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의 동남아시아 (양장본 Hardcover)

대항해시대의 동남아시아 (양장본 Hardcover)

$58.00
Description
파편화되어 있던 동남아시아 연구를
하나의 흐름으로 꿰뚫다

후쿠오카아시아문화상 수상
클리퍼드 기어츠, 제임스 스콧, 데이비드 챈들러 추천
‘대항해시대’를 논할 때 ‘동남아시아’에 주목하는 이는 드물다. 주목하더라도 특정한 사관에 매여 왜곡하는 일이 잦다. 식민주의 역사가 동남아시아를 서양사의 배경쯤으로 치부하고, 민족주의 역사는 희생의 땅으로 묘사했듯이. 그러나 이 시기 동남아시아는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하고 있었으며 그것은 ‘유럽이 방문한 곳 중 하나’ 정도로 축소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저자는 ‘대항해시대Age of Discovery’ 대신 ‘교역의 시대Age of Commerce’라는 단어를 제안하며 동남아시아의 ‘전체사’ 쓰기를 시도한다.
저자가 작업에 착수하기 전 이 지역의 역사는 낱낱이 파편화되어 있었다. 사료가 부족한 건 물론, 동남아시아를 하나의 지역으로 묶어 연구하려는 시도 자체가 드물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이런 한계 속에서 저자는 ‘“닥치는 대로” 사료를 읽고 연결점을 찾아내’며 ‘전체로서의 지역 생활 방식이라는 일관된 그림’을 발견하고자 했다. 이론보다는 유럽인들의 여행 기록과 식민지 문서를 활용했다. 목록만 70여쪽에 이르는 참고문헌들을 요약·정리·분석했으며 거기에 역사학자로서의 통찰을 덧붙여 연구를 완성했다.
그리하여 20년 넘도록 동남아시아를 연구해온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UCLA 동남아시아센터, 싱가포르국립대학, 호주 국립대학 등에서 후학을 양성한 세계적 석학이다. 이 책을 통해서는 후쿠오카아시아문화상의 영예, 그리고 발간된 지 40년이 돼가는 지금까지도 동남아시아 연구의 으뜸으로 회자되는 명성을 얻었다. 그의 문장은 동남아시아의 낡은 이미지를 흐리게 한다. 새로운 인식을 위한 공간을 만들며, 마침내 그 자리에 생생하고 매혹적인 세계를 다시 세운다. 이제 그 세계 속으로 직접 들어가볼 때다.
저자

앤서니리드

저자:앤서니리드(AnthonyReid)
1939년뉴질랜드에서태어나웰링턴대학에서역사학과경제학을공부하고케임브리지대학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인도네시아의19세기와독립을위한혁명시기에대한국가연구로연구경력을시작해동남아시아지역연구로점차관심사를넓혀갔다.지역의‘전체사’를쓰려는노력의산물인『대항해시대의동남아시아』로국제적인명성을얻었다.1450년부터1680년사이집중적인해상교역으로형성된동남아시아세계의공통성과다양성을추적한이책은지금도동남아시아연구에서가장중요한책으로꼽힌다.예일대학,말라야대학,싱가포르국립대학,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에서연구하며후진을양성했다.

역자:박소현
한국예술종합학교영상원에서영상이론을,인도네시아에서인도네시아어와역사를,싱가포르국립대학교에서동남아시아학을공부했다.『다양한문화의끝판왕동남아시아』를쓰고『비동맹독본』을함께엮고『갈색의세계사』『가난을팝니다』『페소아의리스본』『대항해시대의동남아시아』등을우리말로옮겼다.

목차

1권

서문

1장서론:바람아래의땅
지리적단위로보는동남아시아|인문적단위로보는동남아시아

2장신체적건강
인구|농업의양상|토지소유권과사용권|농업도구|식생활과식재료공급|의례로서의고기먹기|물과술|잔치와음식|빈랑과담배|건강한사람들?|위생|의술|풍토병과역병

3장물질문화
허술한집,장엄한사원|가구와조명|몸치장|머리카락|복식|직물생산과무역|금은공예|특산공예품|도자기류|금속기:권력의열쇠|철|구리,주석,납

4장사회조직
전쟁|노동력동원:노예제와종속관계|법과재판|성관계|결혼|어린신부?|출산과출생률|여성의역할

5장축제와오락
극장국가|시합과경기|대중적시합|연극,무용,음악|폭넓은문해력?|필기구|구전문학과기록문학


2권

서문

6장교역의시대,1400~1650년
향료와후추|1400년무역의시작|활황기1570~1630년|금은의수입|인도산직물의수입|환금성작물|동남아시아정크선의전성기|항해술|선상조직|내륙교통:강과육로

