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연씨,무슨돈을그렇게많이써요?”그한마디에서이모든얘기가시작되었는지도모르겠다.『가난의명세서』는무슨돈을어떻게얼마나썼는가를이야기한다.그러나써놓고보니이이야기는‘소비의목록’이아닌‘가난의명세서’가되어있었다.‘나연’은노트북구입비,엄마병원비,전화영어,교통비,여행비,정신과진료비등지난10여년의지출내역을탈탈털어어떤빈곤의서사를풀어놓는다.그것은사람을삶의극단으로내모는객관적이고절대적인빈곤이아니다.그보다끊임없이생활을제약하고자아를위축되게만드는주관적이고상대적인‘빈곤상태’가이책에적힌가난이다.말하자면어쩐지‘진짜가난’임을증명해야할것같은가난.무언가소명해야할것같은빈곤.끊임없이‘나’를따라다니는불완전하고어중간하고임시적인느낌.그래서떳떳해지지못하고자꾸만죄스러워지는마음.그러나이자질구레한가난의명세서를읽어나가다보면,그감정들이야말로저자의빈곤체험을관통하는것임을알수있다.그래서묻게된다.‘가난은우리를어떤인간으로만드는가?’
가난하게,‘나’로살기
―당사자성과정체성
가난을경험한다는것은무엇일까?빈곤이사회적문제로다루어질때그것은눈에띄는결핍으로시각화되고,구조적문제로도식화된다.반면그것이누군가의사적서사가되었을때드러나는구체적인하루하루의내용,그내용이동세대,전후세대와얽히며종횡으로만들어낸삶의패턴은그빈자가누구인가에따라다른양상을띤다.누군가에게는생계의위협,누군가에게는생활의제약,누군가에게는부서진관계,누군가에게는희망없음인그것을,이책의저자는“유령이되는일”이었다고적는다.풀어쓰자면그에게가난은자아가왜곡되고위축되고축소되다못해소멸되는일.저자에게빈곤은무엇보다‘나자신으로살기’와관련이있는문제였다.
여느당사자서사가그러하듯이책도청년빈곤의일상적풍경을소상하게담아낸다.특유의발랄하고수다스러운문체로.눈앞에있는과자의최저가를찾겠다고네이버와쿠팡을들락거리는소비자,6만원짜리운동화도일시불로못사는빈털터리,중고노트북으로자소서쓰고부업도하는취준생,떠나기전‘기초생활수급자해외여행금지’국민청원을찾아보는여행객,회사생활을병행하며이삭토스트로대학원4학기를버틴고학생,뇌출혈로쓰러진엄마의치료비와간병비를책임지는보호자,병원비가무서워정신과진료를10년이나미룬환자……그런‘빈자’로사는동안‘나’는삶의여러차원에서지속적으로결핍을감각한다.언제나계산하며살아야하고,시간감각은‘지금’에고정되며,끊임없이기대하지않기를학습해야하는생활.저자는이런생활속에서내면에쌓여온묵은감정을표현하기를주저하지않는다.그는불안해하고,두려워하며,화내고,슬퍼하고,서러워한다.자기연민에빠졌다가다시그연민을혐오하고,가난을멋대로대상화했다가또정체성삼기도한다.이혼란을있는그대로표현할수있는것은그가가난의당사자이기에가능한일일것이다.
그에게는되고싶은‘나’가있다.스스로에게‘깨끗한사람’이고싶고,앞뒤가다르지않은사람이고싶다.“오랜시간갈고닦아온고운안목”(129)이있는사람이고싶고,그런안목으로탁월하고지속가능하며윤리적인소비를하고싶다.좋아하는사람들에게계산없이베풀고싶고,그들이행복해하는모습을보며같이행복해하는사람이고싶다.“내선택에대해서만책임지면되는”사람(115),“교양있고친절하며마음에여유가가득한사회공동체원.”(186)“내가마음속으로그리는나는그런사람이었다”(100)고그는말한다.하지만가난은끊임없이‘되고싶은나되기’에제동을건다.
