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이 대화는 가능할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이 대화는 가능할까?)

$19.00
Description
2017년부터 이어져온 피해자와 가해자의 왕복 서신
말하고 쓰며 책임을 언어화하는, 전대미문의 회복적 대화

가해행위의 책임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피해의 실태와 피해자가 처한 ‘그 뒤’를 알아야 한다
답을 구하는 쪽은 언제나 피해자다. 성폭력 피해 당사자인 니노미야 사오리는 오랫동안 질문해왔다. ‘왜 나였을까?’ ‘나여야만 했던 걸까?’ 사회가 이렇게 틀 지어졌기 때문이다. ‘짧은 옷을 입었어?’ ‘여지를 준 건 아니야?’ 그러나 그녀 안에서 답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이 질문에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답해야 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진실 위에 서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대화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들이 겪는 사건 ‘그 뒤’의 시간이 결코 같을 수 없다는 진실. 그러므로 이 대화는 시작도 전에 수없는 실패를 전제한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모르듯이 피해자 역시 가해자를 알지 못하며, 우리 또한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알지 못한다. 니노미야는 그녀가 품어온 질문에 실제 성폭력 가해를 한 사람이 답한다면 비로소 괴로운 의문의 소용돌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같은 결단에 힘입어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전대미문의 대화가 시작된다. 그녀가 감행하기로 한 것은 가해자에게 확성기를 쥐여준다거나 그들의 호소를 감안해보자는 식의 감정적 배려와는 무관하다. 그보다 오히려 누구나 피해자-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냉정히 받아들임으로써 피해-가해라는 도식과 증오의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결기이다.
사이토 아키요시는 3000여 명의 가해자를 만나온 가해자 임상 전문가로, 의존증 치료 시설 에노모토클리닉을 운영하며 회복적 사법이란 기치를 내걸고 재범 방지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니노미야는 2017년부터 이에 동참해, ‘회복적 대화’라는 특수한 임상 치료로서 한 달에 한 번 참가자와 같은 장소에 모여 이야기 나누는 대면 프로그램과 그녀가 편지를 쓰면 참가자가 답장하는 왕복 서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사이토 아키요시는 지금껏 가해자 임상에 종사하면서도 본 적 없던 표정, 들은 적 없던 말을 몇 번이나 보고 듣는다. 그리고 가해자 측의 의식이나 행동이 변모하려는 낌새를 알아차리기도 하고, 니노미야가 힘겹게 꺼낸 말들이 가해자들의 머리 위로 공허하게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기도 한다. 참가자 역시 프로그램에 꾸준히 오는 이가 있는 반면, 중도에 재범해 교도소에 들어간 이도 있다.
이곳에는 명백히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다. 두 존재의 양식을 무화하지 않는 엄격함 위에서, 이들은 대화할 수 있을까. 대화를 밀어붙임으로써 성폭력 가해자가 변화할 수 있을까. 물론 대화만으로 행동 변화를 촉진할 수는 없다. 이를 사이토도 니노미야도 알고 있다. 그러나 변화의 요인을 탐지하고 개발하며, 끄집어지지 않은 가해자성을 해부하는 일은, 실패한 대화조차 무용하지 않다는 믿음 위에서 이어진다. 타인과의 대화는 필연적으로 존재를 다시 쓰는 일이다. 이 또한 이 책에 도사리는 진실이다.
저자

사이토아키요시

정신보건복지사겸사회복지사,에노모토클리닉정신보건복지부장이다.일본최대규모의의존증치료시설인에노모토클리닉에서사회복지사로근무하며다양한의존증임상에관여해왔다.전문분야는가해자임상으로,현재까지3000명넘는성범죄자를만나치료에임했다.또한초등학교및중학교에서는약물남용예방교육을,대학교에서는조기의존증예방교육을적극적으로펼치며,강연,방송출연등폭넓은활동을하고있다.저서로는『소아성애라는병小児性愛という病』『남자가치한이되는이유男が痴漢になる理由』『불법촬영을멈추지못하는남자들盗撮をやめられない男たち』『남존여비의존사회男尊女卑依存症社会』『아동에대한성가해子どもへの性加害』등이있다.

