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변화시키는
존재의방식과관계의결
이책의원제는MyFather’sBrain,‘아버지의뇌’다.샌디프자우하르는아버지가알츠하이머병을확진받는순간부터그분의뇌,그리고치매에걸린다른환자들의뇌를이해하기위한독자적인탐구에돌입한다.그는이책이그탐구의여정이라고말한다.다분히의학적인표현이지만이여정은결국그탐구대상이‘뇌’라는점에서정신으로축적된삶자체,그안에서복잡하게얽히고설킨인간관계,기억과인간존재에관한이야기가된다.또이런것들이흔들리고무너져가는순간에도,어떻게한사람이계속해서(자기자신에겐그럴수없을지언정타인의세계에서)그사람으로존재할수있는가에관한하나의사례가된다.
이책은(…)아버지와나의관계,특히생의마지막단계에서병마에무너져가던아버지와의관계에대한이야기다.또한이책은가족구성원들이간병인역할을맡아야할때생기는여러문제점과동기들간의유대,그유대를시험하는난관에대한이야기이기도하다.책에실린대화와논쟁은사적인동시에다분히보편적이다.집안어른의정신적침식을마주한가족이가질법한대화와논쟁의전형이랄까?하지만이책은그런개인적인사연만이아니라뇌와기억에관해서도이야기한다.나이가들면서뇌가퇴화되는과정과이유를논하는한편,기억이세월의흐름과더불어흐릿해지고달라지는와중에도우리삶에의미를부여하는방식을들여다본다.또한사람으로서존재한다는것의개념이치매로인해복잡해지는까닭과더불어,이모든것이환자와그가족에게,그리고사회에갖는의미까지두루살펴본다.(26-27)
저자는치매에걸린아버지를돌보는동안그분이나날의일상에서마주쳐야했던상실과혼란을옆에서목격한다.‘나를잊어버리지마라’,그렇게말하는듯한아버지의눈빛에응답하듯,그는가족의역사와자신의기억을동원해그분을기억하기로한다.그리고그동안생각해본적없던방식으로,삶과죽음이라는당연하고도근본적인인간존재의조건을새삼의식하면서부친과의관계를재설정한다.“참으로극적인변화였다”(19)고저자는말한다.불과몇달전까지만해도자기만의실험실에서밀유전학을연구하던세계적인과학자였던아버지가경도인지장애를진단받고,그로부터몇년만에자기자신조차기억하지못하게된후끝내는숨쉬는법마저잊어버리기까지환자와그가족에게일어난일은투병과간병이라는고통스런대응차원에그치지않았다.‘극적인변화’는아버지의뇌뿐아니라,가족의관계에도찾아왔고그것은생각보다훨씬더적극적으로,어쩌면투쟁적으로관계를영위하고삶을다잡아가는과정이었다.
지식이두터워질수록나는아버지의세계로더욱깊숙이들어갈수있었다.그리고우리사이의틈을,내가평생을노력했지만좀처럼좁히지못했던그간극을조금이나마메울수있었다.그럼에도그길은,생각건대내인생을통틀어가장험난한노정이었다.일곱해에가까운세월을나는다그치고재촉하며,협박하고회유하며,애원하고간청하며,격려하고조소하며보냈다.나는아버지에게걷기를강권했고,책을사다안겼고,억지로퍼즐을들이밀었다.나는아버지를사랑하고아꼈지만,동시에증오하기도했다.
‘나를잊어버리지마라.’아버지의두눈은그렇게말하는듯했다.고로나는아들된도리로아버지에대한기억을되도록온전히남겨두기로마음먹었다.결과적으로나는아버지에대해,아버지가어떤사람이며좋아하는것과싫어하는것은무엇인지에대해,아버지당신보다도더상세히알게되었다.돌이켜보면기묘한책임감이었다.모임에나가면나는아버지가책도쓰고학술상도받았다는사실을굳이언급하고는했다.아버지가당신을괴롭히는병보다더큰사람이라는것을,나는그런식으로나마모두에게상기시키고있었다.(27-28)
한편아버지가당신에게서당신자신을잃어가기시작한시점부터,아들의이해가다른방식으로진행되고이전에불가능했던관계가형성되었다는모순적인사실은기억이생각보다복잡한개념이라는점을보여준다.‘대체기억이무엇이길래?’이질문은책에서끊임없이모습을바꿔가며‘우리자신이누구이길래?’와비슷한말로기능한다.전향성기억상실증을앓던영화「메멘토」의주인공레니가끝내아내를죽인진범을말해주는메모지를없애버렸듯,기억은때로삶의목적그자체가되기도한다.기억의정체와의미,네트워크에관해성찰하면서저자는기억의본질을활용해관계를재구성하기에이른다.
