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길러낸 중국의 엘리트들 : 미국의 중국 유학생들, 1872~1931 (양장)

미국이 길러낸 중국의 엘리트들 : 미국의 중국 유학생들, 1872~1931 (양장)

$30.28
Description
낙후된 초나라의 인재를
선진국 진나라에 보내라!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건너간 중국 엘리트들은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사람이 되어 돌아왔는가
그리고 중국의 사회,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미국이 길러낸 중국의 엘리트들: 미국의 중국 유학생들, 1872-1931』(원제: 礎材晉育)은 미중 양국의 인재 교류의 양상을 살펴본 책이다. 『중국유미학생월보』를 주된 자료로 삼고, 1902년에 창립했다가 1931년 해체한 전미중국유학생연합회 활동을 중심으로 중국인 미국 유학생을 조명했다. 이 단체는 중국 유학생들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만든 전국 유학생 조직으로, 룽훙이 주도한 어린 유학생들은 포함되지 않으며 그들이 본국으로 소환된 이후의 ‘과도기 세대’ 유학생들이 중심이다. 그렇게 볼 때 전미중국유학생연합회는 미국 유학이 유행한 이후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반의 미국 유학생을 이해하려면 전미중국유학생연합회를 이해해야 하며 선구자 세대부터 과도기 세대로 연결되는 역사의 전체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이 책의 서술은 1872년을 시작점으로 하여 전미중국유학생연합회가 해체된 1931년까지의 기간을 담고 있다.

중국이 수천 년 주변 국가들로부터 유학생을 받아오다가 처음으로 바깥에 유학생을 내보낸 곳이 바로 미국이었다. 그로부터 150여 년이 흐른 2020년 현재 미국의 중국 유학생은 37만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미국의 전체 외국인 유학생 중 35퍼센트를 점하는 수치로, 실로 놀라운 양적 성장이다. 200여 년 사이에 양국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무역과 인재로 활발하게 교류했지만 그 과정은 한순간도 순탄하지 않았다. 대국 간의 교류는 다면성과 복잡성을 포함하고 있어 항상 주변국들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과거로부터 축적되어온 역사를 돌아보지 않은 채 작금의 상황에 매몰된다면, 전체적인 모습을 놓칠 수밖에 없다.

동치 중흥이래 미국은 중국의 가장 중요한 롤 모델이었다. 단지 ‘물건의 신기함’ ‘물질적 안락’ ‘질서정연함’ 때문이 아니라 서방 열강들의 무차별한 침략 속에서 미국만이 정치적으로 가까운 우방이며 보호자라는 믿음이 있었다. 미국에 유학했던 많은 중국 인재가 한편으로 미국을 신앙처럼 여기며 중국의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이 전개되었다. 20세기 초 미국이 중국인을 배척하는 법안을 만들면서도 중국 유학생들을 받아들인 이유는 “친미 성향의 지도층과 광대한 소비층을 배양하기 위해서”라는 명확한 목적이 있었다. 당시 왕징춘王景春은 미국 유학 경험을 통해 “중국은 이 세계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놀랄만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일본이 이룬 현대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것이다. 내일의 중국은 명석한 두뇌와 식견을 가진 지도자의 영도아래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켜 세계 시장에 다양한 원료를 제공할 것이다”라고 희망을 쏘아 올렸다.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상황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심각한 갈등 속에서도 많은 중국인은 미국을 이상향으로 여기고 있고, 미국 역시 중국이라는 광대한 시장에서 발을 뗄 수 없다.

과거와 차이가 있다면 일부 영역에서 롤 모델에 근접하거나 넘어서다보니 롤 모델이 이에 놀라서 당황하는 초유의 형국이 되었을 뿐이다. 섣부른 예측론자들은 또 다양한 통계수치를 들어 오래지 않아 중국이 미국을 추월해서 G1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역사학자로서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우리는 같은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양국이 전통 속에서 그리고 현대화 과정에서 쌓아온 풍부하고 많은 자산과 경험은 쉽사리 소진되지 않을 것이고, 누구보다 당사자들이 서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지 미국으로 간 중국 유학생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다. 시기는 늦었지만 수많은 한국 인재가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 유학을 떠났고, 그렇게 연결된 고리를 통해 부와 명예를 보장받는 계단으로 이용했으며 사회 전반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그 사이에 있는 우리는 역사 속에서 꾸준히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다.
저자

