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서 (양장본 Hardcover)

악녀서 (양장본 Hardcover)

$18.50
Description
사랑과 글쓰기는 동의어다
나는 사랑할 때가 아니면 언제나 글을 쓴다

퀴어 문학의 상징, 천쉐
여성들 사이의 정욕 묘사로 논란에 섰다가 절판 후 복간된 첫 소설집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내 생명의 핵심으로 다가왔다”

『악녀서』는 천쉐의 첫 소설집이다. 1995년 대만에서 발표됐을 때 여성들 사이의 정욕 묘사가 지나치다는 이유로 숱한 논쟁을 일으키며 ‘18세 이하 열독 금지’ 딱지가 붙었고 얼마 후 절판됐다. 독자와 연구자들은 그러나 이 책의 존재를 잊지 않았다. 특히 첫 수록작인 「천사가 잃어버린 날개를 찾아서」는 퀴어 문학의 상징이었고 끊임없이 복간 요청이 들어왔다. 작품들은 되살아나 하나의 이정표로 자리 잡았고, 한국에서는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악녀서』를 선보인다.
천쉐는 대만에서 첫 동성결혼을 한 인물이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감춘 적이 없다. 이 책에 실린 네 편의 소설에서도 그런 면은 투명하게 드러난다. 여성의 자위, 첫 성 경험 상대였던 남성에게서 여성으로 옮겨가는 이들, 남성이 채워줄 수 없는 여성들 사이의 사랑, 근원적 이탈의 계기가 된 어머니에게로의 회귀 등이 작품마다 등장한다.
이십대 중반에 쓰인 이 글들은 젊고, 욕망으로 흘러넘치며, 죽음충동이 선명하다. 여성들 사이의 성관계인 까닭에 묘사는 더 적나라한데, 상대 여성이 ‘나’에게 접근할 때 심리적 우회를 거치지 않고 벌거벗은 세계로 곧장 이끌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성관계는 필연적으로 죽음에 대한 불안, 검은 구멍 속의 기억, 어머니에 대한 애증으로 이어지면서 ‘사랑’과 ‘기억’이 번갈아 쓰인다.
“손가락이 젖꼭지 위에 가볍게 원을 그렸다. 가벼운 전율에 이어 따스하고 부드러운 조수가 밀려왔다. 아쑤의 입술이 따뜻하고 부드럽게 내 젖꼭지를 빨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내 하체에 덥수룩하게 자라난 음모를 헤치고 한 겹 한 겹 음부를 벌려 열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내 생명의 핵심으로 다가왔다. ‘눈물 냄새가 나네.’”(「천사가 잃어버린 날개를 찾아서」)
이 단락처럼 극도로 민감한 내 몸속으로 들어와 어떤 음경도 건드리지 못할 깊이에 닿는 묘사들이 작품을 지배한다. 감각의 열림은 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내달리고, 거기에는 어머니가 있다. 이것은 죄책감, 증오 혹은 회복하고 싶은 사랑이다.
천쉐 소설 속의 ‘나’는 거의 언제나 글 쓰는 자아다. 산문집 『같이 산 지 십 년』에서 천쉐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사랑’과 ‘글쓰기’ 두 가지를 꼽는데 이는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위 작품에서 아쑤는 ‘나’ 차오차오에게 계속 글을 쓰라고 권한다. “아쑤는 펜을 내 손에 쥐여주면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나를 안고는 가볍게 책상 앞 의자에 앉혀주었다.” 「이상한 집」에서는 타오타오가 내 책상에 다리를 올린 채 앉아 있다. “유백색 엉덩이가 잉크가 잔뜩 묻은 종이 위에서 꿈틀거리자 황금빛 허벅지 위로 촘촘한 글씨들이 가득 기어 올라왔다.” 주인공에게 사랑(섹스)과 글쓰기는 거의 동의어이고, 기억의 진창길에서나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회에서 몸을 일으켜 ‘나’는 문자의 사다리를 타고 한 칸 한 칸 앞으로 나아간다.
저자

