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 이탈 :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와 어느 유가족의 분투 - 걸작 논픽션 25

궤도 이탈 :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와 어느 유가족의 분투 - 걸작 논픽션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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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마쓰모토하지무

1970년오사카에서태어나도시샤대학을졸업했고,프리랜서작가로활동중이다.선풍적인기를끌던우파정치인하시모토도루를스타정치인으로만든언론을다룬책『누가‘하시모토도루’를만들었는가』를써서일본저널리스트회의상을수상했다.이책『궤도이탈』이다루는서일본여객철도의탈선사고를취재할당시에는고베신문기자였다.그는아사노야사카즈라는유가족개인과JR이라는조직을오가며사고를파고드는동시에효고현남부와일본현대사를통해사고의배경을풀어냄으로써일본저널리즘의역사에남을작품을써냈다.이를인정받아2019년고단샤논픽션상을수상했다.그외의저서로『열심히살았던일본인』『두개의지진:‘1.17’의고베에서‘3.11’의도호쿠로』(공저)등이있다.

목차

추천사
프롤로그_2016.4.25

제1부사고가앗아간것

제1장상실
파란하늘의벚꽃|우연의연속|40시간만의대면|아내의빈자리|장례식|고독과자포자기|유가족의사회적책임
제2장연대
기술자의원점|“당하는쪽”의논리|지진복구의나날|유가족의연대|극한의협상|할말은하는유가족|맹세의수기
제3장추적
들통난‘낙하산’인사|2차피해|오만불손한변명|잘못된인간관,왜곡된안전의식|최종보고서1:허위보고|최종보고서2:일근교육|최종보고서3:조직문화

제2부조직문화란무엇인가

제4장독재
JR서일본의천황|국철개혁삼인방|‘성장’과‘안전’|시가라키고원철도사고1:후쿠치야마선사고의원점|시가라키고원철도사고2:반성없는태도|지진복구의‘야전’
제5장혼란
위원장의제안|사장인사의내막|‘운전직’의내력|현장을중시한안전전문가|세개의기둥과세개의벽|두기술자|그날밤의약속
제6장격동
정보유출과은폐공작|가장큰실수|조직의잘못인가,개인의잘못인가|대화상대|사법의한계:야마자키사장재판|독재자의변명:3사장재판|이데마사타카인터뷰1:‘천황’의심경|이데마사타카인터뷰2:통치자의시선

제3부안전을위한싸움

제7장대화
과제검토회1:하나의테이블|과제검토회2:2.5인칭시점|안전팔로업회의1:조직을가시화하다|안전팔로업회의2:사람은실수를하기마련이다|만감이교차한발표|어느술자리에서
제8장궤도
철도안전고동관|안전투자|처벌하지않겠다는발상|사고의전조를알아차리다|심각한인시던트|현장의능력저하|현대사의두궤도

에필로그_한사람의유가족으로서
저자후기
보론:사고를마음에새기며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한유가족의시선에서바라보다
당하는쪽에서지는사회적책무란무엇인가

“서일본여객철도주식회사(JR서일본)의다카라즈카발도시샤마에행쾌속제5418M열차(7량편성)는2005년4월25일(월)9시16분10초경이타미역을출발,이나데라역을통과한후쓰카구치역을9시18분22초경통과했다.그후열차는메이신고속도로남쪽에있는반경304미터의곡선을주행중,제1량이9시18분54초경왼쪽으로쓰러지면서탈선,이후제2~5량도탈선한뒤제7량이9시19분04초에정지했다.
제1량은왼쪽으로쓰러졌고,앞부분은선로동쪽에있는아파트1층의기계식주차장안쪽벽과충돌,뒤쪽아랫부분은아파트서북쪽기둥에충돌했다.또한제2량은중앙좌측면이제1량뒷부분을사이에두고아파트서북쪽기둥에,뒤쪽좌측면이동북쪽기둥에충돌했다.제3량은앞쪽바퀴두개가왼쪽으로,뒤쪽바퀴두개가오른쪽으로,제4량은네바퀴가오른쪽으로,제5량은앞쪽바퀴두개가왼쪽으로,뒤쪽바퀴두개가선로에서벗어나탈선했다.제6량과제7량은탈선하지않았다.
이사고로107명이사망하고,562명이부상했다.이사고는운전사의브레이크사용이늦었던탓에열차가제한속도를크게벗어나면서탈선한것이원인으로추정된다.운전사의브레이크사용이지연된이유는허위보고를요청한차내전화가끊기고난뒤,차장및관제사와의무선에유난히신경을곤두세웠던점,일근日勤교육을받게될것을우려하며변명을생각하고있었던점으로인해운전에대한주의가소홀했던것으로보인다.”

