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교양의 실패와 여자들의 공부론

한국적 교양의 실패와 여자들의 공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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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민은 왜 거래의 윤리와 환대의 기풍을 길러야 하는가
사회 전체가 시장이 될 때 모양새와 절차는 어떻게 ‘마음’이 되는가
‘약자’인 여성들은 왜 공부하는 데 뛰어난가
자영업자의 인문학
잡박한 심리를 뚫고 얻어내야 할 신뢰

공부의 한 방법이 글쓰기이듯이, 말하기도 타자를 대하는 ‘응하기’로서 공부의 중요한 방법이다. 글항아리에서 펴내는 철학자 김영민의 ‘장숙강 시리즈’는 글을 쓰고, 타인들을 만나 응하며 말하는 데서 공부의 계기를 마련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다. 시리즈의 첫 권 『조각난 지혜로 세상을 마주하다』에 이은 두 번째 권인 『한국적 교양의 실패와 여자들의 공부론』은 총 9강으로 구성되며, 교양이 생활에 안착하지 못할 때 얼마나 표피적이고 피상성이 넘치는가를 짚는다. 피상성은 거래관계가 지배적인 곳에서 활짝 꽃을 피우며, 자영업자 천국인 한국에서는 예컨대 식당에서 그 예를 흔히 엿볼 수 있다.
1강은 ‘식당의 인문학’에 대해 말한다. 온종일 상거래에 묶여 있는 자영업자라고 해서 주체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음식은 삶의 기본이고, 만남의 중요한 매개체이므로 식당 주인은 전문가의 기량을 발휘해야 할 뿐 아니라, 손님에 대한 동정적 헤아림도 지녀야 한다. 하지만 식당 주인과 종업원들은 종종 자기 정서에 붙들려 있다. 어떤 주인은 얼굴에 짜증이 배어 있고, 어떤 주인은 손님이 주문할 때 하품하는데, 삶의 질을 규정하는 생활정서가 어떤 태도에 저당잡혀 있는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장사로 돈을 벌 때 그 삶엔 종종 왜곡된 상업 윤리가 자리해 있다. 물질적 하부구조는 정서·환상·습관을 형성하는 상부구조와 곧잘 어긋나며 삐걱거린다. 이처럼 붙박인 정서와 습관에 대고 계몽을 논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저자는 상거래에 뛰어든 개인들이 전문성의 책임과 환대의 윤리라는 보편성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들이 장사를 재물을 쌓을 수단으로만 삼은 게 아니라면 인간적·윤리적·철학적 보람을 거기서 찾지 않을 수 없으며, 한낱 장사라 해도 예禮가 있다면 그로부터 거룩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올 수 있다.
이 책 전반에 흐르는 정신은 ‘실용성’이다. 그런 관점에서 식당의 인문학은 3강 ‘잔인하지-않기에서 신뢰까지’와도 이어진다. 신뢰는 한옥으로 치면 용마루나 치미에 견줘질 정도로 인간의 덕목 가운데 빛나는 정점이다. 실용적 삶에서 신뢰가 왜 중요한가. 그것은 비용 절감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신뢰란 사사로운 정이나 그 내용에 포박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빛나는 형식으로서, 저자가 늘 강조하는 연극적 수행과 닮아 있다. 이것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기보다 오히려 자기 심리의 잡스럽고 혼란한 상태를 넘어서서 자기 명령 체계를 꾸준히 지켜나가는 일관성에서 맺어질 수 있는 열매다. 이런 사람으로부터는 신뢰가 열매를 맺어 마침내 ‘실력’으로 빛난다.

저자

김영민

저자:김영민
철학자.『서양철학사의구조와과학』(1991),『동무론』(2010~)3부작,『집중과영혼』(2017)등을썼다.천안과서울등지에서인문학학교‘장숙藏孰’(http://jehhs.co.kr/)을열어후학들을가르치고있다.첫시집『옆방의부처』를발간하였다.

