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다산 정약용의 『논어』 읽기를 따라
우리말로 옮긴 한국의 『논어』
『논어』로 『논어』를 읽고, 경전에서 근거를 구한다는 원칙을 지킨 후
“이치”라는 그물망을 펼쳐 고금주를 해체하고 종합한
혁신적인 『논어』
“이것이 한국의 『논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우리말로 옮긴 한국의 『논어』
『논어』로 『논어』를 읽고, 경전에서 근거를 구한다는 원칙을 지킨 후
“이치”라는 그물망을 펼쳐 고금주를 해체하고 종합한
혁신적인 『논어』
“이것이 한국의 『논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다산이 『논어』를 번역했다면 어땠을까?
『다산 논어』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이 1813년 완성한 『논어고금주』에 바탕하여 『논어』를 번역, 해설한 것이다. 『논어고금주』는 『논어』에 대한 다산의 주석서로 『논어』를 공자의 원의에 맞게 읽는다는 기획으로 집필되었다. 그 이름이 『논어고금주』인 것은 다산이 이 주석서에서 『논어』의 고주와 금주를 망라하여 좋은 견해는 받아들이고 옳지 않은 견해는 비판하면서 『논어』의 500여 장을 이렇게 읽어야 한다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이때 『논어』의 고주에는 우선 하안(195~249)이 당시 전해지던 여러 경학가의 주석을 모아 편집한 『논어집해』가 있고, 또 『논어집해』를 부연 설명하는 두 책, 황간(488~545)의 『논어집해의소』(이제부터 『논어의소』)와 형병(932~1010)의 『논어정의』가 있다. 주로 진晉의 논어학에 기초해 편찬한 『논어의소』는 남송 이후 중국에서 사라졌다가 일본에서 역수입되었고, 포정박(1729~1814)이 자신이 수집한 장서를 모아 편찬한 『지부족재총서』에 수록함으로써 다시 논어학의 전면에 자리하게 되었다. 『논어의소』가 사라진 동안 『논어집해』와 『논어정의』가 고주를 대표했고, 이 두 책은 합본되어 『논어주소』로 불렸다. 그런데 황간과 형병의 주석서는 『논어집해』를 보완하는 것이므로 결국 『논어』의 고주는 『논어집해』가 대표한다.
『논어』의 역대 주석을 자세히 곱씹어 비판
고주에는 이외에도 정현(127~200)의 주해를 모아놓은 『논어정씨주』가 있고, 육덕명(556~627)의 『논어음의』에 수록된 짤막하지만 중요한 정보들도 있고, 다산이 종종 검토하는 한유(768~824)의 『논어필해』도 있다. 그렇지만 이 고주들은 그 비중에서 『논어집해』에 비견될 수 없다. 『논어집해』는 『논어』를 처음, 종합적으로 해설한 책이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는 『논어정씨주』가 『논어집해』보다 이를 수 있지만 『논어정씨주』는 『논어』의 일부에 대한 주해일 뿐만 아니라 한동안 일실되었다가 둔황에서 발견되어 20세기에 비로소 알려졌다. 필사본으로 진위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또 오랫동안 잊혔던 책이었으므로 논어학에서의 비중이 크지 않다. 적어도 다산은 『논어정씨주』를 고주로 참고할 수 없었다.
『논어집해』는 공안국(기원전 164~기원전 74?), 포함(기원전 7~기원후 63), 마융(79~166), 정현, 왕숙(195~256), 주생렬(220년경), 진군(?~237) 그리고 하안 등의 주해를 소개한다. 이들의 주해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논어』를 처음으로 해설하여 이 불후의 고전을 읽는 길잡이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등대이기도 하고, 후인들이 그 권위에 도전하기 쉽지 않았다는 점에서 멍에이기도 했다.
이 멍에에 얽매이지 않고 『논어집해』에 맞먹는 또 하나의 등대를 세운 것은 주희(1130~1200)의 『논어집주』다. 이 책도 ‘집해’와 마찬가지로 ‘집주’, 곧 주석을 모아놓은 것이므로 앞선 시대의 연구자에게 많은 빚을 졌다. 그렇다고 해도 『논어』를 이학이라는 새로운 틀에 얹어서 참신하게 읽어낸 것은 결국 주희다. 그런 점에서 그는 『논어』 읽기에 불멸의 자취를 남겼다. 다산은 『논어』 읽기의 2막을 연 이 책을 금주로 이해한다.
나중에 성리학이 위세를 떨치자 『논어집주』는 더 중요한 책이 되었다. 그리고 마치 황간과 형병이 『논어집해』를 보완하는 주해서를 냈던 것처럼 호광(1369~1418)은 순전히 성리학적 안목으로 『논어집주』를 보완하여 『논어집주대전』을 출간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과거 『논어』를 읽었다는 것은 『논어집주』에 호광이 수집한 소주小註를 붙인 『논어집주대전』에 기반해서 『논어』를 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논어집주대전』뿐만 아니다. 『논어집주』가 유교적 관료 사회에 진출하려는 지식인의 필독서가 된 뒤에는 많은 주희의 후학이 『논어집주』를 보완하기 위해 책을 썼다. 때로는 지금 사적을 알 수 없는 학자도 『논어집주』를 보완하는 책과 논설을 남겼다. 『논어고금주』에서 좁은 의미의 금주는 『논어집주』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논어집주』를 보완하는 모든 책과 논설도 금주다. 금주는 성리학의 『논어』 해석이기 때문이다. 다산은 이들을 때로는 비판하기 위해, 또 때로는 수용하기 위해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주희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송명대의 논어학을 지나면 이제 새로운 경학의 기풍이 만만치 않았던 17세기 이후의 논어학과 만난다. 이 범주에도 다산이 참고한 많은 학자가 있다. 하지만 『논어고금주』를 논할 때는 누구보다 먼저 두 사람을 소개해야 한다. 하나는 청대 고증학의 선구로서 또 건가학파의 거두로서 당대부터 굉박한 지식으로 이름 높았던 모기령(1623~1716)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에서 일가를 이룬 다자이 준(1680~1747)이다.
