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맛

전쟁 같은 맛

$22.00
Description
한국전쟁, 기지촌 생활, 미국 이민과 조현병 경험
폭력과 트라우마 속에서도
생의 조건과 정신의 고통을 뛰어넘는 존재였던
어머니 ‘군자’의 삶과 영혼을 되살려낸 회고록
1986년. 열다섯 살 되던 해, 그레이스는 세상 가장 중요한 이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과정을 목도한다. 그 사람은 ‘군자’, 1941년 한국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고 기지촌에서 일하다 미국으로 이주해 험하고 치열한 삶을 살아낸 생존자이자, 이 책의 저자 그레이스 M. 조를 낳고 기른 여성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야성미와 카리스마가 넘쳤던 군자, 동포를 보살피고 마을을 먹여 살렸던 그는 어느 날 ‘목소리’를 듣기 시작하더니 세상에 문을 닫고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채 소파에 틀어박혀버렸다. 모든 것을 바꿔버린 군자의 사회적 죽음은 조현병이란 이름으로 찾아왔다. 트라우마를 안고 명문대에 입학해 자유와 지성의 세계에서 학자가 된 그레이스는 ‘군자’로 대표되는 전후 한인 이주여성의 기구한 삶의 궤적과 지독한 병의 뿌리를 연구했다. 그리고 2008년 갑작스레 찾아온 모친의 물리적 죽음 이후, 다시 그 생애를 새롭게 복기하기 시작했다. ‘그레이스야, 나 기억나지?’ 군자는 오래전에 잃어버린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고, 거기에 귀를 기울이자 스스로 침묵을 깨고 이야기가 된 한 생애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선정 및 수상내역
2021년 전미도서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작
『타임TIME』, NPR 2021년 ‘올해의 책’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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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그레이스M.조

뉴욕시립스태튼아일랜드대학사회학·인류학교수.상선선원이던백인미국인부친과기지촌에서일하던한국인어머니사이에서태어났다.언어,문화적배경,기억과음식등생활의사소한부분들에의해정체성이정치화되었던냉전시기외국인혐오가극심했던워싱턴주의작은마을에서자랐다.열다섯살때,활동적이던모친의조현병발병을경험하게되면서어머니의존재와생애가개인적·학문적인생의중대지표가되었다.브라운대학졸업후하버드대학에서교육학석사,뉴욕시립대학에서사회학·여성학박사학위를받았다.첫책『한인디아스포라의출몰:수치심,비밀,그리고잊힌전쟁HauntingtheKoreanDiaspora:Shame,Secrecy,andtheForgottenWar』(2008)으로2010년미국사회학회‘아시아및아시아계미국인’부문우수도서상을받았다.대표작『전쟁같은맛TastesLikeWar』(2021)은2021년전미도서상논픽션부문최종후보작에올랐고,2022년아시아·태평양미국인도서상을수상했다.『뉴인콰이어리TheNewInquiry』『그랜타Granta』『아트포럼Artforum』『콘텍스트Contexts』『가스트로노미카Gastronomica』등에글을싣고있다.

목차

한국어판서문
프롤로그

1부
1장전쟁같은맛
2장아메리칸드림
3장친절한도시

2부
4장엄마
5장김치블루스
6장버섯여사

3부
7장조현병발생
8장브라운
9장1월7일
10장크러스트걸

4부
11장원타임,노러브
12장오키
13장퀸스
14장유령숫자세기
15장치즈버거시즌


본문재수록출처
감사의말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군자’(1941~2008)
한국인.여성.생존자.디아스포라.유령.

