직아니고,부재가적절하다.”
황문자가사라졌다.액자에서빼둔영정사진한장을남겨두고서.

황노인이사라졌다.어느날갑자기,아무런예고도없이벌어진실종사건이다.지금껏생활관리사로서그를관리하고,또구술생애사작가로서취재하던미경에게이일은어떻게든파헤치고밝혀내야할상황이된다.흔히이러한추적문학의궤가그렇듯미경또한초반부에는얼마간정통적인탐정역할을한다.그는황노인이지나간공간들을뒤지고,그의말을되새기며,그의주변인들을만난다.그러나결국진실을알아낼수있는곳은다름아닌황노인의말,미경이지금껏듣고기록해온말들속에있음을깨닫는다.다행히미경에게는아주많은황노인의‘말’들이있다.그가생활관리사이자구술생애사로꾸준히기록해둔생애사말이다.
황문자는일견다른노인들과큰차이점이없는평범한여성노인이다.그에게는아들딸이있고죽은남편이있으며가난과고난의역사가있다.황노인은자신의이야기를듣고책으로써준다는미경을크게환영하며자기생애사를모두털어놓는다.물론대화를나누는두사람의목적은사뭇다르다.미경은황노인의삶의곡절을경청함으로써자신이지금껏벼려온내면의상처와마주하려한다.황노인의개인사를통해한국전쟁이나광주대단지항쟁,한강물난리등거시적인역사의내부를더들여다보고자하는욕심도있다.그러나미경이황문자의이야기를받아적는가장중요한이유는,노인의이야기가그를설레게만들기때문이다.미경은타인의비극과절망,혹은사회적재앙앞에서공포나불안대신호기심과설렘에먼저몸부림치는인간이다.이설렘은미경을사회운동의장으로,노인복지현장으로,또황노인의실종으로데려온장본이기도하다.
소설곳곳에등장하는이‘설렘’이라는표현은,어떤독자에게는불쾌하게다가올지모른다.미경도이를알고있다.그렇기에그는자신의설렘이관조상태에머물지않게하도록현장에제몸을내던진다.“욕망은윤리보다먼저오는가.우선보고싶다.(…)나중에언제입장이바뀌어아수라장도관찰도자신이당하게되어목격한자의빚을고스란히되갚게되리라는불길한예감에도불구하고,지금의최선은‘목격’이라는냉혹하고건조한욕망이자실천이다.”황노인의실종에설레는자신을곱씹으며중얼거리는미경의이증언은소설전체를끌고가는태도를분명하게정립한다.미경은자신이나자신의설렘을부정하지않는다.숨기지도않는다.다만이정체모를떨림,요동치는감정이어디서비롯된것인지알기위해직접현장에뛰어든다.그현장이자신을상처입히거나깎아내리더라도멈추지않는다.소설의추격극은이독특한‘탐정’으로인해한결낯선결을띠게된다.

“가난한노인들은세상의부조리에자신이만든부조리까지보태징그럽게버티며수레를밀어가고있다.자잘한희망마저품지않는건노인들도미경도불가능하다.”

미경은황노인을추적하기위해그의말을들여다보고자결심한다.이결심은미경이여태껏구술로들어온황노인의삶을다시관찰하고되새김질하는과정으로이어진다.황노인의구술생애사는여기서복수의역할로작동한다.미경이이를추적의단서로이용한다면,소설은황노인의구술을자기의정체성으로끌어들인다.
황노인이쏟아부은말들은통념속‘노인’이던지는말처럼뻔하다가도,어느순간갑자기낯설고독특한지점을쏟아낸다.전자와후자모두황노인이미경에게지극히솔직한방식으로제삶을털어놓았기에만들어질수있는순간이다.황노인은미경에게자기가난의모양새가어떠했는지를,또그것이자신의내부를어떻게만들어놓았는지를이야기한다.어느순간에는마구웃음을터뜨리며,또다른순간에는눈이벌게진채울음을쏟아낸다.의지할수없던남편,자식들의생계를책임져야하는가장으로서황문자가마주했던굴곡의세월,생존을위해관계와애정에게서등을돌려야했던젊은날들까지.김미경은그가삶에배반당한독한순간이나,타인의애정과연민으로구원받은순간을공평하게듣고받아적는다.
소설이다루는이야기는황노인의삶에만국한되지않는다.미경이황문자의얘기를듣거나그를추적하는과정에서만난노인들은모두다른방식으로고난을겪어왔다.그들은녹음기를든미경앞에서자신의삶이어떤생김새인지빚어놓는다.겉보기에모두비슷하던가난은당사자의입을통해흘러나오며구체적인색을띤다.어떤가난은만질수있을듯선명해지기도한다.자식에게어떻게든보증금을물려주기위해남은삶의혜택을모두거부하고우울증에걸린노인,왜자식에게쏟은만큼자신을충분히보살피지못했는가한탄하며죽을날을기다리는노인,자식이든돈이든없어서오히려편안하다는노인까지.이들은대개가난하거나병약하며소외되어있다.
미경은그들을섣불리동정하거나판단하지않는다.대신그들과마주할때자기안에서불쑥떠오르는감정을들여다본다.왜나는이사람이가여운가,어째서불편한가.반사작용처럼발생하는감정과생각을들여다보고그원인을추적하려한다.미경은타인의비극에설레는자신을관찰하며,타인의가난에고개를돌리고싶은자신역시도조사한다.그는일상생활에서도꾸준히의심을번복하고조사를거듭하는탐정이다.