모기령의 『논어』 해설은 세 책에 나누어져 있는데, 『논어계구편』이 가장 중요하고, 『사서승언』 그리고 『사서개착』이 그 뒤를 따른다. 모기령의 논어학은 간단히 말하면 반주희다. 거의 모든 문제에서 모기령은 『논어집주』를 비판하고 고주로 돌아갔다. 한편 다자이는 『논어』와 관련하여 『논어고훈』과 『논어고훈외전』 두 책을 펴냈다. 이 책들은 스승인 오규 나베마쓰(1666~1728)의 『논어』 해석에 기초해서 이름 그대로 『논어』의 고훈이 무엇인가를 밝히려는 목적을 지닌다. 이때 고훈은 주희 이전의 훈석을 말하므로 다자이도 결국 반주희를 지향한다. 다산이 『논어고훈』이나 오규의 『논어징』을 직접 보았다는 증거는 없고, 『논어고훈외전』은 비판적으로든 수용을 위해서든 많이 인용한다. 곧 다산은 제2기의 『논어』 읽기인 『논어집주』를 비판하는 제3기의 『논어』 읽기, 청대 고증학과 일본 고문사학의 『논어』 해석을 또 다른 참고 자료로 삼았다.
2000년 동안 『논어』를 잘못 읽어왔다고 외친
다산의 패기!
이 1, 2, 3기의 『논어』 읽기를 뛰어넘어 시대적으로 볼 때 제4기의 『논어』읽기, 혹은 다산의 안목으로 볼 때 ‘진정한’ 『논어』 읽기를 하려는 것이 『논어고금주』다. 이것은 정말 대단한 야심이다. 다산이 자부하듯이 2000년 동안 감춰진 오의를 보여주면서 그것이 공자의 ‘원의’였다고 외치는 패기가 이 책에 있다.
생각해보면 다산은 뾰족한 사람이다. 유교에서는 이를 규각이 졌다고 하는데, 옛날 사람들이 조회에 참석하거나 사명을 나갈 때 들던 홀(圭)의 모서리처럼 뾰족하게 각이 선 사람이라는 말이다. 주희 눈에는 맹자가 그런 사람이었다. 맹자의 날선 논변을 보면 남을 용납하지 않는 호령이 들린다는 것이었다. 다산도 맹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올바른 생각과 말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그른 것에 대한 과감하고도 매서운 공격, 풍부한 지식과 합리적인 사유, 이런 무기로 무장한 사람이 난세를 만나면 칼을 휘두른다. 그 칼의 춤소리가 들리는 것이 여기에서 『다산 논어』로 새롭게 이름한 『논어고금주』다.
되돌아보면 우리 땅에 유교가 들어온 뒤 많은 유현이 출몰했지만 유교 경전 중의 으뜸이라는 『논어』의 완결된 해설서를 우리 선배의 이름으로 소개한 것은 다산이 처음이다. 그러므로 『다산 논어』는 사실 한국판 『논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우리 조상이 만들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이 하안, 주희를 위시한 많은 경학가의 권위에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논어』의 해설을 통해 한국인의 가치관, 그들의 세상 보는 안목을 고스란히 담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요즘에야 하나로 특정할 수 있는 우리의 가치관이라는 게 있는지 의심할 수 있고, 더 근본적으로는 그런 동일성을 갖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가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적으로 한국인이 강한 동일성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고, 지금도 그러한 ‘한국인의 가치관’이 우리의 의식 저변에서 엄연히 활약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그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은 언제나 의미 있는 일이다. 『논어고금주』를 읽다보면 그것이 『논어』를 해독하는 것 이상의 문화적 함의를 담고 있다는 것, 한국인의 전통적 사유 방식을 보여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물론 다른 많은 사람과 함께, 다산 선생에게 감사를 보낸다. 모름지기 가장 유교적인 문명을 수백 년 동안 일궈온 나라에 『논어』라는 우뚝한 경전에 대한 독자적인 읽기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다산의 논어 읽기는 ‘실리학實理學’의 관점을 취한다
『논어고금주』라는 이름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고주와 금주, 곧 한당 경학과 송명 경학의 제 성과를 종합하려는 의도를 가진다. 그래서 『논어고금주』다. 고주와 금주를 모두 아우른다는 선언이다. 그렇지만 만약 『논어고금주』가 단순히 고주와 금주를 비교하거나 취사선택하는 데만 그쳤다면 그 중요성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다산이 정말 하려고 했던 것은 고주와 금주를 종합하면서, 또 다산 당대의 연구 성과를 참고하면서, 그 모두를 극복하는 참된 『논어』 읽기를 선보이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다산은 『논어고금주』를 통해 한당의 ‘실학’과 송명의 ‘이학’ 그리고 나아가 청대의 ‘고증학’과 도쿠가와의 ‘고학’을 모두 흡수하여 공자의 참된 가르침을 드러내는 새로운 유학을 세우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다산학을 ‘실리학實理學’으로 부르기를 제안한다. 고증학이나 고학은 결국 한당의 실학에 기반하여 이학에 도전했고, 유교사 전체를 놓고 볼 때 실학의 한 부분이었다. 따라서 유교의 역사는 실학과 이학이 교차했던 역사였다. 이러한 유교 전사의 지평 위에서 다산은 실학과 이학을 종합 지양하는 실리학을 세우려고 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그의 실리학이 실학과 다른 것은 이학의 세계관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고, 이학과 다른 것은 그것이 성리학의 공론, 곧 현실과 경험에 기초하지 않은 논설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인간의 삶을 통해서 이치를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가령 다산은 인간 본성에 대한 성리학의 분석적 서술, 무엇에 의해서도 훼손되지 않은 순수한 본성이 있고 행동과 감정을 통해서 드러나는 또 다른 본성이 있다는 논설을 단호히 배격하며, 우주를 관통하는 전일적 이치와 현상을 통해 드러나는 개별적 이치가 있다는 이론, 그리고 이기의 체용론 등을 모두 거부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러한 논의는 현실과 삶에 뿌리 내리지 않은 공론, 형이상학에만 머무는 논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산은 유교 전통의 반성을 통해 이치를 논하되 실제에서 또 실증을 통해서 논한다는 정신을 발양했다. 저자는 그것을 실리학으로 부른다.