장융전

江勇振

타이완출신으로타이완국립사범대학을졸업하고미국하버드대학에서중국사상사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인디애나주드포DePauw대학역사학과교수로재직하다가은퇴했다.근대중미교류에서중요한역할을한후스胡適연구에서많은성과를냈다.『별·달·태양:후스의감정세계星星·月亮·太陽:胡適的情感世界』『내가아니면누가있겠는가:후스舍我其誰:胡適』『장쥔리전張君勵傳』『장팅푸:역사학자에서유엔외교전쟁의차석외교관으로蔣廷黻:從史學家到聯合國席次保衛戰的外交官』『미국에서보낸반평생:위잉스-첸신쭈의논쟁留美半生緣:余英時錢新祖交鋒始末』,SocialEngineeringandtheSocialScienceinChina1919~1949등의저서가있다.

목차

들어가는글
서곡

1장아메리칸드림
크루즈선을타고태평양연안에도착하다
낙타가바늘을통과하는것같은미국입성
쿵샹시이야기
쑹아이링,메이링자매이야기
신입생환영회와관광이후,각자의길을가다

2장누가먼저사다리에오르는가?
미국유학의선구자
과도기세대
미국유학,유행이되다

3장조국과자신의문제
미동부중국유학생연합회발족
미동부중국유학생연합회와민주주의의실습
전미중국유학생연합회의성립
중국유학생사회의단층

4장권력의종이되다
‘백성의,배운사람에의한,백성을위한’공화국
보수는신념인가,관료가되기위한조건인가?

5장가정과취업사이에서
여자유학생의전공
결혼혹은취업
미국스타일을가진중국여성

6장내가사랑하는미국
문호개방정책이라는신화
인종,계층,백인동경

7장문화대국,찬란한문명
찬란한전통문화
효빈效?,오리엔탈리즘의비판

막을내리며|주|옮긴이의말|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중국이수천년주변국가들로부터유학생을받아오다가처음으로바깥에유학생을내보낸곳이바로미국이었다.그로부터150여년이흐른2020년현재미국의중국유학생은37만여명에이르게되었다.이는미국의전체외국인유학생중35퍼센트를점하는수치로,실로놀라운양적성장이다.

200여년사이에양국은태평양을사이에두고무역과인재로활발하게교류했지만그과정은한순간도순탄하지않았다.대국간의교류는다면성과복잡성을포함하고있어항상주변국들의긴장감을불러일으킨다.과거로부터축적되어온역사를돌아보지않은채작금의상황에매몰된다면,전체적인모습을놓칠수밖에없다.

동치중흥이래미국은중국의가장중요한롤모델이었다.단지‘물건의신기함’‘물질적안락’‘질서정연함’때문이아니라서방열강들의무차별한침략속에서미국만이정치적으로가까운우방이며보호자라는믿음이있었다.미국에유학했던많은중국인재가한편으로미국을신앙처럼여기며중국의변화를모색하는과정이전개되었다.20세기초미국이중국인을배척하는법안을만들면서도중국유학생들을받아들인이유는“친미성향의지도층과광대한소비층을배양하기위해서”라는명확한목적이있었다.당시왕징춘王景春은미국유학경험을통해“중국은이세계가한번도경험해보지못한놀랄만한변화를시도하고있다.이러한변화는일본이이룬현대화와는비교할수없을정도로거대한것이다.내일의중국은명석한두뇌와식견을가진지도자의영도아래새로운산업을발전시켜세계시장에다양한원료를제공할것이다”라고희망을쏘아올렸다.100년이지난지금까지상황은여전히진행형이다.심각한갈등속에서도많은중국인은미국을이상향으로여기고있고,미국역시중국이라는광대한시장에서발을뗄수없다.

과거와차이가있다면일부영역에서롤모델에근접하거나넘어서다보니롤모델이이에놀라서당황하는초유의형국이되었을뿐이다.섣부른예측론자들은또다양한통계수치를들어오래지않아중국이미국을추월해서G1이될것이라고하지만역사학자로서상당한시간이지난뒤에도우리는같은논쟁에서벗어나지못할것이라고생각한다.양국이전통속에서그리고현대화과정에서쌓아온풍부하고많은자산과경험은쉽사리소진되지않을것이고,누구보다당사자들이서로를잘알고있기때문이다.

이책은단지미국으로간중국유학생에대해서만이야기하는것은아니다.우리도역시비슷한길을걸었다.시기는늦었지만수많은한국인재가아메리칸드림을품고미국유학을떠났고,그렇게연결된고리를통해부와명예를보장받는계단으로이용했으며사회전반에서중요한영향력을행사하고있다.미국과중국,그사이에있는우리는역사속에서꾸준히유사한경험을하고있다.

