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역자: 전쟁, 기만, 생존

부역자: 전쟁, 기만,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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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제2차 세계대전, 권력을 도운 부역자들의 생을 추적!
이 책은 역사가 가진 힘과 신빙성에 대한 검증이다
하인리히 힘러에게 없어서는 안 됐던 개인 마사지사 케르스텐
중국에서 일본 비밀경찰을 위해 스파이가 된 만주족 공주 요시코
동료 유대인들을 독일 비밀경찰에 팔아넘긴 네덜란드의 하시드 유대인 바인레프


선악의 비중을 따져보고 도덕의 질량을 측정할 것

여기 범상치 않은 세 명의 인물이 있다.

체격이 좋은 데다 늘 사는 게 즐거운 마사지사 펠릭스 케르스텐.
자그마한 체구에 남장을 하고 다닌 청나라 공주 아이신줴뤄 셴위(가와시마 요시코).
절멸수용소로 갈 유대인들에게 목숨 값으로 돈을 뜯어낸 유대인 바인레프.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을 남다르게 관통한 세 사람의 삶을 추적하는 일종의 전기다. 세 사람은 독일어로 ‘호흐슈타플러Hochstapler’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사기꾼, 허풍쟁이, 협잡꾼쯤으로 번역되는 호흐슈타플러는 부역자나 저항자에 딱 들어맞지 않고 강한 도덕적 질타를 불러일으키면서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모순투성이 삶을 산 이들이다. 저자는 이들을 통해 역사를 다시 읽어보자고 제안한다. 그러면 더욱 도덕의 질량을 세밀히 측정할 수 있고, 사람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선악의 비중을 각각 따져보게 되며, 역사에서 사실만큼 허구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왜 이 셋을 선택했을까? 전쟁 시기에 일어나는 부역과 저항의 행위들은 선악이라는 도덕적 서사에 딱 부합하지 않는다. 악한 일이 선한 의도로 행해질 수 있고, 악한 사람이 간혹 선한 일을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케르스텐은 유대인 살해 계획을 세운 힘러의 몸과 마음을 보살폈지만, 훗날 유대인 구출을 돕는 일도 했다. 셋 중 누구도 완전히 타락한 존재는 아니었고, 이런 특징은 오늘날 공공 영역에서 활약하는 이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저자는 우리 자신을 성인보다는 죄인으로 상상하는 게 더 쉽지 않냐며, 이 세 명에 대입해봄으로써 부역의 문제를 반추해보자고 말한다.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이 책은 삶의 복잡성을, 윤리의 다면성을 최대한 넓게 펼쳐서 보여준다. 거기엔 변곡점들이 있다. 도덕적 인물이 되거나 혹은 체제에 순응하거나. 이 책의 전개 방식은 독일과 네덜란드,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세 사람의 행로를 동시간대로 나란히 펼치는 식이다. 부역자, 협잡꾼, 스파이, 증언자 이 모두가 혼합된 인물들은 국경을 넘나들며 역사를 꽤나 흔들었다. 독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가짜 뉴스나 증언에 휘둘리지 않고, 역사관과 사실 분별 능력을 발휘해 믿을 만한 증언을 가려내기, 절박함에서 나온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기, 인간적인 이해심은 갖되 윤리적 느슨함으로 일관하지 않기 등이다.
저자

이안부루마

IanBuruma
국제적으로명성이높은아시아연구자,저술가,저널리스트다.1951년헤이그에서네덜란드인아버지와영국인어머니사이에서태어났다.레이던대학에서중국문학과역사를전공했으며,니혼대학에서일본영화를공부한뒤중국문화,20세기일본사등아시아에대해전문적인연구와저술활동을해왔다.홍콩의『파이스턴이코노믹리뷰』문화담당편집자,런던의『스펙테이터』해외담당편집자로근무했으며2003년부터뉴욕바드칼리지의민주주의·인권·저널리즘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프롤로그

제1장:실낙원
제2장:타국
제3장:기적
제4장:값싸고거짓된세월
제5장:선을넘다
제6장:아름다운이야기
제7장:사냥파티
제8장:엔드게임
제9장:최후
제10장:여파

에필로그
감사의말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케르스텐:나치수장을도운그는나치주의자였을까