유배지였기 때문에 『논어』로 『논어』를 읽었다
다산은 『논어고금주』를 유배지에서 썼다. 강진의 초당에서 다산은 먼 외가 친척의 도움을 받아 약간의 참고할 자료를 열람할 수 있었지만 한양 도성도 아닌 전라도 시골에 무슨 책이 그렇게 많았겠는가? 물론 다산은 읽어볼 수 있는 책은 다 보았고, 그가 볼 수 있었던 자료에서 그럴듯한 신설을 발견했을 때는 찬탄하기도 했다. 그런 신설의 보고는 모기령과 다자이의 책 그리고 좀 더 범위를 넓히면 왕응린(1223~1296)의 『곤학기문』이나 김이상(1232~1303)의 『논어집주고증』 등이었다. 다산은 이들 책에서 인용한 견해를 당시의 관행에 따라 출처를 밝히지 않고 종종 재인용하는데, 재인용된 문장의 원문을 실제로 본 것은 아니었다. 아니 사실 볼 수 없는 처지였다. 앎에 욕심이 많은 학자가 보고 싶은 책을 못 볼 때의 탄식이 초당을 채우곤 했을 것이다. 이런 다산의 지적 욕망을 다소나마 풀어준 또 다른 책이 두 권 있는데, 바로 『강희자전』과 『패문운부』다. 이것들은 한자와 한자 성어를 다양한 용례와 함께 소개하여 다산의 연구에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역시 당대의 다른 연구자, 가령 모기령이나 다자이와 비교하면 다산의 장서는 양이 작았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러한 한계가 다산의 『논어』 읽기에 방향성을 설정해주었다. 다산의 『논어』 읽기는 첫째 『논어』로써 『논어』를 읽고, 둘째 경전을 통해서 『논어』를 읽는다는 두 가지 원칙을 가진다. 이런 방법론에서 보자면 다산은 가장 주요한 전거들에서 누구에게도 뒤질 것이 없었다. 그에게는 『논어주소』와 『논어집주』 등 『논어』의 기본 주석서가 있고, 유교의 주요 경전도 있고, 나아가 『국어』나 『전국책』 같은 경전에 버금가는 고전도 있고, 『사기』와 『한서』를 비롯한 중국의 역사서도 있고, 『공자가어』나 『공총자』 같은 참고할 책도 있고, 『설문해자』나 『경전석문』 같은 기본 자료도 있었다. 그의 방법론으로 『논어』를 읽는다면 장서의 양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다산은 이강회(1789~?), 윤동(1793~1853)과 같은 제자의 도움을 받아 참고할 책을 검토하면서 고금을 통합하고 나아가 새로운 『논어』 읽기를 여는 창신의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논어 500여 장 중 175개 항목을 새롭게 읽다
그의 창신은 우선 『논어고금주』 책머리에 정리되어 있는 ‘원의총괄’ 175개 조에서 그 면모를 볼 수 있다. 『논어고금주』는 대담하게도 이것이 ‘원의’, 곧 원래의 뜻이라고 함성을 지르면서 그 많은 구절에서 공자의 본뜻을 찾았다고 선언한다. 그중에는 정말 다산만 이야기한 것도 있고, 다른 주석가가 먼저 제안했으나 다산이 보완한 것도 있고, 다산이 보완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왕의 오해가 너무 깊기 때문에 이렇게 읽어야 한다고 특기한 것도 있다. 『논어』는 모두 500여 장인데, ‘원의총괄’에 수록된 것이 175개조다. 대단한 패기가 아닌가? 더욱이 ‘원의총괄’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각 장을 해설하는 과정에서 다산이 제시한 참신한 해석도 부지기수다. 기록되지 않은 어떤 참신한 해석은 그것이 왜 ‘원의총괄’에 수록되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할 정도로 중요하고 새롭다. 이런 것까지 다 모으면 『논어고금주』는 권위의 해석을 거부하고 새로운 설을 세우려는 불굴의 도전 의식, 어느 반골의 사금파리 같은 외침이다. 다산은 답습하지 않았고, 새로운 견해를 내세우지 못할 때는 길게 주해하지 않았다. 이것이 한국의 『논어』라니, 멋지지 않은가?
