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문화로 보는 주방 오디세이 : 칼과 도마, 젓가락과 냄비가 품고 있는 삶의 풍경들

역사와 문화로 보는 주방 오디세이 : 칼과 도마, 젓가락과 냄비가 품고 있는 삶의 풍경들

$20.11
Description
틈새로 엿본 ‘부엌의 작은 역사’
선사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고고학부터
압축 성장 근현대사 속 파란만장함까지
달그락달그락 들려오는 이야기들
한 권의 책은 나오게 된 저마다의 사연이 있지만, 사연이 일반적이지 않고 예상을 벗어나 관심을 끄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이번에 나온 『역사와 문화로 보는 주방 오디세이』가 그렇다. 이 책은 다소 특별한 경로를 거쳐 잉태됐다. 저자는 대학에서 국문학과 국어학을 공부한 뒤 사회생활을 하며 동시에 몇 권의 책을 쓰고 번역한 사람이다. 어느 날 글로 먹고 사는 미래가 슬슬 불안해진 그는 장사를 시작하게 된다. 남대문 그릇도매상가에서 업소용 주방기물을 취급했다. 그릇도매상가 C동 3층에서 2012년부터 5년간 치열하게 이윤을 좇는 삶의 현장을 경험했다. 그릇만 판 건 아니었다. 냉장고와 가스레인지, 선풍기, 쓰레기통, 신발 등등 업소가 필요로 하는 온갖 기물을 다 거래했다. 몽상가였던 저자를 장사꾼으로 훈육해준 주변의 베테랑 상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장사꾼 DNA’가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장사는 접었지만 현장에서 습득한 지식과 경험은 고스란히 남았다. 이것들을 그대로 두기엔 너무 아까웠기에 저자는 온갖 문헌을 동원하여 주방기물의 다종다양한 이야기들을 모으고 엮어내기 시작했다. 『역사와 문화로 보는 주방 오디세이』는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다. 책의 참고문헌을 보면 알겠지만 얄팍하게 공부하고 쓴 책이 아니다.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이 오롯이 자료 조사와 원고 집필에 소요되었다. 장사한 기간까지 합치면 10년이다.
이 책은 주방이라는 공간 안에서 하모니를 이루고 있는 백전노장들을 다룬다. 젓가락과 숟가락, 칼과 도마, 냄비와 밥솥, 프라이팬과 밥상, 냉장고와 유리제품, 도자기 그릇과 스테인리스 그릇, 주방가위와 부루스타, 식기세척기 등 인간의 입에 들어가기 위해 식재료가 조리되고 차려지고, 치워지기까지에 소요되는 거의 모든 주방도구들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었던 주방 일에 대한 논의와 그에 대한 역사적 비판적 논의도 이끌어가고 있다.
저자

장원철

저자:장원철
서울시립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했고동대학원에서국어학을전공했다.『지혜와통찰』『구두장이잭』『백마디를이기는한마디』등의책을출간했다.옮긴책으로는『아주작은반복의힘』『데일리필로소피』『무엇이관계를조종하는가』『모두에게사랑받을필요는없다』등이있다.

목차

머리말

1.젓가락은어떻게우리곁에왔을까
세가지식사법,구역질은누구의몫일까?|손은이미완벽한식사도구다|공자,손으로밥을먹다|젓가락은신의것,손가락은인간의것|한중일젓가락은모양과크기만다를까?|노인을위한젓가락은있다|삶과죽음의경계,숟가락

2.요리의최전선,칼과도마
최초의주방도구,칼|돌칼에서시작된안면성형|칼에생명을불어넣은날|불맛,손맛이전에칼맛|상처받을수있는쓸모있는몸,도마

3.주방그리고남자와여자
부엌일에서오르가즘을느끼는여자는없다|먹을줄만아는남자,아리스토텔레스편|먹기만하는남자,맹자편|포르노그래피와닮은요리하기,남자가칼을들때|몹시해괴망측한제사법|주방으로들어갔다이혼당한단카이세대|맛의원형질,집밥그리고어머니

4.따뜻한한그릇의밥이되기까지,냄비
끓여먹는다는것의혁명|먹어야겠다는욕망과도구의발명|냄비,신석기시대사회복지를구현하다|물요리도구의진화,양숙과에서타진냄비까지|물로굽는시대,수비드요리|밥짓기에서해방되다,전기밥솥

5.우리에게없었던프라이팬,사라지는밥상
볶음밥은양식이었다|프라이팬은지짐남비이올시다|김치볶음밥은언제부터먹었나?|한때는보석이었던알루미늄|천덕꾸러기가된알루미늄|코팅프라이팬과원자폭탄의공약수|밥상은우리주방에서사라질까?

