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적 인간

러시아적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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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러시아 문학에서는 하루 종일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방의 내음이 느껴진다

월등한 무사태평, 자유에 대한 갈망, 극심한 원한, 열광적인 신앙
러시아인은 자연 및 흑토와 피의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다
그게 없다면 러시아인은 아무것도 아니다
러시아적 인간이란 무엇인가

“전 세계가 주목하고 귀를 곤두세우고 있다. 러시아는 과연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과연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그 일거수일투족이 일으키는 파동은 순식간에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뻗어나가며 곳곳에 파란을 일으킨다. 세계사의 중심에 선 오늘날의 러시아는 그 괴물 같은 모습을 스멀스멀 드러내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괴물 주변으로 무수한 사람이 모여 시끌벅적 미친 듯이 떠들어대는 모습은 마치 스타로브긴을 둘러싼 ‘악령’의 세계가 그대로 현실이 되어 출현한 것만 같다.”

이것은 1953년에 초판이 출간된 이 책의 첫 단락이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일본에서 스테디셀러로 읽혀온 『러시아적 인간』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독자들의 주의를 끌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은 하나의 세계적 현상이었다. 저자는 한 세기 전에 이미 오늘날의 사상적 문제를 제기했던 러시아 문학이 일반적인 문학사와는 다른 관점에서 재검토돼야 한다고 본다. 현상적인 격변 너머에 있는 영혼의 러시아, 이념이나 추상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구체적인 것’으로서의 러시아를 파고들어 ‘러시아적인 것’을 밝혀내는 것이 바로 이 책이 쓰인 이유다.
세계문학의 반열에 오를 만한 작품이 러시아에서는 19세기 푸시킨에 이르러 처음 등장했다. 그때까지 4류, 5류를 벗어난 작가를 배출한 적이 없는 이 나라의 문학은 모두 19세기의 도약을 위한 발판이거나 영양분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푸시킨이 평지돌출한 후 체호프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에서는 한 세기 내내 거인들이 탄생했다.
무엇이 러시아인들을 움직이게 하는가? 이것은 러시아적인 것의 본질을 찾고자 19세기 작가들을 읽으면서 저자가 놓지 않은 단 하나의 질문이다. 러시아 문인들이 품고 있는 묵시적·종말적·절망적 세계관과 부활·신세계·구원을 희구하는 마음…… 양쪽으로 요동치는 과정에서 야기되는 비극의 역사. 그것이 왜 러시아에서 일어나는가를 인간미 넘치는 문체로 하나하나 예를 들며 이야기한다. 즉 독자들은 문학을 통해 러시아를 분석적으로 읽을 수 있고, 이로써 인간을 바라보는 깊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아랍어, 페르시아어,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러시아어, 그리스어 등 30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해 ‘언어 천재’라 불린 학자다. 그리스 철학, 스콜라 철학, 러시아 문학, 언어학, 이슬람학, 힌두교, 불교, 도교, 노장사상, 주자학 등을 연구한 통섭의 철학자로도 잘 알려졌다.
총 1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4장에서 이민족에게 오랫동안 지배받은 러시아인의 정신사 형성의 흐름을 부감한다. 5장부터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효시라고 평가받는 푸시킨부터 대미를 장식하는 체호프까지 총 11명의 작가론을 전개한다. 총론과 각론을 통해 ‘러시아적 인간’의 윤곽을 드러내는 짜임새 있는 구조다.
저자

