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와 이를 모두 사용해 뜯고 맛보는 강남의 진짜 서민 음식
저자는 화려하고 격식 차린 고급 요리가 아니라, 자신이 나고 자란 골목과 사찰, 허름한 국수 가게에서 만난 서민들의 소박하고 진한 음식들을 이야기의 중심에 둔다. 상하이 털게(다자셰)는 알이 꽉 찬 암게와 내장이 고소한 수게를 발라 먹으며 '백사전'과 '양축'의 설화를 떠올리는 시적인 풍경을 전한다. ‘신선육 샤오마이와 낙과면’에선 설날 아침 유일하게 문을 연 골목 가게의 뜨거운 샤오마이 한 접시, 허름한 의자와 기름때 낀 바닥이지만 최고의 맛을 내는 ‘안경면관’의 쫄깃한 낙과면 등 추억이 깃든 면식을 생생하게 복원한다. ‘증쌍취와 취두부’에서는 삭힌 비름줄기와 취두부를 함께 쪄낸 ‘증쌍취’나 둥타 골목의 바삭한 취두부 튀김을 통해 강남 사람들이 사랑하는 독특하고 깊은 ‘꼬릿한 향’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사찰의 맛과 팽장반자’도 눈길을 끈다. 불교 사찰과 민간의 경계에서 전해 내려오는, 콩과 유채기름으로 부쳐내는 진귀한 두유피 요리 ‘팽장반자’와 채식 거위구이 ‘쑤샤오어’의 비화를 통해 음식에 담긴 오랜 역사와 장인들의 숨결을 조명한다.
대만의 미식 작가이자 현대판 ‘식신食神’이라 불리는 작가 주전판朱振藩은 이 책에 대한 추천 서문에서 “좋은 음식 글이란 실로 쓰기가 쉽지 않다. 음식의 멋을 알아야 하고, 나아가 그 깊은 맛을 몸소 깊이 터득해야 비로소 가능한 법인데, 이 책을 읽으며 바로 그러한 감흥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에 따르면 장쑤, 저장, 상하이 요리는 예부터 ‘관료의 요리官菜’로, 쓰촨 요리와 후난 요리는 ‘군인의 요리軍菜’라 일컬어져 왔다고 한다. 근대의 미식가 탕쩐창唐振常 선생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먹는 데는 세 가지 품계가 있다. 상품은 먹을 줄 아는 자(會吃)요, 중품은 먹기를 좋아하는 자(好吃)이며, 하품은 그저 먹을 수 있는 자(能吃)다. 먹을 수 있는 자는 배가 클 뿐이요, 먹기를 좋아하는 자는 식탐가에 불과하나, 먹을 줄 아는 자는 극히 복잡하여 그 아름다움과 나쁨을 품평하고 원리를 명확히 알며, 온갖 맛을 조화시키고 적절히 갖추어 다른 이의 장점을 배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스스로 한 체계를 이루니, 이는 상품上品 중의 상품이요 진정한 미식가라 부를 만하다.”
음식 이야기 절반, 사람 이야기 절반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음식 레시피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음식을 만들고 함께 나누던 사람들의 인생 역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다는 점이다. 할머니의 손맛, 어린 시절 마당에서 마작을 하던 이웃들, 장애를 딛고 양고기 항아리를 지켰던 절름발이 사장, 문화대혁명의 풍파 속에서도 사찰을 지켜낸 비구니 스님들의 이야기가 짧은 에세이 속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사람 사는 곳은 다 아프고 아련하며 아름답다는 진리를 미식을 통해 깨닫게 한다.
이 책의 특별한 점이 또 하나 있다.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저자 판청을 한국으로 초대한 역자들은 그를 데리고 서울의 뒷골목을 돌아다니며 한국 미식을 맛보게 했다. 그래서 이 책의 특별 부록인 ‘강남 미식가의 한국 미식 기행’이 탄생했다. 한국식 바비큐(삼겹살), 남산 도토리묵, 막걸리, 해장국밥, 간장게장 비빔밥, 홍어 등에 이르기까지 박학다식한 강남 문인의 눈으로 포착한 한국 음식에 대한 신선하고 유쾌한 시각이 독서의 재미를 더한다.
중국 상하이에서 오래 체류하며 자신들이 이미 강남미식가이기도 한 이 책의 옮긴이들은 서문을 통해 “강남의 서민 음식을 다루는 그의 글은 음식 이야기가 절반, 사람 이야기가 절반”이라며, “사람 사는 곳은 다 아프고 아련하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고 번역 후기를 전한다. 화려한 미식 가이드를 넘어, 한 시대의 풍경과 인간 군상의 체온이 고스란히 담긴 이 인문 미식 에세이가 독자들을 속담 속 강남의 깊은 맛과 향기 속으로 불러들이는 매혹적인 초대장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