펠릭스케르스텐.그는나치친위대SS의수장힘러의개인마사지사였다.즉인종학살을자행한힘러의몸과마음을양손을사용해돌봤다.이발사나궁중의광대처럼마사지사도권력자의심복이될수있다.권력자들은흔히만성두통,불면증,위경련등심리적스트레스에서비롯된질환을겪는데,마사지사는그고통을덜어줄수있기때문이다.케르스텐스스로“시술하면서나는지도자급에있는이들의신뢰를얻었다”고말했다.그는나치체제에기꺼이적응하면서“행복을폭식”했던인물이다.
하지만전쟁말기독일의패색이짙어지자케르스텐은살길을도모해진영을바꿨다.즉어느정도위험을감수하면서까지그는수천명의유대인을수용소에서구해내는일을해냈다.일각에서는그가돈벌이목적으로이런일을했다고주장했으나,저자는그럴지언정그에게일말의인간적품위도없었다고단정할순없다고말한다.전쟁이끝나면힘러의마사지사란타이틀이위협이될줄알았던그는유대인에게도움을주는방식으로움직였고,심지어힘러를설득해다른수감자들을석방시키려는위험한시도까지했던것이다.즉케르스텐은사람들을노예처럼부리며끔찍한조건에서죽어가도록놔두는부류의인간은아니었다.
이런양면성을가진케르스텐을어떻게평가해야할까?저자는“나치수장을마사지했다고해서그것이곧전쟁범죄는아니지만,그는틀림없는나치부역자였다”고본다.그는나치주의자가아니었다(그는정치에관심이없었다).하지만그런계층의인간들을섬기는신하였다.그계층이전부나치주의자는아니었다해도히틀러의제국에잘적응했던사람들이다.기업인과사업가,교수와의사,외교관과관료들.이들이전후민주주의사회에서도효율적으로복무하곤했던것처럼케르스텐은전후에입장을뒤집으면서도결코히틀러시절동료들과의인연은끊지않았다.그들에게여전히마사지를제공하고그들의돈이나힘에기대곤했다.따라서그의선과악은우리의세밀한도덕적의식과평가에따라그무게와양상이달라질수있다.

요시코:조각조각분열된스파이

나치아래서연줄을이용해케르스텐이안락한삶을누리던시기에,동양에서는요시코라는인물이사람들입에오르내렸다.요시코는이책이다루는인물들가운데가장극적인삶을보여준다.그건가장굴곡진삶을살았다는뜻이면서동시에연극배우처럼살았다는의미이기도하다.만주족공주였던그녀는아버지가일본인에게수양딸로보내자일본과중국을오가는삶을살게된다.요시코는남장복장을하는크로스드레서였고,남자/여자와모두연인관계를맺으면서이사실로신문지상을달구었다.일본육군장교다나카류키치와변태적인관계를유지하면서스파이활동을하고,지즈코라는일본여성에게“내아름다운아내”라고부르며자신을시중들게했다.게다가그녀는일본인들이무뢰배라면서그들의실패한정책을입에올리다가입장을바꿔새로운아시아를건설하려는그들의노력을영웅적행동이라고치켜세우는등양극단을오가는버릇이있었다.중국남성용장삼이나혹은일본여성용기모노차림으로만주국의인종화합을설파하는것은그녀가보인퍼포먼스중하나였다.그리고그퍼포먼스는중일우호라는명분아래펼쳐진일본의호전적인전략들을홍보했다.
요시코에게는이질적인면들이혼재했다.만주족귀족,아버지와양아버지주위에모여있던극우인사들,권력자위치에있던여러일본인연인,자신의풍부한상상력이조합됐던그녀의인격은쪼개진조각들의혼합물이나다름없었다.
1947년10월5일법정.5000명의눈이요시코를주시하는가운데그녀의범죄혐의목록이나열되었다.만주의중국영토를정복하기위해사적으로군대를조직한죄,푸이를괴뢰국황제자리에앉히도록도운죄,중국침략을모의한죄,상하이사변을일으키도록도운죄,중국의군사기밀을빼돌린죄,일본의선전선동내용을퍼뜨린죄,청나라를수복하려고한죄,중국인부역자들을지원함으로써조국을배신한죄,일본군국주의자들의‘사무라이정신’에오염돼남자군사영웅처럼행동한죄…….
하지만놀라운것은이런혐의보다그혐의를뒷받침하는증거였다.그녀는나라를배신한스파이였지만동시에근거없는혐의를뒤집어쓴희생자이기도했다.요란한인물요시코는허언증이있었고,그녀의삶은소설이나영화로많이각색됐는데,법정은바로그런창작물에등장한요시코의행위를현실의범죄목록에포함시킨것이다.
즉생애마지막에내뱉었던거짓들이요시코자신을삼켰다.감옥독방에갇힌서른세살의그녀는머리가깎이고윗니는다빠진상태였다.그리고죽는순간까지도몇가지이야기를입으로꾸며대고있었다.

