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의 수명 (진실한 글을 향한 예술과 원칙의 대결)

사실의 수명 (진실한 글을 향한 예술과 원칙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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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팩트체크가 필요합니다.
그것도 철저하게.”

진실에 다가가려는 사실들을 놓고 벌이는
야심 찬 에세이스트와 집요한 팩트체커의
끝장 논쟁
…사실 충돌, 사실 충돌, 사실 충돌…

“이에 대한 자료는 없었고, 이런 내용이 담긴 문헌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 이 진술은 아무리 봐도 그대로 쓰기에는 지나치게 모호합니다.”

“글을 매끄럽게 정리한 겁니다. 그뿐이에요.”

“선생님 생각에도 독자가 ‘알아서 걸러 읽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면, 처음부터 명확한 경고를 주는 편이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그것이 거짓된 역사라고, 그래서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말이죠.”

“그러기엔 이야기가 너무 흥미진진해서요. … 편집자님은 제가 이러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느끼시죠. 하지만 저는 그것이 제 일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느낄뿐더러, 이런 식의 자유를 택함으로써, 사실에 천착할 때보다 실제로 더 좋은 예술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또한 그로써 독자에게 더 훌륭하고도 진실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자부하거든요.”

“선생님께선 지금, 현실 세계에 사는 실제 인물의 입에서 나온 인용문을 전혀 다르게 가공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 핵심은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자신의 본질과 위상에 관한 모종의 진실을 찾아 그 진실과 교감하길 바라던 중에 그런 진실을 어느 감명 깊은 글에서 찾아냈는데, 알고 보니 그 감동적인 글을 작가가 의도적으로 위조했다는 사실, 그러니까 단순한 재해석과 시적 윤색의 수준을 넘어 자기과시를 위해 노골적으로 위조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크나큰 좌절감을 느낀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 제가 그러고 있다는 겁니까? ‘자기과시를 위해’ 이야기를 ‘위조한다’고요?”
저자

존다가타,짐핑걸

(JohnD’Agata)

에세이스트.『명예의전당HallsofFame』『어떤산에관하여AboutaMountain』등을썼고,『넥스트아메리칸에세이TheNextAmericanEssay』『에세이의잃어버린기원TheLostOriginsoftheEssay』를편집했다.『빌리버』『하퍼스』『걸프코스트』등에에세이를연재했고,아이오와대학에서창의적글쓰기를강의중이다.논픽션글쓰기로구겐하임펠로십,하워드재단펠로십을받았다.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출판사 서평

2002년7월13일,라스베이거스의한카지노호텔에서열여섯소년이투신해숨지는사건이발생한다.서정적에세이를주로쓰는논픽션작가존다가타는2003년『하퍼스』매거진의의뢰로이사건에관한피처기사톤의에세이를집필했으나,편집부로부터사실오류가손쓸수없을정도로많다는피드백을받으며게재를거부당한다.그는얼마간의개고를거쳐같은글을『빌리버』라는잡지에재투고했고,『빌리버』는이글을받아들인다.하지만게재엔조건이있었다.내부팩트체크라는관문을거칠것.그것도철두철미하게.곧인턴편집자짐핑걸이이작업에배정됐고,전쟁이시작되었다.이름,날짜,숫자……단순한사실확인에서시작된두사람의대화는희생자의마지막궤적과‘비열한도시’의정서를넘어틀림없는사실과그럴듯한허구,‘픽션이아닌’논픽션의미학과윤리,실제벌어진일과재현으로서의기록,정확한기술과진실한글쓰기의관계를둘러싼타협불가능한논쟁으로치닫는다.좀처럼입장차를좁히지못하는두사람의목표는하나,독자에게진실한글을내놓는것이다.그러나조금의사실이라도‘묻어’있다면,그의도도심문의대상이되는게이분야의규칙.『사실의수명:진실한글을향한예술과원칙의대결』은그심문과정을적나라하게담아낸책이다.원칙이란틀에끊임없이저항하며독자를도발하는작가와,단어하나문장한줄철저하게물고늘어지는집요한팩트체커.둘의대결에서살아남는것들은독자에게무엇으로어떻게전달될것인가?