위내용은일본국토교통부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사고로부터2년2개월후에공개한보고서첫머리에기록된개요다.보고서는243쪽에이르러서야비로소그원인을기술하는데,그마저열두줄에불과했다.이사회적참사를낸가해기업은사고원인을운전사의부주의탓으로돌렸고,사고에대한책임회피를보이면서보고서문장역시건조하게썼다.
저자마쓰모토는이최악의참사를아사노야사카즈라는한유가족의시선에서바라보았다.‘아사노는사고를어떻게받아들이고,무엇에분노와의문,부조리를느꼈으며,어디에원인이있다고생각했는가.가해기업인JR과어떻게마주했으며,이거대한조직의어디에서문제를발견해추궁했는가.이로써무엇을움직이고바꾸려했는가.나아가사고를둘러싼언론보도와사회의반응은그의눈에어떻게비쳤는가.’즉그는사고의전체적인그림을객관적으로조감해서그리기보다는아사노개인의필터를통해여러현상을보았다.그의뒤에서서,그의어깨너머로.
아사노의언행은기존의재해유가족들과는크게달랐다.가족을잃은억울함과슬픔,가해기업에대한분노,원인규명과책임추궁면에서는여느유가족과같았지만,그가하는말은때로난해했고,가해기업JR에대한태도는날카로우면서도유연하고때로부드럽기까지했다.그는감정에만휩싸여있지않았다.아사노는도시계획컨설턴트로서고베대지진이후도시재생에깊이관여해왔던인물이기에기술자로서의면모를유감없이발휘해유가족이된상황에서도사고원인의과학적규명과재발방지에대한시스템적개선을철저히관철시켜나간다.핵심은그가작성한“사고원인4항목”으로,JR과두고두고대치하며조직적·구조적요인을밝히라고요구한다.4항목이란징벌적인일근교육,여유가없는철도시간표편성,ATS-P(자동열차정지장치의새버전)미설치,회사전체의안전관리체계미비였다.
아사노는이런말을했다.“사고를교훈으로삼아JR은자기네가일으킨사고를진지하게반성하고원인을검증해야한다.그리고그결과를유가족과피해자들에게제대로설명할책임이있다.그것을요구하는게우리유가족들의사명,사회적책임이라고생각한다.”그는일방적으로가족을빼앗기고절망의구렁텅이에서허우적거리는유가족에게‘사회적책임’이있다고발언했다.다시말해,사고를사회전체의문제로생각해야한다며“사고의사회화”에매달린다.

대부분의사고는구조와조직의문제다

매해4월25일엔열차사고유가족과희생자,가해기업,시민들이모여추모행사를연다.하지만몇년이지나도‘JR서일본의천황’이라불리는이데마사타카는나타나지않았다(그는철도민영화를주도했는데,이사고의원인상당부분은국철의민영화에서비롯되기도했다.운전사들이실적과속도에대한압박을받았기때문이다).사고를일으킨한조직의문화를이끄는이데에게유가족들은수차례면담을요청했지만그는재판외의공식석상에나타나거나언론취재에응한적도거의없다.
이데를비롯한‘국철일가’의강렬한엘리트의식과그로인해스스로의잘못을결코인정하지않으며부하직원들의실수도용납하지않는‘무오류주의’.그견고한조직의논리에아사노는사고이후10여년간모든것을걸고도전했다.그리고마침내단단한바위에구멍을뚫었다.
그건어떻게가능했을까?아사노는감정적이기보다이성적·논리적이다.그는아내와여동생에대한애통한심정은일단미뤄둔채가해기업사장인야마자키에게다음과같이말하며사고원인에대한공동검증을제안했다.“이건과학기술논쟁이다.감정론이아니다.감정론만얘기하다보면안전으로의길은열리지않는다.”
즉피해자와가해자의입장을뛰어넘어,어떤이유로이런사고가났는가라는문제에초점을맞춰이야기나누는게가장중요하다고생각했다.실제로대화를나눠보니견해차가커서보고서는양쪽이야기를다기록하게됐는데,어쨌거나이렇게만들어진공통된인식은추후의회의들에서논의진행의토대가되었다.
사고의조직적구조를분명히밝히겠다는아사노의시도는일본에서거의처음있는일이었다.그는실수의원인이현장에만있지않다고보고회사의경영이념,경영진의안전의식,지휘계통과관리방식,직원교육과개개인의책임감등얽혀든여러요인을밝히고개선하도록촉구했다.
“눈에보이지않는부분에근본원인이있다.그것을파헤쳐야만사고를사회화할수있다.사고의사회화가이뤄지지않으면유가족으로서의내책임은끝나지않는다고생각한다.이보고서에는과학적관점과논리가있고,윤리가있다.이시도가사회적으로받아들여져야만우리의노력은결실을맺을수있으리라생각한다.”
2014년4월25일,후쿠치야마선탈선사고로부터꼬박9년째되는날열린‘4.25네트워크’모임에서한아사노의발언이다.사고이듬해부터매년아사노가중심이되어기획하고,안전문제연구자와전문가를초빙해그사고로부터배울점을생각하며발표하는자리였다.그런그의발언에는과학기술의사명,유가족으로서의책임,문제를사회화하는관점,확률론에대한반론,안전과경영의양립등한사람의철학이농축되어있었다.

10년에걸친유가족아사노의분투도대단하지만,저자의오랜취재과정역시인상적이다.책에나오듯이,저자는언론에얼굴을비추는법이없는‘철도계의천황’이데의인터뷰를이끌어내고,JR서일본전현직사장들을취재해그조직의실체를낱낱이드러낸다.그들중엔철면피도있고,꽤나인간적인사장도있었다.게다가저자는처음에인터뷰에응하지않았던아사노와의거리도끝내좁혀그의일거수일투족을쫓을뿐아니라마음까지읽어낸다.이로써사고후15년이지나우직할정도로하나의목표만좇았던아사노야사카즈의궤도는서서히종착역을향해달려가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