천쉐

저자:천쉐
1970년타이완타이중에서태어나국립중앙대학중문학과를졸업했다.1995년데뷔작『악녀서惡女書』가큰반향을일으키면서중화권의대표적인퀴어문학소설가로자리매김했다.
지은책으로는『악녀서』『나비蝴蝶』『다리위아이橋上的孩子』『아무도모르는나無人知曉的我』『악마附魔者』『천사가사랑한생활天使熱愛的生活』『나같은레즈비언像我這樣的一個拉子』『친애하는공범자親愛的共犯』『같이산지십년同婚十年』등이있다.
장편소설『다리위아이』는2004년『중국시보』10대우수도서로선정됐고,장편소설『악마』는2009년타이완문학상진뎬상,2010년타이베이국제도서전대상올해의소설,제34회진딩상후보에올랐다.

역자:김태성
한국외국어대학중국어과를졸업하고같은학교대학원에서타이완문학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중국학연구공동체인한성문화연구소漢聲文化硏究所를운영하면서중국문학및인문저작번역과문학교류활동에주력하고있다.중국의문화번역관련사이트인CCTSS고문,『인민문학』한국어판총감등의직책을맡고있다.『인민을위해복무하라』『사람의목소리는빛보다멀리간다』『고전의배후』『방관시대의사람들』『마르케스의서재에서』『번화』등150여권의중국저작물을우리말로옮겼다.2016년중국신문광전총국에서수여하는‘중화도서특수공헌상’을수상했다.

목차


신판자서_소설의운명

1.천사가잃어버린날개를찾아서
2.이상한집
3.밤의미궁
4.고양이가죽은뒤

후기_칭慶에게
어떤악이있다는것인가?_양자오楊照
옮긴이의말_어떤유형의정체성도존중되어야한다

출판사 서평

인내와기다림은이미차고넘쳤다
슬픔이차오르면나는입밖으로말을꺼내지못한다

하지만문자의사다리를타기전주인공들이들어서는곳은언제나미궁이다.삶에서길을잃거나혹은기억속에서검은구멍으로빠져현실과유리되기때문이다.이때돌아올수있는‘아리아드네의실’은예외없이사랑이다.환각같은성관계.네가나를사랑했다는것을기억하면언제든충분한빛이쏟아지는곳으로빠져나올수있다.

“나는아쑤의젖가슴을빨면서한때자신에게주어졌던영아시절을생각했다.한번도늙은적이없는엄마의몸에있었던아쑤것만큼아름다운유방을생각했다.이땅에나오자마자요절해버린사랑을생각했다.”(「천사가잃어버린날개를찾아서」)사랑을주는사람은어느덧엄마처럼‘나’를잉태하고양육하는자궁이된다.그리고그자궁은죽음이후에나를묻을무덤이기도하다.

이책에실린작품곳곳에는죽음과부고訃告가도사리고있다.치명적인동성애가죽음으로귀결될수있다는의식,혹은죄책감이다.이들의사랑에는‘우리에게미래가없다’는공포감이늘스며있다.‘이세상의본질은우리와맞지않는다.’레즈비언으로서천쉐는자신이‘존재하지않는작가’였다고말한다.그녀가소설을써온것은“스스로미치광이임을증명하는표식”이나다름없었다.동성간의욕정을과감히드러내는묘사는그러나오늘날그녀를1990년대젠더연구의핵심으로자리매김하게만들었다.

소설의여주인공들은삶에서남성과성관계를먼저가진다.그런후우연히어떤여성을만남으로써자신의동성애성향을발견한다.남자와의관계는단지보복의쾌감같은것이었다.이남자들은여주인공과성관계를맺고나면거의불능이되어버린다.상대여성의성기는그들에게‘가위’나마찬가지여서관계후남자들은그여성을‘악마’라고부르게된다.반면동성과의관계는오감을동원한가장깊은애무로표현된다.남녀는체액의냄새도다르다.내가아쑤에게서처음맡은것은“가장색정적인냄새”였다.과거정액냄새를맡았을때평생남자의몸에서쾌감을얻지못하리라는것을깨달았던것과정반대다.