“실제사실과다릅니다”
“그걸제가왜고치죠?”
:작가-팩트체커의양보없는싸움

“편집장입니다.재밌는일거리가생겼어요.방금존다가타한테서새원고를하나받았는데,팩트체크가필요합니다.그것도철저하게.저자가자유롭게각색한부분이제법보이거든요.본인이인정하기도했고요.내가알고싶은점은,그게어느정도냐는거예요.(…)사실로확인되는건뭐든다표시하고,미심쩍어보이는것도전부표시해주세요.”어느날편집부에하달된그일은언뜻간단해보였다.그저‘사실확인’을하라는거였으니까.그러나그리간단한작업이아니라는게명백해진건,일이시작된직후-첫문장에관한첫대화에서였다.
『사실의수명』은작가의원고가페이지한가운데,이를둘러싼작가와편집자의논쟁이가장자리에배치된독특한형태를하고있다.그이중사각형의구조안에서두사람은인사를나누기무섭게,원고의첫문장을가지고세페이지분량의의견을교환하는데,여기서확인된입장과태도의대립이책의마지막페이지까지양보도타협도없이이어진다.중심의원고가사건을파고들수록,가장자리의논쟁은더욱심각해지고첨예해진다.대화는대체로사실충돌에관한것이지만,때로입장차이와직업관의차이,한편의글(구성된세계)을받아들이는방식(세계관)의차이에관한것으로번지기도하면서,갈등이극에달한곳에서는독자로하여금실소를터뜨리게하는헛소리며비아냥이튀어나오기도한다.
사실확인이어렵다는이유로이미한차례거절당한이력이있는존의원고는,이제야임자를만나기라도한듯세밀하고도철저하게스크리닝을당한다(?).숫자하나,술집이름,날씨와통계,단한번언급될뿐인이름없는등장인물의출신지,정치스캔들과관련된이런저런세부사항,온갖가판대와거기서판매되는품목들,지나가는사람이무심코던진말……작업이시작되고,일견사소해보이는모든사실에여기저기붉은줄이그어진다.그보다덜사소한언급에는더엄격한원칙이적용된다.작가자신의말이든인용문이든그어떤의견도‘근거’와‘증빙’이없이는통과되는법이없다.“선생님,이점명확히설명해주실수있을까요?”“혹시이부분을고치실의향은없으신지요?”팩트체커는그런사람이실제로존재했다는증거,그런대화를실제로나누었다는기록,그사람이정확히그렇게말했음을증명해주는자료,그일이실제로벌어질수있다는걸뒷받침할근거를끊임없이요구한다.그러나검은글씨가빨간글씨에압도되고본문이붉게물들어가는수세에몰린다고해서물러날작가였다면,애초글을그런식으로쓰지도않았을것이다.“그걸제가왜고칩니까?”“저는무리가없다고봅니다.”“이번건도그렇게‘정리’하죠.”존은시종뜻을굽힐생각이없음을분명히한다.
“정말이지말도안되는트집으로에세이를망치려고드시는군요.(…)저는관여하지않겠습니다.잘해보세요.”급기야작가는사실확인작업에서손을떼겠다고선언하지만,그래도팩트체크는계속된다.눈동자가초록색이면자살위험이더높다는둥,태권도가인도에서창시되었다는둥,중국어에는자살을가리키는단어가없다는둥굳이근거문헌을찾아확인할필요조차없어보이는오류부터검시관보고서의세부내용,사건이발생한카지노호텔의구조와고인의생전마지막이동경로,추락하는데소요된시간과그때의느낌까지……사실들은하나둘생사의갈림길에서걸러지거나살아남으며진실한글이라는합의된토대위에축적된다.그러나그모든사실을끝의끝까지차근차근털어오던팩트체커가온통붉은글씨로물든마지막페이지에서하는말은,진실을위한다는이일의의미가작가쪽에서뿐아니라팩트체커쪽에서도완전히흔들릴수있는것임을역설한다.