바인레프:유대인을팔아넘기면서아우슈비츠행열차를멈춰세우다

바인레프는유대인이었다.하지만유대인사회에서그의위치는분류하기가애매했는데,가난한유대인이민자에속하지만스스로는문화적소양이높다고여겼고,여타유대인과달리독일계유대인에더동질감을느꼈으며우월의식을가졌다.그는돈받고유대인들을나치에팔아넘긴존재다.돈많은유대인들은절박하게바인레프만믿고구출명단에이름을올림으로써살아남으려애썼다.실제로그는베스터보르크의수용소장게메커를조종해아우슈비츠로가는열차를멈춰세운적이있고,이것은대단한일이었다.
하지만그정도뿐이었다.바인레프는존재자체가기나긴거짓말의목록이기도했다.그가돈만호주머니에챙긴뒤팔아넘긴유대인은너무많아전후그에대한증언기록을정리하는데는엄청난시간과인력이들었다.6년간바인레프에대한증언기록을철저히검토하며600명이넘는증인을인터뷰한결과추려진보고서는총1683쪽에달했다.
저자는네덜란드국립전시문서연구소의자료들을면밀히분석하며묻는다.“바인레프의설명을믿을것인가,아니면바인레프를제외한대부분사람들의설명을믿을것인가.”즉이책은역사에서누구의증언을얼마만큼신뢰할지그판단을독자가내리도록종용한다.바인레프는틀림없이유대인을구했지만,너무많은거짓말을하고돈을챙겼으며,결국그유대인들은수용소로보내졌다.하지만저자는그가“자기마음상태에대해날카로운관찰을할줄알았고,거기엔일말의진실이있었다”는평도남긴다.
전후조사관들이바인레프에대해내린결론은치명적이었다.‘바인레프는유대인들을밀고했고,나치친위대의보안기구인SD에협력했다.’그는책도여러권써서자신을한껏변호했다.1988년스위스에서죽은그는숨이멈출때까지일군의사람들로부터존경을받았는데,이들은그에게서영적위안을구했다고한다.

우리삶의이야기는시간이지나면서꾸며진다

사기,신분위조,거짓은전쟁의와중에어쩔수없이생겨나는산물이다.피점령국에서사람들은본명을숨기고속임수를써야활동할수있으며,점령국에서도각종음모론과상상은넘쳐날수밖에없다.
이책에소개된인물들외에도많은사람이저마다의이유로부역행위를했다.하지만저자는전후가장덜심각한부역행위를한일부사람에게가장가혹한보복이가해졌다고말한다.바로적군과동침한여성들이다.이들여성은편안함,욕망,외로움,(어쩌면)사랑등의이유로적군과관계를맺었지심오한이념적헌신때문에그런경우는거의없었다.하지만군중은이여성들의머리를박박깎고오물을뒤집어씌우고침뱉고강간까지했다.부패한관료,문제많은과거를지닌의사나정치인들은별문제없이신흥엘리트나고위층이됐던것과달리.
이책의부역자셋은진실속에서삶을살지않았고허구속에서생을연장했다.그랬던이유는두려움,오만함같은감정때문일수도있고,혹은별이유없이그랬을수도있다고저자는말한다.
세부역자는결이조금달랐다.바인레프와요시코는삶에주어진거짓을자기만의방식으로꿰뚫어봤고,진실을말하는용기를내비치기도했다.케르스텐또한삶을되돌아보며자신도그러했다고주장했다.하지만저자는앞의두사람에게조금더이해심과관대함을보인다.케르스텐은체제에더순응하는쪽이었기때문이다.
역사는정밀과학이아니다.우리는무엇이실제로발생했던일인지정도는파악할수있지만그나머지는전부해석의영역이다.사람의기억은변하고,쉽게조작되고,언제든틀릴수있다.지난우리삶의이야기의많은부분은시간이지나면서꾸며지고,우리의생각은바뀐다.저자는진실을아주잠깐이라도들여다보는유일한방법은우리의생각부터의심해보는것이라고말한다.
“오직하나의진실만이있을뿐이라고독단적으로주장하는태도는억압적일뿐아니라아예틀렸다.우리가믿는그어떤이데올로기라도,의심을허용하지않는다면우리는거짓속에사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