목차

1강식당의인문학:거래와환대의윤리를위하여
2강해석하는인간:행지行知와해석학의실용적전환
3강‘잔인하지-않기’에서신뢰까지:사회윤리의새지평
4강누적적계기론:방법,방편,계기,자득,구제
5강개념으로길을열고시로써누리다
6강‘윤석열현상’과한국적교양의실패
7강여자들의공부론
8강글쓰기의인문학
9강사상이란무엇인가:빚진정신의감사와마음의길

출판사 서평

정신과말의존재인인간은해석의방에서산다
철학은체계로의수렴이아닌확산을

2강‘해석하는인간’은해석학을가다머나니체가논한학술적맥락에서다루지않는다.정신적존재인인간은모든일에이미해석하며개입하고있다.되돌아보면파멸로치닫는결정이나문명의정점에올라섰던경험들은해석의한끗차이로인한결과다.텍스트는어떤것이든불완전하고애매하며,따라서그에대한해석역시문제적일수밖에없다.해석에임하는가장현명한자세는늘조심하는것인데,저자의이러한해석학역시실용적관점을따른다.해석은인식이나이해의차원만이아니라행함과결부되는복합적인것이다.따라서저자는‘행지行知’가사태의진상을압축한다고말한다.행함行이앎知과이처럼얽혀있다면,앎이재서술에의해끊임없이변용되듯이해석역시끊임없이다시이루어질수있어자신의생산성을재촉하고있는셈이다.

인간은무엇보다정신과말로된옷을존재에걸치다시피하며해석의방에서기거하는존재다.하지만편견은덫처럼삶에드리워져있고,미망迷妄은호흡하는공기처럼대기에퍼져있으며,그와중에각개인은자신이취한이데올로기를일방향으로몰고나간다.따라서해석을실천의관점에서보려면체계로의수렴에서끊임없이벗어나며앎을삶으로투과해‘확산’을이뤄내야한다.철학이체계화되는순간수행적측면은격하되면서삶과분리될위험이있다.인간은해석한번잘못해서나락으로떨어지기도한다.그러니늘기억할것은해석의책임이다.하지만생활속에서대부분의해석은책임을쉽게회피할수있을만큼애매한회색지대에걸쳐있다.해석자와텍스트,주객간의상호개입은정도와범위와깊이가측량불가능할만큼한정없기때문이다.따라서매사‘모른다’라는겸허를지니고실용성의방향으로말길을트면서자기정화의발판을디뎌볼것을권한다.

자기를배려하고주변을바꿔내는여자들의공부

이책은제목에서드러나듯대학바깥에서밀도높게이뤄지는여자들의공부를다루고있다.저자가이끄는공부모임에서도남자들이자신의존재감을지워나가는사이여자들이들어와기존지형에균열을일으킬만큼존재를키워왔다.저자는여자들과의공부로인해자기몸이달라진경험을이전글들에서몇번이야기한적있는데,8강에서는여자들이자기계발과연대와사회변화를향한리좀적활동의가능성에눈떠가는모습을다룬다.여자들은긴세월정신문화적지형을조형하는자리에서소외되어온탓에오히려생활세계의낮은자리에서통하는이치와감성에정통해졌고,기능적완벽성대신의사소통적타협에능란해졌다.여자들은“생식이라는진화론의대전제를문명문화적우회로를통해리비도적분류로,사랑의힘으로승화·번역하”며,남자들이전쟁속에서모든것을무너뜨릴때조차새로운시작을위한영도零度를예비하면서명랑하게웃는다.

대학바깥의여자들이하는공부는생활과더불어생활너머까지힘겹게엿보려는노동이다.무엇보다이들은등에남편과아이들을짊어진채몸의제도와버릇을바꿔내려고애쓰면서공부하는주체로나아가고있다.저자는공부란워낙약자들의것이라고말한다.여자들은남자보다학습능력에서뛰어난면모를보이는데,강자-남성들이일군기존의정신지형을바꾸려면무엇보다공부에매달려야하기때문이다.여기서도실용성은강조된다.자기변화와자기구제를위해배운다는것은무엇보다실용성의이치를꿰뚫는일이다.삶의실용성을체득한역사적존재가바로여자들이며,배움에있어필요한현명한복종과지배의태도속에는늘인문학적감성이번득인다.여자들은앞서강조한‘모른다-모른다-모른다’를몸에체득하고있으며,약자적체험의침전과유연성으로각자의공부길을열어나간다.

장숙강시리즈1권에서도몇몇정치인을다루었듯이책의6강도정치인들을통해서한국적교양의실패를살펴보고있다.최근종양처럼드러난‘윤석열현상’은타자가아닌바로우리자신의모습이사회표면으로떠오른것이라고도볼수있다.글쓰기강의는매번이뤄지지만,그반복은더넓고깊어지며글을쓰지않는이들에게다시글쓰기로나아가도록독려한다.글쓰기는매일수행해야하는것으로,이는공부를위한도구를넘어인간이희망할수있는행위의깊이를포괄하는실천이기때문이다.글쓰기에대한강의는‘사상이란무엇인가’라는강의로이어지면서공부의더깊은세계를안내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