과거는재해석되며연대순으로쓸수없다
사랑은근원이자무덤이다

천쉐는자신의정체성을소설가와레즈비언으로나누어본다고말한바있다.에세이『같이산지십년』을보면나이들어안전하게일상을영위하는사랑에만족감을느끼는데,사실이런관계는『악녀서』를쓰고나서한참후의일이다.지금중년이되어서는상대의삶속에녹아드는평온한사랑을추구하지만,젊은이의사랑은무덤덤하기힘들다.

기억은연대순이아니다.모든것이뒤엉키고감정은시간에따라모양을바꾸기때문이다.주인공들은말한다.“내기억은산산이부서진파편들이며사실은환상과꿈속에서비틀리고왜곡되었다.”수치심과원한,이것은그들에게‘과거’와동의어다.이런감정은구멍들을만들어내아무리노력해도메울수없으며,완전한스토리의잔해를긁어모은다는것도불가능하다.

천쉐의작품은여성동성애,여성성욕,정신질환에서부터최근의계급과가족관계까지다양한영역을다루는데,그럼에도소설을관통하는몇가지키워드가있다.그것은언제나육체와글쓰기그리고감정과세계의뒤얽힘이다.하나씩살펴보자.

「천사가잃어버린날개를찾아서」에서나는아쑤라는여성의음탕한웃음소리에심취해무의식중에엄마에대한자신의오해를깨닫는다.엄마가자살하면서나는미친듯이글을썼지만,이제는엄마를닮은아쑤를통해자기자신을만나게된다.아쑤는발기하고사정하는음경이없지만내몸가장깊숙이들어왔다.아쑤는내게말한다.“내가하는모든것이네게이일을드러내주기위한거였어.영원히글쓰기를멈추지않는거지.”여기서천쉐의그림자를얼핏보게된다.오로지사랑과글쓰기밖에없는삶을.

「이상한집」에서색정소설가인나는타오타오라는여성과사랑을나눈다.마흔살의나는사실욕정으로가득한방에서온종일침을흘리며혼잣말하는침대나다름없다.이런쓰레기인나를타오타오는좋아한다.나는그녀를위해전설같은이야기들을지어내는데,그안에서또다른동성애가펼쳐진다.

「밤의미궁」의주인공은남편아페이와나,그리고그녀다.우리셋은한몸으로찰싹달라붙어관계를이어간다.사건은‘미궁’이라는술집에서일어나지만,이모든것은환영일수도있다.“모든인생은미궁속으로들어간흰쥐같아.미궁속에서계속실험대상이될뿐이야.”처음나오는이문장이작품전체를휘감는다.환청,망상,광기,최면이지배하는실험적인소설이다.

「고양이가죽고나서」는고양이의죽음에서첫문장이시작된다.그리고기억은세살때로거슬러간다.그때엄마가죽고나는외할머니댁에맡겨졌다.그집에사는사람들은말을하지않으면서감정을표현했다.그후외삼촌이사고로죽고,이어서할머니까지죽자나는텅빈집을지키게되었다.어느날기억은대학시절로거슬러가며야마오가등장한다.야마오가내게입을맞췄다.그입맞춤이내머리칼과눈썹,눈,코,입위로떨어져내렸다.아무것도걸치지않은내몸은물에젖은새끼고양이처럼그녀의입맞춤과애무아래멈추지않고떨렸다.

네편의소설에서‘나’의치열한욕정에불을붙인사람은뜻밖에도여자였다.키크고풍만한육체가나를안는다.접촉해서는안되는부분에닿는것은자궁으로들어가는기분이들게한다.그렇게나는집어삼켜진다.남자들의욕망과탐욕스러운눈빛은여성들의아름다움과오만함에영양을공급해준다.그런영양을여성은다른여성에게쏟아붓는다.사랑은기억을불러일으키고,사랑은글쓰기와이야기들려주기안에서이뤄진다.「천사가잃어버린날개를찾아서」에는주인공이읽는두권의책이나온다.카뮈의『이방인』과카프카.『이방인』의첫구절오늘“엄마가죽었다”는이소설의내용과일치한다.주인공은또카프카를읽으면서자위한다.소설속끝없는미로는카프카의소설『소송』을떠올리게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