가난이싫은이유로치자면가난때문에욕구를유예하는일쯤대단히중한것도아니다.욕구를절제하는일은한때청렴하고검소하다고칭송받던태도니까.하지만가난으로인해내존엄에,자존감에,사람들과의친밀감에한계가지어지는것,그것이숨통을조여와도타격이없는척,원래좁고초라한자아를타고난척해야하는것―이것이야말로절망스럽고견딜수없는것이다._94쪽
나는다시한번,말라붙은얄팍한지갑때문에내가치관에위배되는행동만골라하는사람이되어야한다.가난속에있는한,나는비윤리적이고,정치적으로올바르지않으며,환경파괴를가속화하는소비자일수밖에없었다.그것이나의마음을더욱가난하게만들었다.아름다운옷도,아름다운몸도,아름다운태도도가질수없는,그래서타인이욕망할만한대상이되지못하는스스로를끝없이혐오하게만들었다.윤리도,도덕도,아름다움도,정치적올바름도,자본주의사회에서는자본을통해서만성취할수있는자질처럼느껴졌다._131쪽
자기실현이거듭좌절될수록‘나’는세상이가르쳐준가난의문법을내면깊숙이학습한다.시선에예민해지고,스스로를작게느끼며,타인을믿지못하는동시에자기도끊임없이의심해야하는날들.선택은늘불안하고두려운것,하고나서도찜찜한것.그렇게그의존재는늘시험대위에있게되고,언제나존재를시험당하는자아는경직될수밖에없다.“내가욕망하는이상적인선택에부합하지못할바에는아예눈길조차주지않아야괴로움과절망의길로흘러들어가지않을수있다.”(127)“타인은설령부모나친인척이라할지라도믿어서는안되며,내가직접알아보지않은일은덜컥시작해선안된다는것,내인생에서가장중요한사람은그누구도아닌나자신이며,내가원하는것은내가직접성취해야한다는사실.”(64-65)가난이정체성이되면,빈곤은더이상물질적차원에그치는문제가아니게된다.그래선지저자가구체적인숫자로,돈얘기라며펼쳐놓는빈곤의경험은오히려실존적빈곤에관한이야기일때가많다.
동화「아기돼지삼형제」를인용하며그는말한다.“첫째와둘째는과연벽돌이가장단단하고튼튼한자재라는사실을몰라서짚과나무로집을지었을까?(…)나는벽돌집이필요하다고판단하면어떻게해서든벽돌을손에쥐고야마는돼지였다.그것이형제들의고통에눈을감고엄마돼지의호소에귀를막는일일지라도.”(37)그렇게어엿한직장을얻고남들버는만큼벌며독립해집을얻고그집에꿈꾸던가구를들인뒤에도‘나’의질문은계속된다.“다른사회로의환승을추구하는나의속물근성과나는앞으로어떻게공존하며살아야하는걸까?”(116)이렇게물으면서도잘사는집에서태어나해외생활을오래한동료들사이에서스스로를‘한국의얼’자체라고낮추며위화감을고백하는장면은,저자의취약성이‘돈’으로만설명될수없는문제임을단적으로보여주는듯하다.아니에르노는이것을“사회적상승이동으로찢긴마음의상처와수치심”(디디에에리봉,『랭스로되돌아가다』,이상길옮김,문학과지성사,2021,273)이라고말했다.
하지만떠나온과거와화해하기위해계급이라는정체성의복잡함을진지하게들여다볼새도없이,배경도위치도가치관도제각각인타인들과어떻게연결될지를고민할틈도없이이가난은또다시시험대에오른다.저자는자기결핍을정당화하고해명해야한다고느끼듯,자기의일부가되어버린가난도끊임없이심문하고증명하려한다.
이렇게배부르고등따습게살면서,가난이라는단어를자꾸입에올려도되는걸까?내가나를가난했다고혹은가난하다고표현하는일이기만이거나타인에게상처를주는일은아닐까?가난은특정조건에부합하는이의입에서나올때에만진정성을인정받을수있는단어일까?_220-221쪽
이것은답변가능한질문일까?가능하다면그건누구를,무엇을위한답변일까?가난이‘자격시험’이아니라면,우리가물어야할질문은무엇일까.
내배경은내가아니다
―가족이라는‘고투의원천’과선긋기
책은일견전형적인루트로보이는K의이야기로문을연다.“모두가힘들었던1997년(…)4인가족이었던K의집은외환위기가터지며가세가급격하게기울었다.”(9)집은경매로넘어가고경제적갈등은관계를파국으로치닫게했다.부모는갈라서고,싱글맘이된K의어머니는“냉엄한생계의전장에전사처럼뛰어들었다”.(57)K는주경야독정신으로대학생활과직장생활을이어가며대학원진학의꿈을꾼다.그러나K가30대에접어들무렵,어머니는당신이치열히싸우던전장에서뇌출혈로쓰러지고만다.학비로쓰려고모아놓은돈은전부병원비로들어가고,재정적파산상태가된K는신용대출을신청한다…….어머니대,할머니대로거슬러올라가도어디서들어본듯한비슷한이야기가이어진다.마을유지였던집안,고생이란모르고금지옥엽자랐으나가부장의여성편력으로기울어진가세,남편과일찍사별하고홀로키운자식들.2남1녀의막내,무심한모친과폭력적이고이기적인오빠들,집에서벗어나기위해선택한결혼,먹고살려고뛰어든보험업,경기침체,갈등과반목,삶의소용돌이,무너진몸과마음.