목차

1장피해자의‘그뒤’를이야기하는대화프로그램
‘잊을수없어서’괴롭다
자신의가해행위를과소평가하는가해자
가해자는피해자를모른다
가해자임상현장도사회도피해자를모른다
피해자의‘그뒤’를이야기하는대화프로그램
피해자와가해자가보내는시간의차이
피해자의‘그뒤’는언제까지나계속된다
가해자가짊어져야할세가지책임
피해자에게엄습하는‘기념일반응’
피해자와가해자에게일어나는공통현상
피해자도가해자를알게된다
자신이한짓과대면하지못하는가해자
언제까지도망치면되는건가
대화하지않으면도달하지못하는장소가있다
회복이혼자서는불가능한이유
가해자에게도‘해리’가있는가?
피해자가생겼다는사실을외면하고싶다

2장성가해를자기언어로말하는어려움
당신의‘나약한소리’가동료들에게는힘이된다
말하지않고숨죽이는가해자
자신을속일수없는‘글쓰기’
가해자도가해자를모른다
성가해에경중이있는가
기껏해야불법촬영일뿐?
피해에우열을매기는데의미는없다
피해자도피해를상대화한다

3장‘인지왜곡’을이해하기위해
강간신화는누가만드는가
답을구하는쪽은언제나피해자
자신이야말로피해자라고생각하는가해자
가해자사이의서로닮은인지왜곡
사람을대상화하는자동사고
사람으로취급되지못했던경험이물건취급을낳는다
‘남자다움’을강요당하다
자신들의트라우마를깨닫지못하는가해자
약한모습을보이지않다가는고립된다
SOS를보내지못하는것이문제행동으로이어진다
낮은자존감,높은자존심
승인욕구는왜성가해로이어지는가
스트레스를해소하는선택지를착각한다
피해는없었던일이되지않는다
자신에게도타인에게도가치가있다는건강한사고
여성을부러워하는심리
여성을질투하면서도멸시하는‘약자남성’
여성에게당연히인기가있어야한다고여기게만드는사회

4장성폭력가해자가된그대여,쉽게용서받으리라생각지마라
사죄라는퍼포먼스
용서받을것을전제로하는오만함
용서한다,용서하지않는다
가해자에게는회복을위해노력할책임이있다
편지라는대화가아니면할수없는것
회복의형태는한가지가아니다
피해자로살아가는괴로움
가해자로살아가는안전함

