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전기×음악
Description
여성과 전기, 그리고 음악
우리를 나누거나 연결하는 세 가지 통로
여기 여섯 명의 음악가가 있다. 이들은 전기를 통해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한다. 랩톱을 비롯하여 각종 묵직한 전자기기들을 둘러매고서 국내외의 관중을 만나기도 한다. 평소에는 오랜 시간 방 안에 앉은 채 모니터 속의 파형을 들여다본다. 모니터 안에서 조각나고 합쳐지는 선은 이윽고 미래의 관객이 들을 음으로 변화한다.
전자음악가들에게 전기란 음악을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물론 현대에서 전기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전기는 발견 이래로 꾸준히 인류의 삶을 변화시켜왔으며, 이로써 작동된 기계는 이전까지의 인류가 상상치도 못한 이기의 발전을 가져왔다. 이 발전은 세상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뒤바꿔버렸다. 음악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기 장치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작곡과 공연의 형식을 가져왔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그들이 되고자 했던 음악가가 될 수 있었”(181쪽)으며, 과거와는 다른 형태로 작곡을 하고 공연을 선보일 수 있었다.
저자

영다이,위지영,키라라,애리,조율,황휘

디제이,프로듀서.컴퓨터뮤직클럽의멤버.웃기지만씁쓸하고,무섭지만끝까지보고싶은것을만든다.서울,호주,미국에서《Pizzapi》《ThresholdValue》《ParallelCosmo》《WeatherZ》등의앨범을발매했고,2019년부터는음악을듣는방식에대한사운드아트프로젝트「だいだい」(다이다이)를진행하는중이다.2022년부터는런던,암스테르담,브라티슬라바,제네바등세계각국의다양한장소에서공연하고있다.

목차

영다이-HowtallisYeongDie?7
위지영-Soundfart:확신없는경종37
키라라-여성전기음악키라라77
애리-구구절절103
조율-단하나의곡을듣고그곡을만든이를영원히사랑할수있는가153
황휘-자동기계와음악하기177

참고문헌225
이책을쓴사람들228

출판사 서평

오늘날한국에서전기로음악을만드는여섯음악가
그들이모니터와전선속에서빚어낸음의형태

오늘날한국에서‘전자음악’이란단어가연상시키는풍경은어떤것일까?일렉트로닉댄스뮤직에빠져있(던)는이라면월드디제이페스티벌의땀냄새와야광봉부터떠올릴지도모르겠다.국내의전자음악에관심이많은사람이라면홍대와합정또는이태원부근의클럽에서CDJ를조작하는무표정한,혹은활짝웃는얼굴들을그릴수도있다.어쨌거나전자음악이란이름은반드시공연과기계의이미지를동반한다.이음악의시작점이전기그리고기계와유착된채발전해왔으며,공연전‘입력된’곡을연주하는방식의특수성에뿌리를내리고있기때문이다.

화학적으로,즉인간의힘으로전기를만들수있음이증명된1800년부터,인류는전기로작동되는각종장치를발명해왔다.1821년의전기모터부터1879년이조명전구,1884년의증기터빈에이르기까지.전기를동력원으로삼은기계들은인류의생활을더밝게,빠르게,편리하게바꿨다.동시에이로써기후위기를불러온각종발전을가속하는데큰몫을담당하기도했다.

이렇듯다양한의미와면모가공존하는전기의활용은예술분야에서도선명한경로를그려냈다.1977년뉴욕브롱크스의정전이말미암은대규모(전자기기)절도사건은도심에각종블록파티blockparty를열게했고,이때형성된여러크루는“한때로컬장르에불과했던브롱크스의음악”을“‘힙합’이라는이름”(180~181쪽)으로대중화시킨다.전자기기를본격적으로내부에끌고온전자음악은비트매칭beatmatching과샘플링sampling등다양한창작의방법론을진화시켰다.

이책에참여한작가들또한그과정을선명하게인지하고있다.그들은자신이몸담은음악이어떻게전자기기와결탁해왔는지,또한이를통해어떻게씬scene이형성되었는지인지한채작업을이어간다.이인지의과정은분명필연적인일로보이는데,전자음악을창작하는과정에서전기그리고기계라는조건이꾸준히제몸체를드러내보이기때문이다.전자음악을창작하는과정에서음악가들은“원테이크one-take로녹음한트랙”을“라이브로연주하기위해음원을듣고,다시악보로옮겨적”(13쪽)기도하며,새로운소리를제작하기위해“기록가능한형태의다른시간을감지”(40쪽)할방법을모색한다.그들은음악을만들기위해윈드스크린을씌운녹음기를든채공항철도에서서기차의소리가가까워지길기다리며,튜닝이풀린기타를연주하고,모니터속음원의파형들을반듯하게다듬는다.

이처럼전자음악이만들어지고공연되는방식은일반적으로상상되는‘음악창작’의과정과는사뭇다르다.그렇다고해서전자음악이란단어가쉬이불러오는보편적인‘기계조작’의이미지만있는것도아니다.전자음악이만들어지는길에서는“핸드폰의녹음기를켜”는동작과“기타를끌어안고노래를부르”(162쪽)는동작이공존한다.자신의신체와전자기기를이용해각종음악을만들어나가는이여섯음악가는,스스로창작하는경로를되짚어가며지금껏어떤작업을진행해왔으며앞으로만들어갈음악은어떤모습일지기록해나간다.