7장도시와교역
항구-도시와무역네트워크|도시의규모|동남아시아도시의구조|시장|화폐와상업화:은의승리|금율조직|오랑카야:상업지배층|도시화와자본주의

8장종교혁명
동남아시아종교|개종또는귀의|1540~1600년:양극화와종교적경계|개종의매력|어려운전환|자바의특별한경우|이슬람경전적영향력의전성기|대륙부동남아시아에서이슬람의도전|불교와국가

9장절대국가의문제점
고전국가의위기|15세기의항구-국가|장기16세기의국가형성|무역세입|군사혁명|외교|레몬즙쥐어짜기|절대주의와그경쟁자

10장동남아시아빈곤의기원
경제성장의내재적한계?|유럽과의결정적인군사적충돌|몬족과자바인화물운송의몰락|17세기의‘위기’(무역퇴조,기후)|세계경제로부터의후퇴|무역수익상실에대한반응|중국인의교역과인종적양극화|이슬람교역의마지막저항,1650~1688년

결론연속성과변화들

참고문헌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동남아시아를한데묶어연구할이유
당시사회를이끌었던여성들

언뜻동남아시아는하나로묶는게불가능한지역같다.언어와문화,종교가너무다양해같은지역으로보이지도않는다.그러나왕조와거대종교에서눈을돌려평범한동남아시아인의생활상을살펴보면공통점이더많이보인다.

먼저동남아시아는지리적으로명확히경계지어져있다.동쪽으로는필리핀이,서쪽으로는인도네시아가화산활동으로형성된포물선을그린다.남쪽으로는태평양판과인도양판이동시에확장하며만들어진포물선이자리하고북쪽으로는히말라야산맥이우뚝서있다.육로접근은어려웠으나물길은어디나뚫려있었다.바람은잔잔한데다계절풍이선박을밀어주었고,폭풍의위협이드물었으며수온도일정했다.또하나의공통점은숲이다.기온이높고강우량이많아사방이울창한데,이는산업화시기를지난지금까지도길들여지지않고남아있다.
인문적측면에서도공통점을찾아볼수있다.첫째는언어다.동남아시아사람들은다양한언어를사용하지만,절반이상은오스트로네시아족이라는같은선조에서나온언어를쓴다.둘째,물리적환경이다.숲과물이많았기에이들은쌀·생선과각종야자를주로먹었고,나무기둥으로바닥을높이세운주상가옥에살았다.셋째,지역내교역이다.이런교역은외부의영향을가져오기보다동남아시아사람들을더단단하게연결해줬다.특히저자가‘교역의시대’라부르는15~17세기엔끈끈함이절정에달해,동남아시아권의각기다른언어가다른나라에서통용되기도했다.

동남아시아를한지역으로묶어연구할정당성을확보한후저자는온갖세밀한주제로나아간다.이를테면‘신체적건강’에선인구부터식생활,식재료공급방식,고기·물·술을섭취한맥락과동남아시아의진정제‘빈랑’,기대수명및전염병까지다룬다.이외에도‘물질문화’란주제아래선주거·복식·공예등을,‘사회조직’에선전쟁·노예제·재판등을살펴보며‘축제와오락’에선시합·연극·문해력등을들여다본다.분석이이어질수록이질적이던국가들간의연결고리는명확해지고,낯설었던조각들은하나의퍼즐로꿰맞춰진다.

특히인상적인것은이시기여성들의삶이다.서구의개입이전동남아시아여성들은사회의주역이었다.장사수완이더좋은것도,국가화친의문제를더잘처리하는것도,연예와오락에서더두드러지는것도여성이었다.교역이중요한나라에는여성통치자도제법있었다.여성은남녀관계에서도더많은자율성을누렸다.결혼과이혼이자유로웠고시댁살이보다처가살이가더흔했다.심지어여성의성감을높여주기위해남성의성기에방울과핀등을집어넣기도했다.당시유럽인의기록에따르면,‘남자들말이여자들이그렇게하기를원하며안그러면관계를거부한다고했다’.

서구의배들이이슬람교와그리스도교를싣고오며이런분위기는차차사라졌다.남성으로구성된성직자들이남성으로정체화한신을섬기는경전종교.동남아시아신앙에선주도적인역할을하던여성이라도경전종교에선할수있는일이없어졌다.이윽고여성들은천천히글로부터멀어졌고,가끔은‘머리끝부터발끝까지완전히가려서얼굴조차볼수없’게되었다.동남아시아는예로부터여성인권이낮았으며서구의개입덕에그나마발전된것이란인식이팽배해있다.그러나이는실제역사를거꾸로본것이다.동남아시아여성들은주도적으로살았고,이들을축소한것은서구종교다.