“재미있는 한국의 『논어』가 있다”
현재 『논어고금주』는 이지형 선생의 이름으로 이미 완역되었다. 저자는 서론에서 이 책 『다산 논어』도 한글로 『논어고금주』를 다루므로 이미 완역이 있는데 왜 다른 책이 필요한가에 대한 약간의 설명을 제공했다. 간단히 말하면 이 책은 『논어고금주』를 번역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이 책은 『논어고금주』에 입각하여, 곧 다산의 『논어』 읽기에 입각하여 『논어』를 옮기고, 다산 독법과 해석의 의미를 설명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이 책은 한글 번역판 『논어고금주』에서 가장 아쉬운 두 가지, 곧 『논어고금주』에 입각해 『논어』를 정확하게 옮기고, 또 이 한국의 『논어』가 어떻게 고금주의 『논어』와 다르고 어떻게 중국이나 일본의 『논어』와 다른가를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쓰였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한글판 『논어고금주』를 보완한다. 한글판 『논어고금주』는 집단 작업의 결과인 듯한데, 담당자가 누군가에 따라 번역의 질이 균일하지 않다. 뜻이 분명하게 전해지지 않는 번역은 옳은 번역이 아니라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오류가 많다. 『다산 논어』가 『논어고금주』의 한글 번역이 아닌 만큼 그 오류를 모두 거론할 필요는 없고, 또 나도 많은 오류를 저지르겠지만, 적어도 한글판 『논어고금주』가 다산의 『논어』 읽기를 반영하지 않고 『논어』 경문을 옮긴 경우에는 이 책이 책임감을 가지고 수정했다.
다른 면에서 이 책은 저자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이미 1~5권을 출간한 The Analects of Dasan: A Korean Syncretic Reading (Oxford University Press)의 자매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총 6권으로 기획된 이 영문 서적은 『논어고금주』 전체를 영역하고, 필요한 경우 해설을 첨가하는 형식을 취하는데, 이 책 『다산 논어』에 있는 해설의 일부분은 그곳에 간략하게 서술되었다. 물론 다시 확인하지만 이 책 『다산 논어』는 『논어고금주』의 번역이 아니므로 이 영문 서적과도 다르다. The Analects of Dasan은 『논어고금주』 전체의 번역을 위주로 하고 지극히 소략한 해설을 첨가했지만 이 책 『다산 논어』는 『논어』 경문을 다산이 어떻게 독창적으로, 또 왜 그렇게 독창적으로 읽었는가를 설명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에 영문 서적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해설을 담았다. 어쨌든 『논어고금주』와 관련된 두 종류의 출판물이 이미 존재함에도 지금 다시 『다산 논어』를 쓰는 것은 한국의 독자에게 한국의 『논어』가 있다는 것, 그것도 재미있는 한국의 『논어』가 있다는 사실을 꼭 알리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다산의 독창성
그러므로 이 책 『다산 논어』를 통해 독자는 무엇보다도 다산 『논어』 읽기의 독창성과 사상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의 『논어』 읽기는 누구나 그 다름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대담한 진술로 시작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꼼꼼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미묘한 곳에서 다른 『논어』 읽기와 달라진다. 다산 자신이 꼼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해설 없이 이러한 미묘한 독창성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다산의 대담하고 참신한 독법도 해설이 없이는 참된 맛을 음미하기 쉽지 않다. 『논어고금주』라는 굉장한 고전에 해설이 꼭 필요한 이유다.
아울러 독자는 이 책 『다산 논어』를 통해 궁극적으로 다산이라는 인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과거 지식인의 경전 읽기는 그 사람의 가치관을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다산은 얼마나 개혁적이었고 얼마나 타협적이었는가, 어떤 사람을 싫어하고 어떤 사람을 존경했는가, 무엇을 통해서 사유하고 무엇을 통해서 판단했는가, 어떤 것을 고집하고 어떤 것을 배척했는가 하는 많은 질문의 답을 그를 따라 『논어』를 읽으면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다산 논어』는 많은 사람이 존경하는 한 역사적 인물의 초상화이기도 하다. 내친 김에 이 책의 구성 원칙 몇 가지를 밝힌다. 첫 번째로 이 책은 다산의 『논어』 읽기를 설명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에 다산의 해석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경우 본문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다산 독법의 특징을 드러내는 일과 관련 없는 자구 풀이도 시시콜콜하게 하지 않았다. 다산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석가가 동의한 독법에 대해서는 그에 따라 원문을 옮긴 뒤 고금주와 다산 사이에 이견이 없다는 정도의 기록만 남겨두었다. 하지만 다산의 독법이 미세하게라도 고주나 금주와 다른 경우 다산의 독법을 반영하여 본문을 옮기는 것은 물론 그것이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주기 위해 고주와 금주의 독법도 함께 소개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으면 거의 모든 장에서 다산의 독법과 함께 고주와 금주의 독법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이 책은 가끔 필요에 따라 『논어고금주』의 원문을 한글로 번역해서 인용하기는 하나 한문 원문을 그대로 소개하지는 않는다. 