어쩌면‘가난’의이름을단이것은여러세대에걸쳐얽히고설킨관계의서사인지도모른다.“직접도시락을싸준적도,휴대용생리대한번사준적도없는매정한노친네”와그의딸.“너한국에오면그길로너도죽고나도죽어야되는거야”라고말하는엄마와그의딸.어디서무엇이결핍되고누락되었는지알수없는이연대기는가난의외피를쓴채돈얘기로시작해돈얘기로끝이난다.“그래서언제갚을수있다는건데?”“사람들다듣는데쪽팔리게만들작정이냐?”‘애초에가난하지를말든가아프질말든가,둘중에하나만했어야지.’오랜간병과끝모르는노동,지속되는재정불안과끝없는감정소모,모진말들에지친K는말한다.“내1인칭관점에서우리가족사를관통하는주제는이랬다.이가족은물질적,감정적채무로맺어져채무의의해유지되는관계.”(54)
K가찾은탈출구는그의어머니,할머니가택했던삶의경로와마찬가지로동세대적이다.제니퍼M.실바는『커밍업쇼트』(문현아·박준규옮김,리시올,2020)에서오늘날청년세대의성인기인식에대해설명한다.“밀레니얼세대는동일연령대의이전두세대에비해학자금대출부담도더많이지고빈곤율과실업률도높은반면부와개인소득수준은낮은경향을보인다.이처럼불안정한분위기에서‘성장한다는것’은어떤의미인가?(…)놀랍게도많은청년이자신의가족들과선을긋고는그들을용서할수없다며가혹한태도를보였다.이들은가족을자기문제와고투의원천으로이해하고있었다.”(제니퍼M.실바,『커밍업쇼트』,문현아·박준규옮김,리시올,2020,10-11)
아마내가정말견디기힘들었던것,그래서어떻게든감추고싶었던것은당장바이닐도,오디오도살수없는통장잔고가아니라내능력과노력만으로는무너져내리는속도를도저히늦출수없는우리가족,허름하기짝이없는내배경이었나봐.힘껏등뒤로숨겼다고생각했는데,존재를부정할수록긍정하는꼴이되어버리고말아.나는나를우리가족에게서충분히분리해서사고한다고믿었는데전혀아니었나봐.이렇게글로적고보니누구보다도가족에게매여있는사람이잖아._116쪽
나는줄곧가난을타자화하고,대상화하며끊임없이가난과거리를두었다.가난을혐오했기때문이다.혐오의대상으로부터거리를두고그것을내삶과관련없는단어로만들고싶었다.아무리가족의일일지언정타인의선택과그로인한결과를내가책임지지는않겠노라고억지를부렸다.어떤엄마에게서태어나어떤동생의언니가될것인지내가결정한일이아니니내게책임지우지말라고정색했고,엄마가‘빤쓰’가찢어질정도로가난한사람이든아니든,그건엄마의형편이니내알바아니라며선을그었다._222쪽
하지만선을그은다음에는무엇이있을까?“노후를담보로돈과시간을끌어와아픈엄마를부양하는데써야하는큰딸이아니라내가삶에서누릴수있는모든것을누리고모든꿈을펼쳐볼수있는자유롭고독립적인인간”,그는어떤모습일까?K는선을그었다고말하면서도그언저리를떠나지못한다.“하나밖에없는보호자”“나의한명뿐이던보호자”,그렇게부르던이가쓰러져장애를갖고살아가게되었을때K가내린결정은그리된보호자를떠나“자유롭고독립적인”‘고아’가되는게아니었다.“엄마를대신해내가방어막이되어야”한다면서보호자의곁에선그는장애인이동권을의식하며달리는차들을향해경계의눈을번득인다.독립하겠다는선언에어디로가는지묻는대신생활비를따져묻는가족에게그가내민것도절교장이아닌주거비였다.일상이비로소일상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