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선사 연구 3: 발해, 고려

만선사 연구 3: 발해,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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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케우치 히로시池內 宏(1878~1952)는 근대 일본의 대표적인 동양사학자로, 특히 만선사滿鮮史(만주와 조선의 역사) 연구의 기틀을 닦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일본 동양사학계 내에서는 방대한 사료 섭렵과 치밀한 고증 능력으로 ‘거두’로 인정받지만, 한국 사학계에서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 등 일제의 식민 지배를 학술적으로 뒷받침한 식민사학자로 평가받는다. 특히 고구려의 발상지와 수도 이전, 광개토대왕비 연구 등에 대해 집중했으며 유리왕이 옮긴 국내성을 집안集安으로 비정하는 기초를 닦았다. 이는 오늘날 고고학적 성과와도 상당 부분 일치한다. 집안의 통구 일대 고분들을 조사하여 광개토대왕릉비와 장군총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했다. 낙랑군을 평양 일대로 보는 등 한사군의 위치를 한반도 내로 비정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한국사의 시작을 외세의 지배로부터 설정하려는 식민사학적 구도를 강화했다는 국내 학계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번 『만선사 연구』 전3권의 완역은 이케우치 히로시의 연구의 대부분을 망라한다. 번역은 해외 한국학의 연구 성과를 꾸준히 번역 소개해온 김범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가 맡았다. 이번 번역에서 역자는 池內宏, 『滿鮮史硏究』上世 2책과 中世 3책(吉川弘文館, 1933~1963)을 번역 대본으로 삼았으며 「숙신고肅愼考」 「물길고勿吉考」 등 한국사와 직접 관련이 적다고 판단되는 논문들은 번역에서 제외했다. 원서의 체제와 도판, 구두점 등을 최대한 원형 그대로 살렸으며 학자들이 연구의 기본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케우치 히로시는 사실 쓰다 소키치 등과 함께 그동안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 빼놓지 않고 거론되어온 학자다. 이번 번역으로 이케우치 히로시의 연구 성과를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 학자들은 물론 고려시대까지의 한국 고대사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도 지금 통설로 자리잡은 학설들이 최초에 어떤 모습으로 제기되어 완성되어나갔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저자

이케우치히로시

池內宏

1878년일본도쿄출생.1904년도쿄제국대학사학과졸업.1908~1914년남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도쿄지사의만선역사지리조사부연구원으로조선사연구.1916~1939년도쿄제국대학사학과교수로조선사강좌담당.1918~1941년조선총독부의위촉으로여러차례조선과만주를방문해고적조사·연구.
1937년제국학사원學士院회원에선출.1952년74세로별세.주요저서에『滿鮮史硏究』(전5권.吉川弘文館,1951~1979),『文祿慶長の役』(正編·別編,南滿州鐵道·東洋文庫,1914·1936),『日本上代史の一
研究』(近藤書店,1947),『元寇の新研究』(東洋文庫,1931)등이있다.

목차

제3권발해·고려

중세제1책머리말
중세제2책머리말
중세제3책머리말
1편발해의건국자에대해
2편고려태조의경략
[부설]평양의재성
3편골암성의위치에대해
4편신라말의진례성에대해
5편고려태조붕어이후왕위계승의한비극
6편고려성종대여진·거란과의관계
7편고려목종대의화란禍亂
8편거란성종의고려침략
9편고려시대동여진의해상침략
10편완안씨의갈라전경략과윤관의9성축조
[부설]포로모타부에대해
11편대화궁과이른바왜성
12편몽골의고려침략
13편고려원종대의폐립사건과몽골의고려서북면점령
14편고려의삼별초에대해
[부설]삼별초의반란
15편원세조와탐라도
16편고려에주재한원의다루가치
17편정동행성의창설과폐지
18편고려의원행성
19편고려공민왕의반원정책
20편고려공민왕대의동녕부정벌
21편고려우왕대의철령문제
22편고려말명과북원의관계
23편공험진과소하강

옮긴이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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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차례