되도록 한자를 덜 써서 맵시를 내보자는 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어떤 글자도 넣거나 빼지 않고 경문을 글자 그대로 옮기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글자 한 자를 추가해서 옮기면 훨씬 더 매끄럽게 되는 경우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되도록이면 원문에 가깝도록 푸는 것이 고전을 한글로 옮기는 사람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다산 논어』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이 1813년 완성한 『논어고금주』에 바탕하여 『논어』를 번역, 해설한 것이다. 『논어고금주』는 『논어』에 대한 다산의 주석서로 『논어』를 공자의 원의에 맞게 읽는다는 기획으로 집필되었다. 그 이름이 『논어고금주』인 것은 다산이 이 주석서에서 『논어』의 고주와 금주를 망라하여 좋은 견해는 받아들이고 옳지 않은 견해는 비판하면서 『논어』의 500여 장을 이렇게 읽어야 한다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이때 『논어』의 고주에는 우선 하안(195~249)이 당시 전해지던 여러 경학가의 주석을 모아 편집한 『논어집해』가 있고, 또 『논어집해』를 부연 설명하는 두 책, 황간(488~545)의 『논어집해의소』(이제부터 『논어의소』)와 형병(932~1010)의 『논어정의』가 있다. 주로 진晉의 논어학에 기초해 편찬한 『논어의소』는 남송 이후 중국에서 사라졌다가 일본에서 역수입되었고, 포정박(1729~1814)이 자신이 수집한 장서를 모아 편찬한 『지부족재총서』에 수록함으로써 다시 논어학의 전면에 자리하게 되었다. 『논어의소』가 사라진 동안 『논어집해』와 『논어정의』가 고주를 대표했고, 이 두 책은 합본되어 『논어주소』로 불렸다. 그런데 황간과 형병의 주석서는 『논어집해』를 보완하는 것이므로 결국 『논어』의 고주는 『논어집해』가 대표한다.
『논어』의 역대 주석을 자세히 곱씹어 비판
고주에는 이외에도 정현(127~200)의 주해를 모아놓은 『논어정씨주』가 있고, 육덕명(556~627)의 『논어음의』에 수록된 짤막하지만 중요한 정보들도 있고, 다산이 종종 검토하는 한유(768~824)의 『논어필해』도 있다. 그렇지만 이 고주들은 그 비중에서 『논어집해』에 비견될 수 없다. 『논어집해』는 『논어』를 처음, 종합적으로 해설한 책이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는 『논어정씨주』가 『논어집해』보다 이를 수 있지만 『논어정씨주』는 『논어』의 일부에 대한 주해일 뿐만 아니라 한동안 일실되었다가 둔황에서 발견되어 20세기에 비로소 알려졌다. 필사본으로 진위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또 오랫동안 잊혔던 책이었으므로 논어학에서의 비중이 크지 않다. 적어도 다산은 『논어정씨주』를 고주로 참고할 수 없었다.
『논어집해』는 공안국(기원전 164~기원전 74?), 포함(기원전 7~기원후 63), 마융(79~166), 정현, 왕숙(195~256), 주생렬(220년경), 진군(?~237) 그리고 하안 등의 주해를 소개한다. 이들의 주해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논어』를 처음으로 해설하여 이 불후의 고전을 읽는 길잡이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등대이기도 하고, 후인들이 그 권위에 도전하기 쉽지 않았다는 점에서 멍에이기도 했다.
이 멍에에 얽매이지 않고 『논어집해』에 맞먹는 또 하나의 등대를 세운 것은 주희(1130~1200)의 『논어집주』다. 이 책도 ‘집해’와 마찬가지로 ‘집주’, 곧 주석을 모아놓은 것이므로 앞선 시대의 연구자에게 많은 빚을 졌다. 그렇다고 해도 『논어』를 이학이라는 새로운 틀에 얹어서 참신하게 읽어낸 것은 결국 주희다. 그런 점에서 그는 『논어』 읽기에 불멸의 자취를 남겼다. 다산은 『논어』 읽기의 2막을 연 이 책을 금주로 이해한다.
나중에 성리학이 위세를 떨치자 『논어집주』는 더 중요한 책이 되었다. 그리고 마치 황간과 형병이 『논어집해』를 보완하는 주해서를 냈던 것처럼 호광(1369~1418)은 순전히 성리학적 안목으로 『논어집주』를 보완하여 『논어집주대전』을 출간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과거 『논어』를 읽었다는 것은 『논어집주』에 호광이 수집한 소주小註를 붙인 『논어집주대전』에 기반해서 『논어』를 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논어집주대전』뿐만 아니다. 『논어집주』가 유교적 관료 사회에 진출하려는 지식인의 필독서가 된 뒤에는 많은 주희의 후학이 『논어집주』를 보완하기 위해 책을 썼다. 때로는 지금 사적을 알 수 없는 학자도 『논어집주』를 보완하는 책과 논설을 남겼다. 『논어고금주』에서 좁은 의미의 금주는 『논어집주』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논어집주』를 보완하는 모든 책과 논설도 금주다. 금주는 성리학의 『논어』 해석이기 때문이다. 다산은 이들을 때로는 비판하기 위해, 또 때로는 수용하기 위해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주희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송명대의 논어학을 지나면 이제 새로운 경학의 기풍이 만만치 않았던 17세기 이후의 논어학과 만난다. 이 범주에도 다산이 참고한 많은 학자가 있다. 하지만 『논어고금주』를 논할 때는 누구보다 먼저 두 사람을 소개해야 한다. 하나는 청대 고증학의 선구로서 또 건가학파의 거두로서 당대부터 굉박한 지식으로 이름 높았던 모기령(1623~1716)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에서 일가를 이룬 다자이 준(1680~1747)이다.