서구가동남아시아에갖고온것들
‘바람아래의땅’의번영과몰락

동남아시아의해안에커다란배들이들어선시기는1400년경으로추정된다.이시기전후로말루쿠산향료가유럽에수입되기시작했다.중국의선단이동남아시아에보내졌으며세계각국에서후추를사들였다.이렇게시작된교역은점점번성해16세기말~17세기초정점에이르렀다.1620년대유럽의한해향료구입량이정향300톤,육두구200톤,메이스80톤에육박했을정도다.단계마다100퍼센트이상의이윤이붙었다.새로운방식의돈벌이로동남아시아는많은부를거머쥐었고,차츰이방식에의존하게되었다.

이윽고바다위에정교하고도역동적인체계가생겨났다.거대한‘정크선’들이주요무역로를호령했다.쇠못을쓰지않는동남아시아전통방식으로만들어진것이었는데,목재만으로도어찌나거대하고견고한지유럽인들은늘감탄했다.배위에서는나코다(선주)가지상의왕만한권력을누렸다.부유한상인일부는이들에게물건을맡긴뒤육지에남는위탁판매계약을맺기도했다.한편바다건너들여온물품들은육로를통해내륙깊숙이까지운송해야했는데,여기에는해상교역보다훨씬더큰비용과위험이수반됐다.정글을지날때면호랑이를걱정해야했으며수레라도사용하려면멀리돌아가야했다.사람혼자서는보름만에닿을수있는거리라도수레와함께하면다섯달의고통스러운여정이됐다.

교역의영향은항구에만머물지않고섬나라들전체로퍼져나갔다.가장눈에띄는것은도시의발전이다.당시버마를방문한유럽인의기록에따르면한도시는‘본것중가장크고넓’은도로를갖고있었는데이는‘사람열에서열둘이나란히서도될만큼널찍’했다.도시가번성하는만큼거래도활발히일어났다.금화와은화는물론엽전처럼가운데구멍이뚫린‘피치스’등의화폐가사용됐다.신용·이자·채무등의개념역시확실히잡혀있었고,불량화폐의유통을막아주거나외국인의무역을조정해주는중개인들이활동하기도했다.돈을아주많이벌어상업지배층인‘오랑카야’가된이들도있었다.이들에게위기감을느낀토착귀족들은자신들의우월성을입증하고자애쓰다가결국‘지구상어느곳보다도오만하다’는악명을얻었다.

화려했던교역의시대는17세기에막을내린다.1620년대까지무섭도록치솟던무역지표가이후곤두박질쳤고,1680년단말마를내지른뒤완전히숨이끊겼다.이유는여러가지다.물건을사가던나라들이경제적위기를겪었으며,주요품목이었던육두구와메이스,정향을네덜란드동인도회사가독점했다.심지어기후문제도영향을미쳤는데,기온이전지구적으로떨어지는소빙하기가닥치며작물재배에곤란을겪은것이다.이후무역활동이활발했던국가들의운명은둘중하나였다.멸절하거나,죽도록빈곤해지거나.네덜란드동인도회사가남은작물까지독차지하겠다고전쟁을일으키곤했기때문이다.또한쌀값을다섯배나올렸는데,이국가들이쌀은수입해먹었다는점을노린것이었다.

이렇게‘동양최고의무역중심지’였던동남아시아는‘저주받은자들만의고장’으로전락하고말았다.이들은‘훔치는것말고는먹고살방도가없을정도로’가난해졌다.한기록에따르면반튼의주민들은‘전에는옷차림이그토록화려하고씀씀이도컸는데,이제는너무가난하고처량’하게변했다.여전히동남아시아는저발전의대명사쯤으로통용되고있다.게을러서,노력을안해서,재물축적에관심이없어서……각자다른이유를들어함부로그빈곤을설명한다.그러나동남아시아에도눈이시릴정도로화려한시기가있었으며,이를중단시키고거대한빈곤을떠안긴건서구열강이다.

*

동남아시아권의수많은언어와생소한지명들은저·역자모두에게큰부담이었다.저자는영어와프랑스어,그리고말레이-인도네시아어를통해모든사료를살폈다.이가운데는국립국어원표기원칙조차마련되지않은것도있어서,역자는지역연구자를수소문해의견을구해야했다.고된작업이지만계속이어간이유는그만큼중요한이야기이기때문이었다.교역의시대동남아시아인들은변화에빠르게적응하고창조적으로대응했다.결말이어땠건이사실만큼은변하지않는다.그러니과거를실패로여기는대신역사적자원으로삼아나아가기를,저·역자는한마음으로당부한다.이책이훌륭한학술서인동시에거대한목소리인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