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 숲속의 올빼미 : 상실의 계절을 보내는 이들에게 건네는 일흔 소설가의 애도 에세이

달밤 숲속의 올빼미 : 상실의 계절을 보내는 이들에게 건네는 일흔 소설가의 애도 에세이

$14.80
Description
★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나오키상, 시마세 연애문학상 수상 작가 ★
장르를 초월한 거장 ‘고이케 마리코’의 국내 첫 번역 에세이!

“슬픔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어떻게 다시 살아 내는지
그 방법을 나는 모른다.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일흔 소설가가 투명하게 비춰 낸 상실의 세계
고이케 마리코는 ‘호러 소설의 명수’로 잘 알려져 있지만, 굵직굵직한 수상 이력이 증명하듯 장르를 넘나드는 노련한 작가이기도 하다. 《달밤 숲속의 올빼미(月夜の森の梟)》는 국내 첫 소개되는 그의 에세이로, 암으로 투병한 배우자의 곁을 지킨 시간 그리고 이후 남겨진 자로서의 시간을 담은 작품이다. 두 사람은 소설가라는 같은 꿈을 품고 같은 지평을 바라보며 37년의 세월을 함께했다. 일본 대중문학의 정점이라 불리는 나오키상 후보에 동시에 올랐고, 나오키상을 둘 다 수상한 일본 최초이자 유일한 작가 부부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그러나 남편 후지타 요시나가가 말기 암을 진단받으며, 가루이자와 깊은 숲속, 고양이와 책이 있는 안온한 일상은 한순간에 붕괴된다.
배우자의 죽음 후 상실의 한가운데서 고이케 마리코는 책의 바탕이 된 연재를 수락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흘러가는 바깥의 시간과 자신 내부에 고여 있는 시간의 간극을 감각하며, 무수히 피어오르는 슬픔을 글로 비춰 냈다. 일흔의 소설가는 좀처럼 공감이나 위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거대한 상실은 극복될 수 없고, 이로 인한 세상과 나의 ‘어긋남’은 사는 동안 계속되리라는, 더없이 솔직한 독백만이 남는다.

저자

고이케마리코

나오키상,시마세연애문학상을수상한일본을대표하는연애소설작가.정열과낭만이담긴어른들의사랑을현실에가깝게그려내고있다.1952년도쿄에서태어난그녀는세이케이(成蹊)대학문학부를졸업하고출판사와잡지사에서일하다가1985년『당신에게서도망칠수없어』를내놓으며소설가로데뷔하였다.1989년『아내의여자친구』로제42회일본추리작가협회상,1996년『사랑』으로제114회나오키상,1998년『욕망』으로제5회시마세연애문학상,2006년『무지개저편』으로제19회시바타렌자부로상을수상하였다.그외저서로는『아오야마창관』『유리정원』『무반주』『물의날개』『겨울호수』『에리카』『여름의숨결』『소문』『밀월』『쁘아종향기가나는여자』『사랑하는남자들』『노스탤지어』『일각수』『낭만적연애』『밤마다어둠속에서』『밤은가득하다』등이있다.또한2001년남편인후지타요시나가가『사랑의영토』로나오키상을수상하면서‘일본최초의나오키상수상부부’가되었다.

목차

남편,후지타요시나가의죽음을애도하며||올빼미가운다|백년이고천년이고|고양이들|음악|슬픔이고이는자리|작가가두사람|이상한일|밤에깎는손톱|빛으로변해|내려쌓이는기억|최후의만찬|고양이의꼬리|생명이있는것들|잃는다는것|그날의컵라면|금목서|각자의슬픔|WithoutYou|먼저겪은사람들|죽은사람의서재|꿀같은기억|미시마유키오와다자이오사무|꿈의계시|상실이라는이름의막|봄바람|가상의죽음,현실의죽음|수난과열정|설녀|애정표현|어머니의손,나의손|고치에틀어박히다|기도|추모회|그때그때의소꿉놀이|샤를아즈나부르|안고싶고,안기고싶다|후회|벚꽃이필때까지|사랑하지않을수없어|사춘기는이어진다|동물병원에서|무덤까지|내선전화|이제는괜찮아|남은시간|죽은자의고요한얼굴|새의공동묘지|이어지지않는시간|신에게매달리다|반쪽||연재를마치고

출판사 서평

“나이든너를보고싶었어.
그럴수없다는걸알게되니섭섭하다.”

