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서울을 걷는다 (제10회브런치북 대상수상작)

못생긴 서울을 걷는다 (제10회브런치북 대상수상작)

$16.00
Description
낡고, 긁히고, 부서지고,
허물어질 것 같은
도시의 못생긴 부분들에 대하여

직접 걷고 찍고 주민들을 만나서 깊숙이 들여다본
우리 시대 도시의 자화상

“사람은 스무 살이 되면 새 출발선에 서는데,
사람이 사는 동네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생각합니다.”

“폐지 줍는 노인 덕분에 순환하는 도시,
그런데 우리 도시에는 그 노인이 살만한 집다운 집이 남아 있을까?
우리는 그런 집을 하나씩 없애면서 스스로 도시의 하부구조를
야금야금 갉아먹은 게 아닐까?”

이 책은 제목이 특별하다. 걸어서 도시를 탐방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못생긴’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못생긴 서울’은 대체 어떤 서울일까. 궁금증이 유발된다. 저자는 현직 일간지 기자다. 건축학도 출신이지만 방향을 틀어 좀 더 현실과 밀도 높은 대화를 나누는 직업을 선택함으로서 인생의 진로를 변경했다. 그는 도시의 ‘못생긴’ 곳들을 골라서 걸어다녔다. 이른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는 중계동의 ‘백사마을’, 경사도가 60~70도에 이르는 가파른 골목길이 회오리치는 다산동 주택 밀집 지역, 정화조가 없는 집들이 많아 똥냄새가 진동하고, 불이 나도 골목이 좁아 소방차가 진입할 수 없는 창신동, 비행기 빼고는 다 만들어낸다는 기술 장인들이 몰려 있는 청계천 인근과 세운상가 등이 저자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곳들이다.
이곳들이 이른바 ‘못생긴’ 서울이다. 살기에 불편하고, 소음을 유발하며, 미관상 좋지 않은 삼박자를 갖춘 ‘재개발’의 이슈를 품고 있는 공간들이다. 하지만 말이 재개발이지 그것에 착수하는 순간 벽에 부딪치게 되고, 끝내 재개발 계획이 백지화되거나 유야무야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도시는 ‘못생긴’ 부분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재개발이라는 경제논리로는 넘어설 수 없는 도시의 오래된 생태 논리를 저자는 직접 발품을 팔아 찾아다녔다.
저자

허남설

1985년생.한양대학교에서건축학을전공하고,건축설계사무소에서2년일했다.세상돌아가는모습을좀더가까이들여다보고싶어한다는걸깨닫고건축가의꿈을접은뒤,2013년경향신문사에입사했다.지금까지기자로일하며사건사고,대중문화,정당정치,도시행정,보건복지등을취재했다.2023년부터시사뉴스레터〈점선면〉을발행중이다.틈틈이브런치스토리등온라인플랫폼에건축과도시관련글을쓴다.

