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난 지혜로 세상을 마주하다(큰글자도서) (김영민 강연집)

조각난 지혜로 세상을 마주하다(큰글자도서) (김영민 강연집)

$27.00
Description
인간의 지혜는 늘 불완전하고 파편화되어 있다
공부하면서 얻는 지도 역시 찢겨 있고 나침반은 부실하다
그러나 남다른 생활양식으로 길을 내고
자득으로 방향을 얻어 자기 구제의 공부길에 나서는 일
그것은 앞선 자의 책임이며 뒤따르는 자의 운명이다
말하면서 공부한다
박문호, 유시민, 정희진의 경우

글쓰기, 말하기, 읽기, 듣기로 끊임없이 인문학의 자리를 마련해온 저자는 『조각난 지혜로 세상을 마주하다』에서 총 열 차례 강의를 한다. 첫 강의부터 시선을 붙잡는다. 말로 우리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박문호, 유시민, 정희진을 다루기 때문이다. 세 사람에 대해 저자가 내놓는 질문은 이렇다. ① 정희진은 왜 저렇게 조리 없이, 늘 샛길로 빠지면서 말할까? ② 박문호는 왜 인문학을 물로 볼까? ③ 유시민은 왜 인문학자연然하는 걸까?
정희진의 강의를 들어본 이들은 알 텐데, 그는 갑자기 맥락을 떠나 샛길로 달리며 만담식으로 말한다. 가지런한 이론을 내놓기보다 온몸으로 이론과 주장을 펼치는 듯한 모습은 마치 연극배우 같다. 기억의 천재 박문호는 ‘이해하지 말고 암기하라’ ‘질문하지 마라’면서 인문학적 논변을 실없는 짓으로 여기는 듯하다. 특히 초성 리을 발음이나 이중모음이 안 되는 그의 경북 산골 발음에서 우주를 섭렵한 듯한 박식이 뿜어나올 때 청중은 그 대조성에 놀란다. 유시민은 좋은 기억력과 열린 태도로 빠른 학습자의 면모를 보인다. 비축해둔 비평 거리가 많아 남의 말에 곧잘 끼어드는 그는 그러나 풍운아적 기질로 남다른 식견을 드러낸다. 다만 경제학 전공에 정치인의 이력을 보유한 그의 자리는 인문학에 있지 않았는데 왜 지금에 와서 인문학자연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 셋의 말하기와 글쓰기, 시간에 따른 변화를 쫓으면서 인문학적 관심이 어떻게 넓어지고 재배치되며 진화하는지를 살핀다. ‘수행적-표현주의적’으로 보이는 정희진의 발화법, ‘한물간’ 사회과학 영역에서 벗어나 변신을 꾀하려는 유시민, 엄밀한 교과서주의적 자연과학자이면서도 공동체적 전망을 내비치는 듯한 박문호의 경로에서 우리는 인문학이 각자의 삶에서 자리잡는 방식을 볼 수 있다.
1강의 말하기는 9강에서 강조하는 ‘응해서 말하기’와 함께 읽어도 통하는 면이 있다. 9강에서는 듣기-말하기의 관계, 말하기-글쓰기의 관계를 고찰한다. “귀를 가졌다고 듣는 게 아니라 어떤 마음과 태도를 가지고, 어떤 훈련을 거쳐야만 들린다.” 또한 말하기는 글 쓰듯이 하면 안 된다. 말은 듣는 이와 정신적 관계를 맺는 일이므로 그를 위해서, 그를 향해서 이뤄져야 한다. 말은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또 상대의 동의를 이끌어내도록 해야 하므로 실용성이 필수다. 그러니 발화하는 자는 자신의 기량을 높여야 한다. 말하기는 에고를 늘어놓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이는 저잣거리에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 속으로 자기 몸을 밀어넣는 행위다.
저자

김영민

시인·철학자.
『동무론』(3부작),『집중과영혼』,『옆방의부처』,『그림자없이빛을보다』등의책을썼다.인문학숙‘장숙藏孰’을이끌고있으며,정기적으로아산,서울,대구등지에서강의한다.
https://blog.naver.com/kdkgkei
http://jehhs.co.kr/

목차

서언_조각난채로구제한다

1강인문학에대한네가지다른태도:정희진,박문호,유시민
2강‘사랑,그환상의물매’,혹은사랑은왜실패하는가?
3강자기구제로서의공부길,‘부분구원’이란무엇인가?
4강쓰기,읽기,말하기,듣기:공부길의한풍경
5강내가겪은자득,일곱가지
6강일본,혹은우리가실패한자리:‘일상생활의인문학’이란무엇인가
7강누가이들을죽였는가:노무현,노회찬,박원순의자살에관하여
8강정신과표현:표현주의존재론과정신진화론에관하여
9강왜대화는실패하는가:보살행으로서의듣기와말하기
10강저항과주체:여자는어떻게남자를만나는가