1872년룽훙容宏이최초로어린유학생들을데리고미국에간것을시작으로중국의미국유학역사의막이올랐다.당시증국번曾國藩·이홍장李鴻章의상소문에따르면“오랑캐의기술을익혀오랑캐를제압한다師夷之長技以制夷”는명제아래“총명한아이들을선발해서양여러나라에보내어군정·선박·수학·제조등학문을배우게한다.약10여년의교육을마치고서양인의장점을중국에접목하여익히면강해질것이다”라는원대한계획의일환이었다.따라서중국을강국으로만든다는목표를이루는순간중단될계책이기도했다.

맨처음중국정부가미국에유학생을보내는정책을수립한목적은“초재진육楚材晉育”(춘추전국시대낙후된초나라인재를진나라에서교육시키는것)이었다.그리고「배화법」이활성화되던1882년부터1943년까지60년동안중국유학생은감히미국에남을엄두를낼수없었다.법안이폐지된후,특히1965년매년2만명의이민이허용되면서부터비로소유학생에게‘배움이뛰어나면남을수있는’선택이가능해졌다.결국초나라인재를진나라에서교육시키는“초재진육”은초나라인재를진나라에서등용하는“초재진용楚材晉用”의수단이되었고,인재유출현상의단초를제공했다.

지나친‘서양화’는늘골칫거리였다.룽훙이데리고간120명의어린유학생은1872년부터1875년까지4차례에걸쳐미국동부뉴잉글랜드지역에서공부했다.청나라정부는이들에게15년간투자하여중등교육부터기초를다진뒤군대·선박분야의인재로육성할계획이었으나1881년여름,10년도못채우고모든유학생을본국으로불러들였다.그까닭은이들이지나치게서양화되어학업을완수해도중국에별도움이안될것이라는우려때문이었다.

서양화는곧정체성의상실을의미한다.당시의유학이사회적투자로추진되었다는점에서중국학생들이과도하게서양화되었다는지적은심각하게받아들여야할문제다.즉개인차원을넘어국가와사회전체와관련된사안이므로사회적자본이라는관점에서이해득실을따져볼필요가있다.

한젊은유학생이전반적으로유학교육에대해비판한바있었다.후스胡適는1910년2차경관국비장학금으로미국에서유학을했다.1913년초그는「비유학편非留學篇」을발표해“유학을간다는것은나라의큰수치다留學者,吾國之大恥也”라며비판했다.중국은낙후되었으니유학생을태평양너머로보내새로운문물을배워우리의부족함을메워야하지만“유학정책은유학을가지않는것을목표로해야하며이목표가없으면유학정책은효과를거둘수없다”는게후스의입장이었다.

후스가유학하던무렵은중국이유학생을파견한지40여년이흐른시점인데어째서일본과달리‘유학을가지않아도되는’목표에도달하지못했을까?이에대해후스는“정부의잘못된교육방침과유학생의잘못”을지적했다.정부에대해서는국내교육을장려하기보다그저유학보내는데중점을둠으로써본말이전도되었다고비판했고,유학생에대해서는취득한학위를생계수단으로삼은것,산업만중시하고인문학을경시한것,근본을무시한것등을비판했다.

유학생들에대해서는두가지잘못을지적했다.1)자존심이없다.다른나라의물질문명에취해우리전통을지옥이라고생각한다.2)문명은수입할수없다중국문자는문명을전파하는수단으로돛帆과타舵,삿대와노櫓등차이를모르면가르칠수없고책도쓸수없다.유학생들이설사천하에없는지식을익혔다한들한자를모르고서무슨소용이있는가?

후스는많은결점을안고있으나유학자체를폐지할수는없으니개혁안을찾아야한다고했다.많은사람이중국을‘잠자는사자’로비유했으나후스는‘잠자는미인’에빗대어입맞춤으로잠자는미인을깨어나게한왕자는바로현대서양이라고했다.그러면서‘학생을신중하게선발하고,국내고등교육기관의증설’이라는방법을제시했다.

그러나이때이후로후스는생각이바뀌어더이상「비유학편」의주장을내세우지않았다.누군가중국을‘고대문화가발달한나라’‘문학의우아함,역사적영광,민족의돈후함’등으로표현하면그는오히려‘과대망상’‘미몽’‘반동’이라며비웃곤했다.후스는유학의목표는훗날유학할필요가없게하기위함이라고했지만여러회의자리에서지속적인유학생파견을주장했다.그자신귀국이후엘리트주의에매몰되어교육의질을높이려면인력,재력,에너지를고급학부에집중해야함을강조하는입장에선것이다.

