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성시 각본집

비정성시 각본집

$18.00
Description
영화를 글로 읽는 행위의 분명한 기쁨

책 『비정성시 각본집』 이야기를 하면서 영화 「비정성시」의 간략한 줄거리와 그 가치, 무게를 최우선으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식민 통치에서 막 벗어난 타이완. 린 가네 사 형제와 그 처자식들은 정치ㆍ사회적 혼란과 곤궁 속에서 각자 처한 운명에서 벗어나려, 자기 욕망을 발현하려 분투한다. 그 가운데 타이완 2ㆍ28사건이 발생하고, 인물들은 가족과 이웃이 눈앞에서 잔인하게 죽어나가는 참혹한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전쟁의 폐해와 그러 인한 피폐로 주저앉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밥을 지어 먹으며 당도한 시간을 살아낸다.

1989년 공개된 영화 「비정성시」가 각별한 이유는 비정悲情이라는 정서를 '슬픔'이라는 단 한 점의 종착지로만 끌고 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허우샤오셴, 주톈원, 우녠전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슬픔에도 '산 사람은 살아가는' 다소 잔인하지만 당연한 그림을 우리에게 건넨다. 우리는 영화와 각본을 통해 타이완 현대사의 여러 장면을 목격하지만, 그를 통해 그 시간을 다 알게 됐다고 말할 순 없다. 다만 생에는 많은 고난이 닥친다, 갈등도 닥친다, 사람은 죽는다, 가까운 사람이 죽기도 한다, 그러고도 삶은 이어진다는 깨달음, 생활의 불가피성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된다. 그렇기에 슬픔의 도시 '비정성시'는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그곳임과 동시에 분명한 이곳이기도 하다.

책의 「비정성시 13문 13답」에서 주톈원은 동양의 문학적 전통이 서정시에 있다고 쓰며 “시는 구원으로 해소에 이르지 않고, 평생 끝없이 읊으며 깊은 생각에 묵묵히 잠기는 것”(66)이라고 했다. 해결과 해소를 바라지 않고 그저 끝없이 또 묵묵히 침잠하는 것. 「비정성시」의 정서도 동일 선상에 자리하며 그것이 「비정성시」가 오래 기억되고, 크게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영화와 각본은 일치하지 않는다. 영화에 없는 장면이 각본집에는 있다. 영화에 대사와 눈빛과 육성과 음악이 있다면, 각본집에는 대사와 그 대사의 구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눈빛과 육성을 자아내는 지문이 있다. 영화를 텍스트로 읽는 일은 인물의 행동을 몸짓이 아닌 언어(이를테면 ‘하염없이’ ‘멀뚱히’ ‘힘껏’ ‘꽉’ 등)로 이해하게 되는 일이어서 독자로 하여금 영화가 품고 있는 의도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도록 한다. 어디로 떠나야 하는지 모른 채로 짐을 챙기는 원칭과 콴메이의 모습을 수식하는 ‘묵묵히, 허둥지둥’이라는 말이 그들이 처한 상황의 절박성, 맹목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하는 것이다. 알아채기를 넘어선 들여다보기를 가능케 하는 것, 그렇게 두 결실 사이의 틈을 들여다보는 것, 차이를 발견해내는 것이 각본집을 읽는 효용이자 즐거움일 것이다.

감독, 배우, 영화 제작 비하인드를 담은
주톈원의 13문 13답 수록!

책에는 영화 「비정성시」가 제작된 당시의 타이완 영화계 분위기, 감독 허우샤오셴의 기질적 특징과 연출ㆍ편집에 대한 그의 시각, 서양 영화와 갈리는 타이완 영화만의 서정적 특징과 강점, 그에 대한 타이완 영화인들의 자긍심에 대한 텍스트도 담겼다. 20세기 동양 영화, 그중 타이완 영화를 바라보는 당시 서양의 시선, 시장에서의 성공과 시장 그 자체를 비평적으로 바라보는 주톈원의 소신, 플롯이 탄생하고 확충되고 변형된 과정, 양조위 배우가 맡은 린원칭 역이 청각 장애인으로 설정된 배경, 전문 배우가 아닌 비전문 배우를 캐스팅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현장의 한계 등 허우샤오셴과 열여섯 편의 시나리오를 쓰고, 그 자신의 소설도 썼던 작가 주톈원의 사고를 통해야만 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도 있다. 아끼는 지난 세기 영화의 비화를 지금 세기에 듣는 일은 그 시차가 자아내는 그리움, 반가움, 또 지연된 깨달음으로 읽는 이에게 설레는 경험이 된다.