출판사 서평

자기를구제하는공부
전체가아닌오로지부분만안다

인문학의대척점에있는것은무엇일까.저자는인간전체를구원하겠다고말하는종교가‘공부’,혹은인문학과어긋난다고본다.종교가부리는과욕은안이하고때론무지하다.종교를따르는대중은쏠려서믿고,맡겨서믿고,밑져야본전이니믿는다.
반면인문학을공부해얻는지식과경험은파편들의모음이다.부분만아는사람은아는척하지못한다.거기서얻는것은고작조각난식견인데도제몸으로얻어내야하니공부의대가는비싸다.
저자가말하는공부는삶과한몸이다.서언에서강조하듯자기앞가림을못하는지식,이웃의아픔에힘을못쓰는고담준론,평생붙들고있어도자기존재를증명못하는공부는모두“목구멍에들러붙은독버섯”이나다름없다.
종교는자신들의설명을‘체계화,전체화’한다는점에서경계의눈초리를받아마땅하다.마치우주전체를아는것처럼욕심부리는종교담론들은현대인의상식으로부터한없이후퇴한다.인문학적공부의출발점이‘모른다-모른다-모른다’라면,종교는한결같이‘안다-안다-안다’고주장하는데서이미그어리석음과오연함이드러난다.이런종교가내놓는지침은‘체계적’이므로거기에젖어든대중의인식역시‘체계적’으로막히고굴절될수밖에없다.
저자는오히려유교의의례儀禮를주목해서실천적지혜를얻고자한다.늘과도한설명을하는종교들과달리유교는모르는것을모른다고하며,아직오지않은것은점치지않는다.이에저자는“차라리의례에근거한삶의방식을굳건히한다면현실적인구제에다가”설수있을지모른다고말한다.이는저자가전작들에서강조한연극적수행과도맞닿아있다.
이책의제목이시사하듯,인간이얻는조각난앎은어떻게배치되는가에따라삶을훨씬낫게만들고,자기구제의걸음도단단하게만들수있다.앎은어렵게뚫고들어가그중심을통과해야하는것이다.공부하며걷는길은조각나있기에구제의실천역시부분적이다.그길에서나침반은잘들지않고지도도찢겨있지만,사람들소문에흔들리지말고조각난빛이새어나오는곳에서조심조심걷도록한다.비록‘모른다’는게우리가가진휑한조건이지만,정신은계속자라나므로언젠가깨침이스며들수있다.
“정신은서사적움직임이며이는의미생성을지향한다.”현대도시민들의가장큰관심은삶의의미이지구원이아니다.종교를잃은그들은문화생활을끊임없이반복하며거기서의미를캐내려한다.하지만의미가손에잡힐까?그렇다고답이문화바깥에있는것도아니다.저자는여기서공부길을제시하는데,“마음이자라고바뀌는데”서삶의요령이발견될것이기때문이다.인류가낳은종교,사상,과학중에서최상의앎의조각들을가려배치하면그지도에몸을맡긴채다른삶의양식을꾸릴수있을것이다.

글쓰면서공부한다

공부는무엇보다‘글’이다.저자는글쓰면서공부하는것을원칙으로삼아왔다.인간은표현으로자기존재를증명하며밝음으로나가는데,표현이란정신이무엇이‘되려고하는’것이다.인간이라면결국글과말로표현할수밖에없다.우리문장은각자마음의결과체를보여준다.
글은인간이만든도구가운데가장정교해거의정신의원점까지밀고나간다.형체가없는마음은도구와매체에의해조형,변형된다.그러니글이아름답고풍성해지면그사람의마음역시아름다움과풍성함에가까워진다.특히정신속에서개념과글의길을내면그길들은서로이어진다.반대로걷지않으면그길은흔적도없이사라진다.
저자는글이사실에근거해정확한기억을활용해야한다고강조한다.이책의첫강의에서박문호와유시민의뛰어난기억력,정희진의강한정서로점철된기억을살펴봤듯이공부와글쓰기에서기억력은빼놓을수없다.
정신의길들을걷기좋게정비하고,곳곳에개념들의표지석을세우며,각각의길이이어져통하도록만드는것,이것은정신과마음을다루고키우는가장기초적이고도표준적인방식이다.언어성과인간성의관계를탐색하는게인문학의기본이되듯,글쓰기와공부하기의관계도인문학의열쇠가된다.

***

이책의7강은노무현·노회찬·박원순의자살을지역성과계급성의관점에서분석하는데,비극적사건의강도만큼이나저자의관점도날카롭다.이책은말·글·공부를큰줄기로삼는가운데사랑·일본·여자등의주제로이어나간다.공부는그근본에서이미‘공부론’이다.따라서공부하는자의삶그전체의형식은이미변화를예기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