우리기억은여러장소에존재한다.책속에,하드드라이브에,스마트폰에,그리고우리정신의외부에있는다른독립적실체안에도기억은살고있다.심지어기억은한개이상의뇌,이를테면한가족내여러구성원의뇌사이에서공유되기도한다.일차적뇌가기억하기에실패하면,필연적으로다른뇌들이그일을담당하게될수도있다.(97)
아버지가실려나가고사람들이통곡하기시작했을때,낯선추억하나가나를찾아들었다.우리가족이미국으로건너온이듬해의기억이었다.당시아홉살이던나는켄터키옛집뒤편의흙먼지자욱한언덕비탈에서자전거타는법을배우고있었다.(…)평소내가기억하던그날의아버지는,내가그언덕을혼자서내려갈수있다는판단이서자곧바로흥미를잃고는안으로들어가버렸다.하지만내가아버지의생기없는몸을부여잡고있던그화창한3월아침의기억속에서는,어떤이유에선지아버지도내옆에서달리고있었다.행여내가넘어질세라나와속도를맞춰달리는아버지곁에서나는열심히페달을구르며나뭇가지와잡풀이깔린,바큇자국이깊이파인오솔길을따라언덕을내려갔다.나는그기억이사실과다르다는것을,사실일리없다는것을알고있었다.하지만이제그것은내기억이되었다.나는그기억을간직하기로했다.(340)
그는이렇게기억의개념과추억이란자원을통해아버지라는존재를자기안에서다시정의하고,그분을보살피며함께가장많은시간을보냈던만년의시간과어떤면에서연결되는유년기의기억을수정함으로써관계를재정의하지만,거기서이책이미덕을드러내는방식은역설적으로저자가보여주는경계적사고다.그는인간을기억과정신의집합체로보는서구철학의큰줄기를두루인용하면서도,“정신적삶만을기준으로인간을정의하다보면,자칫비인간화라는함정에빠질소지가있다”(245)고지적한다.
몇몇신경세포집합체의무결성이어떻게한인간에게인격이있음을,그에따라그가인간이라는칭호에수반되는권리와도덕적보호,존중을누릴자격이있는지없는지를결정할수있단말인가?어떻게인격과같은중대한특성이겨우몇군데뇌영역에좌우된다는말인가?마침,위와같은흐름에대적하는철학적관점이있다.요컨대인격의근간으로간주되는심리적‘연속성’은그럼에도결코연속적이지않다는것이다.이를테면나는유년기에경험한어떤일을기억하지못할수도있지만,청년기의일은기억하고,청년기에는유년기에경험한그일을기억했다.그러므로만약현재의내가청년기의나와동일한사람이고청년기의내가유년기의나와동일한사람이라면,심리적연속성이부재하는상황이라도여전히나는유년기의나와동일한사람일수밖에없다.따라서당연히,기억만으로는개인의정체성을온전히결정할수없다.
(…)여전히우리는공통의가족관계와공통의인생사로연결된상태였다.비록아버지본인은문제의가족관계라든가인생사를기억하지못할때도있었지만말이다.그럼에도불구하고그분은내아버지였다.왜냐하면내가그분을아버지로생각했으니까.(246-247)
‘죽음보다무서운’병
알츠하이머의그늘
아버지에관한회고가『내가알던사람』의중심줄기라면,알츠하이머병에관한논의는그사이사이의곁줄기다.심장내과의인저자는『심장』에서와같이문학적소양을곁들여뇌와기억,알츠하이머병에관한의학적서사를적재적소에펼쳐보인다.치매가‘망령’또는‘흑담즙의축적’(아리스토텔레스),‘체액이차가워진결과’(갈레노스)라고여겨지던고대부터치매환자들을“‘백치[그리고]뇌전증및마비환자’라든지매춘부나이런저런‘성도착자’와함께”가두어“찬물세례나채찍질”을가하던근세,알로이스알츠하이머가자신의환자아우구스테데터의뇌를연구해치매의메커니즘에다가선후로진행된이병의명명과정과현재진행형인치료법연구,여전히100년전과크게다르지않은척박한치료현실까지……부친의병세가깊어감에따라저자가아버지와가족들이처한상황을이해하기위한의학적탐구도심화되어간다.