짐:대관절이가운데‘진정한’권위를가졌다고믿을수있는건뭐죠?그리고이시점에서과연그런게중요하기는할까요?설령모든의문점[을](…)틀림없이아주세세하고도정확하게판정할수있었다한들…음,그랬다면…글쎄요,저는제소임을다했겠지요.하지만그런다고그가죽었다는현실이달라지나요?(152)


거짓으로밝혀진글
:축적된사실이진실에다가가려면

픽션이라고썼는데알고보니실화였더라,회고록이래서읽었는데알고보니꾸며낸얘기였더라……‘충실한사실’과‘진실한경험’의관계는독서계를비롯한문화계전반에서꾸준한논란거리가되어왔다.어떤글의사실성과진실성이경합하며사건화될때마다폭로와입장문,언론기사와인터뷰,또다른입장문과댓글과비평이쏟아졌고독자는그때마다충격으로든분노로든,수긍으로든냉담으로든한편의글과맺었던관계를재설정해야했다.‘작품을위해서’.‘아무리그래도어떻게’.낯설지않은그논쟁이이책에서도전개된다.문제의글이발행되기전,작가와편집자가나누는실제대화속에서.
잘못된사실과의미있는글사이의좁혀지지않는견해차는어느슬롯머신의이름을두고시작돼작가윤리라는중차대한주제로까지번진두사람의언쟁에서절정으로치닫는다.

짐:한가지짚고넘어가자면,「행운을믿어라PressYourLuck」는1983년부터1986년까지텔레비전에서방영된게임쇼제목이기때문에,그게임쇼에서유래한이름을가진슬롯머신이‘그무엇에서도유래하지않은이름’을가졌다고보기는어렵습니다.(…)선생님,텔레비전은도통안보시나요?혹시그게선생님의예술적감수성에해가될까요?

존:저런,에세이전체를관통하는핵심을놓치셨군요.(…)이슬롯머신이름의출처일수도있고아닐수도있는텔레비전쇼가한때방영된적이있다는사실은정말이지진정아무런문제도되지않습니다.(더구나‘행운을믿어라’는1980년대보다한참전부터영어권에존재해온관용구이기때문에,저로서는편집자님이애청하셨다는그텔레비전쇼가이게임에영감을불어넣었다는둥해가며장단을맞춰드리고싶지않네요.)여하튼기록을남기는차원에서제가말하고자하는핵심은,레비가생애마지막몇분동안지나쳤던풍경에관해보고된수많은세부사항중에는정확한것과더불어부정확한것도당연히존재할수있다는점입니다.게다가곧이어일어날사건을생각하면,이모든건지극히사소한부분에불과하기도하고요.

짐:이사실들이사소하다는의견에는저도동의하지만,곧중대한국면을앞둔상황이니만큼,이제부터라도정확성을부수적이라며도외시해선안되겠다는생각은안드시나요?이건어떤슬롯머신이름에만국한된문제가아닙니다.(…)전에도선생님은태권도역사에관한제의견을깔아뭉개면서기본적으로동일한논리를펼치신적이있습니다.하지만선생님의글은레비에게일어난일에관한실재적이야기로인식될공산이크고,따라서선생님이그일과연관짓기로결정한모든세부사항은의미심장한사실로인식될것이자명합니다.(…)한데어째서이런문제를인정하고바로잡는작업을마다하시는거죠?