모기령의 『논어』 해설은 세 책에 나누어져 있는데, 『논어계구편』이 가장 중요하고, 『사서승언』 그리고 『사서개착』이 그 뒤를 따른다. 모기령의 논어학은 간단히 말하면 반주희다. 거의 모든 문제에서 모기령은 『논어집주』를 비판하고 고주로 돌아갔다. 한편 다자이는 『논어』와 관련하여 『논어고훈』과 『논어고훈외전』 두 책을 펴냈다. 이 책들은 스승인 오규 나베마쓰(1666~1728)의 『논어』 해석에 기초해서 이름 그대로 『논어』의 고훈이 무엇인가를 밝히려는 목적을 지닌다. 이때 고훈은 주희 이전의 훈석을 말하므로 다자이도 결국 반주희를 지향한다. 다산이 『논어고훈』이나 오규의 『논어징』을 직접 보았다는 증거는 없고, 『논어고훈외전』은 비판적으로든 수용을 위해서든 많이 인용한다. 곧 다산은 제2기의 『논어』 읽기인 『논어집주』를 비판하는 제3기의 『논어』 읽기, 청대 고증학과 일본 고문사학의 『논어』 해석을 또 다른 참고 자료로 삼았다.
2000년 동안 『논어』를 잘못 읽어왔다고 외친
다산의 패기!
이 1, 2, 3기의 『논어』 읽기를 뛰어넘어 시대적으로 볼 때 제4기의 『논어』읽기, 혹은 다산의 안목으로 볼 때 ‘진정한’ 『논어』 읽기를 하려는 것이 『논어고금주』다. 이것은 정말 대단한 야심이다. 다산이 자부하듯이 2000년 동안 감춰진 오의를 보여주면서 그것이 공자의 ‘원의’였다고 외치는 패기가 이 책에 있다.
생각해보면 다산은 뾰족한 사람이다. 유교에서는 이를 규각이 졌다고 하는데, 옛날 사람들이 조회에 참석하거나 사명을 나갈 때 들던 홀(圭)의 모서리처럼 뾰족하게 각이 선 사람이라는 말이다. 주희 눈에는 맹자가 그런 사람이었다. 맹자의 날선 논변을 보면 남을 용납하지 않는 호령이 들린다는 것이었다. 다산도 맹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올바른 생각과 말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그른 것에 대한 과감하고도 매서운 공격, 풍부한 지식과 합리적인 사유, 이런 무기로 무장한 사람이 난세를 만나면 칼을 휘두른다. 그 칼의 춤소리가 들리는 것이 여기에서 『다산 논어』로 새롭게 이름한 『논어고금주』다.
되돌아보면 우리 땅에 유교가 들어온 뒤 많은 유현이 출몰했지만 유교 경전 중의 으뜸이라는 『논어』의 완결된 해설서를 우리 선배의 이름으로 소개한 것은 다산이 처음이다. 그러므로 『다산 논어』는 사실 한국판 『논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우리 조상이 만들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이 하안, 주희를 위시한 많은 경학가의 권위에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논어』의 해설을 통해 한국인의 가치관, 그들의 세상 보는 안목을 고스란히 담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요즘에야 하나로 특정할 수 있는 우리의 가치관이라는 게 있는지 의심할 수 있고, 더 근본적으로는 그런 동일성을 갖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가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적으로 한국인이 강한 동일성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고, 지금도 그러한 ‘한국인의 가치관’이 우리의 의식 저변에서 엄연히 활약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그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은 언제나 의미 있는 일이다. 『논어고금주』를 읽다보면 그것이 『논어』를 해독하는 것 이상의 문화적 함의를 담고 있다는 것, 한국인의 전통적 사유 방식을 보여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물론 다른 많은 사람과 함께, 다산 선생에게 감사를 보낸다. 모름지기 가장 유교적인 문명을 수백 년 동안 일궈온 나라에 『논어』라는 우뚝한 경전에 대한 독자적인 읽기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다산의 논어 읽기는 ‘실리학實理學’의 관점을 취한다
『논어고금주』라는 이름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고주와 금주, 곧 한당 경학과 송명 경학의 제 성과를 종합하려는 의도를 가진다. 그래서 『논어고금주』다. 고주와 금주를 모두 아우른다는 선언이다. 그렇지만 만약 『논어고금주』가 단순히 고주와 금주를 비교하거나 취사선택하는 데만 그쳤다면 그 중요성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다산이 정말 하려고 했던 것은 고주와 금주를 종합하면서, 또 다산 당대의 연구 성과를 참고하면서, 그 모두를 극복하는 참된 『논어』 읽기를 선보이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다산은 『논어고금주』를 통해 한당의 ‘실학’과 송명의 ‘이학’ 그리고 나아가 청대의 ‘고증학’과 도쿠가와의 ‘고학’을 모두 흡수하여 공자의 참된 가르침을 드러내는 새로운 유학을 세우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다산학을 ‘실리학實理學’으로 부르기를 제안한다. 고증학이나 고학은 결국 한당의 실학에 기반하여 이학에 도전했고, 유교사 전체를 놓고 볼 때 실학의 한 부분이었다. 따라서 유교의 역사는 실학과 이학이 교차했던 역사였다. 이러한 유교 전사의 지평 위에서 다산은 실학과 이학을 종합 지양하는 실리학을 세우려고 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그의 실리학이 실학과 다른 것은 이학의 세계관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고, 이학과 다른 것은 그것이 성리학의 공론, 곧 현실과 경험에 기초하지 않은 논설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인간의 삶을 통해서 이치를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가령 다산은 인간 본성에 대한 성리학의 분석적 서술, 무엇에 의해서도 훼손되지 않은 순수한 본성이 있고 행동과 감정을 통해서 드러나는 또 다른 본성이 있다는 논설을 단호히 배격하며, 우주를 관통하는 전일적 이치와 현상을 통해 드러나는 개별적 이치가 있다는 이론, 그리고 이기의 체용론 등을 모두 거부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러한 논의는 현실과 삶에 뿌리 내리지 않은 공론, 형이상학에만 머무는 논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산은 유교 전통의 반성을 통해 이치를 논하되 실제에서 또 실증을 통해서 논한다는 정신을 발양했다. 저자는 그것을 실리학으로 부른다.