“진실되고근면했던,사랑과고독으로가득차있었던어머니의삶을그려내보고자했다.‘타락한여자’라는꼬리표에도불구하고명예로운삶을살았고,‘정신병자’라는꼬리표에도불구하고이성적이었던어머니의존재를말이다.”(10)

한국전쟁으로가족의절반을떠나보내고,종전후살아남기위해기지촌에서일하다상선선원이던백인미국남성을만나미국으로이주한군자는한때살가운엄마,어엿한사회인이자왕성한채집인이었다.한인이민1세대로,한국인이한명도없던워싱턴주셔헤일리스에정착해빛나는매력,노련한정치력,불굴의의지로살아남아보려했던그는남편이바다에나가있는동안낯설고적대적인타국의촌마을에서싱글맘으로두아이를키웠다.한국땅에서‘양공주자식’‘튀기아이코노’라고놀림받던아이들에게아메리칸드림까지는아니어도평범한미래를꿈꿀수있게해주려고미국말미국요리를배우며미국인이되고자했던군자는블루베리를따고파이를굽고버섯을채집하고잡채를만들며그땅에서삶을일구었다.밤에는소년원에서일하고낮에는숲과바다에서먹을것을구해다팔며가모장으로서가족의생계를책임졌고,한명두명어쩌다이주해오는한인입양아와이주여성이있으면모국어로그들을맞이하고김치를담가먹이며동포를품어주었고,지병이있는남편을돌보면서친정식구들의미국이민도도왔다.“아이구,답답으라”“한번주면정없어”“망시토리(몬스터)”……번역될수없는말로살아남은자의사랑과정을,고통과한을가르쳐준군자는아이들에게생의원천이었다.그러나그렇게되기위해그는미국땅에서‘중국여자’‘전쟁신부’‘떠돌이유령’이되어야했다.

“1972년미국인아버지와결혼한것은아이들에게더나은삶의조건을마련해주기위한최선의방편이었다.하지만이일은어머니당신에게한국에있는언니와평생이별하게됨을의미했던동시에당신을외부인으로만보는낯선땅에서외로운투쟁을해나가야하는새로운장이시작됨을의미했다.그럼에도사람들은늘우리이민자들한테[한국에서보다]우월한미국생활을하는데그런외로운생활쯤감사히여겨야한다고말했다.클때도내미국인아버지는누누이내게일렀다.한국에서살았더라면막다른골목만마주치다결국아무것도아닌사람이됐을거라고.”(8)

“늘천부적으로생활력이강한엄마였다.”(436)불가사의할정도로왕성한생산력으로가족의생계를꾸리던그에게급성조현병삽화가나타난건1986년,딸이열다섯살되던해였다.열정을바치던일을접고어느날갑자기소파에틀어박혀집밖으로나서지않게된군자는텔레비전쇼에서알수없는암호를찾는데골몰했고,이웃과지인이자기를쓸데없이감시하며가족을해치려한다고굳게믿었다.옆에있는사람이하는말보다머릿속에서들려오는목소리에더귀를기울이게되었고,아무도자기를보고들을수없는곳으로자취를감추려는듯이웅크린몸의외피안으로,깊은정신속으로숨어들었다.남자가족들은군자의변화를알아차리지못했다.익숙한엄마의실종과낯선엄마의등장을눈치챈딸은,홀로학교도서관에서정신질환책을뒤져가며모친의조현병증상을확인하고부친과오빠에게,지역정신건강센터에,경찰에호소했다.그러나돌아오는건어머니를모욕했다는가족의비난,해줄수있는게없다는전문가들의포기뿐이었다.한동안군자의위태로운정신은광기로인식되지못하고평범을가장하도록강요당하며십수년간가족내에서,사회에서방치되었다.

“엄마는목소리의포로가되어,이전에하던일을그만두라는그것의말을고분고분따랐다.낯선사람이랑얘기하지마.전화받지마.밖에나가지마.요리그만해.그만먹어.그만움직여.그만살아./그렇게어떤의미에서나는엄마를잃었다.엄마는사회에서물러났고,사회는엄마를내버릴수있는무가치한존재로만들어사망선고를내렸다.그것은엄마로하여금인격을상실케하고,모성까지잃게한고정관념이었다.정신병자가사랑할수있거나사랑받을수있다고는여겨지지않았다.”(19)

아픈군자는고립속에서생존을이어갔다.며느리가증상을인지하고조현병으로명명하면서마침내정신과적치료를받을수있게되고,스스로병식病識이생겼을때에도상황은그리나아지지않았다.여전히외국인을혐오하는촌마을,남편의인종차별과폭력,유일한마음의안식처였던모친의사망,멀리떠나버린아이들,불안정한거처,잘못된약처방과어그러진상담치료……삶의조건은나아지지않았고,‘목소리’는계속군자를잠식해갔다.그리고무거운비밀하나가또한번그의삶을조명할것이었다.

