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자 - 거장의 클래식 1 (양장)

서자 - 거장의 클래식 1 (양장)

$25.00
Description
타이완 퀴어 문학 최고의 고전
40년 만에 한국 땅을 밟다
드라마, 연극, 영화, 가극, 무용극으로 각색된 명저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홀로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의지할 곳 없는 아이들을 위하여 이 글을 쓴다.”
_바이셴융

1970년대 타이베이시 신공원에서 형성된 남성 동성애자 그룹의 서브컬처를 소재로 삼은 이 작품은 동성애자 소년들의 절박한 상황과 심정, 그들과 부모 간의 절절한 감정을 깊이 있게 조명하고 있다.
저자

바이셴융

白先勇
퀴어문학의선구자이자오늘날타이완을대표하는‘문학의거벽巨擘’바이셴융은1937년중국광시성구이린桂林에서태어났다.부친은타이완국민당정부의바이충시白崇禧장군이다.어려서집안이부유했지만7세무렵폐병에걸려몇년간격리되어치료를받아야했다.이로인해민감하고내향적인성격으로변했다.1952년타이완으로건너온뒤청궁대학토목학과에진학했다가적성에맞지않음을깨닫고이듬해타이완대학영문학과에입학한다.대학졸업후대학동기들과잡지『현대문학』을창간하고활발히작품활동을하던중1962년모친별세후미국유학길에오른다.미국아이오와대학에서석사학위를받고캘리포니아대학샌타바버라분교의중문학교수로취임한후오랫동안학생들을가르쳤다.
바이셴융은미국으로떠나기전부터「월몽月夢」「외로운17세寂寞的十七歲」같은퀴어단편소설을발표하다가,1983년유일한장편소설이자대표작인『서자孼子』를출판한다.몇년간잡지와신문에연재된뒤단행본으로묶인이책은출간당시에는작가로서의유명세에비해민감한소재때문인지별다른반응을얻지못했다.몇년뒤프랑스와미국에서번역서가출판돼열렬한반응을일으키고나서야타이완내에서도이작품에대한논의가본격적으로시작되었다.그리고1986년이작품을각색한동명의영화가상영되었고2003년에는역시동명의드라마가절찬리에방영되어타이완금종상의여우주연상,감독상,미술상등을휩쓸었다.당시드라마의영향으로연예인과일반인의커밍아웃이줄을이었으며가출한동성애자자식들에게“용서해줄테니돌아오라”는말을전해달라는부모들의전화가방송국에빗발쳤다고한다.
1999년홍콩의유력주간지『아주주간』에서선정한‘20세기중국어소설100선’에서바이셴융의『타이베이사람들臺北人』은7위를차지했으며생존작가의작품가운데서는으뜸이었다.미국의저명한중국문학자샤즈칭夏志淸도“5·4운동이후예술적성취에서그와필적할만한사람은루쉰부터장아이링까지단대여섯명에불과하다”라고극찬한바있다.작품집으로『외로운17세』『뉴요커紐約客』『타이베이사람들』등이있고,연인왕궈샹과의사랑을기념해펴낸에세이집으로『나무는이와같다樹猶如此』가있다.

목차

화보

제1부추방
제2부우리의왕국에서
제3부안락향
제4부그젊은새들의행로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타이완을넘어중화권현대문학의거장인바이셴융白先勇의『서자』(1983)가출간40년만에드디어한국어로번역·출간됐다.글항아리가새롭게선보이는‘거장들의클래식’제1권으로나왔다.바이셴융은오래전부터중국어권을대표하는소설가였다.1999년홍콩의유력주간지『아주주간亞洲週刊』에서선정한‘20세기중국어소설100선’에서바이셴융의작품집『타이베이사람들臺北人』(1971)은7위를차지했다.그앞의1~6위는모두사망한작가들의작품이었으므로생존작가중에서는그가으뜸이었다.미국의저명한중국문학자샤즈칭夏志淸도그가“현대중국단편소설가가운데기재로서5·4운동이후예술적성취에서그와필적할만한사람은루쉰부터장아이링까지단대여섯명에불과하다”라고극찬한바있다.

