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프라이 (시대의 예술, 세기의 우정)

로저 프라이 (시대의 예술, 세기의 우정)

$28.35
Description
버지니아 울프의 첫 번째 평전이자 마지막 출간작
수천 통의 편지를 검토해서라도 기록할 수밖에 없었던 우정
위대한 비평가이자 외면받는 화가, 만인의 친구이자 지독한 외골수
파편을 모아 복원해낸 로저 프라이라는 입체의 인간

한 사람의 모든 면을 이해하기란 몹시 수고스럽고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다. 한 사람은 대개 한 가지 모습으로 인식된다. 모순되는 이미지는 쉽게 주의를 벗어나고 때로는 의식적으로 부정당한다. 이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상상 이상의 집요함, 그리고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이 필요하다. 『로저 프라이』는 버지니아 울프가 그런 집요함과 애정을 잉크 삼아 집필한 평전이다. 로저 프라이라는 타인을 활자로 재구성하기 위해 그는 온갖 기록을 파헤쳤다. 로저 프라이의 비평과 저서는 물론 그가 직접 쓴 편지와 그에게 온 편지, 그의 지인이 다른 지인에게 보내며 로저 프라이를 언급한 편지, 조롱 섞인 신문 기사와 그에 대한 로저 프라이의 반응이 담긴 편지까지.
강도 높은 노동을 감당한 배경에는 두 사람의 깊은 우정이 있었다. 그들은 작가와 예술가, 철학자의 모임인 블룸즈버리 그룹에서 오래도록 교유했다. 로저 프라이가 울프의 언니와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더욱 긴밀해졌다. 울프는 그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삶의 새 출발을 가능하게 해준 사람은 바로 로저 프라이였다. 내 모든 친구들 중 나를 가장 적극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방법으로 도와준 사람도 그였다.”
그렇다면 로저 프라이는 누구일까? 가장 먼저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역시 20세기 미술의 흐름을 재편한 비평가라는 것이다. ‘후기 인상주의’ 개념을 정식화했으며 세잔, 마티스, 고갱, 반 고흐 등 거장들을 발굴해낸 그는 미술사에 다시 없을 업적의 소유자다.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가 목표한 것은 로저 프라이라는 인물의 모든 면을 보는 것이었다. 20세기 초 왕성히 활동한 비평가이자 자신의 재능에 평생 열등감을 느낀 화가로. 모두에게 환영받은 유명 인사이자 모두가 함께 일하기를 기피한 독선가로, 가정적인 아버지이자 아버지에게 근심을 안긴 소년으로, 미술계의 최고 권위자이자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여러 일을 병행해야 했던 노동자로. 객관적인 기록과 주관적인 서술이 한데 모여 살과 피를 구성해내며 마침내 살아 움직이는 한 사람의 모습으로 독자 앞에 나타난다. 시작은 물론 유년 시절이다.

저자

버지니아울프

모더니즘을대표하는20세기영국의작가.1882년런던에서태어나킹스칼리지에서역사학과그리스어를공부했으나여성이라는이유로정식학위는받지못했다.훗날‘블룸즈버리그룹’으로불리는지적공동체에서로저프라이,리턴스트레이치,클라이브벨,존메이너드케인스등과교류하며당대의권위와제약에저항하는예술실험을이어갔다.1912년그룹의일원이자작가인레너드울프와결혼한뒤1915년첫소설『항해』를시작으로『밤과낮』『댈러웨이부인』『등대로』『올랜도』등의역작을발표해큰호응을얻었다.『자기만의방』과『세월』등의작품에서여성해방문제를다루며현재까지도선구적인페미니스트의일원으로평가받는다.장편소설아홉편을비롯해평론,희곡,에세이등방대한저작을남겼다.제2차세계대전의공포속정신질환의악화를우려해1941년3월28일,59세의나이로우즈강에투신해생을마쳤다.

목차

1장별개의종족―유년시절
2장이해받지못할확신―케임브리지
3장런던,이탈리아,파리―예술기행
4장온세상이우리의공범―결혼
5장끈질긴믿음과극단적인망설임―창작과비평
6장삶은너무도절박해―미국활동
7장회화의위대한시대―후기인상파전시회
8장새로운정열―오메가공방
9장삶의가장자리―전쟁시기
10장상상력과디자인―프라이의미학
11장변형―말년