“그레이스,어머님이매춘을하셨었어요.”(290)

‘그레이스’
한국계미국인.2세대생존자.한인디아스포라.사회학자.

“어머니가기지촌에서일했다는가족의비밀을알게되면서부모님의만남을두고우리가지어낸이야기는죽음을맞았고,내순수의시대도그렇게끝이났다.그리고이죽음들로새로운종류의탐구와지식이탄생했다.”(7)

그한번의폭로로또다시모든것이달라졌다.“허허,착하다!열심히공부해서멀리멀리제일좋은대학가야지.이런데서는너한테좋을게하나도없어.”(95)가족이라는지옥을피해아이비리그로탈주를기도했던그레이스는그곳에서지성이라는자유를만난다.고향마을에서는만날수없었던다양한출신배경을가진사람들,식민주의와냉전체제,아시아계미국인정체성,페미니즘과사회학……지성은세계를새롭게인식하게했고,백인인체하거나반半한국인임을가리지않고도자기자신으로살아갈수있다는희망을갖게했다.그러나세계를더잘이해하게될수록,지성이제공한그모든이해의실마리는다시풀리지않는의문을휘감았다.“무슨일을겪었기에엄마는내가열다섯살때부터목소리를듣기시작한걸까?내가스물세살일땐어쩌다세상에문을닫아버린상태가되었을까?어쩌다그렇게남은인생을신선한공기도햇살도사람들과의만남도없이보내게되었을까?어떻게어린시절의그활동적이고활기찼던모습이,시간이흘러내가성인이되었을땐정신적고통에시달리며은둔하는모습으로변해버린것일까?어째서우리가족말고는아무도엄마를신경쓰지않은걸까?”(125-126)

“엄마에게내학업은당신의과거와현재사이의거리를벌리고개인사에진얼룩을지워내는방편이었다.그런데공부를하면할수록사회정의에대한내의식은우리가족사와더밀접하게얽혀만갔다.”(359)

그트라우마의유산이학문의원동력이었다.지적호기심이나사회학에대한헌신이아니라,알아내야만한다는절박한충동때문에연구를했다.단한번제대로발화된적도없이대를이어전해진그무거운한恨의기원을알아야그것을풀어낼수있었기때문이다.그첫결과가박사학위논문과그를바탕으로쓰인첫책『한인디아스포라의출몰:수치심,비밀,그리고잊힌전쟁HauntingtheKoreanDiaspora:Shame,Secrecy,andtheForgottenWar』(2008)이었다.어머니군자에게헌정된이책의주인공들은“결코살아남을운명이아니었다”.(27)그래서살아남지못함은수치가아니었으며,그럼에도살아남았음은정의의현현이었다.그레이스는모친이처했던삶의조건을단순한망명상태가아닌도전으로보게되었다.“자녀들을포기하지않겠다는그분의결연함,미국에서삶을꾸려가보겠다는의지,음식을만들며어떻게든생존해보려했던방식까지.”(10)

“내가글쓰기를통해그의미를바꾸려고해요.그단어가더이상수치스러운말이아니었으면해요.그여자,나한테는영웅이니까.”(435)

“썼으면좋겠어.”엄마가말했다.(436)

『전쟁같은맛TastesLikeWar』은첫책출간후어머니의때이른죽음이새롭게되살려낸기억속에서필연적으로쓰인‘속편’이라고저자는고백한다.전쟁에서생존한한국계미국인가족에대한사회학적탐구이자,‘전쟁신부’‘성매매’‘조현병’이라는낙인속에살다간모친에대한회고록인이책은,그래서한편으로어머니‘군자’의도전과분투를기록하고그굴곡진삶의의미를써내려간평전이기도하다.여기서그생애는참혹한나날을보내다고독하게생을마감한이름없는여자의일생이아니라,한반도의지정학적조건하에서전쟁이란사건을겪고거기서살아남아국가가주도한성매매사업으로기지촌에서일했고,사회적낙인으로추방되어간미국땅에서식민주의의유산과인종차별외국인혐오를온몸으로겪어내며삶터를일구었으며,지독한정신질환을앓으면서도소박하고다정했던시절의저력으로생의의지를붙들며사랑을기억하고간직하고자했던한국인‘군자’의일대기로그려진다.번역되어이땅에돌아온모녀의이야기를우리가우리자신의역사로맞아들이고환대하게되는이유다.