“작정하고싸울때말고는,미경은누리고사는사람들에게관심이없다.가난한노인들과의관계맺기에서미경이할수있는최선은순간순간떠오르는께름칙한판단과느낌을눌러의심하며두고두고되씹는것이다.”

한편노인들이겪어내는삶의우여곡절은필연적으로한국사회의불합리와연결되어있다.나날이고령인구가늘어나는한국사회에서,노인들은그자리에있는것만으로불편함을주는존재로취급받는다.그들은충분한경제활동을꾸리지못하며,꾸준히도움과보살핌을필요로한다.자본주의사회에서노인들은번거로운잉여다.당사자들도이사실을잘알고있다.그렇기에가난한노인들은죽음을염불처럼외며살아가고,동시에함부로끊을수없는생명을어떻게유지할까전전긍긍한다.작중미경이이야기하듯“노인이안죽어서문제가크다는것이고,그러니죽는것은필요한데죽는방식은산사람생각해서보기좋게죽으라는”세상이되어가는것이다.
미경은청결하거나쾌적한죽음의‘모양새’를위해노인들의존재를지우거나왜곡시키는세계를꾸준히노려본다.미경의응시는그자신이겪어온삶의경험들로인해더강한힘을띤다.노인복지현장에서일하며겪어온갖가지경험,그리고이에더해지는노인들의생활기록들말이다.
이런점에서본다면『황노인실종사건』은장르문학의특성을띤르포문학으로읽을수있다.작중에등장하며소설전체를이끄는황노인의실종이완연한픽션인지혹은실제기록을경유한픽션인지분명히알길은없다.확실한점은소설에서그려내는노인들의삶이오늘날한국에서노인들이겪는삶과무척가깝다는것이다.사실상소설이그려내는노인복지현장은한국의돌봄노동환경을완연히드러내고있다.그안에서언급하는제도나업무상황역시마찬가지다.여기에는오랜기간요양보호사와생활관리사로일해온작가‘최현숙’의경험이여실히들어가있다.동시에픽션속인물‘김미경’이황노인의뒤를쫓으며되새김질하는결심들은한국의노인현장이장차어떤모습으로변모해가야하는지날카롭게질문한다.
오은교문학평론가는이소설이“독거노인생활‘관리’사의입장에서도무지‘관리’될수없는생명의근기와취약성에대한이야기”를담고있노라고묘사했다.과연소설속인물들은제어할수없는생명력으로움찔거리고있다.이러한생명력은소설곳곳에다양한형태로자리잡고있다.때로는삶의곳곳을파헤치고들여다보고자하는미경의돌진으로드러나며,간혹“아무리노력해도잘되는일이없다”는말을듣더라도바득바득생계를꾸려왔더라는황노인의말로써솟아나기도한다.미경이노인들에대해품는감정과마찬가지로,생명에관한마음역시여러갈래로퍼져나갈수밖에없다.생명은종종추잡하고혐오스러우며,어느순간에는설레고또경이롭다.최현숙의구술생애사가그생명력의목소리를직접경청하고담아냈다면,이번소설은그생명력의맥락을하나씩살피고치밀하게적어내려간다.

‘나는왜가난과고난을,고통을듣고관찰하고쓰는가?아니,그전에왜쓰고싶은가?’
치열한질문과대답,그사이에서자라나는이해의가능성

『황노인실종사건』은묘한소설이다.이소설은작가자신과꼭빼닮은주인공을그려내지만,그렇다고하여자전적회고록의길로는빠지지않는다.대신에한국사회곳곳에서통상벌어지는‘노인실종’사건을장르적형태로끌어들인다.물론노인을뒤쫓는과정역시여타의추리문학과같지않다.소설의주인공이자탐정인미경은황문자의실종을그자체로낱낱이분석하고추적하는대신에그의말안으로몸을담그는방법을택한다.그로써미경은자신이왜그간황노인을비롯한이들의말을받아적으려했는지끊임없이고민한다.그에게는이토록치열한고민이야말로자신이작가로서지킬수있는최선의태도이기때문이다.
미경이받아적은황문자의말에는한국근현대사와뒤엉킨자신의삶과,그와비슷한과거를거쳐온갖은노인들의고군분투가스며들어있다.소설에등장하는노인들은미경혹은황노인을거쳐자신의이야기를털어놓는다.그들의언어로완성된이야기는현대한국에서소외된자들이어떻게삶을꾸리는지알리면서도,『황노인실종사건』이라는허구를날카롭게가다듬는다.마침내바짝날이선이소설은독자들에게재차질문한다.우리는이이야기에동참하면서어디로갈수있으며또어떤진실에다다를수있는가?소설은길이랄것도입구랄것도없는숲의한귀퉁이에서이질문을던진다.질문안쪽으로더들어가지않는다면누구도만날수없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