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자기 자신을 문제시하지 않는 공부는 불성실한 공부다”
에고가 시시해지면서 공부길도 정교하게 시시해지는 시대
혼자만의 삶의 양식을 발명·유지하는 주체는 어떻게 가능한가
동무론과 더불어 ‘혼자’를 어떻게 조형하고 실천할 것인가
에고가 시시해지면서 공부길도 정교하게 시시해지는 시대
혼자만의 삶의 양식을 발명·유지하는 주체는 어떻게 가능한가
동무론과 더불어 ‘혼자’를 어떻게 조형하고 실천할 것인가
생활공부 속에서 실력은 자란다
이 강연집은 저자의 전작 『동무론』을 다시 읽는 데서 시작한다. 또한 학문과 이론 바깥에 있어 우리 인식 체계로부터 배제되어왔던 초현실적 세계를 다루는 강의를 펼친다. 나아가 언제나 그래왔듯이 공부에 대해 논하는데, 자본주의적 세속을 “어질고 유익하게” 건너가려면 우리에겐 혁명보다 공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공부는 지식이나 실천을 가리키지 않는다. 물론 지식이나 실천은 중요하다. 그것은 마음의 ‘지형’을 다르게 그리면서 사회적 주체화에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식은 종종 새로운 불화의 덫이 된다. 그 안에는 여전히 에고가 단단히 붙들려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실천하는 공부는 마음의 ‘경계’를 바꾸는 식으로 주체의 존재론적 재편성을 돕는다. 이 공부는 자신을 구제하고 남을 돕는 수행하는 공부다. 저자는 자기 자신을 문제시하지 않는 공부는 불성실한 공부라고 말한다.
‘나’는 무엇보다 내 생활이고, 생활은 다양한 반복이며, 반복을 메타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공부다. 일상의 바탕을 지닌 공부는 마음의 완악과 애착을 걷어낸다. 에고가 타자와의 어울림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할 때 우리는 공부하고 연대함으로써 새로운 장소를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이 가운데서 자유를 되찾게 되는데, 자유는 오직 겸허(빔) 속에서만 가능한 마음의 경계다. 이러한 생활공부 속에서 ‘실력’은 자란다. 실력은 자본주의적 교환을 거부한다기보다 그 안에서 어긋냄의 생활양식을 기르는 것이다.
저자가 정의하는 실력은 실력주의와 거리가 멀며, 상투성의 낌새가 전혀 없다. 실력이라 함은 이웃·타자·사린四隣(사물-동식물-사람-[귀]신)에 대한 응하기다. 잘 응하려면 에고를 바깥으로 외출시켜 적절한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이 외출을 통해서만 ‘자아의 진실을 대면한다’는 학술과 수행의 이념에 근접할 수 있다. 어울림과 응하기의 지혜 및 꾀가 자라나는 것은 이 과제를 통과하는 과정과 겹친다. 다시 말해 공부는 새로운 습관과 버릇을 얻는 것이며, 새로운 생활양식 속에 자신을 묶음으로써 ‘연극적 실천’이 가능해진다.
공부는 ‘혼자’를 어떻게 조형하고 실천하는가에 달려 있다
저자의 공부와 실천론에 대해 어떤 이들은 전기-후기로 나누기도 했다. 다시 말해 2008년 『동무론』을 펴냈을 당시 저자가 인문좌파였다면, 2017년 『집중과 영혼』을 펴내면서는 인문우파로서의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다. 전자가 자본주의적 체제 아래서 인문주의적 연대를 모색·실천했던 반면, 후자는 자기 구제로서의 공부길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구분법보다 ‘무능의 텅 빈 중심’에서 생겨나는 창의성과 급진성을 생활양식에 적용하면서 중도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서 얻는 실용성이 더 중요할 것이다. 저자의 공부론은 늘 생활에서 벗어나지 않는, 실용성을 기준으로 삼는다.
『생활공부와 현명한 관념론의 길』에서도 저자는 ‘세상을 바꿀 가능성이나 필요 없이 한 사람이 자기 자신과 주변을 바꿀 수 있으면 그 자체로 실재의 역사나 정신의 기억이 될 만하다’고 말한다. 인격과 행위의 진동은 기록되고, 반복 가능성의 지혜를 퍼뜨리기 때문이다. 누군가 한 마을을 구제할 수 있다면 그는 세상을 구제한 것이다.
