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1900년

부다페스트 1900년

$22.22
Description
세기말 빈과 어깨를 나란히 한 자신감 넘쳤던 부다페스트
색채, 취향, 소리, 말씨, 심정적 분위기까지 절정에 달했던 도시
역사가 존 루카스가 비할 데 없는 문명의 초상화로 그려내다
1900년의 부다페스트는 우리를 끌어당긴다. 1900년의 빈과 파리처럼. 부다페스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햇빛 찬란한 정오의 도시였고 빈과 쌍둥이 형제였다. 『부다페스트 1900년』은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역사가 중 한 명”이라 불린 존 루카스가 헝가리 역사의 최절정기인 1900년을 단면으로 잘라내 쓴 것으로 뛰어난 문학성과 서정성을 발휘한다. 이 책은 한 도시에 대한 회고록이다. 회고는 흔히 향수를 자극하지만, 감상에 머무는 것은 헝가리인들의 특성도 아니고 루카스의 특성도 아니어서 책은 이를 뛰어넘는 통찰력과 도시(민) 관찰, 분석력을 보여준다.
1900년에 부다페스트는 유럽에서 가장 젊은 대도시였다. 25년 동안 인구는 세 배, 건물은 두 배로 늘어났다. 서정성 짙은 민족이었지만 그럼에도 부다페스트인들은 19세기의 사고방식, 태도, 말투로부터 빈 사람들보다 더 빨리 벗어나는 중이었고, 정치와 의회 영역에서도 새로운 양식, 태도, 표현이 등장했다.
저자는 이 도시의 면모를 하나씩 분해해나간다. 그 방식은 좀 엄격한데, 즉 1900년을 기점으로 도시의 물리적·물질적 상황, 사람, 정치, 예술과 지적 삶, 정신의 성향을 차례로 다룬다. 이 도시는 이중적 성격이 짙어 분석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부다페스트 태생이면서 훗날 미국으로 건너가 역사학자로서 연구했던 만큼 그는 모국과 멀고도 가까운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부다페스트에는 세련된 도시 감성과 거친 지방성이 공존했다. 또 헝가리적이면서 세계주의적인 정교함이 동시에 빛을 발했다. 루카스는 다시없을 그 운 좋았던 시기에 켜켜이 쌓인 자갈 속에서 희귀한 금속들을 건져내는 방식으로 이 책을 쓴다. 읽다보면 앞 단락의 분석을 뒤엎는 방식으로 뒤 서술이 이어져 동시대 속에서도 부다페스트는 앞뒤 얼굴이 다르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그 도시의 특성이었고, 저자는 누구보다 그 특징을 잘 포착해낸다.
저자

존루카스

부다페스트출생.어머니가영국과영국문화에호의적인시각을지녀영국기숙학교를다녔고,유대인인어머니에의해가톨릭신자로자라났다.그덕분에어린시절모국어인헝가리어뿐만아니라,당시헝가리인이손쉽게공부할수있었던독일어,그리고미래에귀중한언어적자산이될영어를완벽하게공부했다.
제2차세계대전이끝난후1946년봄,루카스는부다페스트대학에서유럽외교사박사학위를받았다.이때쯤이미그는헝가리에소련의꼭두각시정권이수립될것이라고확신했다.이에따라미국인친구들의도움을받아1946년여름미국으로이주했다.
필라델피아에정착해체스트넛힐칼리지에서역사학교수직을얻었고,여러대학에서교수직을제안받았으나1993년은퇴할때까지그곳에서학생들을가르쳤다.컬럼비아대학,존스홉킨스대학,터프츠대학,프린스턴대학,펜실베이니아대학,프랑스의툴루즈대학에서초빙교수나객원교수로서가르쳤고,1992년에는부다페스트대학ELTE에서초빙교수직을역임했다.
루카스는역사란쉽게가르쳐야하고이해되어야한다는강한믿음을지녔다.즉역사가들만의학문적소통도구가되는것을반대했으며,전문적인학자들의용어보다는일상용어로가르치고생각하게하는것이중요하다는입장을견지했다.
저서로『열강과동유럽』『냉전의역사』『유럽의쇠퇴와발흥』『역사의식또는기억된과거』『현대의소멸』『마지막유럽전쟁』『1945년:원년』『필라델피아:귀족과속물,1900~1950』『거대해진민주주의:20세기미국의역사』『원죄인의고백』『대결:1940년5월10일~7월31일,처칠과히틀러의80일간의투쟁』『20세기의끝과현대의끝』『목적지는과거』『세월의실타래』『런던의5일,1940년5월』『처칠:몽상가,정치가,역사가』『한시대의끝에서』『민주주의와포퓰리즘』『기억된과거』『1941년6월:히틀러와스탈린』『조지케넌:인물탐구』『피,고생,눈물,땀:긴박한경고』『마지막의례』『제2차세계대전의유산』『역사의미래』『우주의중심에있는우리』등이있다.