이즈쓰도시히코

井筒俊彦(1914~1993)
아랍어,페르시아어,산스크리트어,팔리어,러시아어,그리스어등30개언어를유창하게구사해‘언어천재’라불린언어학자다.그리스철학,스콜라철학,러시아문학,언어학,이슬람학,힌두교,불교,도교,노장사상,주자학등여러분야에서강의및저술활동을하며동서양모든철학을횡단연구하는통섭의철학자로잘알려졌으며,번역가로도활동했다.게이오대학,캐나다맥길대학,이란왕립철학아카데미교수를지냈고,스위스에라노스회의에서노장사상과선·유교등동양철학을강연했다.
1949년부터시작한연속강의‘언어학개론’을바탕으로영어권에서1956년『언어와주술』을출간했고,이책으로로만야콥슨의추천을받아록펠러재단펠로로서중근동과유럽,미국에서연구생활을했다.1959년코란의윤리적용어구조를밝힌『의미의구조』를영미권에서펴냈고,일본에서처음으로『코란』원전을완역해출간했다.『코란에서의신과인간』『이슬람신학에서의믿음의구조』『수피즘과노장사상』등대부분의저작이영어로발표돼일본뿐아니라영미권과유럽에서도세계적석학으로평가받았다.
귀국해독자적인철학을일본어로저술하기시작했고,『의식과본질』『의미의깊이』『코스모스와안티코스모스』『초월의언어』등이대표작으로자리매김했다.
『신비철학』으로후쿠자와유키치상·게이오대기주쿠상을,『이슬람문화』로마이니치출판문화상을,『의식과본질』로요미우리문학상을수상했고,그외에아사히상과팔레비국제상을받았다.
에라노스회의회원이자일본학사원회원을지냈다.

목차

서문

제1장영원한러시아
제2장러시아의십자가
제3장모스크바의밤
제4장환영의도시
제5장푸시킨
제6장레르몬토프
제7장고골
제8장벨린스키
제9장튜체프
제10장곤차로프
제11장투르게네프
제12장톨스토이
제13장도스토옙스키
제14장체호프

후기
옮긴이의말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전시대를발판삼은100년문학의정수

19세기러시아문학거장들의면모를크로키해보자.안으로는세계로통하는섬세하고평온한부드러움을띠고,밖으로는소용돌이치는격정과열정을내뿜는작가이자러시아문학의원천인푸시킨.푸시킨이결투를벌여죽었을때그죽음을홀로애도했으나,시인으로서는격정적이면서도냉담한면모를보여미움받은레르몬토프.순러시아적토착문학을썼고,사람좋다는평을얻은고골.러시아인텔리겐치아의선조격이며누구도뒤따라올수없는문예비평안목으로후세작가들을찾아낸벨린스키.시대의주류가산문으로옮겨갈때세계존재의어두운근원을들여다보는시를써도드라진튜체프.러시아적잉여인간인오블로모프를창조해역사에이름을남긴곤차로프.그자신은사회비평을목표로한듯하지만정작미학적이고도아름다운서정적문장으로두각을나타내며푸시킨을계승한투르게네프.걸핏하면불끈성을내지만영원한세계를봤고,그종교적구원의이야기를흥분과감격의문장으로담아낸거인도스토옙스키.본질은오직자아만을추구해나간에고이스트이나,작품에자아의모든것을표현하지못하고생을마감한거장톨스토이.푸시킨을닮은명징한예지의문체로도스토옙스키처럼인간과그구원의가능성을찾은체호프…….
더욱이이책은문학적분석에그치지않고문학에서역사와이들정신의심연까지길어올린다는것이특징이다.저자는러시아인고유의정신을다음과같이보고있다.첫째,어둡고음울하며광대하고혼돈스러운자연을정신적고향으로여기며깊은애착을갖고있다.둘째,타타르에게유린당하고학대받은300년세월의깊은각인으로여전히자신들은“괴롭힘당한사람들”이라는이미지를갖고있다.셋째,따라서학살당한인간예수에게체감적공감을한다.괴롭힘당한자신들의신앙이야말로정통이고,그래서러시아인들은세계를구원할사명이있다고생각하고있다.
이것을시대축에겹쳐놓으면다음과같이된다.우선타타르이전의러시아정신은없는것이나마찬가지였다.타타르의잔학한지배아래처음으로‘러시아정신’(학대받은사람들의일그러진정신)이형성됐다.타타르를무력으로몰아낸모스크바공국을바탕으로‘순러시아적세계’가성립됨으로써피지배층에게는잔학한난동을부렸으나교회와결탁해“세계를구원한다”는기만적인꿈을심어줬다.서쪽창구페테르부르크를건설해세계적보편성에뜻을둔표트르대제도이‘메시아주의적’세계구원의사명감을계승했고,이는훗날러시아혁명정권에까지이어졌다.