유배지였기 때문에 『논어』로 『논어』를 읽었다
다산은 『논어고금주』를 유배지에서 썼다. 강진의 초당에서 다산은 먼 외가 친척의 도움을 받아 약간의 참고할 자료를 열람할 수 있었지만 한양 도성도 아닌 전라도 시골에 무슨 책이 그렇게 많았겠는가? 물론 다산은 읽어볼 수 있는 책은 다 보았고, 그가 볼 수 있었던 자료에서 그럴듯한 신설을 발견했을 때는 찬탄하기도 했다. 그런 신설의 보고는 모기령과 다자이의 책 그리고 좀 더 범위를 넓히면 왕응린(1223~1296)의 『곤학기문』이나 김이상(1232~1303)의 『논어집주고증』 등이었다. 다산은 이들 책에서 인용한 견해를 당시의 관행에 따라 출처를 밝히지 않고 종종 재인용하는데, 재인용된 문장의 원문을 실제로 본 것은 아니었다. 아니 사실 볼 수 없는 처지였다. 앎에 욕심이 많은 학자가 보고 싶은 책을 못 볼 때의 탄식이 초당을 채우곤 했을 것이다. 이런 다산의 지적 욕망을 다소나마 풀어준 또 다른 책이 두 권 있는데, 바로 『강희자전』과 『패문운부』다. 이것들은 한자와 한자 성어를 다양한 용례와 함께 소개하여 다산의 연구에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역시 당대의 다른 연구자, 가령 모기령이나 다자이와 비교하면 다산의 장서는 양이 작았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러한 한계가 다산의 『논어』 읽기에 방향성을 설정해주었다. 다산의 『논어』 읽기는 첫째 『논어』로써 『논어』를 읽고, 둘째 경전을 통해서 『논어』를 읽는다는 두 가지 원칙을 가진다. 이런 방법론에서 보자면 다산은 가장 주요한 전거들에서 누구에게도 뒤질 것이 없었다. 그에게는 『논어주소』와 『논어집주』 등 『논어』의 기본 주석서가 있고, 유교의 주요 경전도 있고, 나아가 『국어』나 『전국책』 같은 경전에 버금가는 고전도 있고, 『사기』와 『한서』를 비롯한 중국의 역사서도 있고, 『공자가어』나 『공총자』 같은 참고할 책도 있고, 『설문해자』나 『경전석문』 같은 기본 자료도 있었다. 그의 방법론으로 『논어』를 읽는다면 장서의 양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다산은 이강회(1789~?), 윤동(1793~1853)과 같은 제자의 도움을 받아 참고할 책을 검토하면서 고금을 통합하고 나아가 새로운 『논어』 읽기를 여는 창신의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논어 500여 장 중 175개 항목을 새롭게 읽다
그의 창신은 우선 『논어고금주』 책머리에 정리되어 있는 ‘원의총괄’ 175개 조에서 그 면모를 볼 수 있다. 『논어고금주』는 대담하게도 이것이 ‘원의’, 곧 원래의 뜻이라고 함성을 지르면서 그 많은 구절에서 공자의 본뜻을 찾았다고 선언한다. 그중에는 정말 다산만 이야기한 것도 있고, 다른 주석가가 먼저 제안했으나 다산이 보완한 것도 있고, 다산이 보완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왕의 오해가 너무 깊기 때문에 이렇게 읽어야 한다고 특기한 것도 있다. 『논어』는 모두 500여 장인데, ‘원의총괄’에 수록된 것이 175개조다. 대단한 패기가 아닌가? 더욱이 ‘원의총괄’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각 장을 해설하는 과정에서 다산이 제시한 참신한 해석도 부지기수다. 기록되지 않은 어떤 참신한 해석은 그것이 왜 ‘원의총괄’에 수록되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할 정도로 중요하고 새롭다. 이런 것까지 다 모으면 『논어고금주』는 권위의 해석을 거부하고 새로운 설을 세우려는 불굴의 도전 의식, 어느 반골의 사금파리 같은 외침이다. 다산은 답습하지 않았고, 새로운 견해를 내세우지 못할 때는 길게 주해하지 않았다. 이것이 한국의 『논어』라니, 멋지지 않은가?
