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아닌 곳에서

집 아닌 곳에서

$20.00
Description
“역사가가 되려면 오래 살고 보아야 한다”

홍콩 도서상 수상 ⨉ 싱가포르 문학상 수상

혈통은 중국, 고향은 말라야, 국적은 오스트레일리아,
출생지는 인도네시아, 거주지는 싱가포르……
한 화교 이방인 소년을 디아스포라 역사가로 빚어낸 방랑의 여정
동남아시아 화교의 위치에서 중국사와 동남아시아사, 중국 디아스포라를 연구해온 대표적 역사학자 왕겅우의 국내 첫 소개작. 1권은 소년기를, 2권은 청년기를 회고한다. 1930년 네덜란드령 동인도 수라바야(현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나 영국령 말라야(현 말레이시아)에서 성장해, 중국과 싱가포르의 대학생활, 영국의 유학생활을 거쳐 말레이시아에서 학자로 발을 내딛는 여정이 담겨 있다. 그는 말라야에서 아버지에게 고전 한문을 배우고 영국식 학교를 다니면서, 난징 국립중앙대학에서 격동의 중국 현대사를 몸으로 겪으면서, 런던대학 소아스에서 서구 역사학 방법론을 익히면서 어느 하나의 학문 전통에도 완전히 귀속되지 않는 역사학자로 성장한다. 영국의 교육 제도와 중국의 전통문화, 동남아시아 복합사회라는 삼중의 배경은 그에게 중국을 안이 아닌 밖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길러주었고, 이는 화교를 단일한 정체성이 아니라 다양한 ‘중국성’을 구성해온 존재로 파악하는 독창적 연구로 이어졌다.
10세기부터 현대까지 장기적 관점에서 중국 문명과 디아스포라라는 큰 질문을 던져온 역사학자가 노년에 이르러 자기 삶으로 시선을 돌린 것은, 거시적 주제로는 접근할 수 없는 역사의 인간적 측면에 다가가려는 시도다. 그렇게 써낸 회고록에서 떠오르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며 재편되는 동남아시아 역사이며, 그 굵직한 역사에 포섭되지 않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면면들, 특히 동남아시아에 이주한 중국인들의 생활상이다. 이와 동시에 여러 세계를 거치며 ‘집 아닌 곳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던 중국계 소년이 다중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마침내 ‘있는 곳이 집’이라고 말하는 학자가 되어가는 과정이 드러난다. 따라서 이 회고록은 서구 역사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던 동남아시아사, 그리고 화교사를 조명하는 역사서이면서, 한 역사학자의 세계관이 형성되는 배경을 따라 그의 독창적 연구 세계로 들어가는 입문서이기도 하다.
소년기와 청년기, 두 권으로 구성된 회고록은 어머니가 그에게 남겨주신 기록, 저자와 아내가 자녀에게 전해주려고 적어둔 기록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이들이 그토록 성실히 집안 이야기를 자식들에게 전했던 건 단지 유교 사상을 따라 전통을 중시하는 중국 가문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집이 결코 정주해 있지 않았으므로 기록으로 집을 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록은 동남아시아 화교의 삶의 조건이자, 동남아시아 역사의 한 조건을 보여준다. 흔히 ‘동양의 유대인’이라 불리는 화교들은 여러 이유로 중국에서 동남아시아 곳곳으로 이주해와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이루고 현지인들과 공존해왔다. 이는 탈식민 이후 동남아시아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국민국가 건설의 흐름 속에서 긴장을 낳기도 했다. 이 회고록은 격동기 속에서 여러 세계 사이를 건너며 살아야 했던 이들의 감각과 기억을 섬세하게 복원한다. 여러 민족과 국가 정체성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오늘날, 이 과제를 앞서 짊어졌던 역사학자의 삶의 역사는 하나의 중요한 참조점이 될 것이다.
저자