후스가「비유학편」을쓰던1913년은룽훙의어린유학생들이소환되던1881년으로부터30년이지난시기다.그러나룽훙의어린유학생에대해‘새로운환경에적응하느라본래의모습을잃었고커다란성과도없었다’는비판과‘현재유학생들의가장큰문제는근본을무시한것’이라는후스의지적을비교해볼때,세월의편차에도유학생에대한비판의축은달라지지않았다.30년세월의간극을지우는비판의결론은결국자신이중국인임을잊을만큼서양화됐다는사실이다.후스는사상적으로성숙해진이후‘비非’유학을말하지않고유학이중국의엘리트교육발전과연구의지름길임을강조했다.

룽훙부터지금까지150년간여론과(미국을포함한)학계에서는유학교육에대해비판적태도가우세했다.후스의「비유학편」외침은마치드넓은벌판에서부는호각소리가흩어지는것처럼아무반응이없다가1920년대이후완전히다른양상을보였다.이데올로기와관계없이모두서양화라는현상에주목했다.좌파와우파,자유주의자와보수주의자,중국에서교육받은자와귀국유학생을막론하고서양화된유학교육이사회전반에끼친영향에대해하나같이비판했으며유학자체를폄하하기도했다.이는서양인사들도마찬가지였다.

이들의비판은세방향으로모아졌다.첫번째는맹목적답습으로,유학생들은서양의꽃을가져와자신들이잘알지못하는중국나무에이식했다는비판이다.두번째는그들이배운것은모두이론뿐으로이론에상응하는응용력이부족하다는것이다.세번째는유학생들이지나치게서양화되어정체성을상실했다는지적이다.

1920년대학계에서도유학생에대한시선은곱지않았다.대표적으로수신청舒新城의『근대중국유학사』는시간적으로룽훙의어린유학생부터1920년대중기까지,공간적으로일본부터유럽까지유학의전체과정(국비,자비,경관과그이후칭화대학유학생및기독교학교유학생)을조명했다.수신청의비판은정부의실책,즉청조말부터일관되지않은유학정책과통일된집행기구의부재,느슨한선발시험등에집중되었다.가장심각한것은자비유학생에대한자격제한이지나치게느슨해기본테스트조차도거치지않았다는점이다.그는정부가사회자원을낭비했을뿐만아니라“비현실적으로출세만바라는허영심”을조장했다고비난했다.또한그는칭화대학졸업생에대한투자가집중되었으나돌아온성과가너무적어‘경제적’으로도실패했다고보았다.칭화대학출신유학생들은국내현실에대해관심을갖지않아‘중국인도서양인도아닌不中不西’존재가많았다.수신청은“유학교육이나라를망국으로이끌기에충분했다”면서도스스로이비판이“지나치게격렬”하여“유학생들이이룬공헌을지워버리는”면도있다고한반면,왕이쥐의비판은수신청보다훨씬날카로웠다.그는근대중국의유학정책은정치·사회·경제·문화모든방면에서악몽이자비극이었다고했다.

왕이쥐의연구는유학생을겨냥한잘조사정리된기소장과같았다.그는몇몇특별한인물을제외한대부분의유학생에대해난감함에가까운평가를내렸다.안하무인으로교만하며,지나치게서양화되어중국사회에적응하지못하면서서양에대해서는열등감을갖고있으며,지식은실질적이지못해서중국사회의요구에들어맞지않았고,쉽게출세하려는야심으로오직개인의부귀영화를추구할뿐사회적으로갖춰야할도덕의식과지도자로서의책임감은전혀찾아볼수없다는것이다.

유학생들이야구를하고여자친구를사귀고교회를다니는등지나치게미국문화에젖어들게방치하여감독교사를무시하는일은둘째치고중국어를제대로구사하지못하는지경에이르게만들었다는것이다.더욱이초창기유학생들은학업성적도좋지않아서본국으로소환될무렵대학을졸업한학생은단2명뿐이고,10명미만이갓대학에입학한상태며나머지는아직중·고등학교에다니는중이었다고했다.1854~1954년까지100년동안대략미국에서유학한중국인학생은2만2000명이었는데50~60퍼센트만이학사이상의학위를취득했다.