“재미있는 한국의 『논어』가 있다”
현재 『논어고금주』는 이지형 선생의 이름으로 이미 완역되었다. 저자는 서론에서 이 책 『다산 논어』도 한글로 『논어고금주』를 다루므로 이미 완역이 있는데 왜 다른 책이 필요한가에 대한 약간의 설명을 제공했다. 간단히 말하면 이 책은 『논어고금주』를 번역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이 책은 『논어고금주』에 입각하여, 곧 다산의 『논어』 읽기에 입각하여 『논어』를 옮기고, 다산 독법과 해석의 의미를 설명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이 책은 한글 번역판 『논어고금주』에서 가장 아쉬운 두 가지, 곧 『논어고금주』에 입각해 『논어』를 정확하게 옮기고, 또 이 한국의 『논어』가 어떻게 고금주의 『논어』와 다르고 어떻게 중국이나 일본의 『논어』와 다른가를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쓰였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한글판 『논어고금주』를 보완한다. 한글판 『논어고금주』는 집단 작업의 결과인 듯한데, 담당자가 누군가에 따라 번역의 질이 균일하지 않다. 뜻이 분명하게 전해지지 않는 번역은 옳은 번역이 아니라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오류가 많다. 『다산 논어』가 『논어고금주』의 한글 번역이 아닌 만큼 그 오류를 모두 거론할 필요는 없고, 또 나도 많은 오류를 저지르겠지만, 적어도 한글판 『논어고금주』가 다산의 『논어』 읽기를 반영하지 않고 『논어』 경문을 옮긴 경우에는 이 책이 책임감을 가지고 수정했다.
다른 면에서 이 책은 저자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이미 1~5권을 출간한 The Analects of Dasan: A Korean Syncretic Reading (Oxford University Press)의 자매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총 6권으로 기획된 이 영문 서적은 『논어고금주』 전체를 영역하고, 필요한 경우 해설을 첨가하는 형식을 취하는데, 이 책 『다산 논어』에 있는 해설의 일부분은 그곳에 간략하게 서술되었다. 물론 다시 확인하지만 이 책 『다산 논어』는 『논어고금주』의 번역이 아니므로 이 영문 서적과도 다르다. The Analects of Dasan은 『논어고금주』 전체의 번역을 위주로 하고 지극히 소략한 해설을 첨가했지만 이 책 『다산 논어』는 『논어』 경문을 다산이 어떻게 독창적으로, 또 왜 그렇게 독창적으로 읽었는가를 설명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에 영문 서적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해설을 담았다. 어쨌든 『논어고금주』와 관련된 두 종류의 출판물이 이미 존재함에도 지금 다시 『다산 논어』를 쓰는 것은 한국의 독자에게 한국의 『논어』가 있다는 것, 그것도 재미있는 한국의 『논어』가 있다는 사실을 꼭 알리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다산의 독창성
그러므로 이 책 『다산 논어』를 통해 독자는 무엇보다도 다산 『논어』 읽기의 독창성과 사상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의 『논어』 읽기는 누구나 그 다름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대담한 진술로 시작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꼼꼼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미묘한 곳에서 다른 『논어』 읽기와 달라진다. 다산 자신이 꼼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해설 없이 이러한 미묘한 독창성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다산의 대담하고 참신한 독법도 해설이 없이는 참된 맛을 음미하기 쉽지 않다. 『논어고금주』라는 굉장한 고전에 해설이 꼭 필요한 이유다.
아울러 독자는 이 책 『다산 논어』를 통해 궁극적으로 다산이라는 인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과거 지식인의 경전 읽기는 그 사람의 가치관을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다산은 얼마나 개혁적이었고 얼마나 타협적이었는가, 어떤 사람을 싫어하고 어떤 사람을 존경했는가, 무엇을 통해서 사유하고 무엇을 통해서 판단했는가, 어떤 것을 고집하고 어떤 것을 배척했는가 하는 많은 질문의 답을 그를 따라 『논어』를 읽으면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다산 논어』는 많은 사람이 존경하는 한 역사적 인물의 초상화이기도 하다. 내친 김에 이 책의 구성 원칙 몇 가지를 밝힌다. 첫 번째로 이 책은 다산의 『논어』 읽기를 설명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에 다산의 해석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경우 본문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다산 독법의 특징을 드러내는 일과 관련 없는 자구 풀이도 시시콜콜하게 하지 않았다. 다산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석가가 동의한 독법에 대해서는 그에 따라 원문을 옮긴 뒤 고금주와 다산 사이에 이견이 없다는 정도의 기록만 남겨두었다. 하지만 다산의 독법이 미세하게라도 고주나 금주와 다른 경우 다산의 독법을 반영하여 본문을 옮기는 것은 물론 그것이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주기 위해 고주와 금주의 독법도 함께 소개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으면 거의 모든 장에서 다산의 독법과 함께 고주와 금주의 독법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이 책은 가끔 필요에 따라 『논어고금주』의 원문을 한글로 번역해서 인용하기는 하나 한문 원문을 그대로 소개하지는 않는다. 되도록 한자를 덜 써서 맵시를 내보자는 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어떤 글자도 넣거나 빼지 않고 경문을 글자 그대로 옮기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글자 한 자를 추가해서 옮기면 훨씬 더 매끄럽게 되는 경우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되도록이면 원문에 가깝도록 푸는 것이 고전을 한글로 옮기는 사람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다산 논어 : 한국의 논어 1 - 정약용의 논어 읽기 (양장)
$3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