출판사 서평

3권의주요주장

10편에서는고려시대사뿐아니라한국사전체에서도매우중요한사건인윤관의9성개척의지리적범위를정면으로다룬다.이글은쓰다소키치의「윤관정략지역고」(『만선역사지리연구』)와함께함흥설을대표한다.현재한국사학계에는정설이없는상황이다.기원전이나삼국시대도아니고1100년대의사건이어디서일어났는지파악하지못한다는것은작지않은문제로볼수있다.
함흥설을비판하려면이두논문을철저히분석해반론을제기해야할것이다.사료에나오는거리를중시해야한다고여겨진다.아래는한대목이다.
“그렇다면윤관이새로쌓은6성의이름을아뢴것은함주대도독부사와4주1진의방어사가임명된2월13일이전이며,유형약을보내승리를알린무렵으로생각된다.따라서6성의건설은늦어도예종3년(1108)정월말,곧정벌군이출발한날부터한달반안에이뤄진것으로여겨진다.”(400쪽)
21편에서는철령문제의핵심을지적했다.철령이북을반환하라는명의요구에대해고려는처음에함경도의철령으로오해했지만그것이아님을명확히지적했다.매우중요한문제이고객관적으로입증할수있는것인데도현재한국학계에서는아직도정설이없는상태다.
관련하여본문에서이케우치히로시는다음과같이주장한다.“그러나명이말한철령은결코함경도남쪽의고갯길을가리킨것이아니다.”(848쪽)“명이철령이라고부른곳은반드시강계(만포)맞은편황성黃城(皇城)부근이돼야한다.『명실록』(권189)의다음기사도그것을증명한다.(849쪽)“요동도사가지휘두사람을보내군사1000여명을이끌고강계에와서철령위를설치하려고한다”는두번째보고가도착하면서그철령위는고려인이잘알던황성黃城(皇城)이라는것은이미판명됐다고생각된다.(873쪽)


“대부분의일처럼학문도교류와소통,비판과조정을거치면서조금씩앞으로나아간다.
비판하려면(또는인정하려면)전체를더충실하고더정확히알아야한다.
그런생각에서이번역을시도해봤다.”_옮긴이의글

일본학계의인물평

“이케우치교수는한국·‘만주’의고대사를강의했다.개설은전혀하지않고오로지개별연구만했다.또연구의초보적인것은강의하지않았으며,학생들이이해하든말든개의치않고강의했다.강의초고는깔끔한문장체의원고로돼있어서그대로논문으로발표할수있는것이었다.(…)그의연구에는독특한명석함이있었다.그것은사료비판에기초를둔역사의재구성이다.그는사료를그냥받아들이지않고사료의착오를항상적출摘出해사료배후에있는사실을추구했다.또사료에남아있지않은사실이있을수있다고생각했다.풍부한사료가있을때보다사료가적은분야를논리적으로유추하는데그의장기가발휘되었다고생각한다.”
_하타다다카시旗田巍(1908~1994),전도쿄도립대학교수

“그뒤까지미즈타니데이지로水谷悌二郎씨의마음에남아있던사람은한국사의이케우치교수였던것같다.이케우치교수의독특한사료비판과무단적武斷的으로도보이는날카로운추론은그때는순순히따라갈수없을것같았지만강의를들을때마다열심히필기했고,그노트를평생소중히간직해지금도남아있다.특히광개토왕비를깊이연구하게되면서자주이케우치노트를다시읽거나그의관련논문을다시읽었으며강연회등에참석하기도했다.일기장에신문의부고기사를붙인것은1952년에
별세한이케우치선생의경우뿐이며,같은사례는달리없다.”
_다케다유키오武田幸男(1934~2021),전도쿄대학교수

“이케우치교수는자료를읽으면서‘이곳은뜻이통하지않는다’거나‘이글자는사용법이적절하지않다’는의견을연필로적어놓았다.한글자한글자꼼꼼히읽어구두점도세밀히구분해찍었다.그런성실함을우리는좀처럼해낼수없을것같다.4000장의원고라면그렇게꼼꼼히읽을경우아무것도하지않고반년정도는분명히걸릴것이다.”
_미카미쓰기오三上次男(1907~1987),전도쿄대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