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논어 : 한국의 논어 2 (정약용의 논어 읽기)

다산 논어 : 한국의 논어 2 (정약용의 논어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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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다산 정약용의 『논어』 읽기를 따라
우리말로 옮긴 한국의 『논어』

『논어』로 『논어』를 읽고, 경전에서 근거를 구한다는 원칙을 지킨 후
“이치”라는 그물망을 펼쳐 고금주를 해체하고 종합한
혁신적인 『논어』

“이것이 한국의 『논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다산이 『논어』를 번역했다면 어땠을까?

『다산 논어』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이 1813년 완성한 『논어고금주』에 바탕하여 『논어』를 번역, 해설한 것이다. 『논어고금주』는 『논어』에 대한 다산의 주석서로 『논어』를 공자의 원의에 맞게 읽는다는 기획으로 집필되었다. 그 이름이 『논어고금주』인 것은 다산이 이 주석서에서 『논어』의 고주와 금주를 망라하여 좋은 견해는 받아들이고 옳지 않은 견해는 비판하면서 『논어』의 500여 장을 이렇게 읽어야 한다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이때 『논어』의 고주에는 우선 하안(195~249)이 당시 전해지던 여러 경학가의 주석을 모아 편집한 『논어집해』가 있고, 또 『논어집해』를 부연 설명하는 두 책, 황간(488~545)의 『논어집해의소』(이제부터 『논어의소』)와 형병(932~1010)의 『논어정의』가 있다. 주로 진晉의 논어학에 기초해 편찬한 『논어의소』는 남송 이후 중국에서 사라졌다가 일본에서 역수입되었고, 포정박(1729~1814)이 자신이 수집한 장서를 모아 편찬한 『지부족재총서』에 수록함으로써 다시 논어학의 전면에 자리하게 되었다. 『논어의소』가 사라진 동안 『논어집해』와 『논어정의』가 고주를 대표했고, 이 두 책은 합본되어 『논어주소』로 불렸다. 그런데 황간과 형병의 주석서는 『논어집해』를 보완하는 것이므로 결국 『논어』의 고주는 『논어집해』가 대표한다.

『논어』의 역대 주석을 자세히 곱씹어 비판

고주에는 이외에도 정현(127~200)의 주해를 모아놓은 『논어정씨주』가 있고, 육덕명(556~627)의 『논어음의』에 수록된 짤막하지만 중요한 정보들도 있고, 다산이 종종 검토하는 한유(768~824)의 『논어필해』도 있다. 그렇지만 이 고주들은 그 비중에서 『논어집해』에 비견될 수 없다. 『논어집해』는 『논어』를 처음, 종합적으로 해설한 책이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는 『논어정씨주』가 『논어집해』보다 이를 수 있지만 『논어정씨주』는 『논어』의 일부에 대한 주해일 뿐만 아니라 한동안 일실되었다가 둔황에서 발견되어 20세기에 비로소 알려졌다. 필사본으로 진위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또 오랫동안 잊혔던 책이었으므로 논어학에서의 비중이 크지 않다. 적어도 다산은 『논어정씨주』를 고주로 참고할 수 없었다.
『논어집해』는 공안국(기원전 164~기원전 74?), 포함(기원전 7~기원후 63), 마융(79~166), 정현, 왕숙(195~256), 주생렬(220년경), 진군(?~237) 그리고 하안 등의 주해를 소개한다. 이들의 주해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논어』를 처음으로 해설하여 이 불후의 고전을 읽는 길잡이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등대이기도 하고, 후인들이 그 권위에 도전하기 쉽지 않았다는 점에서 멍에이기도 했다.
이 멍에에 얽매이지 않고 『논어집해』에 맞먹는 또 하나의 등대를 세운 것은 주희(1130~1200)의 『논어집주』다. 이 책도 ‘집해’와 마찬가지로 ‘집주’, 곧 주석을 모아놓은 것이므로 앞선 시대의 연구자에게 많은 빚을 졌다. 그렇다고 해도 『논어』를 이학이라는 새로운 틀에 얹어서 참신하게 읽어낸 것은 결국 주희다. 그런 점에서 그는 『논어』 읽기에 불멸의 자취를 남겼다. 다산은 『논어』 읽기의 2막을 연 이 책을 금주로 이해한다.
나중에 성리학이 위세를 떨치자 『논어집주』는 더 중요한 책이 되었다. 그리고 마치 황간과 형병이 『논어집해』를 보완하는 주해서를 냈던 것처럼 호광(1369~1418)은 순전히 성리학적 안목으로 『논어집주』를 보완하여 『논어집주대전』을 출간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과거 『논어』를 읽었다는 것은 『논어집주』에 호광이 수집한 소주小註를 붙인 『논어집주대전』에 기반해서 『논어』를 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논어집주대전』뿐만 아니다. 『논어집주』가 유교적 관료 사회에 진출하려는 지식인의 필독서가 된 뒤에는 많은 주희의 후학이 『논어집주』를 보완하기 위해 책을 썼다. 때로는 지금 사적을 알 수 없는 학자도 『논어집주』를 보완하는 책과 논설을 남겼다. 『논어고금주』에서 좁은 의미의 금주는 『논어집주』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논어집주』를 보완하는 모든 책과 논설도 금주다. 금주는 성리학의 『논어』 해석이기 때문이다. 다산은 이들을 때로는 비판하기 위해, 또 때로는 수용하기 위해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주희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송명대의 논어학을 지나면 이제 새로운 경학의 기풍이 만만치 않았던 17세기 이후의 논어학과 만난다. 이 범주에도 다산이 참고한 많은 학자가 있다. 하지만 『논어고금주』를 논할 때는 누구보다 먼저 두 사람을 소개해야 한다. 하나는 청대 고증학의 선구로서 또 건가학파의 거두로서 당대부터 굉박한 지식으로 이름 높았던 모기령(1623~1716)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에서 일가를 이룬 다자이 준(1680~1747)이다.
모기령의 『논어』 해설은 세 책에 나누어져 있는데, 『논어계구편』이 가장 중요하고, 『사서승언』 그리고 『사서개착』이 그 뒤를 따른다. 모기령의 논어학은 간단히 말하면 반주희다. 거의 모든 문제에서 모기령은 『논어집주』를 비판하고 고주로 돌아갔다. 한편 다자이는 『논어』와 관련하여 『논어고훈』과 『논어고훈외전』 두 책을 펴냈다. 이 책들은 스승인 오규 나베마쓰(1666~1728)의 『논어』 해석에 기초해서 이름 그대로 『논어』의 고훈이 무엇인가를 밝히려는 목적을 지닌다. 이때 고훈은 주희 이전의 훈석을 말하므로 다자이도 결국 반주희를 지향한다. 다산이 『논어고훈』이나 오규의 『논어징』을 직접 보았다는 증거는 없고, 『논어고훈외전』은 비판적으로든 수용을 위해서든 많이 인용한다. 곧 다산은 제2기의 『논어』 읽기인 『논어집주』를 비판하는 제3기의 『논어』 읽기, 청대 고증학과 일본 고문사학의 『논어』 해석을 또 다른 참고 자료로 삼았다.