그렇다고 관념론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관념론과 실천론은 함께 가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명한 관념론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자기 인생을 실험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변화와 성숙을 통한 ‘되기’가 없다면 무엇을 깨치거나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다. ‘되기’는 기존 시스템과 상식에 순응하는 대신 ‘인생은 해보는 것’이라는 의지로써 에고의 지지부진함을 넘어 생각과 생활의 변화를 이루고, 이를 기록한다. 둘째, 초의식·초자연 영역에 대한 해석과 실천에서는 무엇보다 ‘모른다-모른다-모른다’라는 태도로 조심하면서 끈기를 지녀야 한다. 셋째, 실천에서 얻은 앎과 패턴화에서 얻은 이치를 생활에 적용하면서 여러 공부론의 성취와 꼼꼼히 대조하고, 또 기초적 자원이 되는 마음자리를 낮추며 비우는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것은 달리 말해 ‘장소화’다. 장소화는 사람이 사물에 응하는 방식 중 하나다. 정신과 정성이 사물들과 함께 존재하는 곳은 생활 체감을 얻으며 장소화를 이루고, 그곳에서 사람은 평온하게 마음 붙일 수 있다.
저자는 인간의 자기 구제가 정신 혹은 마음에 의해 열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진화론을 돌아보면 인간 마음의 기원과 진화적 미래가 어떻게 자리해갈지 단언할 수 없다. 마찬가지 차원에서 이 책이 비중 있게 다루는 ‘초월’ 역시 ‘모른다’는 겸허함으로 대할 것을 권한다.
앞선 시대의 주체화나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이미 빛바랬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자기 규칙에 대한 복종만이 단단한 주체를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특히 저자 자신의 오랜 경험을 나누며, 공부는 ‘혼자’를 어떻게 조형하며 실천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당신이 혼자 있을 때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엇을 어떻게 반복하고 있는지가 곧 현재 당신의 공부가 도달한 실력의 지표”다.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자기의 중심을 충분히 낮추고, 마음을 둘 수 있는 장소와 사물들을 창안해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놓친 채 상품은 상품대로 넘쳐나고, 마음은 마음대로 넘쳐난다면 그에게 이미 혼자란 없으며, 그 존재는 서서히 부스스해지고 부서질 것이다.
이 강연집은 저자의 전작 『동무론』을 다시 읽는 데서 시작한다. 또한 학문과 이론 바깥에 있어 우리 인식 체계로부터 배제되어왔던 초현실적 세계를 다루는 강의를 펼친다. 나아가 언제나 그래왔듯이 공부에 대해 논하는데, 자본주의적 세속을 “어질고 유익하게” 건너가려면 우리에겐 혁명보다 공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공부는 지식이나 실천을 가리키지 않는다. 물론 지식이나 실천은 중요하다. 그것은 마음의 ‘지형’을 다르게 그리면서 사회적 주체화에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식은 종종 새로운 불화의 덫이 된다. 그 안에는 여전히 에고가 단단히 붙들려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실천하는 공부는 마음의 ‘경계’를 바꾸는 식으로 주체의 존재론적 재편성을 돕는다. 이 공부는 자신을 구제하고 남을 돕는 수행하는 공부다. 저자는 자기 자신을 문제시하지 않는 공부는 불성실한 공부라고 말한다.
‘나’는 무엇보다 내 생활이고, 생활은 다양한 반복이며, 반복을 메타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공부다. 일상의 바탕을 지닌 공부는 마음의 완악과 애착을 걷어낸다. 에고가 타자와의 어울림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할 때 우리는 공부하고 연대함으로써 새로운 장소를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이 가운데서 자유를 되찾게 되는데, 자유는 오직 겸허(빔) 속에서만 가능한 마음의 경계다. 이러한 생활공부 속에서 ‘실력’은 자란다. 실력은 자본주의적 교환을 거부한다기보다 그 안에서 어긋냄의 생활양식을 기르는 것이다.
