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버리는 나라 : 한 편의 르포와 그에 얽힌 역사

국민을 버리는 나라 : 한 편의 르포와 그에 얽힌 역사

$18.00
Description
버리고, 싸우고, 마침내 되찾기까지
국가 폭력의 장막을 찢는 날카로운 기록
2012년 6월 미국 국경에서 생후 15일 된 한국 아기가 보호자 미동반 외국인 아동으로 분류되며 난민아동수용소에 보내질 위험에 처한다. 옆에는 아기를 입양할 것이라고 말하며 서툰 글씨로 작성된 친모의 입양 동의서를 들이미는 미국인 여성이 있다. 하지만 그의 주장과 달리 아기는 90일 단기 체류가 허가되는 비자를 발급받았을 뿐이다.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은 명백한 불법 이송, 자칫하면 인신매매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국제입양이라는 미명하에 불거진 이 사건은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저자의 증언으로 마침내 기록되었다.
아기의 이름 이니셜을 따서 명명된 ‘SK 사건’은 국가가 불법 국제입양 아동을 되찾은 유일한 사례이자 당시로서 60여 년간 지속되어왔던 관행과 제도를 뒤흔든 이례적인 사건이다. 보건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장으로 근무하던 저자는 스테판 욘손의 말처럼 ‘한 눈으로는 냉정하게 과거를 바라보고 다른 한 눈으로는 사건에 휘말린 목격자’를 자청한다. 아무도 들춰보지 않는 곳을 조명하고 납작 엎드려 귀 기울이는 일은 범상하고 만연한 폭력을 주춤거리게 한다. 아기를 되찾는 여정에 최후의 보루로 연루되었던 저자의 이 르포르타주를 따라가다보면 국가 폭력의 장막이 한 겹씩 벗겨지고 서서히 진실이 드러난다. 미혼모 시설에 거주하던 십대의 친모, 입양을 종용한 시설장, 배후에서 활약한 브로커 김 목사, 모든 사건의 발단인 엉터리 자문을 한 변호사. 완벽하게 짜맞춰진 퍼즐 위로 부조리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이를 눈감을 수 없게 했던 미심쩍음과 가책의 정동은 지금 우리에게도 진실의 폭풍 속으로 함께 들어가자고 재촉하는 듯하다. 국제입양으로 포장된 구원의 서사에서 벗어나기로 작정해야만 이 책이 이끄는 진실에 가닿을 수 있을 것이다.
그해는 미국과 한국 모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축을 벌였으며 특히 오바마 대통령 대선 캠페인의 이민법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점화됐다. 정치권부터 각종 언론의 이목이 SK 사건에 쏠렸다. 주 전장은 일리노이주 법원이다. 미 연방정부의 국토안보부와 국무부를 대리하는 법무부 연방 검사, 한국 정부의 변호사와 보건복지부 공무원, 양부모 측에서 선임한 변호인단이 법정을 채웠다.
아동의 신병을 책임질 후견권을 놓고 당사자로 호명된 양국의 주요 부처들은 각자의 법리를 펼쳤지만, 사실 한국에서는 법무부 부장검사가 이 와중에도 직급을 운운하며 물정 모르는 법리 검토서를 보내왔고, 여성가족부는 사건의 직접 조사를 미루며 발 빼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따라서 이곳이 마지막 전선이다. 저자가 목격한 모든 정황과 진술은 한국이 국제입양을 관할하는 사법제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음은 물론, 해묵은 악습 속에 이뤄진 방관 그리고 이익을 따진 계산들로 ‘아동 최선의 이익’이라는 의제가 레토릭에 그쳐왔음을 폭로한다. 한국 국제입양의 주소는 국민을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법정에 불려와야 할 첫 번째 피고인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였음이 자명해진다.
불법 입양을 시도한 미국인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자신은 SK를 한국이라는 나라로부터 구하는 것이라고, 어차피 한국은 아기를 고아원으로 보낼 것 아니냐고. 대한민국에 대한 강력한 불신과 그와 같은 혐의 제기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는 곧이어 밝혀진다. SK를 입양하려던 그 또한 수십 년 전 한국에서 미국으로 보내진 입양인이며 그의 첫딸도 같은 기관으로부터 입양된 아이라는 사실은 법정을 충격에 빠뜨린다. 입양 당사자라는 것이 SK 불법 입양 시도에 면죄부가 되진 않지만, 그의 눈빛에서 저자는 SK를 되찾겠다는 국가의 당위를 수렁에 빠뜨리는 이 나라 역사에 대한 냉소를 읽는다. 국민을 버리며 재난을 자처했던 국가가 과연 두 눈을 부릅뜬 당사자 앞에서도 스스로 아기의 보호 당국이라 주장할 자격이 있는가. 국제입양이라는 국가 폭력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질문이 발화되는 순간이다. 국민을 버리는 나라, 어째서 이 같은 일은 반복될 수 있었는가. 궁극적인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저자