목차

머리말

1장색채,말씨,소리
2장도시
3장사람
4장정치와권력
5장1900년세대
6장불행의씨앗
7장그이후

감사의말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부다페스트인의이중적속성:빛과어둠

이책은빛나는1900년을묘사하기위해가장어두운색조로문을연다.바로그해5월에치러졌던화가문카치미하이의장례식장면이다.향과몰약이미풍에흩날리고중세스타일로장식된영구차를여섯마리의검정말이끌었다.예식은국장國葬으로치러질만큼문카치는위엄있고프랑스에서도이름을날렸지만,이장면이첫페이지에등장한것은그런이유에서가아니다.루카스는그의세계적명성에서진정한가치를찾기어렵다며오히려화가시네이메르셰팔에게조명을비춘다.즉이전세대의부고를들은독자들은환한1900년으로진입할수있다.메르셰팔은앞세대를넘어설만한기량을지녔고,그것은헝가리적인것이기도했다.이런식의날카로운선별작업은저자가책속에서헝가리의문학,예술,역사,정치등을아우르는가운데계속들이대는기준이다.

시점은1900년경으로정해졌으니이제도시의지리적·공간적특징을살펴보자.부다페스트의가장좋은점은무엇보다그위치다.이곳은거대한도나우강이한가운데로흐르는유일한대도시였다.부다페스트에서북쪽으로40킬로미터떨어진지점에서도나우강은남쪽으로방향을틀어곧장굽이쳤다.도나우강이굽은곳은강과언덕과땅의비율이절묘해화가들이천국처럼여겼고,강굽이사이로나타나는푸른회색빛대기에도시의전경이단숨에드러났다.1900년에부다는3개구역,페스트는7개구역으로형성돼있었다.1900년경파리나베를린이시골의특성을잃은채매연낀도시였던반면,부다페스트는국제성과지방성이혼종된다른매력을발하고있었다.

1900년의부다페스트는사회적유동성이높아사람들은이곳으로저절로끌어당겨졌다.다만유동성은늘불안감을동반하기에,사람들마음속엔전통에대한존중부터질투로맥박이뛰는시기심그리고이두감정이뒤죽박죽된심리까지섞여들어있었다.도시의이중성은여기저기산재해있었다.많은면에서자유주의적이었지만사회민주주의적요소도점점섞여들었고,부르주아문화는봉건적요소를간직하고있었으며,도시적요소에시골의특징이포함돼있었고,빠른변화속에서도사람들은안정을갈구했다.더욱이저자는눈에띄진않지만19세기를지배했던감정,즉“존경받고자하는욕망이모든계층에만연했다는점을간과해선안된다”고강조한다.다시말해부다페스트의노동자들은도시부르주아들의습관과삶의방식을모방할뿐아니라이것을실제로받아들이는것이가능했다.

저자루카스는도시를들여다보면서동시에부다페스트인들의마음을꿰뚫어본다.현대도시의물적기반은그도시인들의정신을지배하기도하고,거꾸로그정신이도시를창조하기도한다.저자는헝가리인의언어습관을뛰어나게분석하는데이역시피와독이된다.독백의경향이강한헝가리인들은“대화의부재로처참한정치적결과를불러일으켰다”.다시말해그들은수사학에도취되는경향이있었고,이것은치명적인자기중심주의경향을만들어냈다.또이민족에게지배적인감정은비관주의였다.하지만비관주의속에서분별없이배태된낙관주의로인해헝가리시문학은순진무구함의매력을발산했다.저자의분석은한발더나아간다.“이런식의낙관주의는후속세대가저지르게될수많은엄청난정치적실수의예비작업이었다.”

한국민의마음상태를이렇듯자신있게분석하는것은쉽지않다.그런데루카스는1867년의‘대타협’으로탄생한오스트리아-헝가리이중제국의문제를심도있게분석하면서그국민의속마음을다음과같이읽어낸다.“그마음상태는허세와낙관으로가득차있었지만,동시에의심과질투로괴로워했다.”

1900년세대와부다페스트적기질

저자는1900년을분석하면서“1900년세대”라는용어를정의한다.우선이세대는1900년을전후해형성된일단의무리를뜻한다.다만이시기보다몇년늦게태어났지만여전히그시대의문화적분위기속에서자라난사람들,1875년부터1905년사이에태어나눈에띄고독특하며크게성과를냈던이들도포함된다.

이들에겐몇가지공통점이있었다.헝가리학교들이높은수준에이르렀던1880년대와1890년대에학생이었고,감상적인헝가리스타일과수사학을떨치려는의지가확고했다.특이하고새로웠던기민성도이들의공통점이었다.낡은관습과편협한전통에서벗어나려했던이들작가,화가,작곡가,철학자,과학자등은더도시적이고세계적인것을목표로삼았다.물론다른한쪽에는현대의세례를받으면서도도시화·세계화문명에별로관심없는사람들이있었다.그들은헝가리시골의민속문화에깊이침잠하거나거기에감춰진표정을희구함으로써자연에서영감을얻고자신만의표현법을창조하려했다(이들이창조한세계가보편성이덜한것은결코아니었다).그외에헝가리바깥으로부터거의영향을받지않으면서완전히새로운방식으로헝가리를거시적으로표현하려던사람들도있었으니,극작가몰나르페렌츠,작곡가버르토크벨러,작가크루디줄러다.