저자가 정의하는 실력은 실력주의와 거리가 멀며, 상투성의 낌새가 전혀 없다. 실력이라 함은 이웃·타자·사린四隣(사물-동식물-사람-[귀]신)에 대한 응하기다. 잘 응하려면 에고를 바깥으로 외출시켜 적절한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이 외출을 통해서만 ‘자아의 진실을 대면한다’는 학술과 수행의 이념에 근접할 수 있다. 어울림과 응하기의 지혜 및 꾀가 자라나는 것은 이 과제를 통과하는 과정과 겹친다. 다시 말해 공부는 새로운 습관과 버릇을 얻는 것이며, 새로운 생활양식 속에 자신을 묶음으로써 ‘연극적 실천’이 가능해진다.
공부는 ‘혼자’를 어떻게 조형하고 실천하는가에 달려 있다
저자의 공부와 실천론에 대해 어떤 이들은 전기-후기로 나누기도 했다. 다시 말해 2008년 『동무론』을 펴냈을 당시 저자가 인문좌파였다면, 2017년 『집중과 영혼』을 펴내면서는 인문우파로서의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다. 전자가 자본주의적 체제 아래서 인문주의적 연대를 모색·실천했던 반면, 후자는 자기 구제로서의 공부길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구분법보다 ‘무능의 텅 빈 중심’에서 생겨나는 창의성과 급진성을 생활양식에 적용하면서 중도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서 얻는 실용성이 더 중요할 것이다. 저자의 공부론은 늘 생활에서 벗어나지 않는, 실용성을 기준으로 삼는다.
『생활공부와 현명한 관념론의 길』에서도 저자는 ‘세상을 바꿀 가능성이나 필요 없이 한 사람이 자기 자신과 주변을 바꿀 수 있으면 그 자체로 실재의 역사나 정신의 기억이 될 만하다’고 말한다. 인격과 행위의 진동은 기록되고, 반복 가능성의 지혜를 퍼뜨리기 때문이다. 누군가 한 마을을 구제할 수 있다면 그는 세상을 구제한 것이다.
그렇다고 관념론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관념론과 실천론은 함께 가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명한 관념론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자기 인생을 실험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변화와 성숙을 통한 ‘되기’가 없다면 무엇을 깨치거나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다. ‘되기’는 기존 시스템과 상식에 순응하는 대신 ‘인생은 해보는 것’이라는 의지로써 에고의 지지부진함을 넘어 생각과 생활의 변화를 이루고, 이를 기록한다. 둘째, 초의식·초자연 영역에 대한 해석과 실천에서는 무엇보다 ‘모른다-모른다-모른다’라는 태도로 조심하면서 끈기를 지녀야 한다. 셋째, 실천에서 얻은 앎과 패턴화에서 얻은 이치를 생활에 적용하면서 여러 공부론의 성취와 꼼꼼히 대조하고, 또 기초적 자원이 되는 마음자리를 낮추며 비우는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것은 달리 말해 ‘장소화’다. 장소화는 사람이 사물에 응하는 방식 중 하나다. 정신과 정성이 사물들과 함께 존재하는 곳은 생활 체감을 얻으며 장소화를 이루고, 그곳에서 사람은 평온하게 마음 붙일 수 있다.
저자는 인간의 자기 구제가 정신 혹은 마음에 의해 열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진화론을 돌아보면 인간 마음의 기원과 진화적 미래가 어떻게 자리해갈지 단언할 수 없다. 마찬가지 차원에서 이 책이 비중 있게 다루는 ‘초월’ 역시 ‘모른다’는 겸허함으로 대할 것을 권한다.
앞선 시대의 주체화나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이미 빛바랬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자기 규칙에 대한 복종만이 단단한 주체를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특히 저자 자신의 오랜 경험을 나누며, 공부는 ‘혼자’를 어떻게 조형하며 실천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당신이 혼자 있을 때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엇을 어떻게 반복하고 있는지가 곧 현재 당신의 공부가 도달한 실력의 지표”다.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자기의 중심을 충분히 낮추고, 마음을 둘 수 있는 장소와 사물들을 창안해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놓친 채 상품은 상품대로 넘쳐나고, 마음은 마음대로 넘쳐난다면 그에게 이미 혼자란 없으며, 그 존재는 서서히 부스스해지고 부서질 것이다.

생활공부와 현명한 관념론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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