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한사랑의종말과
끝나지않는우정
‘사랑은답이아니다.’남편의상실을인생의수렁으로받아들여버린어머니곁에서,로맨틱한사랑에삶을제물로바쳐버린여자들의중력에짓눌려고닉은생각했다.그러나로맨스라는자아의유예를한때는그도간절히바랐다.“도무지찾을길없는진정한짝이인생의화두가됐고,그런사람의부재는모든걸정의내리는경험이됐다”.(70)삼십대중반에이미두번의결혼과이혼,몇번의강렬한연애를경험한그는진정한짝이라고생각한사람과나눈열렬한사랑과그들에대한헌신적인동일시에도불구하고사랑의종말을맞았고,“소진되고,비참했고,고독해졌다”.(이하LauraMarsh,“GivingUponLove:VivianGornickandthepursuitofanuncoupledlife”,TheNewRepublic,April24,2015참조)
『빌리지보이스』에서활동하며제2물결페미니즘에몸담은고닉은이성애로맨스와그안의권력관계를재구성하고전복하려고했다.여성이지워진세계에서사랑이란기벽이삶을빚어가도록자기를내팽개친이웃들을떠올리며,“수많은사람이자기삶이빚어지는과정을사회적차원에서설명해내며활기를되찾던,희열의순간”을살았다.현대도시여성이라는조건의인식은언제나사랑의불가능성을예감하게했다.이후당대페미니스트들의글을엮은『성차별적사회의여성WomaninSexistSociety』이나『알리마무드를찾아서InSearchofAliMahmoud』『사랑소설의종말TheEndoftheNovelofLove』등이어지는작업에서사상을가다듬고발전시켜가며,고닉은본격적으로사랑이야기의한계를말하기시작했다.마담보바리든안나카레니나든,남자를사랑하는데모든것을건여자들은감동이아닌충격을안길따름이며,새로운세상에서는자기발견의서사가펼쳐져야만한다고말하는그의관심사는이제사랑이아니라사랑없는삶이다.
『짝없는여자와도시』는기대든후회든,열병이든단념이든사랑에는복무하지않는삶을택한고닉이그런선택을실천해내며발견한것들에대한회고록이다.이책에영감을준조지기싱의소설『짝없는여자들』은세상앞에당당한지적인여성이로맨틱한감정의유혹과긴장을뿌리치고자유로운혼자가되기를선택하는이야기다.고닉은그것이결코쉽게완성되는선택이아니라는것을안다.사랑은없어도된다고말할때에도찾아드는“통제할수없는감정의위력”(191)은이론과실제의간극을극명하게드러내며그에게번번이호된시련을안긴다.
“나는굳어버린내심장을애지중지하지만,지금껏애지중지해왔지만,로맨틱한사랑의상실은여전히그것을갈기갈기찢어놓는다.”(40)
굳어버린심장은1970년대부터고닉이문학비평가이자작가로서화두로삼아온통찰의결과라고할수있다.그러나많은작품에서여성의혼자됨을그리는방식―불안정함,불완전함,위험함,처량함―과그가짝없는여자로서80년을살아내고증언하는갈등은그다지긴밀히연결되지않는다.사랑의부재보다자기의존재를훨씬더예민하게감각하는이에게는,누군가에게어떤대상이되는가보다자기를발견하고자아를발달시키는게더중요한과업이다.타인에게도자기를맡길줄알아서안정을찾고완전해지기보다,오로지자기혼자자기를도맡아서난리를피우고지긋지긋해하고애통해하면서도끊임없이자기를알아내야하는숙명에처한사람처럼.스쳐지나가는사람부터이책전반에걸쳐등장하는20년지기레너드까지고닉은언급하는모든인물에특정한존재양식을부여한다.대부분의사람이자기가누구인지안다―그정도가하도첨예해서자기불행의전문가가되었을지언정.자기를모르는사람도왜그렇게되었는지가밝혀지고만다.고닉은자기자신에게그러듯누가어떤사람인지,어쩌다그런사람이되었는지,관점을형성한동력은무엇이고남은인생을뒤흔들고통은무엇인지,어디서정신이마비됐고어떻게해야깨어나는지를타협이없는언어로끊임없이정의하고진단한다.