그겨울아버지를가장곤란하게한증상은단기기억상실이었다.나는문득궁금해졌다.기억이란정확히무엇일까?기억은뇌에서어떤식으로부호화encoding되고,치매에걸리면무엇때문에이것이황폐해지는것일까?이건내게단순히학문적인질문에그치지않았다.의사로서,또한아버지의아들로서나는뇌의퇴화에대해과학적으로파헤침으로써그러한의문들을어느정도해소해야한다는압박감을느꼈다.바라건대아버지의상태를더깊이이해하는과정을통해,그분이현재인생의어떤길을지나고있으며우리가족이몇달혹은몇년후에겪을법한일은무엇인지를얼마간헤아릴수있을터였다.동시에나는아버지의기억상실을직시하는것이,소중한사람의달라진인격을마주했을때우리가정서적으로또실질적으로경험하는딜레마를극복하는데도움이되리라고믿었다.나는사안을광범위하게-우리를우리자신으로만드는것은무엇이고아버지의미래를당신의바람대로명예롭게지켜줄방법은무엇인지와같은심오한질문들부터,관련약제의효용성이라든가참신한치료법및간병대책의유무와같이더구체적인주제에이르기까지-살펴보기로했다.(…)이후몇해에걸쳐간병인역할을수행하는동안나자신에게가장곤란했던시기를꼽자면,아버지의행동이뜬금없고불가해하며목적도청사진도없는것처럼보일때였다.그러므로아버지의상태에관한과학적지식과역사적지식을축적하는일은아버지의욕구를파악하는동시에나스스로를더욱세심히돌보기위한일이기도했다.(56-57)
지난40년간의연구에도불구하고여전히의학계의골칫거리로남아있는이병은끝의끝까지,임종이가까워진순간까지도환자와보호자(가족간병인)를혼란에빠트린다.자우하르의세자녀는아버지를돌보는동안여러문제에서대립한다.아버지를,그분의단기기억상실과인지장애를어떻게대할것인가부터무엇이진짜그분의뜻인지까지멀리선언뜻자명해보이는문제도,이형제들의일상안에서는서로다른주장이양립하고충돌하는지점이된다.개인의윤리관도돌봄의현실과상충할여지가다분하다.
몇해전영국알츠하이머학회는치료적속임수(혹은‘정당화치료validationtherapy’)와관련해다음과같은성명을발표했다.“우리는치매에걸린사람을조직적으로속임으로써일정부분진정한신뢰관계를구축하여그사람의목소리를듣고권리를증진시킬수있다는의견에대하여회의적이다.”형과여동생은이주제를놓고나와잦은충돌을빚었다.나보다실용주의적성향이강한두사람은,아버지가(그리고그들자신이)비통한기분에서얼마간벗어날수만있다면속임수를쓰는것도나쁘지않다고여겼다.둘은아버지가듣고싶어하는이야기를아버지에게들려줄의향이있었다.진실을말하는것이되레아버지의화를돋운다면그런곤경을굳이감수할필요가없다는게두사람의생각이었다.(…)앞서언급했다시피인간의뇌에서감정을조절하는영역인편도체는해마와겨우몇밀리미터쯤떨어져있다한영역의질환은삽시간에다른영역으로옮아간다.그러므로기억상실은흔히감정폭발을동반하는데,이때감정폭발은그것을촉발한사건에비해과도하게발현되고는한다.거짓말과속임수는그러한일촉즉발의순간들을손쉽게모면하는지름길이었다.더욱이아버지가진실과거짓의차이를구별하지도,무슨말을들었는지기억하지도못하는상황에서그깟거짓말이대수이겠는가?(193-194)
하지만나는반대입장이확고했다.나는아버지와의건강한관계가,아버지의심신이쇠해진상태라해도오로지진실과신뢰를바탕으로만형성될수있다고믿었다.사소한거짓말들은그의도가아무리좋을지라도,우리와아버지사이의가뜩이나약해진연결고리를더욱더약화시킬것이었다.(193-194)
파킨슨병으로남편보다먼저세상을떠난어머니,아내보다먼저치매를앓기시작해아내를떠나보낸후급속도로병세가악화된아버지를간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