‘여성’이라는이름또는단어,혹은……?
각자다르게감각되고이해되는영역의기록

짚고넘어가야할점이있다.‘전기’와‘음악’과마찬가지로,이책에서의‘여성’은다양한함의를품은키워드다.서로다른저자들의글에서‘여성’은개개의맥락에따라계속하여다른의미를확충해나간다.각글에서저자들은이단어를사전적정의로곧장치환하는대신,자신들의삶이꾸준히마주해야했던기표와기의로서다룬다.

여섯편의글속에서이기표와기의는겹치거나나눠지길거듭한다.누군가에게‘여성’은내가원치않던약자성이며,내가진입하길바랐던씬에서수없이배제되도록만들었던역할이다.동시에‘여성’은시스젠더와트랜스젠더가구분된세상에서갈구해온사회적역할이자,세상에서꾸준히나쁜생각이들도록만든“아픈말”이면서도“나쁜것”(85쪽)이다.이러한정의들은옳고그름으로나눠지지않는다.혹은,나누어져서는안될것이다.이는하나의단어가지닌가능성을손쉽게요약하는행위이기때문이다.분명한점은‘여성’이여전히우리에게많은논의를불러오는키워드라는사실이다.이키워드는상황과맥락에따라다르게감각되며저마다다른궤적을남긴다.때로는구태여의식할일없는개념으로남아있기도하며,어떤순간에는삶의매순간의식할수밖에없던바로미터로자리잡는다.

여섯작가는이의미를간단히압축하거나포괄하는대신에,자신의삶속에서이단어가어떤방식으로다가왔는지치열하게추적하는방법을택한다.그들은‘여성’이자신의삶에서어떻게작동되는지살핀다.어느갈림길에서‘여성’은안팎을나누는확연한경계로써“왜도대체나같은사람에게‘여성음악가’의이야기를하라고하는건지,좀야속하다”(81쪽)고느끼게만든다.또다른기로에서‘여성’이란“꽃처럼취급받는순간”(120쪽)을불러오는무엇으로도보인다.“사건이마무리된미래의위치”에서“과거를되짚”(221쪽)을때,‘여성’은충분히호명되지않은이름이며꾸준히고민되어야하는모습이다.

유의미한주제들이그러하듯,이책에서도고민들은쉬이마무리되지않는다.계속해서곱씹어야할질문들과지금행할수있는선택지들이그려질뿐이다.주안점은이갈림길을함께굽어보는일이다.기나긴고민의시간에도불구하고,우리에게‘여성’은충분히해석되거나탐구되지못한키워드다.우리에겐여전히나누고논해져야할의제들이많다.책의저자들은그일로부터고개를돌리는대신,우리가이야기할수있는것들에눈을맞춘다.여섯편의서로다른글에서‘여성’의키워드를좇아간몸짓들은이단어의외연을확장하고깊이를더하고있다.그리고그시선이야말로우리가만날수있는또하나의진실일것이다.

음과소리,그리고공연의순간
나를나로서있을수있게만드는빈틈들

제23회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상영된리사로브너의다큐멘터리,「일렉트로니카퀸스-전자음악의여성선구자들SisterswithTransistors」(2020)은20세기초의테레민연주자부터제2차세계대전이후의컴퓨터음악가에이르기까지,다양한여성전자음악가의계보를추적한다.이들에게전자음악이란인류의발전을상징하는기표,그이상의것이었다.전력으로움직이는기계들은(남성아티스트들이거주하던)주류에편승하지않더라도독립적으로음악을창작하고공연할수있게했다.20세기의여성음악가들은새롭게나타난전자악기를본인들의삶을해방시키며‘새로운형태의음악가’를가능케할통로로본것이다.통로를지나온작가와음악은좀더풍성한궤적을만들어냈다.

오늘날의우리는과거보다더욱다양한통로를갖게되었다.역사가쌓인만큼우리가논할수있는의제가더많아진덕분일테다.그러나이것을‘새로생긴길’이라고부를수는없다.그보다는우리안에‘여태있었지만’제대로‘응시하지못한(않은)길’을발견했다고하는쪽이더옳을테다.가령남성과여성으로구분되던갈래는현실의다양한자리가조명될수록더욱여러방향으로갈라지며새로운잔가지를만들어왔다.시스젠더와트랜스젠더,백인과비백인,엘리트계층과노동자계층…….이잔가지들은계속하여새로운갈림길을만들며세계를확장한다.전자음악은그사이에서계속하여꽈리를틀거나새로운모양을만들며또다른음을만들어왔다.그리고이제껏여러차례증명된것처럼,미래는이처럼새롭게만들어지는잔가지들사이에서움틀것이다.

물론아직이갈림길들의기록은충분히적히지않았다.사실은아직도‘제대로’적히지않았다고말해도좋을것이다.‘여성’과‘전자’그리고‘음악’이라는키워드가불러오는이미지와텍스트들에는아직도드넓은빈자리가남아있다.『여성×전기×음악』은그빈자리에새로운궤적을그려넣는시도이자,아직도우리에게얼마나넓은,또다채로운(때로는채워야하고,때로는그대로비워둬도좋을)빈자리가있는지보여주는몸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