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먹다 : 어머니들의 리틀 포레스트

계절을 먹다 : 어머니들의 리틀 포레스트

$18.00
Description
먹어본 사람의 행복, 안 먹어본 사람의 불행
음식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글이 된다
70년간 혓바닥을 맴돈 음식들
먹어본 사람은 행복하고, 안 먹어본 사람은 불행할까? 사람의 행불행을 먹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일흔이 넘은 작가 이혜숙은 이 책에서 먹는 걸로 생애 감정을 판가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계절을 그냥 보내지 않고 늘 먹으면서 흘려보낸다. 프루스트가 홍차에 적셔 맛봤던 마들렌 같은 건 먹지 못해도, 파 뽑아다가 파숙지 해 먹고 열무로 여름을 나고 겨울철에는 보리와 곁들여 홍어애국을 맛본다. 저자는 사계절을 칠십 번 이상 먹은 경력의 소유자다. 먹은 것은 위장으로도 가지만 머리로도 간다. 먹은 음식이 쌓여서 글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음식은 기억이다. 작가는 할머니도 음식으로 기억하고, 엄마의 살아생전을 묘사할 때도 음식을 반찬 삼아 한다. 기억력이 거울처럼 정확한 것은 삼시 세끼 만들어 먹던 시대였고, 시골에서는 밭에서 직접 뽑아다 반찬을 만들었기에 농사일의 결과물이 늘 눈앞 밥상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또 저자의 혀는 노래를 부르기보다 맛을 감별하는 데 더 발달되어 있기도 하다.
글쓰기는 문체가 중요하다. 구조와 쌍벽을 이룰 만큼.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디킨스의 소설 『황폐한 집』의 줄거리가 평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체를 보세요! 중요한 건 내용보다 문체예요”라고 강조한다. 이 책에도 나보코프의 말을 적용할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먹었느냐보다 한 손으로는 음식을 만들고, 다른 한 손으로 글을 써온 작가의 문체가 책에 생명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기억력은 글쓰기의 가장 밑바탕이 된다. 관찰력은 이야기 감이 될 만한 인물의 생김새, 말버릇, 대화, 사고의 틀까지 모두 기억해야만 생생할 수 있다. 저자는 과거의 대화를 이야기의 구조로 얽어 머릿속에 비축하는 데 소질이 있고, 대화의 꼬투리에 매달리는 새침함이나 여운 같은 뒷감정까지 수집할 줄 안다. 즉 들리는 대화와 들리지 않는 속내가 모두 마음속에 쌓인다.
그는 마치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어내는 소설가처럼 배 속엔 먹었던 음식들이, 혓바닥에는 그 재료의 향기가, 머릿속에는 음식을 둘러싼 사람들의 대화가 끊임없이 맴돌고 있다. 그리고 그 세 가지 감각이 합쳐져 그만의 독특한 문체와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

이혜숙

1953년전남함평에서태어났다.
너무선명해지는기억에뒷덜미를잡혀살다가글로써지우는방법을택했다.저서로『쓰지않으면죽을거같아서』가있다.날마다즐거운글쓰기를하며소설로진입했다.

목차

들어가며

1장봄
씨고구마|엄마의지비쑥|파김치|엄마의노랑내|먹을거리|동골댁의봄|삼밭의연가|홍어애국|그아저씨네집|이른봄삼밭은|독새기라도먹자|묵덕장|할머니가소복시키던날|칠게젓|열무지|비오네|꽃도예쁘고맛도좋은유채와자운영|어버이날의엄마들|우렁|죽상어가생각나는봄|누에

2장여름
병어조림|불동김치|보리주면외안줄까|묵은김치콩나물국|새우젓종지기속의새끼복어|멸치젓|깡냉이|된장|수박한통때문에|나이먹은감나무

3장가을
오이나물|가을마당|내가좋아하는깨랑|가장즐겁던놀이터노적가리|여름과가을겨울|만드리|팔월보름아침나절에핀꽃까지는붉은고추|쌀이야기|사과|아무튼고구마순|모시|늦가을해를넘기는쓸쓸함을달래주는국|살림살이|호박|물천어지짐|싱건지|아,당고모의푸진가을

4장겨울
배추먹어라|뭘해먹이냐고|봉산댁|가물치|홍어|상처로만든구두정과|마른자리|고구마굽기|생강들사요|고구마|요리라는것|눈오는날이네|눈오는날의싱건지|물막음과싱건지|구워도먹고지져도먹는곶감|먹을것으로울던|굴이있는상|조청|농한기|더바쁘던명절

5장70년간혀를맴도는기억
고사머리|생체실험해서알려준오리고기|경상도갱시기,우리동네김치죽|먹는것과주부|엄마의마실|반찬의진리|술먹을때좋고아프기도하고후회도되는|진정한밥상|엄마의밥상|오다마|장조림의변천|시루밑받침과또아리|밥물|사랑스럽던나뭇잎그릇|엄마의돌확|너오는길에맹감도없더냐|우리의돼야지고기|조기|가마솥|모파상|내장탕|밥좀같이먹자|곡식을키우는계절|비지찌개|보쌈이거나닭발볶음|고추조림|쌀밥|생선구이는간이간간해야|가정초|다짐과격려가되었던우리집고기|엄마의정재|번데기|시골쥐서울쥐