죽기몇주전,남편후지타요시나가가아내고이케마리코에게했다는말이다.당시두사람모두일흔을앞둔나이였지만후지타의눈에비친마리코는여전히젊은여인이었나보다.추억을입은시간은사람마다다르게인식되기마련이다.누구나고개를끄덕일풋풋한시절이,그들에게도있었다.37년전만나사랑에빠졌고함께살기시작했다.좁은아파트의더좁은방에서소설가를꿈꾸던두사람은책상을마주놓고질세라쓰고또썼다.

“동거를시작하고얼마되지않았을무렵,어느날아침그가쑥스러운기색으로이런말을꺼냈다.‘내가쓴소설이있는데,한번읽어보고솔직한감상평을들려주면좋겠어.’
그는내가다읽고소감을말해주기전까지다른곳에서기다리겠다고했다.원래부터가장난스러운상황극같은걸좋아하던남자였다.시간을정해근처호텔커피숍에서만나기로했다.
집에서자세를단정히하고그의작품을읽었다.그리고서둘러약속장소로갔다.커피를앞에두고기다리던그는,나를보자마자어색한미소를지었다.
‘정말좋던데’하고나는말했다.질투심이생길만큼대단한작품이거나,너무엉망이라어처구니없는작품이면어쩌지싶었는데,둘다아니어서기뻤다.그말도숨기지않고전했다.
그는진심으로안도한모습이었다.우리는천장이높고환한커피숍에서커피와케이크를먹었다.그리고각자앞으로쓰고싶은소설에대해이야기했다.”

작가의회고처럼‘행복한한때’였다.고이케마리코는사별과코로나를연달아겪으며,소설에서수천번은썼을고독이사실은무엇인지몰랐다고고백한다.고독을경솔하게써댄업보일거라고도했다.상실이나의것이될때사람은변한다.죽음역시마찬가지다.‘말기암에걸리면아무것도하지않고그냥죽는것’이이상적인죽음이라입버릇처럼말하던후지타요시나가는투병기간동안완전히변했다.살고싶다고했다.

“어느날,어느때를기점으로
모든것이무섭게변해버렸다.”

후지타요시나가가말기암으로여명6개월을진단받은그날은,고이케마리코의세계와시간을나누는분기점이됐다.그날이전과그날이후가하나의시간으로연결되지않고,기억과현실의경계는흐려진다.외부와나사이에생긴틈은곧타인과나를가르는막이기도했다.누구나각자의슬픔을짊어지고살아가지만그는안다.상실의형태와슬픔의양상은백이면백모두다르고,누군가에게온전히이해받기란불가능하다는것을.

“조심스레목소리를낮춰죽은남편이야기를꺼내거나내안부를걱정스레묻는사람은이제아무도없다.배려차원에서일부러그러는건아니다.그들에게는이미남편의죽음이과거의일이되었기때문이다.당연하고도건강한귀결이라고생각한다.
그런데나는어떠냐하면,남편의투병과죽음을겪는동안내내면의일상과나를둘러싼외부의일상이미묘하게틀어지고말았다.
외부에흘러가는시간과내속에서흘러가는시간사이에는분명히어긋난부분이있다.그런데도아무렇지않은얼굴로보통의삶을살아가고있다.아마그누구도이‘어긋남’을이해하지못할것이다.”