저자는특히크루디줄러를파고든다.그는크루디에대해“그의진미珍味는항상그의마음속에신선하고준비된상태로보존되어있었다”며격찬한다.크루디는다른나라언어로번역된작품이거의없지만,가장위대한헝가리작가중한명이다.번역이안된이유는크루디의기억과상상력에쌓인정신적토양때문으로,그의글은헝가리의사물·장소·시간에관한암시로가득차있다.게다가그의산문은느린첼로곡처럼오르내리는서정적빛깔때문에다른언어로구현하기가거의불가능하다.어디엔드레역시루카스의시선을사로잡는다.그는한동안1900년세대의주인공으로,“번개의섬광”같은인물이었다.평범했던이시인은1906년갑자기언어와시각이폭발했다.새로운단어,새로운직유와은유,새로운운율과박자가그에게서쏟아져나왔다.그것은새로운소리를만들어냈는데,깊고울퉁불퉁하며운율이있고쓰라린헝가리다운것이었다.루카스는그를단한마디로압축한다.“그는존재그자체였다.”

저자에따르면1900년세대에게는두가지새로운특징이있었다.첫째,수학에서시에이르기까지그들의재능은광범위하게펼쳐졌다.둘째,헝가리역사상처음으로1900년세대는본질적으로부다페스트세대였다.특히1900년의부다페스트에대해얘기할때논쟁의여지가없는것은문학과책에대한존중,학문적·직업적성취에대한존중,재능있는아마추어들의창의성에대한존중이넘쳐흘렀다는점이다.저자는이특징이1900년그도시에서완벽하게균형을이뤘던것을간파해낸다.나아가‘부다페스트기질’이란것도밝혀낸다.그것은빠른결정력,놀라운다재다능함,삶의즐거움에대한욕구로,독일적특징과대비되는것이었다.

1900년신구세대의시각차는사실문학보다회화쪽에서훨씬더뚜렷했다.신세대의공통점은뭐였을까?이세대는색채감이두드러졌다.이들은구름뭉치아래에시원하게펼쳐진풍경을묘사하는데탁월했다.헝가리화가들의특이점은그시절시골로갔다는것인데,이는유럽다른지역화가들이자석처럼수도로이끌렸던것과완전히대비됐다.가령1895년홀로시시몬은젊은동료와학생들을데리고뮌헨을떠나헝가리동부의작은마을너지바녀에정착했고,50여명의화가와함께살았다.1899년과1901년에는각각괴될뢰와솔노크에화가들의촌락이형성됐다.이런선택은보헤미안적인자유분방함과는전혀다른것으로,그들의삶은마치워크숍같았다.시골로의낙향은이들이민족주의적인것을추구했다는뜻이아니며오히려그반대였는데,이화가들모두선배세대가주제로삼던감성적역사나민족주의를회피했기때문이다.자연을보는그들의눈에는좀더깊은헝가리적인무언가가있었다.

새로운세대는1906년경헝가리음악,그림,산문,시분야에서전통과기존형식을깨뜨리고언어,색채,소리에서헝가리다운영감을찾아내며혁명을이뤄냈다.저자는두가지요소로이우연성을설명한다.하나는헝가리예술계의변화에있어부다페스트가맡았던중심적역할이다.화가들은너지바녀에서작업했고,버르토크와코다이는트란실바니아의깊은계곡마을을휘젓고다녔지만,토론하고전시하고공연한곳은바로부다페스트였다.다른하나는헝가리역사상처음으로이런예술을받아들이고소비할대중이부다페스트에존재했다는점이다.한세대전만해도페스트에오페라극장과교향악단은하나도없었고서점몇곳과미술중계상몇명이있을따름이었다.1900년경이모든것은바뀌었다.다른유럽수도에서와마찬가지로부다페스트의부르주아들은문학명사들뿐아니라배우,음악가,작곡가,가수,화가,조각가등을받아들이고열렬하게추종했다.

이책은욕망이흘러넘쳤던1900년의부다페스트를그려낸다.하지만그욕망은슬픔과자매였다.즉이도시의시끌벅적함아래로는애잔하고우울한색조가흘렀다.이도시는장조와단조의뒤섞임,낙관주의와비관주의의공존,빛과어둠의혼합이지배했는데,이것은부다페스트인들에게피할수없는조건처럼주어졌다.

1900년빈은신경과민상태였지만,부다페스트는그렇지않았다.이도시의삶에는많은어려움,불만,그림자,어둠이있었지만아직과거와결별하려는명확한의지나미래에대한자의식강한의심은없었다.헝가리인의어조는종종우울했지만,말씨와소리와색채와맛과촉감의물질적즐거움을포함한삶의욕구는풍부했다.당시부다페스트의에로틱한삶역시빈의그것보다덜신경질적이었는데,남녀관계에관한여러문헌에서이런점은꽤명백히나타난다.이책은바로이러한이도시의1900년경초상,분위기,거기살던사람들,그들의성취와고전을뛰어난예술적기교로그려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