총 88개 장면에 달하는 시나리오를 쓴 주톈원의 1989년 당시 후기를 읽는 일 역시 ‘디깅’의 기쁨과 견줄 만하다. 영화, 감독과 관련해 ‘관계자’만이 알고 있는 여러 상황, 사건들을 발견할 수 있어서다. “허우샤오셴의 고요함. 장장 2개월에 달하는 편집 기간 동안 그와 편집자 랴오칭쑹은 촬영한 모든 재료로 지금의 이 영화를 완성했으나, 어떤 때는 하루에 겨우 두세 쇼트밖에 편집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이 영화의 편집법에 랴오칭쑹은 ‘기운氣韻 편집법’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단약을 만드는 도사가 화로를 응시하는 것처럼 허우샤오셴은 이 영화의 편집에 참여하면서도 대부분의 시간은 냉정하고 이성적인 방관자로서 새로이 쇼트를 조합하고 대담하게 화면을 조정했다.”(323) 그의 글에서 우리는 이 책에 등장한 적 없는 허우샤오셴을 만날 수 있다. 즉, 「비정성시」와 관련해 이 책에 없는 건 없는 것이다.

저자

주톈원,우녠전

저자:주톈원
1956년타이완가오슝의펑산에서태어났다.열여섯살에첫소설을발표했고연합보소설상,중국시보문학상단편소설우수상을수상했다.영화감독허우샤오셴의영화시나리오열여섯편을썼고,금마장최우수각색상과최우수각본상을세차례수상했다.1994년에는장편소설『황인수기』로시보문학백만소설상을수상했고,그영문판은『뉴욕타임스』의주목할만한책,『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올해의좋은책에선정되기도했다.또장편소설『무언巫言』으로2008년홍루몽상심사위원상을,2015년미국뉴먼화어문학상을수상했다.2018년에는21대학생세계화어문학성전21大學生世界華語文學盛典이선정하는화어문학인물로꼽히기도했다.2020년에는다큐멘터리「미완의꿈願未央」을연출했다.저서로『전설傳說』『담홍기淡江記』『염하의도시炎夏之都』『세기말의화려함世紀末的華麗』『황금맹세의서』『가장아름다운시절最好的時光』등이있다.

저자:우녠전
1952년타이완타이베이루이펑의광부가정에서태어났다.노동과학업을병행하며고등학교와야간대학을졸업했다.1970년대초부터소설을발표하기시작해연합보소설상및우줘류문학상을수상했다.1979년부터영화각본집필을시작했으며현재타이완의주요작가중한명으로꼽힌다.저서로『봄을잡아라』『변방의가을날외기러기소리울리고邊秋一雁聲』『특별한하루特別的一天』『타이완의참마음을읽다臺灣念眞情』『여덟살에혼자떠난여행八歲,一個人去旅行』『기억하는사람들,생각하는일들這些人,那些事』『시간의참맛을읽다念念時光眞味』등이있다.

역자:홍지영
한국에서예술학을전공하고편집자생활을거친뒤일본의릿쿄대학에서커뮤니케이션학을공부했다.일본의도서관에서영화관련책들을읽고미니시어터를돌아다니며영화를보다가상하이영화와일본영화에흥미를느끼고중국으로건너가상하이와베이징에서영화사를공부했다.베이징대학에서박사과정을수료하고한국에돌아온지금은영화제에서상영되는중국어및일본어영화를번역하고영화관련일본어통역을하며영화곁에머물고자노력하고있다.번역서로『구로사와기요시,21세기의영화를말한다』가있고,최근옮긴영화로는허안화許鞍華의「엘레지詩」,왕빙王兵의「흑의인黑衣人」,담가명譚家明의「열화청춘烈火靑春」,타이완의풍차시사風車詩社를다룬황아력黃亞歷의다큐멘터리「일요일의산책자日曜日式散步者」등이있다.

목차

추천사:슬픔의점묘법
서문
「비정성시」13문13답
시나리오
각본
후기
옮긴이후기

출판사 서평

“빛과그림자가겹치고명암을가릴수없는그곳에서삶은계속된다”

제46회베니스국제영화제황금사자상수상작,
허우샤오셴연출,양조위주연영화「비정성시」를
텍스트로만나는시간

『비정성시각본집』의구름과창문은마치생명을가진것처럼말을건넨다.소설과시나리오의중간형태에가까운이각본집으로우리는주톈원과우녠전의탁월한필력도엿볼수있고,그것에생명을불어넣어영상으로옮긴허우샤오셴의내공도알수있다.영화만으로는완벽하게이해하기힘들었던역사와정치의디테일이마술처럼풀려가는가운데,‘하늘의뜻’과‘자연의섭리’아래사람들의삶을찍고싶다던허우샤오셴의말도불현듯깨닫게된다.미완성으로남은「비정성시」초기버전에주윤발이출연할뻔했다는,각본외의풍성한글과자료도흥미롭다.「비정성시」라는걸작의운명이여기에담겨있다._주성철영화평론가,씨네플레이편집장

「비정성시」는그제목이나타내듯이‘슬픈’이야기다.(…)가장소중하게여겨온사람들과의헤어짐이「비정성시」의슬픔의정체인데,오히려허우샤오셴감독은주인공들의불행이마치인간의의지와무관하게일어나는천재지변의탓이기나하듯이담담하게묘사한다.그렇다고해서이영화가역사적허무주의로떨어지지는않는다.그대신결국은잘못된역사를디디고살아나갈사람들의생명력을암시함으로써허우샤오셴은‘슬픔’저편의낙관주의를보여준다._김홍준한국영상자료원장,『영화에대하여알고싶은두세가지것들』에서