양쪽의세계에걸쳐있는고이케마리코를가만가만두드려깨우는건,하루하루다른모습을보여주는창밖의풍경그리고집안팎으로생동하는작은생명체들이다.계절을반복하며규칙적으로변화하는자연속에서후지타와쌓은크고작은추억들이기척없이되살아난다.슬픔또한모습을바꿔매일찾아들것이다.남겨진자의삶은계속되기때문이다.

책속에서

해가바뀌자변화는무시무시했다.매일낮,매일밤쇠약해져가는게보였다.목소리에서삽시간에힘이사라졌다.깡마른등의통증을모르핀으로겨우달래며,약간이라도상태가좋은날에는이런저런묻지도않은것들을그는내게이야기했다.언제죽어도좋아.옛날부터그렇게생각해왔어.죽는건두렵지않아.하지만생명체로서의나는아직살고싶어해.더이상살수없는곳까지와버렸는데,그게참이상하다.그말을들을때마다가슴이미어졌고울음이복받쳐올랐다._<남편,후지타요시나가의죽음을애도하며>에서

영정속얼굴은거기서시간이멈춘채영원히변치않는다.이제부터는나만나이를먹는다.세월이흘러,아들의영정앞에합장하는노파로보이는날도언젠가는찾아오리라.시간은막무가내로흘러간다._<슬픔이고이는자리>에서

예전에남편이내동댕이쳤던말들.억지를부려화를솟구치게하던말들을이것저것떠올려본다.그때그런소리를했었지,이런소리도들었지,꼬리에꼬리를물고‘어두운기억’이몸집을불려나간다.상실의슬픔이,흔들흔들출렁이던그희미하고부드러운윤곽이뾰족하고예리한무언가로변해가는느낌이든다.됐다.이렇게하면현실로되돌아갈수있겠다.편안해질수있겠다.든든한생각도들지만그것도잠시뿐,오래가지않았다._<잃는다는것>에서

언제였던가,의사인친구가재밌는말을했다.남편이죽고,내어딘가에‘마리코극장’이문을연것아니냐며.관객도마리코혼자,무대위연기자도마리코혼자.매일마리코가무대에올라어떤날의기억을재현시키면관객석의마리코가그것을보며때로는울고,때로는웃고,때로는화를내고,그러고있는것아니냐며.질려서그만두고싶을때까지계속해도된다고했다._<꿀같은기억>에서

버리지못했던작년연하장속에서‘올해도잘부탁합니다’라고적은남편의글씨를발견했다.뭔가틀려구겨버린연하장이었다.마지막연하장임을알면서그렇게쓴남편의심정을가늠해본다.체념과받아들임.숲어딘가에서생명이꺼져가는야생동물의그것과비슷할지도모르겠다._<가상의죽음,현실의죽음>에서

어느날밤,가만히있으면미칠것같은마음에눈을치운다는핑계로밖에나갔다.문득정신차려보니눈삽을쥐고선내가몸을흔들며오열하고있었다.쏟아지는눈물이영하의찬바람에휩쓸려갔다.그때의나는틀림없는설녀였다._<설녀>에서

그에대해모르는것이많았다는사실을이제야깨닫는다.죽음이시간을멈춘듯느껴지는까닭은영원히알지못할것들을남기기때문일것이다._<애정표현>에서

요즘들어남편의마지막얼굴을자주떠올린다.투병중,쉴새없이그를덮쳤던온갖괴로운감정들이신기할정도로깨끗이사라진얼굴이었다.죽음을직면한순간느꼈을불안과공포의흔적도보이지않았다.37년동안함께산남자가내게보인얼굴중,가장아름다운얼굴이었다.너무나도고요하고평온한나머지,누구보다잘아는얼굴인데도낯선남자의얼굴처럼느껴지기도했다._<죽은자의고요한얼굴>에서

때로는서로를미치도록미워했다.그러면서도용서했다.그러다결국마지막에는,이끼낀깊은숲어딘가에서가만가만살아가는암수한쌍처럼,서로에게서로가없어서는안될존재가되었다.반쪽이아니었다면그리될수없었을것이다._<반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