나가며

출판사 서평

먹을것으로울고웃던,
현재와과거가맞닿는기억의조각들

한아주머니가고무다라이랑전기밥솥을들고저자가운영하는가게에왔다.손때묻은살림이버려지는게서운해어디쓸데없느냐고묻는모습이안타까워받아두었는데그것으로쉽게고구마를쪄먹는다.어린시절초등학교교장선생님댁에들렀을때선생님내외는반색했지만내줄것이궁했다.고구마를깎아주시며그게미안했던지“봄에씨고구마는아주귀한손님이아니면주는것이아니”라고하셨다.겨울부터이른봄까지이어지는춘궁기에고구마는귀한식량이었다.집마다부엌바닥에굴을파서묻어두고하나씩꺼내먹었다.긴겨울밤엄마의일과는저녁설거지를다하고도불이사윈아궁이를헤집어군고구마를방에들여놔주고야끝났다.지금은고구마굽는게어렵지않지만그때는요령이필요한일로,불이너무세서겉이타지않도록짚불로속까지깊숙이익혀야했다.
초봄이지나면삼밭지천으로풀이돋았다.지금은꽃으로만아는유채와자운영을꺾어무쳐먹거나데쳐서양념에버무려먹었다.어느노인이“내가건강하게사는이유는봄에돋는풀이란풀은다먹었기때문”이라고말하지만어디건강때문에그랬겠는가.도처의먹을것을훑다보니그럴수밖에없었는데,지금건강식품이라고판매하는것을살펴보면그시절들판에버럭버럭자라던것들이많다.시골에하우스가들어서기전,급작스레기온이떨어지거나작달비가내려잎에구멍이숭숭뚫리고애써키운열매가나뒹굴면사람들은낙심했다.식구들의입을책임지는엄마는몇날며칠비가이어지던날이면하늘을향해숭악한욕을뱉었다.“미쳤네.밑구멍이아조빠졌는갑네.”
먹을수있는것을버리는일은죄악으로여겨지던시절,독에남은것들을모아발효시켜만든묵덕장은남은음식을활용하는지혜이자맛을내는한가지비법이었다.지금은간편하게사먹는장류와젓갈,초를그시절에는모두직접만들었다.저자는더이상쓰지않는엄마의초병을집으로가져왔지만정작초는사다쓰고초병은옛날생각이나하는것으로방치되었다.그런데이제는시골에서도그렇게만들어먹는사람없다한다.그때지금같이오래사는사람없었다면서옛것이무조건좋다할필요없다는게어머니의말이다.그럼에도불구하고저자는점점오염에단련되어가는일상에서직접초를분양받아키워먹는목표를세워본다.

“고것들맛이지요”

남도의잔칫상에빠져서는안되는것이바로홍어다.홍어는겨울보리와잘어울렸고,그즈음이면어른들은“장에홍어나왔는가봐라!”했다.삼합이라는건나중에나온것이고,홍어좀먹는다고하려면홍어로만배를채워야한다.날로먹고,삭혀서먹고,말려서먹고,탕으로끓여먹는홍어는버릴게없었다.다른지역보다홍어가어렵지않게잡히기는했지만그렇다고싼고기는아니어서남도사람이라고해도어린시절그것을먹었던추억을가진이가많지않다.그래서홍어를이야기하는것이어떤이들에게는가슴한구석을콕콕찌르는일이되기도한다.
시골이라고육고기가없었던것은아니지만잔칫날에나구경하던시절이었다.어쩌다방문하는손님들에게채소뿐인밥상을내는걸엄마는미안해했다.그러나푸르디푸른엄마의밥상은고소하고상큼하며,기름두른부추적은고기반찬못지않았다.엄마가가장소중히하는것이간장,된장,깨소금,마늘,참기름이다.음식솜씨가좋다는칭찬을받아도그저이양념들맛이라고몸을낮췄다.어느방송에소개된음식점의일화다.며느리와시어머니가나왔는데며느리가우리만의비법은알려줄수없다고하니“너는꼭그런소리하더라.우리가비법이뭐있냐!”라던시어머니의냉갈령.간만맞으면맛나다.주변에서무엇무엇넣고,이렇게저렇게해야한다는별의별말이오히려요리에겁을먹게한다.한가지재료를매번똑같이먹으란법도없다.그릇에상추를넣고끓인라면을부어먹으면그맛이끝내준다는친구의말.식재료의활용은끝모를일이다.싸각싸각!