왕겅우

王賡武
동남아시아화교연구의선구자이자,중국과동남아시아의역사와문명을장기적시각에서탐구해온세계적역사학자.자바섬수라바야에서중국인부모아래태어나영국령말라야(현말레이시아)이포에서성장했다.싱가포르의말라야대학에서역사학을공부했으며,영국의런던대학소아스에서중세사박사학위를받았다.말라야대학역사학과에서강의를시작해학과장을지냈고,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극동사학과장,홍콩대학총장,싱가포르동아시아연구소소장등을역임했다.현재싱가포르국립대학석좌교수이자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명예교수다.아시아와서구학계를가로지르며활동해온그는내부자이자외부자의시선으로중국과중국디아스포라의역사를새롭게해석해왔다.후쿠오카아시아문화상과탕상중국학부문을수상했으며,최근저서로『남양』『집아닌곳에서』『중국의재접속』『있는곳이집』(공저)『여러문명과함께』『중국근대화의길』『울타리없는집』등이있다.

목차

머리말

1부나의작은세계
수라바야에서이포로
그린타운을둘러싼세계
한차례중국의맛
제국의종말
어머니의기억

2부유랑의시작
말라야에찾아온전쟁
거리의천사
새로운공부방식
새로운기준
기다리던귀향
어머니가기억하는전쟁

3부난징생활
대가족과의재접속
난징으로
부모님과함께한다섯달
새공부의시작
대학에서만난선생님들
내게가르침을베푼친구들
중국을떠나던어머니의기억

4부다시이포에서
리오리엔트
새출발

옮긴이의말
왕겅우연보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영국과일본식민지배하동남아시아에서
집,정체성,소속감을찾아가는성장기

1권은오래도록바라던중국으로의귀환을시도했다가내전으로18개월만에이포로돌아오는과정을담고있다.소년기의저자가씨름하던주제는동남아시아화교로서겪는정체성과소속감문제였다.그는말라야이포에서17년살았지만그에게고향은열다섯살까지가본적도없는중국이었다.이는그의중국인부모가중국으로귀환할때를대비해중국과집안이야기를거듭들려주고고전한문을가르쳐준덕분이었다.중국을바라보며이포에서살던그의가족은말라야사회에도중국인사회에도속하지않는이방인이었다.말라야에서중국인은외래인이었고,그중에서도그의가족은지역중국인사회에뿌리내리지않고언젠가중국으로돌아가기를꿈꾸던북방출신유교지식인집안이었기때문이다.
그의회고는이방인의감각에머물지않고부모님에게서물려받은중국의세계,식민지교육과대중소설을통해접한영국의세계,생활의터전인말라야이포의세계로점차확장되고서로겹쳐지며세계시민의감각으로나아간다.역사학자의회고록답게역사적사건과사적인순간들이서로긴밀하면서도우발적으로얽혀개인의삶의궤적을만들어나가는과정이탁월하게포착된다.아버지가생일선물로사주신지도책과도서관에데려가서빌려주신영문학소설이제2차세계대전의불안과정체성혼란을잠재우고,일제강점기로학교를나와거리를쏘다니고여러지역,계급의중국인집을전전하면서중국인정체성의복잡성을배운다.이러한순간들의연쇄를거쳐어느새그가영원한것은없고언제든뿌리로부터잘려나갈수있다는것을받아들이게되었을때,그의단편적순간들은의미있는하나의‘역사’로서숨쉬게된다.훗날중국과말라야라는두방향으로의끌림이상충하는게아니라자연스러운일이라는것을깨닫는미래를기다리면서.
그가나아가던순간들의바탕에는앎이있었다.그가지도책을보고공책에지명목록을적어가며배운것은자신이속한작은세계를넘어서는법이다.영어도서관에서빌려읽은소설들또한수많은삶과사회를상상하게했다.세계전체가앎의대상이되자,자신역시이포한동네가아닌세계의일부로자리잡을수있었다.그렇게글을읽고생각을굴릴수만있다면어느상황에도적응할수있다는자신을얻는다.거리에서다양한계층과지역출신의사람들을관찰하면서추상적이론보다사회현상에더깊은관심을품게된다.중국난징에서의대학생활에서는그동안영국의교육이나부모님의고전교육에서다뤄지지않았던혁명과민족주의,자유와평등을둘러싼논쟁을접하면서이후학자로서평생탐구할질문들을만나게된다.중국과동남아시아,해외중국인의관계를연구하는그의역사학은이미이시기에싹트고있었다.