2000년 동안 『논어』를 잘못 읽어왔다고 외친
다산의 패기!

이 1, 2, 3기의 『논어』 읽기를 뛰어넘어 시대적으로 볼 때 제4기의 『논어』읽기, 혹은 다산의 안목으로 볼 때 ‘진정한’ 『논어』 읽기를 하려는 것이 『논어고금주』다. 이것은 정말 대단한 야심이다. 다산이 자부하듯이 2000년 동안 감춰진 오의를 보여주면서 그것이 공자의 ‘원의’였다고 외치는 패기가 이 책에 있다.
생각해보면 다산은 뾰족한 사람이다. 유교에서는 이를 규각이 졌다고 하는데, 옛날 사람들이 조회에 참석하거나 사명을 나갈 때 들던 홀(圭)의 모서리처럼 뾰족하게 각이 선 사람이라는 말이다. 주희 눈에는 맹자가 그런 사람이었다. 맹자의 날선 논변을 보면 남을 용납하지 않는 호령이 들린다는 것이었다. 다산도 맹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올바른 생각과 말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그른 것에 대한 과감하고도 매서운 공격, 풍부한 지식과 합리적인 사유, 이런 무기로 무장한 사람이 난세를 만나면 칼을 휘두른다. 그 칼의 춤소리가 들리는 것이 여기에서 『다산 논어』로 새롭게 이름한 『논어고금주』다.
되돌아보면 우리 땅에 유교가 들어온 뒤 많은 유현이 출몰했지만 유교 경전 중의 으뜸이라는 『논어』의 완결된 해설서를 우리 선배의 이름으로 소개한 것은 다산이 처음이다. 그러므로 『다산 논어』는 사실 한국판 『논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우리 조상이 만들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이 하안, 주희를 위시한 많은 경학가의 권위에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논어』의 해설을 통해 한국인의 가치관, 그들의 세상 보는 안목을 고스란히 담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요즘에야 하나로 특정할 수 있는 우리의 가치관이라는 게 있는지 의심할 수 있고, 더 근본적으로는 그런 동일성을 갖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가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적으로 한국인이 강한 동일성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고, 지금도 그러한 ‘한국인의 가치관’이 우리의 의식 저변에서 엄연히 활약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그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은 언제나 의미 있는 일이다. 『논어고금주』를 읽다보면 그것이 『논어』를 해독하는 것 이상의 문화적 함의를 담고 있다는 것, 한국인의 전통적 사유 방식을 보여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물론 다른 많은 사람과 함께, 다산 선생에게 감사를 보낸다. 모름지기 가장 유교적인 문명을 수백 년 동안 일궈온 나라에 『논어』라는 우뚝한 경전에 대한 독자적인 읽기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다산의 논어 읽기는 ‘실리학實理學’의 관점을 취한다