이경은

저자:이경은
1995년부터20년간공직에몸담았다.2012년보건복지부아동복지정책과장으로근무하던당시아동불법송출사건에휘말리며국제입양이라는국가폭력의민낯을목격한다.이후국제입양및아동의권리에대해역사와법을아우르는연구를진행했고,2017년박사학위논문「국제입양에있어서아동권리의국제법적보호」를발표하며서울대법대최초로대한민국의국제입양을다룬논문을게재했다.2018년부터2년간국제앰네스티한국지부사무처장을역임했으며2019년에는『아이들파는나라』를공저로작업했고2021년TheGlobal‘Orphan’AdoptionSystem을펴냈다.현재국경너머인권의설립자이자대표로서국제입양인의정체성을알권리회복에집중하고,서유럽수령국정부를대상으로국제입양제도및인식개선사업을진행하고있다.

목차


머리말

1부아이의귀환
시카고오헤어국제공항
한국보건복지부아웃사이더공무원
주한미국대사관총영사관이민비자과장
일리노이연방법원의루셀vs.나폴리타노소송
두문명국사이에서이게가당키나한일이야?
부자나라의부자부모
내법정에서는오직SK의최선의이익만고려하겠다
걔네엄마가애를위험에빠뜨렸다면서요
시카고출장
미국연방법원법정에선한국법증인
주전장은주법원이다
국가보호아동
후견인지정
일리노이주법원의한국아동최선의이익에대한판단
"아동최선의이익에대한나의판단을철회합니다"
당신네나라입양기관의독점적이익을보호하기위해이러고있는거라고요
한국입양아들은미국이인종간입양에대한터부에서벗어나게도와줬어요
법원의시간
생모를벌주려는게아니라아기의안전을보장하려는겁니다
가장덜해로운방법으로
다시공항

2부아기슈퍼마켓
아기를살수있는슈퍼마켓
두가지경력이한점에서만나다
아이의엄마는어디에있나?
미혼모신화와대상화
왜미국사람들은자기자녀가아닌아이들을키우나요?
아이를원하는원초적이고도강력한욕구
탈식민주의?탈제국주의?그리고여성
아동은동등한인간인가?
사인의절대적지배하에있는인간의실존
'버려진'아이들의처리
국친사상과아동최선의이익
'고아만들기'에는온나라가동원되었다
정보공개법파일
포겟미낫
범죄를저지르지말았어야죠
공항에서태어난사람들
우리의정체성을너무사소하게여기는군요

출판사 서평

아기슈퍼마켓의나라
작위적비존재‘고아’들의귀환

2013년민법과입양특례법의개정은가정법원이모든아동의입양을결정하도록했다.사인私人에게지워졌던일이마침내공적영역으로들어온것이다.한국은70년간20만명을입양보낸최대최장의아동송출국이다.SK사건은기존의입양기관이설정한경로에서벗어났다는근거로불법이라판단됐지만대체무엇이불법이고아닌지,사적기관이중개하는국제입양은적법하다고볼수있는지는해결되지않은채남아있다.이같은관행은‘제3세계국가로부터아이를구하자’‘이아이는내게오기로운명지어졌다’는서사들로정당화됐고‘국제입양아동대부분은미혼모의아이들’이라는증명되지않은슬로건으로떠받쳐졌다.양육능력이없는미혼모들에게서아이의흔적을말끔히지워주며그들의팔자가꼬이지않도록돕고심지어아이는부잣집에서잘키워준다는신화는불법과탈법을동원하며한국사회에팽배해있다.따라서이를해체하려면국제입양을완전히새로운관점에서다시봐야한다.“국제입양은아동복지정책도자선사업도아니다.그냥글로벌비즈니스다.”낸시프레이저가자본주의를경제유형으로서만보지않고제국주의적-인종주의적착취와수탈이얽힌사회의한유형으로다시봤듯,국제입양역시제국주의및식민주의가뒤얽히며출현한거대한글로벌비즈니스로관철되어야한다.

이러한산업의토대를마련하고자본을유통한것은국가다.1980년대초한국입양기관으로들어오는금액은아동1인당3000달러였고70여년간항상한국의1인당GDP를웃도는수준을유지했다.국가는아동보호의무를방기하는데최적화된사법체계를유지하며산업을지탱했다.국제법과인권규범은출생‘등록’을통해국가의적극적책무를강조하지만한국의출생‘신고’는부모의신고의무를강조하는것이전부다.서구에서이식해온법제는피상적인모방에그쳤으며,이로써국가는처절히실패한다.특히1960년‘고아’로위장등록되어마치주인없는물건처럼국외로처분된아이는수천명에달한다.정부에서체계적으로발행한고아호적,고아증명서,후견인증명서,후견권인수인계서는아동의정체성권리를침해해온국가폭력의증거로제출되었다.지금그렇게삭제되었던국제입양인들이한국사회로돌아오고있다.