6.불의진화,부엌에서주방으로
요리는머리로한다|불피우는일은만만치않다|불꽃이없는신기한화덕,전자레인지|난방에서해방된부엌,주방이되다|또다른새로운불,전기레인지|나는아내가있어서좋다,아가쿠커|정말튀기는걸까,에어프라이어

7.추위를꺼내먹다,냉장고
얼음은부동산이었다|시원함에대한욕망|냉장고는위험하다|냉장고는도시인프라다|냉장유통연대기|일찍온미래,우리나라냉장고|방안으로들어온김치독,김치냉장고

8.식기로선여전히낯선유리
모래와불이만든보석,유리|종이와유리,동양과서양의운명을가르다|흐르지않는액체는어떻게마법을부리나?|유리,유교적가치관과충돌하다|유리,제국주의의첨병이되다|끝없이황금알을만들어내는거위|와인의맛,유리의맛

9.동양연금술의결정,도자기와그밖의그릇들
어떻게해야깨뜨리지않고옮길수있을까?|도자기,비단길을열다|보석을향한열망,청자를만들다|빨가면더비싸다|그릇으로차별하다|그릇이무거우면맛있다,그리고비싸다|스테인리스식기는첨단상품이었다|한국인은청동기인이다|우리집제기는옻칠일까?캐슈칠일까?|이땅위의마지막집이었던그릇

[부록1]주방가위,수원갈비,부루스타
[부록2]스탕달의연애론과식기세척기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젓가락은신의것,손가락은인간의것

1장‘젓가락은어떻게우리곁에왔을까’에서는손으로먹는나라와젓가락을쓰는문화의구분부터시작해인간의손이유인원의손과갖는차이,처음젓가락에신에게올리는제사상의음식을옮기는용도였을때부터일반화되기까지의역사를짚고있다.가령젓가락은처음등장했을때핀셋형태에가까웠다.한개의대나무를구부려서이런형태를만들었는데의례의음식을옮기는용도에적합했다.그리고인간의손엔‘짧은손바닥근’이라는,작지만불가사의한기능을하는작은근육이있다.이근육은우리가손끝을오므릴수있도록하고손아귀에힘이들어가면탄탄하게받쳐주는역할을한다.원숭이는이근육이없다.젓가락을쓰는한·중·일문화에서식사방법에따라젓가락의길이와무게가어떻게다른지를다룬부분도흥미롭다.멜라민수지로만든25센티미터중식젓가락의무게는20그램이다.일식젓가락으론조금긴편인24.2센티미터멜라민일식저의무게는19그램이다.재질이나무가되면더가벼워진다.나무젓가락은중식과일식모두12~13그램안팎이다.하지만우리젓가락은22.8센티미터스테인리스의무게가43그램이다.식당에서흔히만날수있는인삼저분(손잡이에인삼문양이들어간베스트셀러로인삼숟갈과한쌍)의경우23
센티미터에47그램이다.삼치구이한마리를꼼꼼히발라내고뚝배기감자탕속돼지등뼈에붙은살을속속들이젓가락으로발라내본적이있다면쇠젓가락의무게를실감할것이다.다발라낼즈음이면손아귀에서쥐가난다.