『논어고금주』라는 이름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고주와 금주, 곧 한당 경학과 송명 경학의 제 성과를 종합하려는 의도를 가진다. 그래서 『논어고금주』다. 고주와 금주를 모두 아우른다는 선언이다. 그렇지만 만약 『논어고금주』가 단순히 고주와 금주를 비교하거나 취사선택하는 데만 그쳤다면 그 중요성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다산이 정말 하려고 했던 것은 고주와 금주를 종합하면서, 또 다산 당대의 연구 성과를 참고하면서, 그 모두를 극복하는 참된 『논어』 읽기를 선보이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다산은 『논어고금주』를 통해 한당의 ‘실학’과 송명의 ‘이학’ 그리고 나아가 청대의 ‘고증학’과 도쿠가와의 ‘고학’을 모두 흡수하여 공자의 참된 가르침을 드러내는 새로운 유학을 세우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다산학을 ‘실리학實理學’으로 부르기를 제안한다. 고증학이나 고학은 결국 한당의 실학에 기반하여 이학에 도전했고, 유교사 전체를 놓고 볼 때 실학의 한 부분이었다. 따라서 유교의 역사는 실학과 이학이 교차했던 역사였다. 이러한 유교 전사의 지평 위에서 다산은 실학과 이학을 종합 지양하는 실리학을 세우려고 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그의 실리학이 실학과 다른 것은 이학의 세계관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고, 이학과 다른 것은 그것이 성리학의 공론, 곧 현실과 경험에 기초하지 않은 논설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인간의 삶을 통해서 이치를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가령 다산은 인간 본성에 대한 성리학의 분석적 서술, 무엇에 의해서도 훼손되지 않은 순수한 본성이 있고 행동과 감정을 통해서 드러나는 또 다른 본성이 있다는 논설을 단호히 배격하며, 우주를 관통하는 전일적 이치와 현상을 통해 드러나는 개별적 이치가 있다는 이론, 그리고 이기의 체용론 등을 모두 거부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러한 논의는 현실과 삶에 뿌리 내리지 않은 공론, 형이상학에만 머무는 논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산은 유교 전통의 반성을 통해 이치를 논하되 실제에서 또 실증을 통해서 논한다는 정신을 발양했다. 저자는 그것을 실리학으로 부른다.

유배지였기 때문에 『논어』로 『논어』를 읽었다

다산은 『논어고금주』를 유배지에서 썼다. 강진의 초당에서 다산은 먼 외가 친척의 도움을 받아 약간의 참고할 자료를 열람할 수 있었지만 한양 도성도 아닌 전라도 시골에 무슨 책이 그렇게 많았겠는가? 물론 다산은 읽어볼 수 있는 책은 다 보았고, 그가 볼 수 있었던 자료에서 그럴듯한 신설을 발견했을 때는 찬탄하기도 했다. 그런 신설의 보고는 모기령과 다자이의 책 그리고 좀 더 범위를 넓히면 왕응린(1223~1296)의 『곤학기문』이나 김이상(1232~1303)의 『논어집주고증』 등이었다. 다산은 이들 책에서 인용한 견해를 당시의 관행에 따라 출처를 밝히지 않고 종종 재인용하는데, 재인용된 문장의 원문을 실제로 본 것은 아니었다. 아니 사실 볼 수 없는 처지였다. 앎에 욕심이 많은 학자가 보고 싶은 책을 못 볼 때의 탄식이 초당을 채우곤 했을 것이다. 이런 다산의 지적 욕망을 다소나마 풀어준 또 다른 책이 두 권 있는데, 바로 『강희자전』과 『패문운부』다. 이것들은 한자와 한자 성어를 다양한 용례와 함께 소개하여 다산의 연구에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역시 당대의 다른 연구자, 가령 모기령이나 다자이와 비교하면 다산의 장서는 양이 작았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러한 한계가 다산의 『논어』 읽기에 방향성을 설정해주었다. 다산의 『논어』 읽기는 첫째 『논어』로써 『논어』를 읽고, 둘째 경전을 통해서 『논어』를 읽는다는 두 가지 원칙을 가진다. 이런 방법론에서 보자면 다산은 가장 주요한 전거들에서 누구에게도 뒤질 것이 없었다. 그에게는 『논어주소』와 『논어집주』 등 『논어』의 기본 주석서가 있고, 유교의 주요 경전도 있고, 나아가 『국어』나 『전국책』 같은 경전에 버금가는 고전도 있고, 『사기』와 『한서』를 비롯한 중국의 역사서도 있고, 『공자가어』나 『공총자』 같은 참고할 책도 있고, 『설문해자』나 『경전석문』 같은 기본 자료도 있었다. 그의 방법론으로 『논어』를 읽는다면 장서의 양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다산은 이강회(1789~?), 윤동(1793~1853)과 같은 제자의 도움을 받아 참고할 책을 검토하면서 고금을 통합하고 나아가 새로운 『논어』 읽기를 여는 창신의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논어 500여 장 중 175개 항목을 새롭게 읽다

그의 창신은 우선 『논어고금주』 책머리에 정리되어 있는 ‘원의총괄’ 175개 조에서 그 면모를 볼 수 있다. 『논어고금주』는 대담하게도 이것이 ‘원의’, 곧 원래의 뜻이라고 함성을 지르면서 그 많은 구절에서 공자의 본뜻을 찾았다고 선언한다. 그중에는 정말 다산만 이야기한 것도 있고, 다른 주석가가 먼저 제안했으나 다산이 보완한 것도 있고, 다산이 보완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왕의 오해가 너무 깊기 때문에 이렇게 읽어야 한다고 특기한 것도 있다. 『논어』는 모두 500여 장인데, ‘원의총괄’에 수록된 것이 175개조다. 대단한 패기가 아닌가? 더욱이 ‘원의총괄’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각 장을 해설하는 과정에서 다산이 제시한 참신한 해석도 부지기수다. 기록되지 않은 어떤 참신한 해석은 그것이 왜 ‘원의총괄’에 수록되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할 정도로 중요하고 새롭다. 이런 것까지 다 모으면 『논어고금주』는 권위의 해석을 거부하고 새로운 설을 세우려는 불굴의 도전 의식, 어느 반골의 사금파리 같은 외침이다. 다산은 답습하지 않았고, 새로운 견해를 내세우지 못할 때는 길게 주해하지 않았다. 이것이 한국의 『논어』라니, 멋지지 않은가?