대담니노미야사오리×사이토아키요시

출판사 서평

가해자성-남성성-인간성
가해자존재양식을해부하기

사이토와니노미야가고심한질문은이렇다.‘왜가해기억은망각되고,피해기억은지속될까.’‘왜성을이용한폭력이어야만했을까.’‘앞으로의인생,가해자인채로살아가도괜찮은가.’특정대답을유도하지않고,진솔하게답할것을요청한다.그렇다고아무렇게나지껄여가해를반복해도된다는뜻은아니다.가해자중에는오히려그럴싸한모범답안을써내버리고답을찾는지난한과정을일축하는사람이많다.또는이른바‘달걀귀신현상’이관찰된다.니노미야가말을마치면,가해자들의표정이일시에삭제된다.그들은사건현장에서뿐만아니라그들의가해행위와죄로부터도망쳐왔다.그렇기에이대화는그들이저지른일이무엇인지직시하기부터시작해야한다.『책임의생성』저자이자당사자연구자인고쿠분고이치로,구마가야신이치로는“과거와단절하는의지보다과거에서지금으로이어지는흐름”을스스로끌어안으며살겠다고각오할때책임이생겨난다고말한다.즉그자신을과거행적으로부터유리시키지않으며범행의잔인한여파마저감당할때책임이모색된다.니노미야는온몸으로과거와현재가한순간도끊어진적없음을증명한다.트라우마에의한자해상흔을가리지않은몸,여전히불시에찾아오는해리성장애로상처입은몸이다.가해자들은그녀에게서그들이과거에두고온피해자의그림자를본다.과거앞에달걀귀신처럼표정을지우며도망치던이들에게니노미야의존재는거부하지도못하고부정할수도없게끔들이닥친다.
에노모토클리닉에서집중하는과제는재범방지다.공공장소에서의성행위,여성신체불법촬영등을거듭하는행위는알코올이나도박에중독된의존증장애와유사한점이있다.사이토는의존증치료모델을심화한행동치료를적용해,기술적관점에서가해자로하여금의존증행위를유발하는위험요인및트리거를스스로감지하고그에걸맞은대처법을익혀나가도록학습시킨다.다만그는이것만으로충분할지의심하며,피해자에대해알지도못하고알려들지도않는가해자가자기행위를바로인지한뒤대처할수는없다고판단한다.설령그리한다한들기술적인대처능력을습득하는것과성가해를저지르던그때로부터진정변화하는것은차원이다른일이다.여기서도대화의과제가설정된다.대화는가해자성과얽혀있는남성성,그아래의인간성까지파고드는일이되어야만한다.즉가해자성-남성성-인간성의변증법을파헤치고자기서사와자기이론을다시정립할필요다.그렇게해야지만‘앞으로의인생,가해자인채로살아도괜찮’냐는니노미야의질문에답할수있다.
타자를모욕하고공격하는가해자성은왜곡된인지에서비롯한다.가해자임상현장에서인지왜곡이얼마나불가해하고교묘하며강력한지를통감하는일은빈번하게일어난다.많은가해자는‘원래나야말로피해자’라고여기는경향을보인다.이때프로그램에서는‘자기대화’로써반복되는대표적인인지왜곡을스스로검증하고깨부수는훈련을시킨다.하지만가해행위를정당화해온기제를깨트리는일은,자기대화를수차거듭해도불현듯비뚤어진사고방식이튀어나오는패턴을그린다.이에더해가해자는습관적으로여성성을시기하면서도멸시하는태도를보인다.‘교활한여자’‘얼굴이예쁘거나,남자를내세우고집에들어앉으면되는여자’‘힘쓰는일은피하고편한일만골라하는여자’등,여성관이드러나는대목에서그들이공유하는비뚤어진남성성이돌출한다.성가해를저지른이들중압도적으로남성이많기에,그들이타깃으로삼은대상이여성인이유를밝히는일은가해의조건을탐색하고재발방지대책을구축하는데필수적이다.사이토와니노미야는거북할만큼적나라한가해자성속으로손을집어넣고,타인을굴종시킴으로써쾌감을취하는행위의기저를더듬는다.그리고그아래에서마주치는것은취약한인간성이다.자기트라우마를제대로마주하지못한채,인정받고승인받고싶다는욕망을기형으로키운인간성이다.외부로부터충족되지않은열망이변질되고누적된인간은타인을해치는식으로자기를추켜세운다.참가자들은질문에답하면서마침내자기서사와이론을언어화하고그자신을정직하게고백한다.추잡하고비틀어진인간성일지언정존재의핵을끄집어내갈고닦아야만가해를저지르지않고도타인과관계맺을수있는인간으로거듭날수있다.

성폭력가해를저지른당신
쉽게용서받으리라생각지마라

내행위를낱낱이,빠짐없이,끈질기게참회하기란굳이성가해자에게이입하지않더라도결코쉬운일이아님을이해할수있다.그러나명백한피해앞에주어진유일한선택지는가해행위의죗값을떠안으며사는것이다.다만분명히할점은참회한다해도용서가응당한보상처럼주어지지는않는다는점이다.사죄와용서는한묶음이아니며,세상에는용서할수없는일이있다.사이토는성폭력은틀림없이후자에속한다고못박는다.용서받고싶다는마음역시그기원을탐색해야마땅하다.니노미야가단호히말하길용서는끝이아니며,가해자가할일은“교정이아니라,갱생”이다.다시말해가해행위를반복해온인격,낮은자존감과높은자존심을휘두르고폭력적인승인욕구를강요하던인격을바꿔야한다.참가자중한사람은니노미야에게보낸답신에서“‘행복해지기’로결심했다”고썼다.이때의행복은자신이한일을없었던셈치고그뒤의인생을즐기겠다는뜻이아니다.가해행위를통해만족을꾀하던자신으로는본질적으로다시태어날수없기에,삶을긍정하는태도를다시익히고자긍심을되돌리겠다는결심이다.
가해자가인격을다시쓸수있을까,이로써피해자와가해자가대화할수있을까.이질문에간단히답할수있는사람은없다.그러나대화가불가피한세계에살고있음은자명하다.우리는가해자를단죄하겠다고칼을휘두를수없고,성인을자처해대속할수도없다.피해-가해의도식에연루된우리는계속갈등해야하며,책임을평생짊어진다는함의를가죽을씹어서연하게만들때처럼숙고해야한다.다만,취약한우리인간에게희망이랄게있다면,언어로써구조를희구할수있다는것,우리존재를조정해나갈수있다는것이다.니노미야와사이토가열어젖힌영역은시도와실패의땅이다.그지대는더많은시도와실패로넓어져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