뒷덜미잡힌기억은글이되고

가마니든대야든햇볕담을만한것이라면곡식말리는데모조리동원되던가을마당.물이졸졸흐르는깨랑에어쩌다쓸려내려가는열매를보고는가슴철렁하던일.지붕높이와맞먹는노적가리틈으로숨바꼭질하던일들.때로혼자남아집을지키는날이면그안에서뭐가나올지몰라그늘마저무서웠다.가끔씩먼산을쳐다보노라면어른들은‘저것이커서뭐가될끄나’하고걱정했다.그여백의순간들이모여기억은오히려더선명해지고글이되어나왔다.
엄마는사방가시속에살았다.매섭던시어머니뿐아니라김나는음식대령해도헛기침하는집안어른들,남편시중,어린새끼들까지……명절이면절하는발바닥이오십개가넘었다.그래도농사짓는틈으로밥하고옷을지었다.육식을좋아하는식구들이콩나물비린내를타박하자“비린것을그리잘먹는사람들이어째콩나물비린것은못보는고”하는말대꾸는그저엄마의혼잣말이다.저자는믹서를보며그옛날엄마의돌확을떠올린다.젖가슴까지몹시흔들리던엄마의메공이질.한창입덧중이던어느날엔시장에서아주머니들이밥먹는것을보고울었다한다.칠게반찬때문이었다.보리가누렇고모내기가끝나갈즈음엄마는등이억세진검은게를확에넣고갈아마늘이랑고춧가루넣어죽처럼만들었는데그게칠게젓이었다.지금그한입이간절하다.

추천사

언젠가전라도의한도시에갔더니‘전라도식백반판다’고광고붙인식당이있었다.전라도를떠나이나라에서는이미이전세대의음식이거의사라졌다.농사와들판이지지하던계절의순환이무너졌기때문이다.책을보다가놀라고숨이막혔다.처음들어보는음식이8할이다.된장이된장아니고김치가김치아닌세상을사는탓이다.얄팍한맛에혀가절었다고나할까.이책은슬프게도우리맛,계절을지탱해온시절의외로운방주方舟다.글쓴이고모가하신말씀이나온다.“막선전해대는것말고(좋은거)먹어.”사람이살아가는시간의흐름대로써내려간기억을따라가며읽는다.아마도우리모두울컥해서가끔책장을덮어야할것같다._박찬일셰프

이혜숙작가의글을읽으면따뜻해진다.사람사는것이늘허기지는일아니겠는가.음식도사람도그녀에게오면너그러워진다.맛에도격이있다.남도의맛이착착감기다가어느순간여자는남은음식이나먹어야한다는할매와유년의기억속도마앞에서우두망찰넋을놓던오매에이르면먹거리는한집안의서사를넘어장소와시대와계급을반영하는역사가된다.버릴것이없던시절,여자들의지혜는생명의원천이되었다.사설이었다가산조였다가변주로반전하는그녀의이야기는맛있다.소리내어읊조리면넘실넘실남도가온다.사람은맛으로,그리움으로산다.최고의위로는맛을나누는일이다.어디서추임새가들리는것같다.얼쑤,살고싶어진다._김미옥칼럼니스트

책속에서

부엌바닥고구마굴에서우리는팔을넣어고구마를꺼내먹었다.처음에는나무만밀치면나왔는데그다음은팔뚝을,파내고파내고구마가점점굴면턱이걸칠때까지어깨를밀어넣어꺼냈다.봄이면적당한때에전부를팠다.굴속에서김이모락모락났다.그것들도살아있었다._13쪽

밥위에얹어함께요리하는몇가지가있었다.달걀찜,진한뜨물에파썰고보리새우몇넣은것,고춧가루뿌린마른굴비그릇,밥위에바로놓는연한고추,가지등이었다.밥물이넘쳐들어가더욱맛있었고마른굴비는밥과함께촉촉하고구수하게익었다._18쪽

우리는떨어지는감소리만들어도큰것인지작은것인지알았다.이제부터들기시작하는단맛에아이들은열광했다._99쪽

무밥은밥을미리푸고식구를기다리지않았다.가족을상에대기시키고밥을떠주었다.무밥은식으면맛이없었다.그리고비벼야맛이났다.콧등에땀흘리며밥을먹을때는무밥이거나오랜만에닭을잡아가마솥에끓인날이었다._104쪽

수확하는것도중요하지만잘말려다음곡식이나올때까지먹는것도못지않게큰일이던그마당의어린이몫.재주가날로늘어큰동그라미도만들고네모랑세모도여러개만들었던멍석위의그림그리기였다._107쪽

열매들이여름을다보내고나서느닷없이씩씩하고풍성해지는경우가있었다.시기와온도가맞을때늦물이넘쳐나게달렸다.계절이늦게오는법은있어도안오지는않았다.열매는시간과햇볕이다._120쪽

술은익으면서소리를냈다.멀리비오는소리,들에서들리는개구리소리혹은낙숫물소리가소란스럽게났다가그치고얼마지나면술이되었다.여름에는짧고겨울에는길었다._137쪽

밥한그릇이면갱시기로일곱식구가다먹었다는기억을하며,너무멀겋다보니조미료라도몰래넣었을어머니가그립고아려언니는누워서갱시기맛을떠올린다.언니의외로움이내게로와나도그갱시기만한대접놓인저녁상앞에앉는생각을한다._228~2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