칼의각도가15~25도사이인이유

2장‘유리의최전선,칼과도마’에서는질문을던진다.인간이인간은불을먼저만났을까,칼을먼저만났을까?정답은칼이다.고고학유물로출토된다양한돌칼에서시작된칼의연대기가펼쳐지는2장은역시요리는불맛,손맛이전에칼맛이라는점을알려준다.주방용칼은편도15~25도사이다.이각도면베고,썰고,다지고,저미는여러작업에무난하게쓸수있다.무기로서의칼도이각도에서만들어진다.15~25도사이의날각은절삭력은좋지만내구성이약해자주갈아줘야하는단점이있다.때문에중국무협영화에서처럼칼끼리부딪히며합을겨루다간결정적인순간에목적을상실할수있다.편도25~30도에서부터날의내구성이강해진다.조금험하게쓰는사냥칼,주머니칼,캠핑레저용칼이이범주에들어간다.사시미칼은15~17도로한쪽날만세운다.한쪽날만세우기때문에오른손잡이용과왼손잡이용이따로있다.이렇게한쪽으로만날을세우면부드러운재료를얇게자를수있고잘린면이깨끗하고아름답다.칼의예리함이요리에그대로표현되는데칼을눌러써는것,당겨써는것,칼끝을대고눌러써는것,칼이도마에닿지않고써는것등방법에따라요리의식감이달라진다.인류학자E.N.앤더슨은중국칼을가리켜만능이라고불렀다.자세히살펴보면겉보기와다르게아주섬세하게가공되었기때문이다.중식칼은그냥네모진것같지만날부분에살짝배가나와유선형을이룬다.이로인해식재료위에칼날을얹어가볍게아래위로흔드는것만으로도썰기가가능하다.또넓적한몸체는썰어놓은식재료를한번에옮기는데유용하다.단단한재료를다듬는것은몸통을두껍게만들고야채등부드러운재료를다듬는것은몸통을얇게뺀다.
당신은아는가,나무도마의복원력과항균력을

칼에가장친절한도마는나무도마다.칼이잘미끄러지지않으며모진칼질을적당한탄력으로받아내날의예리함을지속시켜준다.나무도마는수분을머금었다마르는과정에서칼질로생긴상처를복원하는힘이있다.복원력이가장좋은것으로는은행나무를으뜸으로친다.이특성으로무거운유기식기에눌린자국이생기기쉬웠던우리전통밥상은은행나무로만든것을최상급으로대접했다.젖은행주로한번훔쳐놓으면다음끼니가되기전에눌린자국이사라지기때문이다.또나무자체에유분이많아물빠짐(건조)이가장잘된다.나무도마는위험한잡균이서식할수있다는편견이있지만나무자체의항균작용으로인해잘씻고말려주면가장안전한재질이다.

물과불이만나는냄비의혁신

4장‘따뜻한한그릇의밥이되기까지,냄비’에서저자는재난이생겼을때가장먼저챙겨야할조리기구는냄비라고말한다.냄비하나만챙겨도우리가일상에서먹는대부분의요리를할수있다.볶고삶고데치고끓일수있을뿐만아니라식용유가풍부하다면튀김도가능하다.냄비요리를다룬요리책에는보통100~200여가지의음식이소개되어있지만프라이팬요리를다룬책에는30~40여가지가전부다.
불과물이만나야냄비요리가완성된다.불에구우면소실될수있는고기의지방과육즙은물을매질로하여냄비속으로녹아든다.냄비는분류학상서로거리가먼동물과식물,해산물과균류(버섯)를한자리에불러모아맛과영양을교환할수있도록한다.일부콩류나고사리,가지같은식물들은물에불리거나삶고데치는과정이있어야비로소안전한먹거리가된다.감자,토란,도토리의전분은열처리하지않으면소화가불가능하다.수많은자연의산물이냄비의발명으로인류의식탁안으로들어왔다.

볶음밥의국산화는언제이뤄졌을까

통계는없지만1945년이되면프라이팬이꽤보급된것으로보인다.매일신보3월10일자에‘후라이판은이러케다룰것’이라는기사가있다.기름을조금발라보관하라고했고눌러붙은것을제거하려면계란껍데기를잘게부수어신문지로닦으라고했다.이시기에오면볶음밥을중식으로인식한다.중국은6세기경위진남북조시대에쇄금반碎金飯이라고불린볶음밥을먹었다는기록이있을만큼볶음밥의역사가깊다.여기에19세기말제물포와인천으로들어온중국인들이식당을열면서청요리가일식과함께고급요리의대명사로자리를잡아가던시기였으니볶음밥을중식으로인식했어도무리는아니다.그렇다면우리는언제부터볶음밥이라는요리에서국적을연상하지않게되었을까?분명히김치를넣고밥을볶아먹기시작한후부터일것이다.프라이팬이1940년대에주방기구로우리부엌에들어왔다고본다면대략1940년대말에등장했을수있다.
하지만볶음밥이확실한한국국적을취득하게된것은1970년대라고생각된다.돼지생산량이미약했던그전에는돼지기름이비쌌다.식용유가풍부해진것은1969년과1971년오뚜기,해표와같은식품회사가설립되면서부터다.이때부터대두를사용한콩기름이대량으로시장에나왔다.알루미늄에에나멜코팅을한프라이팬이본격적으로보급되기시작한것이이시기다.이제밥상에손쉽게볶은김치를올려놓을수있는기본준비가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