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 마땅하다 (박경린 소설집)

죽어 마땅하다 (박경린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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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 남자가 바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또 다른 남자는 저수지에서 떠오른다. 경찰은 두 죽음을 사고로 결론짓지만, 그 물속에는 오래된 시간이 가라앉아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미 지나간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평생 끝나지 않은 밤이다. 이 책 『죽어 마땅하다』는 죽음의 이유를 따라가며, 잊힌 줄 알았던 죄가 어떻게 다시 인간의 삶을 찾아오는지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세 여자가 있다. 정희, 경숙, 미영. 가난한 시절의 야간학교와 공장, 주안역 광장과 분식집, 서로의 허기를 채워주던 젊은 날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그러나 스무 살의 어느 여행에서 말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그날 이후 세 사람의 우정은 돌이킬 수 없는 침묵 속으로 흩어진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미영은 죽음과 함께 한 권의 다이어리를 남긴다. 그 안에는 용서도 화해도 아닌, 두 사람을 향한 부탁이 적혀 있다. 죽어 마땅한 인간들. 그 문장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한 생을 무너뜨린 사람들을 향한 오래된 절규처럼 남는다. 이제 남겨진 이들은 자신의 죄책감과 친구의 상처를 함께 짊어진 채, 늦은 복수의 길 위에 선다.

소설 『죽어 마땅하다』는 복수극의 외형을 지녔지만, 그보다 깊은 곳에서 침묵과 죄책감, 여성들의 우정과 상처를 파고드는 작품이다. 사건은 차갑고 서사는 강하게 밀려오지만, 그 안에는 한 번도 제대로 들어 올려지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이 있다. 이 소설은 묻는다. 오래전에 묻힌 죄는 정말 사라지는가. 말하지 못한 고통은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누군가를 큰 소리로 죽어 마땅하다고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저자

박경린

30년간영어강사로학생들과함께하며언어의즐거움을나누었다.은퇴후에는국가지질공원해설사로활동하며자연과사람을잇는이야기를전하고있다.책읽기를좋아해오랫동안독서모임을이어오며다양한삶과이야기를만났다.

예순에첫소설을세상에내놓는다.경기도화성의시골에서고양이두마리와함께살고있으며,마당을찾는여덟마리의길고양이도가족처럼돌보고있다.자연과동물,그리고평범한일상속에서발견하는작은온기와삶의이야기를소설에담고자한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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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추천사

박경린의소설『죽어마땅하다』는한사람의죽음에서시작해오래묻혀있던세사람의시간을따라가는소설이다.작품의첫장면은차갑고선명하다.“바다와하늘의경계는없었다.”그문장처럼이소설에서는선과악,가해와피해,복수와속죄의경계가쉽게나뉘지않는다.어둠속에서발견된시신은하나의사건으로보이지만,이야기가깊어질수록그것은수십년동안말해지지못한상처가마침내수면위로떠오른결과처럼다가온다.

이작품의힘은사건자체보다그사건을감싸고있는삶의두께에있다.작가는독자를완도의바다,충청도의저수지,인천의야간학교와공장기숙사,주안역광장의노래와분식집의냄새까지차근차근불러낸다.그풍경속에서정희,경숙,미영은서로를만난다.가난하고외롭고상처많은아이들이었지만,셋은함께있는동안만큼은세상에버려지지않은사람들처럼웃고먹고걷는다.“그들은서로에게가족이었다.사랑하는가족”이라는문장은이소설의가장따뜻한심장이다.그문장때문에뒤이어찾아오는균열과침묵은더아프게남는다.

이책『죽어마땅하다』는복수를다루지만,복수의통쾌함에기대는소설은아니다.이작품은오히려복수가시작되기전까지한사람이얼마나오래무너졌는지를바라본다.미영이겪은일,정희가평생끌어안은죄책감,경숙이뒤늦게감당하게되는진실은모두한순간에생긴비극이아니다.말하지못한밤이있고,묻지못한질문이있고,외면한시간이있다.그침묵이수십년을지나다시돌아와사람들의삶을붙든다.작가는그과정을차갑게밀고나가면서도인물들을함부로심판하지않는다.다만그들이왜그지점까지걸어갈수밖에없었는지,독자가외면할수없도록끝까지따라가게한다.

이소설에서인상적인것은여성들의우정이아름다운기억으로만남지않는다는점이다.우정은때로구원이지만,때로는빚이되고형벌이된다.어린날의정희,경숙,미영은서로에게밥이고잠자리이며웃음이었다.그들은가난한공장과좁은교실,퉁퉁불은라면과거리의노래속에서서로를살려냈다.하지만가장중요한순간,그들은서로에게필요한말을하지못했다.묻지못했고,설명하지못했고,붙잡지못했다.그침묵이관계를갈라놓았고,그침묵의대가는너무오래지속되었다.작가는우정을낭만적으로꾸미지않는다.사랑이깊은만큼상처도깊을수있음을,오래된관계일수록더잔인한방식으로서로를묶을수있음을보여준다.

작품의문체는거칠고생생하다.사투리와생활어가인물의몸에붙어있고,장면들은과장된수사보다현장의냄새로살아난다.술집의소란,미용실의수다,공장기계의소리,저수지의음습한적막이선명하게이어진다.추한것은추한대로,우스운것은우스운대로,비참한것은비참한대로놓아둔다.그래서이소설의문장은때로거칠고때로통속적이며,바로그지점에서이상하게도더현실적이다.삶은언제나정갈한문장으로만이루어지지않기때문이다.

특히“사람은자존감이있는거랑께”라는미영의말은이작품전체를관통하는작가의의지처럼읽힌다.미영은가난했고,속았고,버려졌고,병들었지만끝내자신이짓밟힌사람이라는사실만은잊지않으려한다.이말은미영개인의항변을넘어,함부로사용되고쉽게지워진사람들의목소리처럼들린다.이소설이독자에게남기는불편함도거기에있다.누군가의상처가세상에서는오래전에끝난일로처리되더라도,당사자의몸과마음에서는결코끝나지않을수있다는사실이다.

『죽어마땅하다』는독자에게묻는다.죽어마땅하다는말은누구의입에서나올수있는가.법이가닿지못한죄,사과없이지나간시간,피해자의삶을망가뜨리고도아무렇지않게늙어간사람들앞에서우리는어디까지분노할수있는가.동시에이소설은복수의끝이과연해방인지도조용히되묻는다.“자연은언제나수용적이다”라는문장이반복될때,바다와저수지는모든것을받아들이는듯보이지만,인간의마음은그렇게쉽게가라앉지않는다.물속으로사라진것은시신만이아니라남은자들이평생끌고가야할죄의식과고독이기도하다.

이작품을추천하는이유는분명하다.『죽어마땅하다』는자극적인사건을앞세우면서도그안에오래된여성의삶,산업화시절의노동,가난한청춘의우정,성폭력의후유증,죄책감과노년의고독을촘촘히엮어낸다.읽는동안독자는사건의진실을따라가지만,마지막에남는것은범인이누구인가에대한답이아니다.한사람의고통을제때들어주지못한사회,말해야할순간에침묵했던사람들,그리고너무늦게도착한용서의무게가오래남는다.그래서이소설은독자를오래붙든다.사건이끝난뒤에도,바다와저수지의검은물결처럼마음속에서쉽게가라앉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