1980년대중반이후개혁개방이시작되자중국학계에서는근대미국유학에대해이전과완전히상반된평가를내놓았다.대표적인연구는리시쒀李喜所의『근대중국의유학생近代中國的留學生』(1987),쑨스웨孫石月의『중국근대여성유학사中國近代女子留學史』(1995)다.개혁개방의물결에따라미국유학생에대해서도서양제국주의의문화매판이라는정치선전형태의평가를거둬들이고대신중국근대화의애국적선구자로칭송했다.물론그들이서양문화를숭배하거나군벌과반동세력에부합한것은사실이지만대부분열심히공부해서곤경에처한중국의출로를찾기위해노력했다는시각이다.이런시각은다시태평양을건너세편의연구로이어졌다.2001년예웨이리葉維麗가출간한『중국을위한현대적길찾기:미국내중국유학생들1900~1927』,2004년스테이시비엘러의『애국자인가반역자인가?:미국의중국유학사』,1999년한예룽의박사논문「세계일부로서의중국:1920년대미국의경관자금반환이중국학술기관설립에미친영향」이다.그러나이연구들역시‘애국자와매판’또는‘전통과현대’라는이분법적사고에갇혀있다.

가장의미있는작업은타이완학자쑤윈펑蘇雲峰이1996년에출간한『칭화학당에서칭화대학까지1911~1929』라할수있다.이연구에서그는1981년출간한『칭화대학사고淸華大學史稿』가칭화대학을‘노예화교육’이라는이름으로폄하했다면서재조명했다.그의연구에따르면초기에칭화대학은외교부관할이었는데미국공사의간섭을받는등국격손상에해당하는일이있었으나시대적상황을고려할때귀국유학생출신이교육부보다외교부에는더많아서안정적인편이었다고평가했다.적어도그들은현대지식인이었고이념적으로미국과근접하여비교적소통이원활할수있었다는것이다.또한칭화대학은미국문화와사회를모델로삼았기때문에초기에는영어교육을중시하고중국어교육을소홀히했으나얼마후이를개진하여융합을꾀했다고보았다.그의주장에따르면칭화대학이충분한재원을바탕으로미국식하드웨어를갖추고교수와엘리트학생들에게건강하고활발한캠퍼스생활을제공했다.졸업생들은미국여러대학에서훌륭한성과를이루었으며차별받는환경에서도강렬한애국심으로‘변방의지식인周邊知識人’으로서긍정적영향력을발휘했을뿐만아니라개명한입장에서중국문화와사회에합리적비판을가함으로써창조적인공헌을발휘했음을통계수치로소개했다.

수신청과왕이쥐가비판한근대중국의유학교육문제는근본적으로세가지로종합된다.첫째는자원분배의불균등이다.즉근대중국은전체적으로교육자원을균형있게분배하지못하고기형적으로고등교육을중시하고초등교육을소홀히했다는것이다.한예로1931년당시중국은대학생한명당초등학생한명의200배에달하는교육비를지출했다.같은시기유럽국가의비율은1대8정도였다.이러한불균등한구조보다더기형적인것은대학들이상하이,베이징,난징,광저우에집중되었다는점이다.1922년의통계에따르면전국30퍼센트의대학과41퍼센트의대학생이모두베이징에있었고,1932년의다른통계에서는상하이의대학생이전국대학생의24퍼센트를차지하고있다.

연해에위치한몇몇도시에대학이집중된현상은유학생대부분이이곳에거주했다는점과관계가깊다.1925년의통계에따르면귀국유학생584명중34퍼센트,1937년의다른통계에따르면귀국유학생1152명중28퍼센트가상하이에머물렀다.게다가교육비용이갈수록비싸지면서농민과빈민계층은교육의기회로부터멀어졌다.가난한사람은더욱가난해졌고내륙지역의개발이더딘곳일수록교육을받기힘들었다.간혹농촌에사는극소수학생이간신히도시에와서교육을받았다하더라도이들은고향으로돌아가지않고도시에정착했다.

쑤윈펑은교육자원의분배와정치·사회적영향에대해주목했다.그는“칭화대학을설립한목적은지역간불균형을타파하기위한것이었다.공정한경쟁을통한지역간형평성에주목했다”고밝혔다.그러나결과는여전히“장쑤·저장·푸젠·광둥연해성출신이대부분을차지했다.”쑤윈펑은학생들의출신환경과관련해56퍼센트의학생배경을조사해“지주,관료,자산계층출신이44퍼센트”에달한다는결과를확인함으로써근대중국교육자원의분배가균등하지않았다는사실에동의했다.그러나이런자원분배의불균등을당시의사회현상으로해석하면서도수신청·왕이쥐가제시한불균등이근대중국의정치와사회에끼친영향에대해서는다루지않았다.