영화를글로읽는행위의분명한기쁨

책『비정성시각본집』이야기를하면서영화「비정성시」의간략한줄거리와그가치,무게를최우선으로언급하지않을수없다.일본의식민통치에서막벗어난타이완.린가네사형제와그처자식들은정치.사회적혼란과곤궁속에서각자처한운명에서벗어나려,자기욕망을발현하려분투한다.그가운데타이완2.28사건이발생하고,인물들은가족과이웃이눈앞에서잔인하게죽어나가는참혹한현실을목도하게된다.그러나그들은전쟁의폐해와그러인한피폐로주저앉지않는다.그들은여전히노래를부르고,서로의안부를묻고,밥을지어먹으며당도한시간을살아낸다.

1989년공개된영화「비정성시」가각별한이유는비정悲情이라는정서를'슬픔'이라는단한점의종착지로만끌고가지않는다는데있다.허우샤오셴,주톈원,우녠전은사랑하는이를떠나보낸슬픔에도'산사람은살아가는'다소잔인하지만당연한그림을우리에게건넨다.우리는영화와각본을통해타이완현대사의여러장면을목격하지만,그를통해그시간을다알게됐다고말할순없다.다만생에는많은고난이닥친다,갈등도닥친다,사람은죽는다,가까운사람이죽기도한다,그러고도삶은이어진다는깨달음,생활의불가피성에대한이해를얻게된다.그렇기에슬픔의도시'비정성시'는주인공들이살아가는그곳임과동시에분명한이곳이기도하다.

책의「비정성시13문13답」에서주톈원은동양의문학적전통이서정시에있다고쓰며“시는구원으로해소에이르지않고,평생끝없이읊으며깊은생각에묵묵히잠기는것”(66)이라고했다.해결과해소를바라지않고그저끝없이또묵묵히침잠하는것.「비정성시」의정서도동일선상에자리하며그것이「비정성시」가오래기억되고,크게사랑받는이유일것이다.

영화와각본은일치하지않는다.영화에없는장면이각본집에는있다.영화에대사와눈빛과육성과음악이있다면,각본집에는대사와그대사의구체적인분위기를만들어내는,눈빛과육성을자아내는지문이있다.영화를텍스트로읽는일은인물의행동을몸짓이아닌언어(이를테면‘하염없이’‘멀뚱히’‘힘껏’‘꽉’등)로이해하게되는일이어서독자로하여금영화가품고있는의도에보다가까이다가가도록한다.어디로떠나야하는지모른채로짐을챙기는원칭과콴메이의모습을수식하는‘묵묵히,허둥지둥’이라는말이그들이처한상황의절박성,맹목성을더욱절실히느끼게하는것이다.알아채기를넘어선들여다보기를가능케하는것,그렇게두결실사이의틈을들여다보는것,차이를발견해내는것이각본집을읽는효용이자즐거움일것이다.

감독,배우,영화제작비하인드를담은
주톈원의13문13답수록!

책에는영화「비정성시」가제작된당시의타이완영화계분위기,감독허우샤오셴의기질적특징과연출편집에대한그의시각,서양영화와갈리는타이완영화만의서정적특징과강점,그에대한타이완영화인들의자긍심에대한텍스트도담겼다.20세기동양영화,그중타이완영화를바라보는당시서양의시선,시장에서의성공과시장그자체를비평적으로바라보는주톈원의소신,플롯이탄생하고확충되고변형된과정,양조위배우가맡은린원칭역이청각장애인으로설정된배경,전문배우가아닌비전문배우를캐스팅할수밖에없었던당시현장의한계등허우샤오셴과열여섯편의시나리오를쓰고,그자신의소설도썼던작가주톈원의사고를통해야만들을수있고,이해할수있는이야기들도있다.아끼는지난세기영화의비화를지금세기에듣는일은그시차가자아내는그리움,반가움,또지연된깨달음으로읽는이에게설레는경험이된다.

총88개장면에달하는시나리오를쓴주톈원의1989년당시후기를읽는일역시‘디깅’의기쁨과견줄만하다.영화,감독과관련해‘관계자’만이알고있는여러상황,사건들을발견할수있어서다.“허우샤오셴의고요함.장장2개월에달하는편집기간동안그와편집자랴오칭쑹은촬영한모든재료로지금의이영화를완성했으나,어떤때는하루에겨우두세쇼트밖에편집하지못할때도있었다.이영화의편집법에랴오칭쑹은‘기운氣韻편집법’이라는새로운이름을붙였다.단약을만드는도사가화로를응시하는것처럼허우샤오셴은이영화의편집에참여하면서도대부분의시간은냉정하고이성적인방관자로서새로이쇼트를조합하고대담하게화면을조정했다.”(323)그의글에서우리는이책에등장한적없는허우샤오셴을만날수있다.즉,「비정성시」와관련해이책에없는건없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