“한국어판출간은내게도일종의귀향같은일이다.이책에쓰인내말들이한국어로번역되어생각과감정이라는내내면세계가목소리를부여받게된건엄청난특권이다.이는50년에걸친정신적고립과갈망에대한답이자,내가살수있으리라고전혀생각지못했던삶을되찾는일이다.”(11)

“군자의부엌,어때?”
―음식과사회

『전쟁같은맛』이란제목은조현병발병후섭식을거부하던군자가분유를두고한말이었다.“그맛은진절머리가나.(…)전쟁같은맛이야.”한국전쟁시기미군에게보급받았던탈지분유를먹고유당불내증이있는수많은한국인이복통과설사를경험했다.

“살아남기위해어떤여성들은한국음식을구할기회가있을때마다부엌에숨겨놓고몰래먹었다.비밀장소에한국식재료를감춰놓고냄새난다고타박할사람이주변에없을때만요리한것이다.한국음식을먹을수있는여성들은집에서한국음식을먹는것이금지돼먹지못하는여성들을자기집으로불러몰래식사모임을했다.이여성들은미국가정에서소외감을느꼈고자기집을보금자리로여길수없었다.그렇다고한국으로돌아갈수도없어심한향수병에시달렸다.그래서이토록폭력적인방식으로동화되기를요구받고집이없다고느끼는여성들의삶을되살리기위해공동체가생겨났다.(…)한국음식을마침내맛보는경험은마치사막에서길을잃었다가처음으로물한모금을마시는것과같았다.그것은천천히다가오던죽음을가까스로피하는일이었다.이여성들중누군가는잠시나마그맛으로집에돌아가는길을찾았다.”(154-155)

군자가미국에서삶을일궈갈때만해도,그땅에서한국음식은각광받는이국의건강식이아니었다.김치된장건어물과아무도먹지않는나물,채소.한국인에게없어서는안되었던그냄새나고희한한음식들은수치스럽게여기며감추어야할미개한먹거리로여겨졌다.“으으으,이거벌레로만든거야!”(159)딸의학교에서한국문화를소개한다고잡채를만들었다들어야했던헛소리.“미국사람들이우리가이걸먹는걸보면겁먹을거야.”(318)딸과오징어를질겅거리며웃음을터뜨렸던기억.“오,김치잘먹네!착한내딸!”(167)손톱으로씻은김치를잘라먹이며딸에게해주었던말.
이책에는다양한음식이감각의환기체이자기억의매개체로등장한다.기나긴투병의시간을지나군자로하여금다시무언가를원하게만든것도음식이었다.담백하고뭉근한콩국수,시원칼칼한생태찌개,고소하고감칠맛나는미역국,무와고기만으로도깊은맛이났던쇠고기국,나물무침과생선조림,전과떡.길에서산에서뜯어다말린고사리,민들레.한인마트에가면있던미숫가루와기차를타고가다차창밖으로본쑥,기지촌에서처음맛보았을‘치즈버거’까지.그레이스는어머니를위해어린시절맛보았던음식들뿐아니라먹어보지못한한국음식들도요리했다.세상에문을닫았던군자도조금씩마음을열고딸을자기만의요리사로받아들였다.머릿속목소리도밥상에서함께이야기를나누는식구가됐다.이것들을맛보며군자도“집에돌아가는길을찾았다”.
우리가머릿속으로그려볼수있고입안에서느껴볼수있는그익숙한생명의맛은“전쟁같은맛”만큼이나강렬해서,군자를살리고모녀를다시연결시켜주었음은물론,이책이번역문학으로한국에돌아올수있게도해주었다.덕분에군자는더많은사람에게이말을들려줄수있게되었다.“이제네가나를사랑한다는거알아.”(3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