“재미있는 한국의 『논어』가 있다”

현재 『논어고금주』는 이지형 선생의 이름으로 이미 완역되었다. 저자는 서론에서 이 책 『다산 논어』도 한글로 『논어고금주』를 다루므로 이미 완역이 있는데 왜 다른 책이 필요한가에 대한 약간의 설명을 제공했다. 간단히 말하면 이 책은 『논어고금주』를 번역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이 책은 『논어고금주』에 입각하여, 곧 다산의 『논어』 읽기에 입각하여 『논어』를 옮기고, 다산 독법과 해석의 의미를 설명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이 책은 한글 번역판 『논어고금주』에서 가장 아쉬운 두 가지, 곧 『논어고금주』에 입각해 『논어』를 정확하게 옮기고, 또 이 한국의 『논어』가 어떻게 고금주의 『논어』와 다르고 어떻게 중국이나 일본의 『논어』와 다른가를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쓰였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한글판 『논어고금주』를 보완한다. 한글판 『논어고금주』는 집단 작업의 결과인 듯한데, 담당자가 누군가에 따라 번역의 질이 균일하지 않다. 뜻이 분명하게 전해지지 않는 번역은 옳은 번역이 아니라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오류가 많다. 『다산 논어』가 『논어고금주』의 한글 번역이 아닌 만큼 그 오류를 모두 거론할 필요는 없고, 또 나도 많은 오류를 저지르겠지만, 적어도 한글판 『논어고금주』가 다산의 『논어』 읽기를 반영하지 않고 『논어』 경문을 옮긴 경우에는 이 책이 책임감을 가지고 수정했다.
다른 면에서 이 책은 저자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이미 1~5권을 출간한 The Analects of Dasan: A Korean Syncretic Reading (Oxford University Press)의 자매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총 6권으로 기획된 이 영문 서적은 『논어고금주』 전체를 영역하고, 필요한 경우 해설을 첨가하는 형식을 취하는데, 이 책 『다산 논어』에 있는 해설의 일부분은 그곳에 간략하게 서술되었다. 물론 다시 확인하지만 이 책 『다산 논어』는 『논어고금주』의 번역이 아니므로 이 영문 서적과도 다르다. The Analects of Dasan은 『논어고금주』 전체의 번역을 위주로 하고 지극히 소략한 해설을 첨가했지만 이 책 『다산 논어』는 『논어』 경문을 다산이 어떻게 독창적으로, 또 왜 그렇게 독창적으로 읽었는가를 설명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에 영문 서적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해설을 담았다. 어쨌든 『논어고금주』와 관련된 두 종류의 출판물이 이미 존재함에도 지금 다시 『다산 논어』를 쓰는 것은 한국의 독자에게 한국의 『논어』가 있다는 것, 그것도 재미있는 한국의 『논어』가 있다는 사실을 꼭 알리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다산의 독창성

그러므로 이 책 『다산 논어』를 통해 독자는 무엇보다도 다산 『논어』 읽기의 독창성과 사상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의 『논어』 읽기는 누구나 그 다름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대담한 진술로 시작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꼼꼼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미묘한 곳에서 다른 『논어』 읽기와 달라진다. 다산 자신이 꼼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해설 없이 이러한 미묘한 독창성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다산의 대담하고 참신한 독법도 해설이 없이는 참된 맛을 음미하기 쉽지 않다. 『논어고금주』라는 굉장한 고전에 해설이 꼭 필요한 이유다.
아울러 독자는 이 책 『다산 논어』를 통해 궁극적으로 다산이라는 인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과거 지식인의 경전 읽기는 그 사람의 가치관을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다산은 얼마나 개혁적이었고 얼마나 타협적이었는가, 어떤 사람을 싫어하고 어떤 사람을 존경했는가, 무엇을 통해서 사유하고 무엇을 통해서 판단했는가, 어떤 것을 고집하고 어떤 것을 배척했는가 하는 많은 질문의 답을 그를 따라 『논어』를 읽으면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다산 논어』는 많은 사람이 존경하는 한 역사적 인물의 초상화이기도 하다. 내친 김에 이 책의 구성 원칙 몇 가지를 밝힌다. 첫 번째로 이 책은 다산의 『논어』 읽기를 설명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에 다산의 해석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경우 본문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다산 독법의 특징을 드러내는 일과 관련 없는 자구 풀이도 시시콜콜하게 하지 않았다. 다산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석가가 동의한 독법에 대해서는 그에 따라 원문을 옮긴 뒤 고금주와 다산 사이에 이견이 없다는 정도의 기록만 남겨두었다. 하지만 다산의 독법이 미세하게라도 고주나 금주와 다른 경우 다산의 독법을 반영하여 본문을 옮기는 것은 물론 그것이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주기 위해 고주와 금주의 독법도 함께 소개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으면 거의 모든 장에서 다산의 독법과 함께 고주와 금주의 독법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이 책은 가끔 필요에 따라 『논어고금주』의 원문을 한글로 번역해서 인용하기는 하나 한문 원문을 그대로 소개하지는 않는다. 되도록 한자를 덜 써서 맵시를 내보자는 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어떤 글자도 넣거나 빼지 않고 경문을 글자 그대로 옮기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글자 한 자를 추가해서 옮기면 훨씬 더 매끄럽게 되는 경우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되도록이면 원문에 가깝도록 푸는 것이 고전을 한글로 옮기는 사람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저자