목차

발걸음을옮기며

1.뭔가수상한재개발
서울의마지막달동네|달동네와10명의건축가

2.그때그마을의기억
여기는민속촌이아닌데|‘터무늬’있는백사마을

3.진짜사람이남는마을로
무엇이공동체를만들까|20퍼센트만남는재개발|반半이라도남는다는꿈
|다시정산하는재개발비용

(백사마을의시간)버스가하루두번만다니던곳

4.골목이회오리치는동네
토막촌,판자촌,빌라촌|똥냄새난다는데왜아직도

5.덩칫값을못하는아이러니
헌집줬는데새집이없다니|재개발셈법이말하지않는것

6.떠나지못하는사람들
폐허에서나타난사람들|노인에게하지않은질문

7.신림반지하와종로고시원
반지하라는합리적선택|고시원이라는합리적선택

8.현실의‘홍반장’을찾아서
다산동의골목대장들|‘사람’으로만든사회안전망

9.사람이스무살에죽는다면
마을이요절하는사회|위험에처한산업생태계

(창신동의시간)1000개의공장이돌아가는곳

10.“떠나지않게만해달라”
400일넘게천막을쳤건만|메뚜기신세가된상인들|청계천의산업생태계
|청계천을맴도는사람들

11.여기는백지가아닌데
한눈을감은속도전의결말|늘뒷전인산업생태계

(청계천의시간)‘주상복합하꼬방’이있던곳

12.유산을망각한도시
자초한문화유산의위기|파리·뉴욕·도쿄에서말하지않는것

13.‘힙지로’의교훈
낡은공간의힘|산업생태계의계승자들|긍정할수만은없는변화

(세운상가의시간)‘종삼’이라불리던곳

발걸음을마치며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뭔가수상한재개발

서울의가장자리를긋는불암산능선을따라남쪽끝자락으로내려오면,서쪽기슭에자리잡은마을이하나있다.이마을의이름은‘백사마을’이다.마을입구주소인‘서울특별시노원구중계본동104번지’에서번지수를딴이름이라는말도있고,‘허허벌판에세운마을’이라는뜻에서‘백사白沙(흰모래밭)’를붙였다는말도있다.백사마을은언제인가부터‘서울의마지막달동네’라고불리기시작하더니겨울철을앞두고TV뉴스에색색의조끼를입은자원봉사자들이연탄을가득실은손수레를끄는장면이나오면그배경은어김없이백사마을이다.
이백사마을이곧사라진다.마을의땅을가진사람들은1990년대초부터마을을재개발하길바랐고,마침내2021년2월노원구청이사업시행계획을인가했다.그런데재개발후백사마을전경을담은조감도를보면뭔가어색하고낯설게느껴지는구석이있다.고층아파트가있어야할자리같은데,아주작은집들이옹기종기모여마을을이룬다.알고보니,백사마을의땅을7:3으로갈라각각다른방식으로재개발하는듣도보도못한방식이다.
서울시와건축가들은백사마을의지형,터,골목길이‘순전히사람의손에의해일군것’일뿐만아니라,‘대면공동체를추동해왔던건축적장치’이기때문에보전해야한다고했다.
예를들어보자.백사마을지형은북사면(남쪽으로갈수록고도가높아지는경사지)으로마을의북쪽이가장낮고남쪽이가장높다.그래서초입부터한채씩집이들어서면서마을을이뤘다.철수네가가장지대가낮은자리에집을지었다면,그다음에마을에들어온영희네는철수네집보다는한층높은땅에집을짓게된다.
이때중요한문제가생긴다.지형이높은쪽이남향이므로,나중에지은영희네집이먼저지은철수네집에드는햇볕을가릴수있다.영희네가집을어떻게짓느냐에따라철수네일조권이달린것.그런데백사마을에서는집이한채씩늘어날때그전에있던집의일조를방해하지않게배려한흔적들이나타난다.앞집과뒷집사이에적당한너비로마당이나텃밭,길을내면햇볕을가리지않을정도의거리를확보할수있다.대신자기가사는집은조금작아진다.절대쉽지않은결정이다.건축가들은이런게바로‘공동체의흔적’이라고말한다.
건축가들은새집을설계하는데다소특이한규칙을세웠다.백사마을형성초기원주민들이각자의집을지었던방식을답습하듯이작업하기로한것.언뜻터무니없어보였지만,건축가들은백사마을의지형·집터·골목같은‘터의무늬’만큼은살려야한다는신념을갖고‘터무니있는여정’을시작했다.
하지만쉽지않은변수들이많았다.처음에는‘50퍼센트재정착’이라는야심찬목표를상정하기도했지만,현재로서는20~30퍼센트를달성하는것도쉽지않아보인다.관청의인허가,시공사선정과재설계등내부요인과부동산경기변동등외부요인이작용하기때문에원주민들은기다리기에지치거나,생업을이유로다른지역에정착하거나,나이가있어끝내돌아오지못하기도한다.백사마을도결국비슷한전철을밟을수있다.
근래에는서울시가이사업을사실상원점에서재검토하기로방향을틀었다.그러면서백사마을의건축가들이그렇게도배격하고자했던아파트를다시등장시켰다.만약주거지보전사업을취소하고새로운재개발계획을짠다면앞으로10년이걸릴수도있다.그사이백사마을과연결고리가끊겨다시는돌아오지못하게될원주민은더늘어날것이다.원주민재정착률을높인다는애초목표는허무하게사라질수있다.

골목이회오리치는동네

창신동은근현대사에서줄곧저소득층이사는지역이었다.일제강점기에는고향을떠나서울(경성)에올라온가난한농민출신노동자들이이곳에자리를잡았다.일제가시가지를반듯반듯하게정리하는근대화계획을시행하면서집잃은도시빈민들도창신동산기슭에둥지를틀었다.당시사대문밖에서창신동은아현동,도화동,현저동과함께흙으로허술하게지은움막집이밀집한곳,즉‘토막촌’으로유명했다.
정화조시설조차없는집이많아똥냄새가진동하고,불은자주나는데도로는좁아소방차가들어올수없는동네.20세기로들어서며창신동에대한명쾌한해법은오직재개발뿐인듯했다.하지만문제가그리간단하지만은않다.창신동을재개발하려는시도가없었을까?그럴리가없다.창신1·2·3동에이웃한숭인동까지모두엮어‘뉴타운’을내걸고재개발을추진한역사가있다.2007년4월뉴타운예정지‘창신·숭인재정비촉진지구’로지정되었지만,2013년6월까지6년을끌다결국엎어졌다.창신동은뉴타운열차에가장마지막에올라탔다가가장먼저내렸다는기록을썼다.

