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시대 : 일본 출판의 황금기를 이끈 편집자 가토 게이지 회고록

편집자의 시대 : 일본 출판의 황금기를 이끈 편집자 가토 게이지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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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가토게이지

1940년생으로도쿄대학문학부동양사학과를졸업했다.1965년미스즈서방에입사해인문서편집자로일하며한나아렌트,카를슈미트,버트런드러셀,마루야마마사오,후지타쇼조등의저작을편집했다.1998년부터2001년까지미스즈서방의대표이사를역임했다.2005년한국,일본,중국,타이완,홍콩,오키나와출판인이함께하는동아시아출판인회의를창립하고초대회장을맡았다.왕단의『중화인민공화국사15강』을일본어로옮겼고,자신의편집자이력을회고한이책의마지막교정을보던중2021년4월세상을떠났다.

목차

머리말

1부한인문서편집자의회상

1장내안의DNA
2장살아남은사람
3장병아리오리엔탈리스트
4장오비도시토와의만남
5장1970년대에는열심히일했다
6장1980년대이후
7장두개의전람회

2부내가만난사람들

1장번역가소묘
오쿠보가즈오/나카노요시유키/마쓰우라다카미네/고바야시히데오/이시가미료헤이/이나바모토유키/미야케노리요시/우사미에이지/나카지마미도리/이케베이치로/볼프강샤모니
2장삶은달걀과주먹밥-오카모토도시코씨이야기
3장조금옛날이야기-미스즈서방구사옥이야기
4장나는얼굴도못생긴데다가상냥하지도않아-『푸레이집안의편지』와그편집자
5장당신은이세상사월의하늘-중국의국장을디자인한여성
6장도다긴지로부자이야기

3부내가만난책들

1장마루야마문고에소장된오규소라이관계자료들
2장세개의『호겐모노가타리』
3장책장한구석에서
뉴욕공공도서관/쿠란의중국어번역가/비자야나가라왕국의수도에서
4장타문화이해를체현한책의형태

후기
옮긴이의말
색인

출판사 서평

편집자는어떻게탄생하는가
-코피가날때까지책을읽던소년이당대최고의인문서편집자가되기까지

“가토군은어떤주제에대해물어보면그와관련된책을모두가져와서각각의특징에대해설명해준다.그는제너럴리스트다.”-마루야마마사오(정치학자)

“가토군은뭔가잘안다.”-고바야시히데오(언어학자)

정치학자마루야마마사오는편집자가토게이지를제너럴리스트라평했고,가토는이를평생의자랑으로여겼다.그의제너럴리스트적인면모는유년시절부터줄곧이어온다방면의독서로형성되었다.이책1부의회고에따르면,1940년생인가토게이지는패전후사회를재건하는과정에서집중적으로기획출간되었던아동문고,소년·소녀잡지,모험소설등을탐독하며일찌감치독서가의길에들어섰다.『소년아사히연감』(1947년창간),이와나미소년문고(1950년창간),『소년미술관』(1950~53년),『어린이의과학』(1924년창간),『초보의라디오』(1948년창간)등그가어린시절에읽은단행본과잡지의목록만보더라도당시일본출판문화의발전과그영향아래서성장한한세대의모습을짐작해볼수있다.

로맹롤랑의『장크리스토프』,로제마르탱뒤가르의『티보가의사람들』,H.G.웰스의『세계문화사』등을경쟁적으로읽던고교시절을지나도쿄대학에진학한가토게이지는1960년에일어난안보반대투쟁을맞닥뜨린다.격렬한학생운동의현장한가운데서권력에도,폭력에도약한자신을직시하고“그렇다면한순간의용감함이없는사람은어떻게저항을지속할것인가”(45쪽)라는문제의식을갖게된다.이후그는인류학,언어학,미술사,철학,역사학등다방면의수업을닥치는대로청강하며교양을쌓는데주력한다.1960년대전반대학에서얻은이런경험과인식은그가훗날편집자를지망하는데큰영향을미친다.교양학부를마치고동양사학과로진학한가토게이지는에노키가즈오(중앙아시아사),야마모토다쓰로(동남아시아사),스도요시유키(중국사)등쟁쟁한교수진아래서아시아학전문도서관이자연구소인동양문고를견학하고,만철사연구회에도참여하는등학문의세계에발을들인다.중국고대사쪽으로전문적인관심을키워갔지만최종적으로는‘만주의조선인공산주의자’를주제로삼아졸업논문을완성하고1965년미스즈서방에입사한다.

가토게이지는미스즈서방의창립자이자초대편집장이었던오비도시토아래서편집자의기본기를익혔다.오비도시토는‘천천히서둘러라’라는격언을좋아하던사람이었다.주말마다『더타임스리터러리서플먼트』,『뉴욕타임스일요판』,『르몽드』등외국의신문잡지서평을샅샅이읽고주요신간을발빠르게검토출간하는한편으로,“시간은밭이다”라는말로미스즈서방의책들이시간을밭으로삼아자라나오래도록읽힐것임을예견하기도했다.가토게이지는오비도시토가기획한책들을편집하며당대사상과문화의지도를파악해나갔고,유수의저자및번역가들과교류하며인문서편집자로서의입지를다져나갔다.

일본인문출판의중심미스즈서방과지식인으로서의편집자

“편집자는모든것에대해무엇인가를알고있는사람이자,무엇인가에대해서는그전체를알고있는사람이다.”