김홍경

저자:김홍경

성균관대유학과를졸업했고,동대학원동양철학과에서‘조선초기유학사상에관한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현재뉴욕주립대스토니브룩아시아학과의교수이며,2012년부터동대학의한국학연구소소장으로한국학진흥사업에성과를이루었다.유교와도교를중심으로동아시아지성사및한국의종교철학을연구하여다수의논문을발표하고여러권의책을출간했으며S,UNYPress의한국학시리즈편집인을역임하기도했다.

저서로TheAnalectsofDasan:AKoreanSyncreticReadingvolumes1-5(OxfordUniversityPress,2016-2023),TheOldMaster:ASyncreticReadingoftheLaozifromtheMawangduiTextAOnward(SUNYPress,2012),『노자:삶의기술,늙은이의노래』(2003),『조선초기관학파의유학사상』(1996)등이있다.

목차


제12편안연顔然
제13편자로子路
제14편헌문憲問
제15편위영공衛靈公
제16편계씨季氏
제17편양화陽貨
제18편미자微子
제19편자장子張
제20편요왈堯曰

『논어고금주』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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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다산정약용의『논어』읽기를따라
우리말로옮긴한국의『논어』

『논어』로『논어』를읽고,경전에서근거를구한다는원칙을지킨후
“이치”라는그물망을펼쳐고금주를해체하고종합한
혁신적인『논어』

“이것이한국의『논어』라는사실이자랑스럽다!”

다산이『논어』를번역했다면어땠을까?

『다산논어』는다산정약용(1762~1836)이1813년완성한『논어고금주』에바탕하여『논어』를번역,해설한것이다.『논어고금주』는『논어』에대한다산의주석서로『논어』를공자의원의에맞게읽는다는기획으로집필되었다.그이름이『논어고금주』인것은다산이이주석서에서『논어』의고주와금주를망라하여좋은견해는받아들이고옳지않은견해는비판하면서『논어』의500여장을이렇게읽어야한다고제안했기때문이다.
이때『논어』의고주에는우선하안(195~249)이당시전해지던여러경학가의주석을모아편집한『논어집해』가있고,또『논어집해』를부연설명하는두책,황간(488~545)의『논어집해의소』(이제부터『논어의소』)와형병(932~1010)의『논어정의』가있다.주로진晉의논어학에기초해편찬한『논어의소』는남송이후중국에서사라졌다가일본에서역수입되었고,포정박(1729~1814)이자신이수집한장서를모아편찬한『지부족재총서』에수록함으로써다시논어학의전면에자리하게되었다.『논어의소』가사라진동안『논어집해』와『논어정의』가고주를대표했고,이두책은합본되어『논어주소』로불렸다.그런데황간과형병의주석서는『논어집해』를보완하는것이므로결국『논어』의고주는『논어집해』가대표한다.