마을이요절하는사회

내가사는동네를조금이라도더낫게만들려는사람들은어디에나있다.주민자치회나입주자대표회의같은동네조직은스스로열성적으로참여하는주민없이는굴러가지않는다.한동네에서오래산사람들이무언가해보자고힘을모은다는건생각만큼쉬운일이아니다.내가사는동네에대한애정은그곳에산시간만큼커지기마련인데,우리사회는그리긴시간을좀체허락하지않는다.유년,장년,중년,노년을거치는생애주기동안함께나이를먹는동네는고사하고,딱20년만지나도사실상‘사망선고’를내려버린다.
예를들어다산동에는법적으로노후·불량건축물이70퍼센트가넘는다.재개발의근간이되는법령‘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시행령은그기준을20년이라고제시한다.어떤지역이재개발해야할만큼노후한지평가할때는그지역에20년이상된건축물이3분의2이상있는지를따져본다.우리가사는집은정말20년이넘으면‘노후’하고‘불량’해지는걸까?그렇다고하기에는100년이넘어도구조적으로전혀문제가없는건물을많이볼수있다.하지만법적기준은20년이라는시간만허락한다.

산업생태계를무시한재개발의비극

창신동에는서민들의집뿐만아니라그들의일터인소규모봉제공장이빼곡하다.인접한동대문일대가‘패션타운’이라고불리는의류유통·판매의중심지라면,창신동은이러한동대문의류업계의하청을담당하는배후생산기지라고할수있다.창신동에는“옷하나만들면퀵이15번온다”는말이있다.옷을빠르게생산하기위해공정별로분업하는소규모가내수공업형태를갖춘탓이다.창신동골목에서는새벽부터오토바이와다마스(봉고차)가달리는소리가끊이지않는다.한공장에서작업을마친의류를다른공장으로나르는운반작업을퀵서비스기사들이맡는것.동대문종합시장에서원단과단추,실,자크(지퍼)등부속품을날라오는엔진소리가창신동의아침을연다.점심시간이다가오면봉제노동자들이주문한식사를나르는오토바이들도분주하게골목을누빈다.‘옷한벌에퀵15번’은한동네안에촘촘하게얽힌‘산업생태계’를나타내는말이다.
하지만과거창신·숭인뉴타운계획은이생태계를조금도중요하게다루지않았다.그저새로건물한채를짓고그안에다몰아넣겠다는계획만나왔다.건물규모가수백개의봉제공장을다수용할정도로충분한지의구심을갖게했을뿐만아니라,그마저재개발사업일정에서뒷전으로밀려나있었다.봉제공장종사자들이재개발에부정적일수밖에없었던배경이다.재개발이쇠퇴한도시에활력을불어넣는수단이되지는못할망정,오히려자생적으로키워온활력마저꺼트린다면과연누가그재개발을옹호할수있을까.

못생긴도시를걸어보시라

누구나빛나고아름다운도시를꿈꾸겠지만,도시가아무리발전하더라도그안에는아름답지않은,못생긴부분이존재할수밖에없다.낡고,긁히고,부서지고,심지어금방이라도허물어질것같은곳이서울에는아직곳곳에널려있다.그못생김을어떻게다룰것인가.이때구경꾼은이미기울어진쪽에서서기울기를한층더가파르게만드는데일조할뿐이다.조감도의시선에서는대안을그릴상상력은자라지못한다.
이제는거리에서야한다.거리에서조감도가아닌투시도의시선으로도시를살펴야한다.선반과밀링을돌려금속을밀리미터단위로깎아내고,현미경을끼고드라이버를돌려섬세하게시계무브먼트를조작하는삶이그제야눈에들어올것이다.손수레를이끌고실타래처럼엉켜나온금속조각뭉치를수거하는노인,아직도보온병과종이컵을들고가게마다눈도장을찍으며냉커피를파는다방주인도볼수있을것이다.또,대학생들이머릿속아이디어를구현해줄기술자를찾으러미로같은철공소골목을헤매는장면을목격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