존:저는이수많은정보에아무런의미도내재되지않았다고주장하는게아닙니다.그보다여기서는의미의‘탐구’에방점을찍어야한다는얘기를하는겁니다.그리고그의미탐구의정수는각각의세부사항이의미심장하게느껴지도록재구성하려는시도에있습니다.(…)여기서제가강구하는것은진실이지만,그게반드시정확성을뜻하진않습니다.(…)우리도다른어떤예술가와다를바없이상황을각색하고세부사항을변경하고해석을좌우하며관념을추구합니다.(…)에세이는시도입니다.다른게아니에요.(…)아마개중에는사실을바로잡기위해얼마나열심히노력했는가를근거로평가받길원하는작가들도있겠지만,개인적으로저는그런작업엔흥미가없습니다.

짐:글쎄요…이해는합니다.이해하고말고요.하지만마음깊은곳에서는거부감이드네요.일단저도‘논픽션’에세이가사안에대한객관적설명을일차적목표로삼아야한다거나에세이작가가문화적기억의차원에서사건의진실을보호할윤리적의무를진다고는믿지않는다는점에서선생님과같은의견입니다.(…)그러나이런관점을레비와같은10대에게적용하는데는석연치않은구석이있습니다.어쨌든그앤라스베이거스에사는어린소년일뿐이잖아요-삶이공공재로취급되어철저히조작되거나재해석될수있는문화적인물도우상적존재도아니라는겁니다.달리말해,이런식으로글의부정확성을키우는것이비록레비의무덤을더럽히는정도까진아닐지라도무덤의위치를속이는정도의잘못은될거라는얘기죠.

존:도대체왜우리가그의무덤위치까지신경써야하죠?(…)글쎄요,어쩌면제가무신경한것인지도모르죠.개인적친분이라곤없는죽은소년을멋대로‘관념’이라일컫고있으니까요.하지만관념이아니면도대체무엇이라일컬어야할까요?대상?아니면등장인물?그에관한모종의글이쓰이는순간그는‘이용될’수밖에없습니다.그러므로어쩌면제입장에서윤리적으로가장적절한선택은,순전한가공의인물을자살희생자로세워제뜻대로이용하는것인지도모르죠.하지만설령그랬더라도,제느낌상우리는여전히비슷한논쟁을벌였을겁니다.(…)제가확신하는부분은,이일에상상력을활용하지않는건일종의직무유기라는겁니다.세상에상상력이동원되지않는글이어디있나요?상상력이가미되지않은문학작품을과연사람들이읽고싶어하기는할까요?

짐:잘알겠습니다.그럼이제제가선생님의작업에의구심을가지면,상상적인글쓰기에반하는것이되나요?이거아무래도제말뜻을완전히곡해하신것같은데요.(…)작가가진실을호도했다는사실을발견했을때사람들은모멸감을느낍니다.다시말해특정회고록이‘윤색’된이야기라는게밝혀질때마다최근10년동안벌어진그모든미친소동의핵심은,작가들이때때로‘상상력을활용한다’는걸독자들이이해하지못한다는데있지않습니다.핵심은사람들이인간으로서자신의본질과위상에관한모종의진실을찾아그진실과교감하길바라던중에그런진실을어느감명깊은글에서찾아냈는데,알고보니그감동적인글을작가가의도적으로위조했다는사실,그러니까단순한재해석과시적윤색의수준을넘어자기과시를위해노골적으로위조했다는사실이밝혀졌을때크나큰좌절감을느낀다는데있습니다.그러다결국다시금세상에혼자남겨졌다는기분에사로잡히기도하고요.

존:지금제가이에세이에서그러고있다는겁니까?‘자기과시를위해’이야기를‘위조한다’고요?(131~135)

레비프레슬리라는소년의자살사건을중심으로사건의경위,소년의행적,비정한도시와그곳의군중,고인과어떤식으로든연결된사람들,아는것과알지못하는것을둘러싼사실들을조합해특정한의미를길어올릴예정이었던원고는,조각조각의사실로해체되고그하나하나의무결성을기준으로재평가되면서완전히다른종류의작업물이된다.그렇게따지니이원고는사실에입각해쓰였다곤하지만,사실그대로를쓴것도아닐뿐더러필요한사실을내키는대로수집해편의대로가공한‘믿을수없는’글이될소지가다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