탈식민과냉전의시대,
새로운동남아시아국가의탄생을꿈꾸었던한세대의열망과선택
세대륙을넘나들며집을일구어온디아스포라역사가의사랑과탐구의기록

2권은말라야를새로운고국으로바라보고학자로서그미래를함께만들어가고자했으나끝내오스트레일리아로떠나는이야기다.말라야연방시민권을취득한뒤싱가포르와영국에서대학생활을하고,말레이시아에서역사학자로발을내딛기까지의청년기를담았다.전작에서시작된정체성과소속감에대한탐구는이번책에서사랑과학문,그리고국가건설에대한성찰로확장된다.
탈식민과냉전의시대,새롭게탄생하는동남아시아국가들은민족과언어,종교가다른사람들을하나의공동체로묶어내야하는과제를안고있었다.중국계말라야시민이었던저자역시이러한시대적과제를자신의문제로받아들였다.말라야문학을통해말라야고유의복합사회를그려내고자했던재기넘치는대학시절을지나그는역사학자로서말라야대학역사학과의발전에힘쓰고말라야역사교육에참여했으며이신생국가의소개서가될『건국방략』을편찬하며다종족국가건설에기여하고자했다.
이책은독립과냉전사이에놓인동남아시아의역사를한중국계시민의시선으로보여준다.영국을비롯해유럽제국의퇴장과미국중심질서의부상,민족주의와공산주의의대립속에서그는어느진영에도완전히속하지않은채다종족사회의미래를고민했다.이는그가정치적활동에적극적으로나설경우바로추방되는중국계이기때문이기도했으며,혁명보다는협상과공존의길을지지하는정치적성향에서비롯된것이기도하다.그가정치적으로참여한일도종족기반정치를넘어선정당인게라칸당의창당을지원한정도였다.그의회고는냉전시기의특정정치적노선보다그시대를살아간평범한시민과지식인의감각을보여준다.
그의여정은이번에도국가귀속의이야기로끝나지않는다.말라야를고국으로삼고자했던노력은말레이시아연방에서싱가포르가떠나고종족간갈등이격화되는가운데한계를마주하고,그는점차학문을자신의집으로삼는길을선택한다.국가와이념의경계를넘어설수있는학문의자유는그에게새로운소속감의원천이되었다.20세기아시아의격랑속에서집과정체성을찾던소년의과제는여기서비로소새로운형태로마무리된다.

***
저자의기록한쪽에서는어머니(1권)와아내마거릿(2권)의기록이함께흐른다.어머니는동남아시아로이주한1세대중국인여성으로서의경험을생생하게전하고,마거릿또한저자와함께동서양을오가며학문과가정을꾸려가는삶을솔직하게밝힌다.저자의어머니는중국의항일전쟁을지원하기위해기금을모으는부녀동맹활동을활발히했고,마거릿또한영어교육분야에서경력을이어나가는학자였다.이들은역사학자를뒷받침한아내와어머니이면서,식민과탈식민의시대적조건아래에서스스로삶을개척한여성들이기도했다.
이들의기록은저자의학문적성취뒤에존재했던실제삶의조건들을구체적으로드러낸다.이로써한역사학자의삶을생활의차원으로끌어내리며,사랑과돌봄이어떻게한사람의사유를가능하게했는지보여준다.말레이시아를떠나오스트레일리아로이주하기전날밤,짐을꾸리던마거릿은저자에게“있는곳이집이지”라고말한다.여러나라와도시를거치며집을찾아헤맸던이들에게집은더이상특정국가의이름이아니었다.이회고록은결국그깨달음에도달하기까지의긴여정에대한기록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