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라스의 글쓰기

뒤라스의 글쓰기

$12.53
저자

알랭비르콩들레

저자:알랭비르콩들레
프랑스의소설가이자전기작가.뒤라스에대해1972년에첫저서를낸후지금까지20여편의간행물을발표했다.1991년455쪽분량의뒤라스전기를씀으로써뒤라스연구를주도해왔다.저자는파스칼에대한뒤라스의관심사를통해뒤라스의글쓰기를이해한다.즉무한을향해앞으로나가면서그소리를듣는것이뒤라스의글쓰기이고저자자신의글쓰기이기도하다.이런글쓰기를지향하면서파스칼에서뒤라스로,위스망스에서생텍쥐페리로,그리고생테레즈다빌라에서요한바오로2세로넘어가며프랑스에서가장매력적인작가들의전기를집필했다.
그는『뒤라스의글쓰기』에서뒤라스를만났던1972년부터뒤라스가타계하기한해전인1995년까지의기억을서술한다.근간으로『마르그리트뒤라스의마지막비밀LederniersecretdeMargueriteDuras』이있다.국내에는『생텍쥐페리의전설적인사랑』『마르그리트뒤라스』가번역되어있다.

역자:이은숙
계명대타불라라사칼리지교수.한국프랑스학회장,한국교양교육학회부회장,계명대교양교육연구소장을역임했다.「마르그리트뒤라스의자서전에나타난흐르는글쓰기」로박사학위를받은뒤파리가톨릭대학에서박사후연구를했다.“L’Engagementdansl’ecritureautobiographiquechezDuras”등의논문을썼고,『고리오영감』을우리말로옮겼다.공저로『세계문학속의여성』『프랑스인의눈에비친한국』등이있다.

목차

뒤라스의글쓰기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프루스트가이세기를열었다면,뒤라스는이세기를닫는다”