하지만그의유일한장편소설이자대표작인『서자孼子』는1977년부터1981년까지타이완의잡지와싱가포르의신문에연재된후1983년타이완위안징遠景출판사에서단행본이출간되었을때민감한소재로인해별다른반응을얻지못했다.이미바이셴융이저명한작가였고문단데뷔이후여러편의퀴어단편소설을발표했는데도그랬다.몇년뒤프랑스와미국에서번역서가출판돼열렬한반응을일으키고나서야타이완내에서도이작품에대한논의가본격적으로시작되었다.그리고1986년이작품을각색한동명의영화가상영되었고2003년에는역시동명의드라마가절찬리에방영되어타이완금종상의여우주연상,감독상,미술상등을휩쓸었다.당시드라마의영향으로연예인과일반인의커밍아웃이줄을이었으며가출한동성애자자식들에게“용서해줄테니돌아오라”는말을전해달라는부모들의전화가방송국에빗발쳤다고한다.

바이셴융은그간한국에는거의알려지지않았다.1987년중앙문화사에서중문학자인고故허세욱교수의번역으로바이셴융의대표작인『타이베이사람들臺北人』이번역된적이있으나몇편을골라선역한것이며,책자체도세계문학전집중한권으로루쉰·자오쯔판趙滋蕃의작품과묶여있었다.그나마일찍이절판되어구해볼수없는상태이지만허세욱교수의좋은번역으로바이셴융문학의풍부한묘미가전달되었던바있다.

『타이베이사람들』이단편집이라면,『서자』는장편소설로스스로동성애자이기도한작가가타이베이동성애젊은이들의삶을제재로해서써내려간큰분량의작품이다.스스로“칠흑같이어두운밤에홀로길거리에서방황하는의지할곳없는아이들을위하여이글을쓴다”라고밝혔듯이가정과학교로부터버려진타이베이의젊은이들에관해묘사한다.

아칭,샤오위,쥐,우민,아슝등은타이베이의신공원에서양사부를중심으로불법적인지하동성애왕국을조직하여매춘을하며살아간다.그들은대부분비정상적인가정환경과동성애성향으로인해어쩔수없이거리로나와서타락의길을걷는다.하지만그들의마음속깊은곳에는언제나희망과동경이있다.샤오위는일본에가서잃어버린아버지를찾고싶어하며우민은연인에게늘비정하게버려지면서도순수한사랑을열망한다.아칭은죽은동생을그리워하면서자신을버린아버지와의화해를꿈꾼다.그들은양사부의제의로‘안락향’이라는게이바를차리고비정한사회에자신들만의파라다이스를만들려하지만끝내사회의차별과냉대로실패하고만다.하지만그들은뿔뿔이흩어진후에도포기하지않고각자의꿈을향해나아간다.

바이셴융에대하여

1954년타이베이.17세의고등학생바이셴융은학원의여름방학대학입시준비반에다니고있었다.어느날그는수업에늦어서허겁지겁학원건물계단을뛰어올라가다가자신처럼지각한다른반학생과부딪쳤다.마른체격에갸름한얼굴의그학생은이름이왕궈샹王國祥이었고두사람은아마도처음눈이마주치자마자자신들이같은부류의사람임을알아챘을것이다.

금세친해진두소년은같은대학에가기로약속한다.당시바이셴융은장차타이완과중국이통일된후중국으로건너가산샤三峽댐건설에참여하는것을꿈꿨다.그래서타이난에있는청궁成功대학토목학과에진학했고왕궈샹은같은대학의전자공학과에들어갔다.하지만바이셴융은1년만에전공이자기적성과안맞는다는걸깨닫고다시시험을봐서타이완대학영문학과에입학한다.이에왕궈샹도그를따라타이완대학물리학과로옮겨간다.바이셴융은이후단편소설창작과공개낭송회에서두각을나타냈으며왕궈샹은그의충실한독자이자청중이된다.그런데왕궈샹은대학3학년때재생불량성빈혈에걸려2년을휴학할수밖에없었다.그기간에바이셴융은정성껏그를돌봤으며다행히그는건강을회복한다.