『논어』의역대주석을자세히곱씹어비판

고주에는이외에도정현(127~200)의주해를모아놓은『논어정씨주』가있고,육덕명(556~627)의『논어음의』에수록된짤막하지만중요한정보들도있고,다산이종종검토하는한유(768~824)의『논어필해』도있다.그렇지만이고주들은그비중에서『논어집해』에비견될수없다.『논어집해』는『논어』를처음,종합적으로해설한책이기때문이다.시기적으로는『논어정씨주』가『논어집해』보다이를수있지만『논어정씨주』는『논어』의일부에대한주해일뿐만아니라한동안일실되었다가둔황에서발견되어20세기에비로소알려졌다.필사본으로진위문제에서자유롭지못하고,또오랫동안잊혔던책이었으므로논어학에서의비중이크지않다.적어도다산은『논어정씨주』를고주로참고할수없었다.
『논어집해』는공안국(기원전164~기원전74?),포함(기원전7~기원후63),마융(79~166),정현,왕숙(195~256),주생렬(220년경),진군(?~237)그리고하안등의주해를소개한다.이들의주해는쉽게이해하기어려운『논어』를처음으로해설하여이불후의고전을읽는길잡이역할을했다는점에서등대이기도하고,후인들이그권위에도전하기쉽지않았다는점에서멍에이기도했다.
이멍에에얽매이지않고『논어집해』에맞먹는또하나의등대를세운것은주희(1130~1200)의『논어집주』다.이책도‘집해’와마찬가지로‘집주’,곧주석을모아놓은것이므로앞선시대의연구자에게많은빚을졌다.그렇다고해도『논어』를이학이라는새로운틀에얹어서참신하게읽어낸것은결국주희다.그런점에서그는『논어』읽기에불멸의자취를남겼다.다산은『논어』읽기의2막을연이책을금주로이해한다.
나중에성리학이위세를떨치자『논어집주』는더중요한책이되었다.그리고마치황간과형병이『논어집해』를보완하는주해서를냈던것처럼호광(1369~1418)은순전히성리학적안목으로『논어집주』를보완하여『논어집주대전』을출간했다.지금도크게다르지않지만과거『논어』를읽었다는것은『논어집주』에호광이수집한소주小註를붙인『논어집주대전』에기반해서『논어』를읽었다는것을의미한다.『논어집주대전』뿐만아니다.『논어집주』가유교적관료사회에진출하려는지식인의필독서가된뒤에는많은주희의후학이『논어집주』를보완하기위해책을썼다.때로는지금사적을알수없는학자도『논어집주』를보완하는책과논설을남겼다.『논어고금주』에서좁은의미의금주는『논어집주』이지만넓은의미에서는『논어집주』를보완하는모든책과논설도금주다.금주는성리학의『논어』해석이기때문이다.다산은이들을때로는비판하기위해,또때로는수용하기위해꼼꼼히들여다보았다.
주희와얼마떨어지지않은송명대의논어학을지나면이제새로운경학의기풍이만만치않았던17세기이후의논어학과만난다.이범주에도다산이참고한많은학자가있다.하지만『논어고금주』를논할때는누구보다먼저두사람을소개해야한다.하나는청대고증학의선구로서또건가학파의거두로서당대부터굉박한지식으로이름높았던모기령(1623~1716)이고,다른하나는일본에서일가를이룬다자이준(1680~1747)이다.
모기령의『논어』해설은세책에나누어져있는데,『논어계구편』이가장중요하고,『사서승언』그리고『사서개착』이그뒤를따른다.모기령의논어학은간단히말하면반주희다.거의모든문제에서모기령은『논어집주』를비판하고고주로돌아갔다.한편다자이는『논어』와관련하여『논어고훈』과『논어고훈외전』두책을펴냈다.이책들은스승인오규나베마쓰(1666~1728)의『논어』해석에기초해서이름그대로『논어』의고훈이무엇인가를밝히려는목적을지닌다.이때고훈은주희이전의훈석을말하므로다자이도결국반주희를지향한다.다산이『논어고훈』이나오규의『논어징』을직접보았다는증거는없고,『논어고훈외전』은비판적으로든수용을위해서든많이인용한다.곧다산은제2기의『논어』읽기인『논어집주』를비판하는제3기의『논어』읽기,청대고증학과일본고문사학의『논어』해석을또다른참고자료로삼았다.

2000년동안『논어』를잘못읽어왔다고외친
다산의패기!

이1,2,3기의『논어』읽기를뛰어넘어시대적으로볼때제4기의『논어』읽기,혹은다산의안목으로볼때‘진정한’『논어』읽기를하려는것이『논어고금주』다.이것은정말대단한야심이다.다산이자부하듯이2000년동안감춰진오의를보여주면서그것이공자의‘원의’였다고외치는패기가이책에있다.
생각해보면다산은뾰족한사람이다.유교에서는이를규각이졌다고하는데,옛날사람들이조회에참석하거나사명을나갈때들던홀(圭)의모서리처럼뾰족하게각이선사람이라는말이다.주희눈에는맹자가그런사람이었다.맹자의날선논변을보면남을용납하지않는호령이들린다는것이었다.다산도맹자와크게다르지않다.올바른생각과말을지켜야한다는사명감,그른것에대한과감하고도매서운공격,풍부한지식과합리적인사유,이런무기로무장한사람이난세를만나면칼을휘두른다.그칼의춤소리가들리는것이여기에서『다산논어』로새롭게이름한『논어고금주』다.
되돌아보면우리땅에유교가들어온뒤많은유현이출몰했지만유교경전중의으뜸이라는『논어』의완결된해설서를우리선배의이름으로소개한것은다산이처음이다.그러므로『다산논어』는사실한국판『논어』라고해도과언이아니다.단순히우리조상이만들었기때문만이아니다.그것이하안,주희를위시한많은경학가의권위에전혀주눅들지않고『논어』의해설을통해한국인의가치관,그들의세상보는안목을고스란히담았다는점에서그렇다.물론요즘에야하나로특정할수있는우리의가치관이라는게있는지의심할수있고,더근본적으로는그런동일성을갖는것이과연좋은일인가반문할수도있겠지만역사적으로한국인이강한동일성을가졌던것은사실이고,지금도그러한‘한국인의가치관’이우리의의식저변에서엄연히활약한다.그렇기때문에그것이무엇인가를이해하고그에대해서생각해보는것은언제나의미있는일이다.『논어고금주』를읽다보면그것이『논어』를해독하는것이상의문화적함의를담고있다는것,한국인의전통적사유방식을보여준다는것을발견하게된다.그런면에서나는개인적으로,물론다른많은사람과함께,다산선생에게감사를보낸다.모름지기가장유교적인문명을수백년동안일궈온나라에『논어』라는우뚝한경전에대한독자적인읽기조차존재하지않는다면무슨말을할수있겠는가?