가토게이지가편집한책의목록과교류한저자,번역가의이름만으로도한시대의지성사를쓸수있을만큼이책에서는‘지식인으로서의편집자’의면모가두드러진다.한나아렌트의『전체주의의기원』,카를슈미트의『현대의회주의의정신사적지위』,알레산드로당트레브의『국가란무엇인가』,제임스보즈웰의『새뮤얼존슨전기』,조지트리벨리언의『영국사회사』,버트런드러셀의『독일사회민주주의』등이모두가토게이지가편집한책들이다.2부1장「번역가소묘」에서는이책들을함께만든번역가들을소개하고있는데소쉬르의『일반언어학강의』를세계최초로번역한언어학자고바야시히데오와의협업,세상을떠들썩하게한번역가의자살과뒤이은오역사건,3대에걸쳐번역가를배출한집안등각각의일화를따라가다보면편집자와저자,번역가가함께지적토양을일구어가던20세기후반일본지식인사회의열기를확인할수있다.

또한이책에는편집자들이발빠르게소개한해외저작들이사회에새로운담론과주제,연구방향을제시한사례가많이등장한다.일례로가토게이지는편집장오비도시토에게“세계의절반은이슬람입니다”(72쪽)라는말로이슬람관련서적의출간을제안하고,1960년대후반에서1970년대전반에걸쳐버나드루이스의『아랍의역사』,해밀턴알렉산더깁의『이슬람문명사』,몽고메리와트의『무함마드:예언자와정치가』등을의욕적으로펴낸다.이책들을바탕에두고,이후헤이본샤에서에드워드사이드의『오리엔탈리즘』이출간되면서일본사회에서도‘오리엔탈리즘논쟁’이촉발된다.1973년마르크블로크의『봉건사회』를시작으로뤼시앵페브르,페르낭브로델등아날학파의작업이잇달아소개되며역사학의새로운영역이열리던과정에도최적의번역가를찾아신속하게책을출간해낸편집자들이있었다.

미스즈서방은번역출판의명가로알려진곳이지만,일본사상가들의저작과일본사연구를위한기초자료를펴내는일도게을리하지않았다.서구지성들의저작을소개하는한편으로구가가쓰난,쓰다마미치등메이지사상가들의전집을비롯해마루야마마사오의『전중과전후사이』,『고바야시히데오저작집』,『후지타쇼조저작집』등당대사상가들의저작도꾸준히출간했다.가장인상적인작업은1차대전이후부터2차대전에이르는시기일본현대사의기초가되는모든문서자료를수집해간행한『현대사자료』(전45권,별권『색인』1권,1962~80년)와『속·현대사자료』(전12권,1982~96년)이다.컴퓨터는커녕복사기도제대로갖춰져있지않던시절에극비자료나해외반출자료까지최대한수집해체계적으로정리하는일을한민간출판사가해낸것이다.그주역은물론편집자들이었다.

“인문서의벨에포크,그시대의모습을전할수있다면기쁘겠다”
-편집자의회고를통해보는일본인문출판의찬란한시절

가토게이지가편집자로일한기간,그중에서도특히1960~80년대는일본출판의황금기라고부를만한시기이다.아동문고,소년·소녀잡지부터고전의주석이나최신의사상을담은인문서까지연령과분야를막론하고다량의출판물이쏟아져나왔고,그것을사서읽고이야기나누는독자들이있었다.가토게이지와그동료들은이런사회문화적배경속에서성장하고공부하고일한사람들이다.가토게이지라는인물자체가“모든것에대해무엇인가를알고있는”그시대제너럴리스트의표본과도같은사람이고,그와함께일한오비도시토,마루야마마사오,고바야시히데오등도인문학전반에대한폭넓은소양과특정분야에대한전문성을고루갖춘사람들이었다.이책후반부에실린여러산문들에서는이른바‘인문서의벨에포크’가낳은뛰어난제너럴리스트와스페셜리스트들이교류하고경쟁하며전후일본사회의지적성장을이끄는모습을볼수있다.나아가가까이는동아시아,멀리는전세계학계와출판계의흐름을살피는편집자의넓은시야에경탄하게된다.

3부1장「마루야마문고에소장된오규소라이관계자료들」을보면,미스즈서방이직접오규소라이관련필사본과판본의복사물을샅샅이수집하고,그것을바탕으로마루야마마사오가엄밀한교주작업을진행하는일화가나온다.이자료수집의과정에는앞서출간된이와나미서점의『국서총목록』(전8권)과그『색인』이중요한참조가되었고,서지학의일인자아베류이치의혹독한질책과도움도있었다.가토게이지는그럼에도불구하고피할수없었던중대한과실過失에대해서도고백하며“사상사학에서서지학,고문서학에대한경의는필수적이라고생각한다.편집이라는작업을진행하면서근세사상사분야의텍스트교정이불충분하다는점을통감했다”(221쪽)라고말한다.이일화에등장하는모든인물은사상사학,서지학,고문서학에대한지식을일정정도갖추고있었고,방대한자료를수집분류하여각자의판본을출간하던미스즈서방,이와나미서점등의출판사도이런작업의중요성을명확하게인식하고있었다.학계와출판계,그리고독자가함께인문학의발전을견인해가던찬란한시절이었다.

35년의경력가운데“마지막무렵에는그늘이있었다”(5쪽)라는저자의언급처럼일본에서도더이상은이런모습을찾아보기어렵다고한다.그러니이책은개인의회고를넘어,인문출판이꽃을피웠던한시대를증명하는역사적기록으로도읽을수있다.“미스즈서방의구사옥이있던삼각형토지는지금은24시간코인주차장이되어몇대의차가주차되어있다.책만드는일에홀렸던사람들의꿈의흔적을보여주는현대의풍경이다”(176쪽)라는저자의다소쓸쓸한회고처럼,‘꿈같은출판사’를여럿가졌던일본이나그런기억조차거의없는한국이나이제인문서출판의현장에는꿈의흔적만이남아있다.