대학졸업후대학동기들과잡지『현대문학』을창간하고활발히작품활동을하던바이셴융은1962년모친별세후미국유학길에오른다.이때도왕궈샹은바이셴융을따라간다.함께아이오와대학에서공부했으며바이셴융이석사학위를받고캘리포니아대학샌타바버라분교의중문학교수로취임하고나서도그와함께했다.두사람은작은집을얻고정원에이탈리아측백나무를심었다.휴일이면근처항구에서킹크랩을사와왕궈샹이정성껏요리를해서함께나눠먹었다.그렇게30여년간둘만의행복한세월을보내다가1989년왕궈샹의재생불량성빈혈이재발한다.그후3년동안바이셴융은왕궈샹을데리고미국각지의병원을전전한다.나중에는중국의명의까지찾아가치료방법을강구하지만결국왕궈샹의죽음을막을수는없었다.1992년8월왕궈샹이55세를일기로사망함으로써바이셴융은38년간벗한연인을잃고만다.그리고6년뒤,그는왕궈샹과의사랑을기념하는에세이집『나무는이와같다樹猶如此』를출간한다.

훗날어느매체와의인터뷰에서바이셴융은병석의왕궈샹을돌보던때를회고하며이런말을했다.“당시누가내게히말라야산꼭대기에명의가있다고했다면나는거기에올라가신약을달라고애걸했을겁니다.그때내게는왕궈샹의생명을구하는게그무엇보다중요했습니다.”그리고덧붙여“그는내연인이었고내인생에서가장중요한사람이자정신적지주였습니다.그의죽음은내인생에서가장만회하기힘든,유감스러운일이었죠”라고말했다.

바이셴융은62세에홍콩매체와가진인터뷰에서자신의성정체성에관해뚜렷한입장을밝힌바있다.그는“처음나의성정체성을깨닫고알게된후로내게동성애는아름답고자랑스러운것이었습니다”라고단호히말했다.하지만또『서자』와관련해서는“이작품은동성애를다루는것에앞서인간을다루었습니다”라고도했다.실제로이작품은주로1970년대타이완타이베이시신공원에형성된남성동성애자그룹의서브컬처를제재로삼긴했지만그밖에도그들과부모간의절절한감정을깊숙이조명하고있다.

나는『서자』를번역하는내내작가바이셴융과그의아버지의관계가어땠는지내내궁금했다.『서자』에는두명의아버지가매우중요한인물로등장한다.한명은주인공아칭의아버지이고다른한명은동성애자아들을자살로잃은푸어르신이다.두사람은모두군인출신으로,이런설정은역시아버지가군장성이었던바이셴융의자전적색채를보여준다.바이셴융의아버지바이충시白崇禧는타이완정부에서국방부장관까지지낸저명인사였다.바이셴융은그의10남매중8번째로태어나어릴적극진한사랑을받았으며그자신도부모에대한사랑이남달랐다.그런데훗날“당신아버님은당신의성정체성을아셨습니까?”라는여러인터뷰어의질문에바이셴융은각기다른답을내놓았다.한번은“모르셨지만만약아셨어도그분은자식들의사생활을존중했기때문에아마이해해주셨을겁니다”라고했고또한번은“나의특수한성향을아셨지만그래도나를존중해주셨습니다”라고했다.바이셴융은왜이렇게다른말을했을까?또둘중어느쪽이진실일까?나는둘다진실이며바이셴융은그진실의서로다른면을말했을뿐이라고생각한다.바이셴융은이미미국으로떠나기전부터「월몽月夢」「외로운17세寂寞的十七歲」같은퀴어단편소설을발표했다.그리고평소자식을사랑했던아버지바이충시가아들의성정체성을몰랐다는건말이안된다.따라서바이충시는아들이동성애자라는것을알면서도굳이언급하지않고묵인해준것이라생각한다.보수적인군인이었던그로서는그것이최선의표현이었을것이다.

바이셴융은아버지의임종을지키지못했다.그가미국에있을때급환으로사망했기때문이다.훗날그는어느지면에서자신이마지막으로아버지를보았던때를회상한다.당시한달여전아내를여읜그의아버지는고희의노구를이끌고공항에나가아들의미국행을전송한다.멀리떠나는아들앞에서그는뜻밖에도눈물을보였다.그당당했던군장성이마치어린아이처럼엉엉울음을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