태어난나라에서자기문화와정체성을유지하며자랄권리는모든사람의근본적인권이다.국제입양인들이말하는‘정체성을알권리’란단독자로서존재하려는우리모두의근본적인열망과닿아있다.부패한역사를찢고지금우리앞에출현한과거는이책의다음장에무엇을쓸것인지묻는다.관련자누구도큰타격을받지않은채기억에서안전하게삭제된SK사건을되살리는일은‘다아기를위한것’이라는알리바이와공모의유혹을털어내고,정범이되지않을최후의기로앞에우리를세운다.

2012년,태어난지15일만에미국으로들어가려던SK는불법입양을시도한미국인부모의집에서5개월간함께살았다.위탁가정을수소문했지만누구도선뜻나서지않아서다.이아이를데려오기위해법정공방을하는동안아이는이미그가정에서애착형성기를보냈기에한국으로되돌리는일은오히려비난을살법했다.더욱이불법입양을시도한미국가정은막대한부를보유한데다한국인의피를가지고있어여론전에서훨씬더유리한입장에서있었다.한국의입양기관들은선진국이고부잣집이면불법이라해도대체로입양을바람직하다고본다.하지만이모든과정은아이의의사를배제한채이뤄진다.이르포는처음부터끝까지오로지‘아동최선의이익’을놓고거기서이탈하는모든요소를되돌리는분투의과정을담고있다.

책속에서

6월에태어난아기가생후15일만에미국으로밀입국을시도했고,아니미국인여성에의해들려나갔고,지금은11월이니이미생후5개월이다되었다.그5개월동안너무많은일이미국에서일어났다._21쪽

이건입양이아니다.법적으로는아기의모국에서입양이라고부를만한어떤행위나결정도일어나지않았다.그럼에도마치물건처럼신체만국경을넘어간상황은본질적으로범죄다.이걸‘가족’혹은‘사랑’이라는의미와직결되는용어인‘입양’으로포장하니,미국국경과국익및안보를어지럽히는철없는미국인들의범죄성이희석되고,이런일은계속해서일어난다._28쪽

대한민국복지정책은‘아동’으로부터시작했다는말이있다.한국전쟁이후국제연합군과함께외국자선단체의구호품과외화가한반도남쪽으로밀려들어왔다.특히‘전쟁고아’를위한자금이가장큰비중을차지했으며,이때만들어진고아원과입양기관이아직도한국아동복지정책의주축이다._45쪽

과연그여성의선의에만아기를맡길수있을까?아무리어리고작아도한국국적을가진사람인데그렇게내버려두는게정당할까?지구상의어느민주국가에서자기국민인아동에게이런일이벌어지는걸손놓고보고있을까.아니,애당초이런일이벌어지지않았겠지._63쪽

이질문은우리사회에여태껏제대로던져진적도없고,나또한심사숙고하지못했다.법조인들에게는관심밖의일이고,인권어젠다로여겨지지도않으며,그나마이질문에제일밀접하다고여겨지는사회복지계에서도‘입양은잘몰라요’라며당연하다는듯이말한다.재판을통해사법적결단이내려진적은더더구나없다.이미수십년전부터아동의입양은법원의판결을따라야한다는원칙이국제기준이되었으나,한국은이를사적자치영역으로미뤄뒀고가정의보호에서벗어난아동을그저민간기관의자의적판단에맡겨왔을뿐이다.법과제도는그들의편의에맞춰져있다.그런데이문제가미국의법적심판대에먼저오르리라고누가상상이나했겠는가._84쪽

아기의최선의이익은누가결정하는가.보통은부모다.부모가자기자식에게무엇이제일좋은지안다는믿음은인간의법보다우선하는자연의섭리이며,인류사회를지탱하는기반
이다.하지만부모가무대에서사라졌다면누가결정할것인가?루셀?한국정부?미국정부?미혼모시설원장?브로커?각자자기주장이SK의최선의이익이라고말하지만,결국본인의이익을말하는셈이다._101쪽

규정은1960년부터있었다.고아와부랑아를수용하기위한법이다.일제강점기와한국전쟁을지나정치적격동기에쿠데타로군부독재정권이들어선다.박정희장군이만든국가재건회의는행정과입법이한데뭉뚱그려진반헌법적기구였고그곳에서수많은법이정식토론이나검토도없이일사천리로제정됐다.우리나라근대법제의시작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다.이법도그렇게컨베이어벨트위에실려대량생산된법중하나다._108쪽

과연무엇이합법이고무엇이불법일까?입양기관끼리의아동이동시스템은이러한사법적절차를제대로거쳐보기나했을까?그수십만명에대해SK에게했던만큼적법절차를적용한적이있을까?_1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