수신청·왕이쥐가제기한두번째비판은유학생들이전공한학문의활용에관한것이다.이문제를심각하게바라본그들은많은통계자료를검토한결과정부가유학정책을수립하지않았거나실행하지않았다고밝혔다.이는선발과관리와관련된문제였다.

정책을수립하지않았거나지켜지지않은결과학생들의전공은사회적수요와거리가있었고귀국후에자신의전공을활용할수없었다.1925년조사에따르면34.5퍼센트에달하는귀국유학생이전공을활용하지못해실업자나가정주부가되었다고했다.왕이쥐의조사결과귀국유학생들의사회진출은정계와학계에집중되었는데1917~1934년에는32~40퍼센트가교육계에서,16~42퍼센트가정계에서직업을구하고있다.문제는두분야에집중되었다는사실이아니라유학생들이귀국후자기의전공을발휘하지못했다는점이다.교육계로진출한이들은주로인문학과농업전공자였다.이과전공자는연구할기회를얻지못해학교밖에서길을찾아야했는데소수는정계에진출했지만역시연구나기술직이아닌사무직이었다.가장심각한경우는농학전공자로,1925년통계에서는70퍼센트가교육계에서일하고일부가정계로진출했을뿐농촌현장에서일하는사람은전무했다.경제계나금융계에서활동하는사람들도전공과무관한일을했다.

경제및공학전공자도자신이배운바를활용하지못하기는매한가지였다.첫째,상경대를졸업한유학생은대부분은행에근무했으며창업자는없었다.둘째,564명의경제계인사중10명만귀국유학생출신이며그중9명이은행에근무했다.셋째,40명의공업계인사중30명은엔지니어이고18명이귀국유학생이었는데,유학생들은전공과무관하게국영기업의관료로일했다.

이런결과는단순히교육투자의차원을떠나깊은사회적의미를지닌다.유학출신들이전공을활용하지못한데는그들이남에게굽힐줄몰랐다거나농촌으로가기를꺼려했다는심리적요인외에도중국사회의부족한면을채워줄만한응용지식이부족하거나불가능했거나원하지않았다는요인이있었음을말해주기때문이다.또한그들은학계에남든정계에뛰어들든‘배움이뛰어나면관직에나간다’는전통가치관을극복하지못했다.1930년대이후정세변화에따라유학생의태도도변했고학문적수준도향상되었으나항일전쟁이발발하자그들은다시주저앉고말았다.

수신청·왕이쥐의세번째비판은“미국인이되고싶은욕망”이었다.왕이쥐는룽훙을비롯한많은유학생은미국인이되고싶어했을뿐이라고평했다.그예로교육수준이높을수록귀화경향도높은점을들었는데,어린유학생중8명이학사학위를취득했고그중4명이미국인이되었다.학위를얻지못한100여명중에서는단한명만다시미국으로돌아갔다.이렇게미국인으로귀화하는경향은계속이어져1937년출간된『칭화동창회록淸華同學錄』에는21명의졸업생이이미14년이상미국에장기거주하고있었다.

왕이쥐는선발과정을거쳐출국한유학생들이엄격한이민법심사에통과해미국에남기란대단히어려운일이라고했다.또한중국입장에서이들이미국에남는다는것은유학정책에대한투자를회수하지못하는것이자가장우수한인재를잃는다는점에서두배의손실이었다.귀화는세대의문제이기도하다.다시말해“유학은가족전통과관계되어있다.부친이유학하면아들도유학을간다.세대가내려갈수록중국문화에대한소속감은멀어지고3대째가되면귀화는기정사실이되어버린다.”

중국학생들의미국유학열기는갈수록뜨거워서사회적으로유학교육은중요한이슈가되었다.수신청부터왕이쥐까지근대중국의유학교육은단지교육사의주제를넘어중국근대사전체맥락에서다루어야할문제가되었다.중국근대정치,경제,문화와사회적맥락에서미국유학교육이라는문제를보아야할것이다.

오늘날미국에서유학한중국학생에관한연구에서수신청·왕이쥐의비판을진지하고도신중하게처리하지않으면번안사학자들처럼‘애국-매판’또는‘전통-현대성’이라는이원대립의사고틀에갇히고만다.우리는반드시건설적이고생산적인문제를제기해야한다.즉21세기의시각으로21세기의문제에대해질문해야하며21세기의언어와개념으로분석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