거대한지하실에서도환희는피어난다

19세기러시아문학에서는“종일빛이들어오지않는어두컴컴한방의내음이느껴진다”는것이저자의표현이다.
저자가그리는‘러시아적인간’이란어떤부류인가.서유럽의지성적인문화인들과비교하면좀더뚜렷이부각되는데,특히자연과맺는관계가다르다.과거수세기동안서유럽의문화인에게있어원초적인자연으로부터의유리는자기상실을의미하지않았다.오히려이를인간의자기확립으로여겼다.비합리적인자연의카오스를하나씩정복하면서빛과이성의코스모스로향하는것이야말로인간의본분이라생각한것이다.러시아인들은정반대다.그들에게원초적자연성으로부터의이탈은곧자기상실이자인간실격을뜻한다.러시아인과러시아의자연그리고흑토는피로맺어져있다.이것이없다면러시아인은아무것도아니다.서구문화에대한러시아인의끈질긴반역은여기서비롯된다.문화의필요성을몇배로민감하게느끼고문화를열망하면서동시에이를증오하고반역할수밖에없는것이다.
월등한무사태평,자유에대한갈망,극심한원한……물론작가들은작품에서종종조화로운러시아를그리려고시도했고,푸시킨도그중한명이었다.온화한빛으로가득한평온한실내에서문밖의소란스러움은느껴지지않는다.창문과문은전부굳게닫혀있다.이는순수한내면성의적막이다.하지만바깥에서무서운폭풍이불어닥치고있다.밖으로는소용돌이치는폭풍의포효,안으로는영원한정적과아름다운빛.이는단순한모순이아니라디오니소스적인간의본질적구조를이루는부분이다.끓어오르는정열로몸도마음도남김없이불태워버리는디오니소스적인간의영혼중심부에는이러한정적지대가존재했고,그것이바로러시아적인간의내면이다.그리고이불안하고도불온한조화는늘악령적힘에의해위협받았다.
새로운작가들의등장으로이러한흐름은바뀌어간다.1840년대를경계로일반독자의요구는변해더이상시적인것에도취되지않고일상의사실적인것들을추구해나갔다.즉소설의시대가도래한것인데,니콜라이고골이그선두에서있었다.이전의푸시킨이영웅적자각을지녔다면,고골에게는그런생각이손톱만큼도없었다.그는자신을‘지상의버러지’라여겼지만언젠가맑은지하수를발견할수있을거라는기대감으로자신의마음속토양을파헤치기시작했다.이들일군의러시아작가는신의얼굴에절교장을던지며골수까지무신론적인자아를발견해나갔다.벨린스키가바로그런인물이었고,도스토옙스키는소설속인물이반을창조할때벨린스키를모델로삼았다.
러시아의무신론은신에대한선천적원한을품고있었는데,저자는프랑스실존주의의특수한세계감각이나사상적문제가매우러시아적인것은우연의일치가아니라고본다.제2차세계대전이끝난후서유럽에서시작된현대의여러문제는러시아에서일찍이19세기부터사활을건문제로제기했던것들이다.
이책은체호프에서끝을맺는다.그리고처음마주했던푸시킨의모습을여기서다시만나게된다.모든쓸데없는말을배제하고남은단순함,내적인흥분이고양될수록외적으로더냉정하고침착해지는문체,깊은감동을안에감춘채눈곱만큼도보여주지않는억제의예술.이러한것은푸시킨외에그누구도지니지못한시적특질이었다.게다가체호프는이훌륭한시를산문형식을통해궁극의한계까지끌어올렸는데,이역시조용하지만생생하게혁명에대한예감을지니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