옮긴이의말
연보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엄숙한집안과자유분방한정신

로저프라이는1866년12월14일,영국의한퀘이커교도집안에서태어났다.부유하지만엄격한가정이었다.퀘이커교의전통에따라퀘이커교도끼리결혼한그의부모님은배우자를선택한방식만큼이나엄격한윤리관을갖고있었다.그의아버지는“알수없는이유로우리를갑자기윤리적인죄책감에빠지게”하곤했고,어머니는“얼굴에담긴의미를읽어내는법”을배울수밖에없게끔아이들을양육했다.그런부모가자녀들에게바라는것은단하나,아이들이퀘이커교의교리에알맞은과학의길로나아가는것이었다.로저프라이는이기대를완벽히충족시켜주었다.“폭력에대해병적인공포”를안긴서닝힐의학교에서,그리고“방학까지남은몇주,며칠,심지어몇초까지시간을잴정도로”지루했던클리프턴의학교에서언제나1,2등을다투었으며특히과학에뛰어났다.그러나그의인생궤적은대학교에서완전히뒤바뀐다.
케임브리지는그가이전에겪었던그어떤학교와도다른곳이었다.멋진친구들이가득했고,언제라도흥미로운토론을벌일수있었으며,지적호기심을자극하는지식이널려있었다.그리고미들턴교수와의만남이있었다.그는“동방의마술사처럼두툼한실내복에스컬캡을”쓰고,페르시아타일이나렘브란트의원작처럼“너무나놀라운것들”을학생들에게보여주었다.로저프라이는그에게매혹당했고자극받았으며“자신의진정한소질은과학이아니라예술에있다고생각”하기에이른다.“사랑하는아버지”하고로저는아버지의근심을부채질한다.“얼마나실망스러우실지잘알고있어요.그럼에도이말씀을드리는까닭은,이모든것을고려해보아도이것이제가진정해야하는일로느껴지기때문입니다.”과학이퀘이커교집안의가풍이었다면예술은“금지대상”에가까웠다.그와부모님사이에끝없는갈등이불붙은것은당연한일이었으며,그럼에도로저는평생이결정을무르지않았다.그리고예술활동이시작된다.

위대한비평가이자외면받는화가

로저프라이는쉬지않고일했다.원인모를내부통증에몇년째시달린끝에고려했다는것이“심지어”“일주일쯤쉬는일”이었을정도다.『아테네움』지에비평을싣는걸시작으로케임브리지등대학에서미술강연을했으며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큐레이터로일했고뉴잉글리시아트클럽(NEAC)의심사위원을맡았다.작품의진위를감정했고저서를집필했으며그밖에도벽화,초상화,인테리어작업등을닥치는대로해냈다.
하지만그중에서도가장잘알려진활동은단연후기인상주의의창시일테다.1910년,그는자신만의미학을바탕으로≪마네와후기인상파≫전시를개최했다.세잔과피카소,마티스,쇠라,반고흐,고갱등을발굴해낸전시였다.대중의반응은폭발적이었다.그그림들이 “터무니없고, 무정부주의적이며,유치”하다고그들은말했다.“드로잉실력은교육을받지못한일고여덟살어린이수준”이고“기법은손바닥에침을뱉고나서석판에문질러닦는남학생의짓”과다를바없다는것이었다.대중과화가,비평가를가리지않고비난이쏟아졌고,로저프라이는졸지에“세련되고존경받는예술안내자에서‘믿을수없이경박하고좋게말해서머리가살짝돈사람’”이되어버렸다.그러나우리는그결말을안다.전시는결국대중을설득해냈고,소개된화가들은불멸의거장이되었다.“당대의기호가한사람에의해바뀔수있다면,그변화는로저프라이가이끈것이다”라는케네크클라크의평가는여기서비롯된것이다.
비평가로서이토록빛나는성취를일궈낸것과는달리그의그림작업은언제나난항이었다.미술적재능이부족하다는회의감이늘그를따라다녔다.퀘이커적양육방식이무의식을지나치게억압했기때문일지도모르고,미술에대한방대한지식이오히려독으로작용했기때문인지도모른다.어느쪽이건그는“토론을할때는뒤처지지않는다고느”꼈지만,“하다못해친구의집에걸어놓을만한그림이라도그릴수있을지”는확신하지못했다.다른무엇보다도그림을그리는일에서가장강렬한즐거움을맛보았으나다른이들은그의그림에별관심이없었다.결국스케치몇점만겨우팔린어느개인전이끝난뒤로저는“다시는개인전을열지않을것”이라선언한다.

만인의친구이자지독한외골수

로저프라이의평전에서그가예술사에미친영향만큼이나두드러지는것은그의인간적인매력이다.그에게는수준높은강의를즉석에서펼칠만큼의지성이있었다.그러면서도신랄한유머감각을갖추고있었고,예술가들의생활고를해결해주기위해극심한노동을자처할만큼마음씨가따뜻했다.만나는사람마다그의친구가되었다.첫번째우정이었던맥태거트부터로우스디킨슨,조지버나드쇼,헨리제임스……그리고이름조차언급되지않은많은이들까지.그의목소리도여기에힘을보탰다.버지니아울프가묘사하길그에게는“아름다운목소리와,어디서물려받은재주인지는몰라도말할때사실과감정을동시에전달하는힘”이있었다.그힘은실로대단해서“화를내는모건을설득해(…)1000파운드를기부하게”만들기도하고,로저프라이라면치를떨었던교수조차그가“아주매력적인남자”라고인정하게만들기도했다.
그러나다른한편으로그는몹시가까이하기어려운사람이었다.그는어떤생각이“이성적으로납득될때까지”시험하길반복했고,그때문에종종주변인을괴롭게했다.이런태도는일을할때더두드러졌다.“계획을짜고실무를진행하는과정에서”그는“독선적이고무자비했다”.“극단적으로비사업적”이었고“넓은의미에서완전히사심이없었다”.이를테면아이디어를밀어붙이는데만몰두해문서기록없이계약을체결하곤했다.체계적이지못하고강압적인그의태도때문에많은이들이그와일하길기피했으며,그중한명은그가세상을떠났을때“무솔리니나히틀러,스탈린이죽은것같은기분”이라는말을남기기도했다.울프는그런그의이면역시표백없이전달한다.그로써로저프라이에게빛을드리우며그림자가지게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