그런점에서고닉이“우리는하나”라고말한레너드와의우정과“관능의열병”이라고까지느낀에마와의우정은흐리멍덩함을허락하지않고도긴시간유지돼온특별한관계다.작가의분신이기도한이친구들과의관계는사랑임을부정당한채사랑의대안으로제시되는듯하다.그는안정적인가정을꾸린에마와영혼의모험을같이하며서로를알아가는희열을느끼고,동성애자인레너드와의대화에서나날의불행과그것이구성한자기내면을더또렷하게인식하는인생의위안을얻는다.고닉이자기의원본이라고한모친,대문호와알려지지않은작가들,동료예술가들,작품속등장인물,거리에서만난상인과행인,공연장의관객들과이름없는군중도작가의면면을비추며인식의순간을제공하고“서로의존재속에서자기최선의자아를느끼는”(27)풍성한관계를만들어준다.그들의총체인대도시뉴욕은고닉이포착한우정의패턴이무한히펼쳐지는장소다.
기질로서의대도시
―자기표현과자기발견의메트로폴리스
뉴욕브롱크스,가난한이주노동자들이복작거리며살아가던동네에서나고자란비비언고닉은일평생그도시를자기구성의장소로삼아왔다.노동자계층의단조로운일상,그노련하고지친영혼들의욕망과일탈과애환이깃든대도시한구석이『사나운애착』의그를길러냈다면,『짝없는여자와도시』의고닉은혈관처럼그도시구석구석에생명을공급하고그도시에생애를부여하는무수한거리의산물이다.“시골에서자라는아이들이강과들판,산과동굴을이용하는방식으로우리는거리를이용했다.그렇게우리만의세계지도에서우리위치를짚어나갔다.”(16)그렇게끊임없이뉴욕의거리를걷고또걷는그는뼛속들이도시인이고,거기서자기와세계를발견하는산보객이다.“달콤했던여름,저녁광장의아름다움”,“문화와계급이라는특권을약속하는그곳의풍경”(214),“길바닥에서들을수있는산전수전다겪은”(120)이들의언어―고닉은대도시의풍속과사건을자연의경이를체화하듯본능적으로감각하고,영혼에각인시킨다.그것은무엇보다도시가그의거울이자무대이기때문이다.
“뉴욕에있는사람은대부분인간의자기표현력에대한증거가―그것도대량으로―필요해서거기있는사람들이다.가끔씩도아니고매일필요해서.그들에게필요한게바로그거라서.감당할만한도시로떠나버리는사람들은뉴욕없이도살수있는사람들이지만,뉴욕에발을붙이고있는사람들은뉴욕없인못사는사람들이다.아니면뉴욕없이못사는건나라고말하는게더맞을지도.”(278-279)
자기발견을갈망하는이는,자기를발견할수있게해주는타인을찾아헤맬수밖에없다.그것은본받고싶은사람,선망하는삶따위와전혀무관한생긴대로의자아,되는대로의일상속에있다.그렇게온갖인간군상과갖은삶의방식이적나라하게펼쳐져있는뉴욕의거리가그에게중요해진다.거리에는우리가찾고싶은사람이있고,우리를찾아내는사람이있다.
대도시거리를정처없이거니는사람,산보객flaneur이란개념을가져와고닉이도모하는것은창조성이다.“미래의작가로변신할사람은바로산보객”(107)이라는보들레르의말처럼,군중은그안에서자기와세계를발견하려는작가의창조성에숨은인물로각인되어있다.
비비언고닉이거리에서마주치는사람,목격하는장면은작가자신처럼미혹을용납하지않으며,사는게뭔지를신랄하게실증하는인물과사건이다.온갖수완을몸으로익히고거리에서살아남은걸인,생활과환경에갇힌어린아이들의왕성한호기심과지적굶주림,불만과결핍이존재의방식이된인생들,예술로승화된실패,결국엔자기를잃어가는이와마침내자기와하나가되는이…….고닉은“이곳을기쁨으로가득채우려면우리모두가필요하다”(218)고말한다.기대와실망,구속과탈주로동요하는도시는작가에게그가“지금까지몸으로살아낸것이온갖갈등이지환상이아니었”(215)음을일깨워준다.뉴욕과자기는하나라는작가의선언은도시도바로그방식으로―환상이아닌갈등으로―그토록화려하게건재해왔음을우리에게상기시킨다.도시는안정과행복의약속을가장하는환상이아니라,불안과분투의아수라장이라는진실로우리를매혹한다.