글쓰기는뒤라스의삶보다더컸다!
뒤라스에관한세계적연구자가목격한뒤라스의글쓰기

이책은오로지뒤라스의‘글쓰기’에대해서만말한다.챕터를나누거나소제목을달지않고책전체가한편의글로,뒤라스의언어를조명한다.어떤대상을다루는사람은그대상에걸맞은실력을갖추고있어야한다.알랭비르콩들레의문장은뒤라스의글과격렬하게충돌하며부드럽게합치되어흘러간다.뒤라스만큼솔직하고투명한사람은드물다.하지만투명함은층층의겹과깊이로부터생겨난다.논리를넘어나아가고,누구보다현실인식에투철하지만동시에현실파괴적이고,자기문장을스스로배신하며전진하는이가뒤라스다.이런작가는때로곁문을통해들어가야한다.
비르콩들레를통해뒤라스를읽는것은마치뒤라스의작품을읽는느낌을불러일으킨다.즉그는또다른뒤라스같다.나아가그는뒤라스스스로는드러내지못한모습을독자들에게그려준다.옆에바짝붙어서친구처럼,제자처럼,연인처럼손을꼭붙든채그녀를관찰하고,느끼고,목소리를들어그말을받아쓰면서.하지만뒤라스의존재감은지나치게크고나르시스적인면이있다.1972년에서1974년사이뒤라스곁에있었던비르콩들레는마치불에델것같아그녀를떠났다가1994년에되돌아온다.하지만떠난기간에도그는뒤라스로부터놓여나지않았고,재회한뒤이책을쓰게된다.『뒤라스의글쓰기』는뒤라스라는세계가글쓰기자체임을입증하는아름다운산문이다.
이책은뒤라스의글에서문장을빌려오지않는다.저자는뒤라스와함께했던시간속에각인된모든대화를살려낸다.둘은지치는법없이글쓰기에대해이야기했다.“중요한것은쓴다는거죠.글을쓴다는것자체를포착할줄알아야합니다.그리고자신과함께그글쓰기를아주멀리,어둠으로데려갈줄알아야합니다.”문장을쓰는것은어렵다.낱말에숨을불어넣는것은아무나할수있는일이아니다.하지만뒤라스는독자들에게쓰기의고통속에머물라고권하면서,진부함으로되돌아오는것은‘곤란하다’고말한다.
제2차세계대전때레지스탕스였고,여전히코뮤니스트를자처하는뒤라스는1968년이후의시간을좋아했다.그녀는새로운흐름을주도했던당대의누보로망작가들을비판적으로봤는데,그들이세계속으로뛰어들지는않은채거기서열리는과실만따먹으려했기때문이다.뒤라스는소설가이고,현실과현실너머를종종구분하지않지만,동시에저널리스트적면모를발휘하며전쟁이후세계의사태를누구보다정확히꿰뚫고자했다.예를들어1989년그녀는코마상태로병실에누워있다가막깨어난참이었는데,톈안먼사태를보고는‘자신이다시태어나는징후를느꼈다’고말했다.
그리하여그녀의글쓰기는사태를제대로인식하고실천하는것,즉기자같은“떠들썩한열정”과순수한시의세계로나아가는것사이를자유롭게넘나들었다.그녀의시선에는놀라운지성과예리한청력과시력이담겨있었지만,“글을쓴다는것,그것은지성의시간에있지않다”라고말한바그녀의글쓰기는하나의범주로수렴되지않는다.그녀의글에는“고풍스러운”폭력이있었고,주술적으로사납게날뛸때면부르주아들은그녀를두려워하며비난했다.
뒤라스는어린시절의식민지생활,또어머니로부터당한학대에서기억을끊임없이되불러와글을쓴다.물론중국인연인과둘째오빠도소환된다.글쓰기는‘나’로부터비롯된다.나를갈아넣는것,형체를허물어뜨려글감으로삼는것의과감함과생동감을이책은기록한다.
비르콩들레는뒤라스가삶의모든에너지를작품속으로쏟아넣는것을지켜봤다.영화도만들었지만늘글쓰기로되돌아왔고,피아노를꽤잘쳤지만그걸치는순간음악이갑자기의미를띨까봐피아노덮개를열지않았다.글쓰기는불가항력적이었고,그녀를괴롭혀끝까지가게만들었다.뒤라스에게소설은“수직의공간”이었다고비르콩들레는말한다.그깊이는뒤라스를삼켜버릴것처럼그녀를안으로침잠시켰다.깊이는추동력을불러일으켜그녀의펜은늘앞으로만나아간다.미래는아직오지않은것이어서빛이희미하지만그녀의시적언어와과거가만들어낸문체속에이미자기자리를확보하고있다.미래는언제나펜끝에서태어나는중이었다.
뒤라스의문장에는떨림이간직되어있다.“텍스트가곤충의겹날개나촉각처럼무한한떨림속에서펼쳐지고,이순간글쓰기라는마술이나타난다.”팽팽하게긴장을자아내며떨림을잃지않는이실천을뒤라스와비르콩들레둘다해내고있다.“글은바람처럼옵니다.헐벗긴채로.”뒤라스의글은맨살을내보인다.형식미와극도의세련됨을추구했던당대의작가들과차별된지점은바로이런것이었다.
뒤라스에게는‘사랑’이중요했다.그래서그녀의글은종종관능적으로읽힌다.다른한편그녀는글쓰기를위해집안에만머물며금욕적인생활을했다.“수도사처럼되어야해요.글을쓴다는것,그것도같은차원이죠.”사방이벽으로둘러싸인방에서펜이서걱거리는소리만냈던뒤라스를비르콩들레는프루스트와견준다.“프루스트가이세기를열었던위대한작가라면,뒤라스는이세기를닫는다.”
작가들의연대기에는흔히분기점이있다.뒤라스역시『타키니아의작은말들』이나『태평양을막는제방』을쓸때는템포를극적으로조절하는남성적글쓰기를선보였다.『파괴하라,그녀가말한다』부터달라졌다.이야기는텍스트도처로퍼져나가전혀다른글쓰기를실천했다.그녀는글쓰기에노예처럼꼼짝없이붙들려그녀전체를내주었다.‘쓰지않는다면삶은과연무엇인가’라는것은뒤라스가종종했던자문이다.
뒤라스는“내적그늘”이란말을자주썼다.그녀는자신의내적그늘을못살게굴면서거기서비밀을뽑아냈다.텍스트들은서로꿰매어져다시태어났다.글쓰기는“침묵을점령”해언제나우위를점했다.
비르콩들레는뒤라스의글쓰기와삶을전적으로옹호하지만,독자를환한곳으로데려가지않고뒤라스라는어둠으로이끈다.그녀는어렵다기보다는어두워서,가는길목에종종가로등이꺼진듯해가이드가낮에봤던생생한실루엣의목격담이필요하다.뛰어난문학성을발휘하는비르콩들레의글에서는뒤라스의목소리가울린다.자신이다루는대상과분리되지않은이런글쓰기는육감적이다.대상안으로완전히들어가살과살을맞댄느낌,합일되어액체가유동적으로흘러드는느낌이드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