다산의논어읽기는‘실리학實理學’의관점을취한다

『논어고금주』라는이름이시사하는바는적지않다.이책은제목그대로고주와금주,곧한당경학과송명경학의제성과를종합하려는의도를가진다.그래서『논어고금주』다.고주와금주를모두아우른다는선언이다.그렇지만만약『논어고금주』가단순히고주와금주를비교하거나취사선택하는데만그쳤다면그중요성은반감되었을것이다.다산이정말하려고했던것은고주와금주를종합하면서,또다산당대의연구성과를참고하면서,그모두를극복하는참된『논어』읽기를선보이는것이었다.다시말하면다산은『논어고금주』를통해한당의‘실학’과송명의‘이학’그리고나아가청대의‘고증학’과도쿠가와의‘고학’을모두흡수하여공자의참된가르침을드러내는새로운유학을세우려고했다.
그런의미에서저자는다산학을‘실리학實理學’으로부르기를제안한다.고증학이나고학은결국한당의실학에기반하여이학에도전했고,유교사전체를놓고볼때실학의한부분이었다.따라서유교의역사는실학과이학이교차했던역사였다.이러한유교전사의지평위에서다산은실학과이학을종합지양하는실리학을세우려고했다는것이나의판단이다.그의실리학이실학과다른것은이학의세계관이그속에있기때문이고,이학과다른것은그것이성리학의공론,곧현실과경험에기초하지않은논설을배제하고철저하게인간의삶을통해서이치를이해하려고했기때문이다.가령다산은인간본성에대한성리학의분석적서술,무엇에의해서도훼손되지않은순수한본성이있고행동과감정을통해서드러나는또다른본성이있다는논설을단호히배격하며,우주를관통하는전일적이치와현상을통해드러나는개별적이치가있다는이론,그리고이기의체용론등을모두거부한다.이유는간단하다.그러한논의는현실과삶에뿌리내리지않은공론,형이상학에만머무는논의이기때문이다.이렇게다산은유교전통의반성을통해이치를논하되실제에서또실증을통해서논한다는정신을발양했다.저자는그것을실리학으로부른다.

유배지였기때문에『논어』로『논어』를읽었다

다산은『논어고금주』를유배지에서썼다.강진의초당에서다산은먼외가친척의도움을받아약간의참고할자료를열람할수있었지만한양도성도아닌전라도시골에무슨책이그렇게많았겠는가?물론다산은읽어볼수있는책은다보았고,그가볼수있었던자료에서그럴듯한신설을발견했을때는찬탄하기도했다.그런신설의보고는모기령과다자이의책그리고좀더범위를넓히면왕응린(1223~1296)의『곤학기문』이나김이상(1232~1303)의『논어집주고증』등이었다.다산은이들책에서인용한견해를당시의관행에따라출처를밝히지않고종종재인용하는데,재인용된문장의원문을실제로본것은아니었다.아니사실볼수없는처지였다.앎에욕심이많은학자가보고싶은책을못볼때의탄식이초당을채우곤했을것이다.이런다산의지적욕망을다소나마풀어준또다른책이두권있는데,바로『강희자전』과『패문운부』다.이것들은한자와한자성어를다양한용례와함께소개하여다산의연구에큰도움을주었다.하지만역시당대의다른연구자,가령모기령이나다자이와비교하면다산의장서는양이작았다.
그런데재미있게도이러한한계가다산의『논어』읽기에방향성을설정해주었다.다산의『논어』읽기는첫째『논어』로써『논어』를읽고,둘째경전을통해서『논어』를읽는다는두가지원칙을가진다.이런방법론에서보자면다산은가장주요한전거들에서누구에게도뒤질것이없었다.그에게는『논어주소』와『논어집주』등『논어』의기본주석서가있고,유교의주요경전도있고,나아가『국어』나『전국책』같은경전에버금가는고전도있고,『사기』와『한서』를비롯한중국의역사서도있고,『공자가어』나『공총자』같은참고할책도있고,『설문해자』나『경전석문』같은기본자료도있었다.그의방법론으로『논어』를읽는다면장서의양은크게문제될것이없었다.그리하여다산은이강회(1789~?),윤동(1793~1853)과같은제자의도움을받아참고할책을검토하면서고금을통합하고나아가새로운『논어』읽기를여는창신의작업을할수있었다.

논어500여장중175개항목을새롭게읽다

그의창신은우선『논어고금주』책머리에정리되어있는‘원의총괄’175개조에서그면모를볼수있다.『논어고금주』는대담하게도이것이‘원의’,곧원래의뜻이라고함성을지르면서그많은구절에서공자의본뜻을찾았다고선언한다.그중에는정말다산만이야기한것도있고,다른주석가가먼저제안했으나다산이보완한것도있고,다산이보완을하지는않았지만이왕의오해가너무깊기때문에이렇게읽어야한다고특기한것도있다.『논어』는모두500여장인데,‘원의총괄’에수록된것이175개조다.대단한패기가아닌가?더욱이‘원의총괄’에는기록되지않았지만각장을해설하는과정에서다산이제시한참신한해석도부지기수다.기록되지않은어떤참신한해석은그것이왜‘원의총괄’에수록되지않았는가하는의심을갖게할정도로중요하고새롭다.이런것까지다모으면『논어고금주』는권위의해석을거부하고새로운설을세우려는불굴의도전의식,어느반골의사금파리같은외침이다.다산은답습하지않았고,새로운견해를내세우지못할때는길게주해하지않았다.이것이한국의『논어』라니,멋지지않은가?