비비언고닉선집
사나운애착TheOddWomanandtheCity
1987년처음발표되어‘지난50년간최고의회고록’‘20세기100대논픽션’등으로꼽혔다.여성,유대인,도시하층민으로뉴욕에서나고자란작가의‘정신의삶’을깊은통찰에서나온신랄한문체로기억하고풀어내는이작품은작가의자아형성에강렬한영향을미친사람들,그들과의관계에서벌이는기나긴자기투쟁,특히노동자계급으로가부장제에헌신하느라자기삶이란것을살아보지못한,그러나그사실을때로는어렴풋하게때로는날카롭게직감하는현명하고강인한어머니와의끈질기고지독한관계를통렬하게기록해낸다.
끝나지않은일:만성재독서가의노트UnfinishedBusiness:NotesofaChronicRe-Reader(근간)
“그때부터였던것같다.다시읽기를시작한게.내가무엇을살아냈는지,그리고그것을무엇으로이해했는지알아내려고그렇게책장을넘기고또넘겼다.”지난날중요했던책들을다시읽으며기억은재구성되고,당연하던것들은질문이되어의미를발굴해낸다.만성재독서가를자처하는고닉은과거에받아들일수있었던딱그만큼의세계와재회하며새로운삶을시작하고,자기를알아간다는일생의사명을완수해가는기쁨을증언한다.
추천사
『짝없는여자와도시』는희망이든후회든,탐닉이든단념이든,그어느쪽이든사랑에는복무하지않는삶을살아가는일에관한글이다.이제고닉의관심사는사랑이야기의한계가됐다.…다른세상에서는자기발견의이야기가펼쳐져야만했다.로맨스를완전히뺀,고닉의가장야심찬시도다._로라마시,『뉴리퍼블릭』
날카롭고서슴없는지성의목소리.…이책에는고닉의지칠줄모르는지적호기심,그리고평생살아있음,깨어있음에대한보상이되어주었던뉴욕이라는도시와의관계가오롯이담겨있다._미샤버슨,『시애틀타임스』
고닉은우정을다루는데있어최고의작가다.특히예상치못했기에때로는연인과의이별보다더큰고통으로다가오는,오래된우정의연이끊어져버리는순간을섬세하게그려낸다._드와이트가너,『뉴욕타임스』
최고의책은최고의친구나그런친구가보낸최고의이메일처럼,가장친밀하고도가장편안한대화처럼우리에게이해받았다는느낌을준다.…『짝없는여자와도시』는존재하는법에관한지침서로손색이없는작품이다._캐서린테일러,『로스앤젤레스타임스리뷰오브북스』
날카로운시선으로관찰한짧은기록들이만들어낸서사._『뉴요커』
감정을다루는노련한솜씨로밀려나고흘러가는관계를탐색한다._젠필즈,『덴버포스트』
“고닉은놀랍고독보적인예술가다.”_웬디김벨,『네이션』
“우리는비비언고닉―그의대담함,섬세한정신,유머,인내와결단력―과사랑에빠진다.”_『버팔로뉴스』
“비비언고닉은수많은작품이쏟아지는치열한장르인자전적에세이와회고록분야에서대사大使와도같은존재다.”_에밀리스토크스,『뉴욕타임스북리뷰』
“무의미한고백적글쓰기가난무하는시대에,고닉은목적이분명한자전적내러티브의정수를보여주는대가로남아있다.”_이사벨라비덴한,『엔터테인먼트위클리』
“우리시대의문화적사건이일어나는순간가장중요하고도필수적인작가.”_필립로페이트
“고닉을읽는다는건스릴넘치고,활력있고,도전적인경험이다.”_바버라피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