“재미있는한국의『논어』가있다”

현재『논어고금주』는이지형선생의이름으로이미완역되었다.저자는서론에서이책『다산논어』도한글로『논어고금주』를다루므로이미완역이있는데왜다른책이필요한가에대한약간의설명을제공했다.간단히말하면이책은『논어고금주』를번역한것이아니다.그보다이책은『논어고금주』에입각하여,곧다산의『논어』읽기에입각하여『논어』를옮기고,다산독법과해석의의미를설명하는데주안점을둔다.이책은한글번역판『논어고금주』에서가장아쉬운두가지,곧『논어고금주』에입각해『논어』를정확하게옮기고,또이한국의『논어』가어떻게고금주의『논어』와다르고어떻게중국이나일본의『논어』와다른가를설명하려는목적으로쓰였다.그런면에서이책은한글판『논어고금주』를보완한다.한글판『논어고금주』는집단작업의결과인듯한데,담당자가누군가에따라번역의질이균일하지않다.뜻이분명하게전해지지않는번역은옳은번역이아니라는점은차치하고라도오류가많다.『다산논어』가『논어고금주』의한글번역이아닌만큼그오류를모두거론할필요는없고,또나도많은오류를저지르겠지만,적어도한글판『논어고금주』가다산의『논어』읽기를반영하지않고『논어』경문을옮긴경우에는이책이책임감을가지고수정했다.
다른면에서이책은저자가한국학중앙연구원의지원을받아이미1~5권을출간한TheAnalectsofDasan:AKoreanSyncreticReading(OxfordUniversityPress)의자매본이라고도할수있다.총6권으로기획된이영문서적은『논어고금주』전체를영역하고,필요한경우해설을첨가하는형식을취하는데,이책『다산논어』에있는해설의일부분은그곳에간략하게서술되었다.물론다시확인하지만이책『다산논어』는『논어고금주』의번역이아니므로이영문서적과도다르다.TheAnalectsofDasan은『논어고금주』전체의번역을위주로하고지극히소략한해설을첨가했지만이책『다산논어』는『논어』경문을다산이어떻게독창적으로,또왜그렇게독창적으로읽었는가를설명하는데주안점을두었기때문에영문서적에비해비교할수없을정도로많은해설을담았다.어쨌든『논어고금주』와관련된두종류의출판물이이미존재함에도지금다시『다산논어』를쓰는것은한국의독자에게한국의『논어』가있다는것,그것도재미있는한국의『논어』가있다는사실을꼭알리고싶다는열망때문이었다고저자는밝힌다.

입이다물어지지않는다산의독창성

그러므로이책『다산논어』를통해독자는무엇보다도다산『논어』읽기의독창성과사상적의미를이해할수있다.그의『논어』읽기는누구나그다름을알아차릴수있도록대담한진술로시작되기도하지만대부분꼼꼼히보지않으면보이지않는미묘한곳에서다른『논어』읽기와달라진다.다산자신이꼼꼼한사람이었기때문이다.해설없이이러한미묘한독창성을발견하기는쉽지않을것이다.또한다산의대담하고참신한독법도해설이없이는참된맛을음미하기쉽지않다.『논어고금주』라는굉장한고전에해설이꼭필요한이유다.
아울러독자는이책『다산논어』를통해궁극적으로다산이라는인물을더잘이해할수있다.과거지식인의경전읽기는그사람의가치관을그대로보여주었기때문이다.다산은얼마나개혁적이었고얼마나타협적이었는가,어떤사람을싫어하고어떤사람을존경했는가,무엇을통해서사유하고무엇을통해서판단했는가,어떤것을고집하고어떤것을배척했는가하는많은질문의답을그를따라『논어』를읽으면서발견할수있다.그런면에서
『다산논어』는많은사람이존경하는한역사적인물의초상화이기도하다.내친김에이책의구성원칙몇가지를밝힌다.첫번째로이책은다산의『논어』읽기를설명하는데주안점을두었기때문에다산의해석을이해하기위해반드시필요하지않은경우본문을자세히설명하지않는다.마찬가지이유에서다산독법의특징을드러내는일과관련없는자구풀이도시시콜콜하게하지않았다.다산을포함한대부분의주석가가동의한독법에대해서는그에따라원문을옮긴뒤고금주와다산사이에이견이없다는정도의기록만남겨두었다.하지만다산의독법이미세하게라도고주나금주와다른경우다산의독법을반영하여본문을옮기는것은물론그것이어떻게다른가를보여주기위해고주와금주의독법도함께소개했다.그러므로이책을읽으면거의모든장에서다산의독법과함께고주와금주의독법을확인할수있다.
두번째로이책은가끔필요에따라『논어고금주』의원문을한글로번역해서인용하기는하나한문원문을그대로소개하지는않는다.되도록한자를덜써서맵시를내보자는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이책은어떤글자도넣거나빼지않고경문을글자그대로옮기는것을원칙으로했다.글자한자를추가해서옮기면훨씬더매끄럽게되는경우에도그렇게하지않았다.되도록이면원문에가깝도록푸는것이고전을한글로옮기는사람의의무이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